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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차별금지법과 패션 – 애버크롬비, 발렌시아가 소동

Saturday, June 4, 2022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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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다. 규제 범위와 사유를 둘러싸고 15년간 미뤄왔던 입법으로 고용, 교육, 재화 · 용역, 행정 등 사회적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자 한다. 뜨거운 찬반 논란 속에 패션도 차별금지법을 피해 갈 수 없다. 사회적 영역의 최첨단에서 패션은 이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져야 할까? 갈수록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패션의 생존법도 복잡해진다.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어느 쿨한 패션 브랜드의 다큐멘터리가 이 땅의 차별금지법과 맞물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이트 핫: 애버크롬비&피치, 그 흥망의 기록’은 애버크롬비의 인종차별과 외모지상주의를 다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애버크롬비는 미국 청소년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젊은 세대가 열광했다.

애버크롬비가 상정해 온 이미지는 늘씬하고 건장한 백인 남녀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이다. 백인스러운 쿨, 섹시, 배타성을 내세운 애버크롬비의 마케팅 전략은 10대와 20대에게 주효했다. 그러한 가운데 무시무시한 차별이 진행됐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애버크롬비 매장에 유색인종 직원은 고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그늘에서 일해야 했고, XL사이즈를 넘는 의류는 제조단계에서부터 외면당했다.

예쁘고 잘생긴 백인 외에는 고객으로 여기지 않았던 애버크롬비는 배타성을 내세워 고객의 니즈보다는 대중에게 가스라이팅을 통해 애버크롬비의 이미지를 더 원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제프리 CEO의 2008년 인터뷰는 놀랍다. “모두가 애버크롬비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타깃은 인기 많은 쿨한 백인 아이들이다.” 그들은 심지어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티셔츠를 판매했고, 유색인종은 채용되지 않거나 일터에서 차별당했다. 그 직원들이 애버크롬비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교묘하게 인종차별 정책을 고수한 애버크롬비의 종말은 뻔했다. 2010년대 이후 ‘정치적으로 올바름(Politically Correct)’ 열풍이 미국 내에서 불면서, 애버크롬비에 대한 불매운동도 격렬해졌다. 애버크롬비는 뒤늦게 차별정책을 폐기했지만, 이미 ‘차별’의 대명사로 낙인이 찍힌 브랜드였기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2018년 파리 프렝탕 백화점 매장에서 중국인 고객 폭행으로 보이콧 대상이 된 발렌시아가도 작년 말 차별금지법의 도마에 올랐다. 흑인 문화를 도용해 고가의 스웻팬츠를 팔았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발렌시아가의 140만원짜리 트롬프 로일 팬츠는 복싱 반바지를 허리 밴드 위로 드러내는 힙합 뮤지션들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이 제품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발렌시아가 측은 여러 스타일을 결합한 패션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새깅 패션을 금지하는 법이 미국 몇몇 주에서 시행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흑인을 표적으로 삼아 차별하는 법이었기에 뒤늦게 새깅 아이템을 패션화 · 상업화한 발렌시아가에 인종차별의 질타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주류 문화가 비주류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이를 베끼는 행위는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애버크롬비’스러운 다수의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패션은 쉽지 않다. 젠더 갈등, 성소수자, 다문화주의 등 새로운 이슈들에 패션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차별금지법 시대에 패션이 그저 차별만 피해 다닐 것은 아니다. 법은 최후 · 최소 수단이다. 2006년 GAP의 RED 캠페인처럼 패션이 적극 나서야 한다. 사회 통합을 향해 패션계에서 내는 액션이 진짜 패션이다.

■ profile
•건국대 교수 / 변호사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패션협회 법률자문
•국립현대미술관 / 아트선재센터 법률자문
•국립극단 이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이사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부회장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서울대 법대 학사 석사 박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6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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