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라허스트 창립자 겸 끌로에 CD
    허스트, 지속가능 럭셔리 개척자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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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1.16조회수 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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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을 베이스로 하는 브랜드인 ‘가브리엘라허스트(Gabriela Hearst)’의 창립자이자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럭셔리 브랜드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지속가능적 가치를 적용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타임리스한 스타일을 제공하는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브랜드 론칭 때부터 지속가능성과 환경 훼손이 적은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를 위해 허스트는 컬렉션에 재고 원단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자선단체와 연계해서 수익을 기부하는가 하면 난민 여성에게 수공예를 의뢰해서 상품을 제작한다.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나서는 프랑스의 럭셔리 메종에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를 대규모로 도입하고 있다. 끌로에 버티컬(Chloe Vertical)을 통해서 서플라인체인의 모든 단계에서 추적이 가능하도록 해 환경적 · 사회적 영향을 개선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비영리 조직을 지원한다. 그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끌로에는 2021년 럭셔리 패션 부문 최초로 비콥인증(B Corp, 사회성과 공익성이 검증된 기업)을 받았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자신의 윤리성과 가치를 양보하지 않으면서 컬렉션을 만들고 브랜드를 운영하는 럭셔리 하우스의 예를 보여준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아름다운 가먼트를 만드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패션이다.




    스타일 · 친환경 · 사회적 책임감 결합

    2015년 창립된 디자인하우스인 가브리엘라허스트(Gabriela Hearst)는 하이퀄리티의 세련된 스타일로 럭셔리 부문에서 빠르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잉여상품을 원하지 않는 허스트는 그의 베스트셀러 핸드백 디자인(Nina, Diana)을 소량만 생산한 후 오더메이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이 덕분에 웨이팅 리스트는 한때 1000명에 달했다.

    그의 지속가능성 명성에 힘입어 론칭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2019년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유명인 팬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질 바이든과 영국의 왕세자 빈 케이트 미들턴을 비롯해 오프라 윈프리, 우마 서먼, 데미 무어, 메건 마클 등이 공식 석상에서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옷과 핸드백을 착용하는 등 셀러브리티 패션 리더에게 어필하고 있다.

    럭셔리 패션에 대한 허스트의 지속가능한 노력과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2020년에는 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가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American Womenswear Designer of the Year) 상을 받았다.

    끌로에, 가치주도적 브랜드로 리포지셔닝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2월 리치몬트그룹은 가브리엘라 허스트를 나타샤 램지 리바이(Natacha Ramsay Levi)를 잇는 끌로에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해 화제가 됐다. 허스트의 디자인은 성숙한 분위기의 세련된 실루엣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자유롭고 페미닌한 이미지의 끌로에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허스트는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끌로에와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을지 패션산업의 인사이더들이 의아해했다.

    허스트의 임명은 끌로에의 전략적 전환을 반영하는 행보였다. 2019년 12월 임명된 CEO, 리카도 벨리니(Riccardo Bellini)는 끌로에를 목표지향적(purpose-driven)으로 경영할 것을 선언했는데, 이는 허스트의 지속가능적 가치와 일치했다. 허스트를 임명하면서 CEO인 벨리니는 “좀 더 책임감 있는 패션에 대한 허스트의 파워풀한 비전은 오늘날 진정한 끌로에 여성의 가치를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자유로운 영혼을 반영하는 패션으로 알려졌던 끌로에를 환경과 사회적 의식에 바탕을 두는 비즈니스로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CEO 벨리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허스트의 파트너십은 2021년 10월에 비콥인증으로 이어지는 등 끌로에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뉴욕 베이스 디자이너 vs 우루과이 목장 주인

    모델을 방불케 하는 체격과 외모를 지닌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우루과이 출신으로 모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밀라노와 파리에서 모델 활동을 했으며 뉴욕에서는 연기 학교(Neighborhood Playhouse)를 졸업했다. 배우가 아닌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3년 보호(boho) 분위기의 패션 브랜드인 칸델라(Candela)를 론칭한 경험을 통해서다. 이후 칸델라를 접고 2015년 가브리엘라 허스트를 창립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시내가 차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우루과이 서부 파이산두(Paysandu)지방의 광활한 목장에서 자랐는데, 그의 가족들은 비누를 직접 만드는 등 버리는 것이 없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슬로디자인, 수공예 상품, 소량 생산이나 오더메이드 등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것은 이러한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허스트는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우루과이 내 초대형 목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 생산된 오가닉 울을 가브리엘라 허스트와 끌로에 컬렉션에서 사용한다.

    허스트는 디자인에 대해서 항상 세 가지를 고려하는데 △가먼트나 잡화를 만들 때 물을 절약할 수 있는지 △화석연료를 덜 사용할 수 있는지 △항공 대신 선박으로 수송할 수 있는지 등이다. 재고 원단을 컬렉션에 사용하는 것은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접근방식이다. 재고로 사장(死藏)된 원단을 활용하면 새로운 원단생산을 위한 자원사용과 탄소발생을 막을 수 있고, 생산 기간(12주)을 절약할 수 있고 선박으로 수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38%가 소재생산에서 비롯되므로 재고 원단 사용은 매우 친환경적이다.




    재고 원단 사용, 업사이클링 푸시

    이 브랜드는 2017년부터 재고 소재를 사용했으며 2022 S/S에서는 재고 원단 비중이 40%를 차지했다. 브랜드 내에서 버려지는 소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재고 원단과 재생 소재(recycled fabrics)로 대치할 계획이다.

    재고 원단 활용을 넘어 허스트는 이제 이월재고 및 중고상품을 재활용하는 것으로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있다. 시작은 2020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레트로 핏(Retro Fit)으로 재고 상품을 업사이클링해 일종의 서브 브랜드로 제공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국의 셀프릿지스 백화점과 협업해서 업사이클링 캡슐컬렉션을 독점 판매했다.

    안티크 러그에 캐시미어 안감을 넣은 아우터웨어(pea coat)로 변형하는 것에서부터 스커트에 손자수를 놓고 셔츠 드레스를 새로운 컬러로 딥다이(dip dye)하기도 하고 캐시미어 드레스를 다시 튜닉으로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업사이클링한다. 허스트는 이처럼 폐기물(재고상품)로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우아하고 세련된 물건을 만든다.

    탄소중립 패션쇼 개최, 럭셔리 잇따라

    또한 끌로에의 2021 F/W 데뷔 컬렉션에서는 끌로에의 중고 핸드백을 업사이클링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옥션 사이트(ebay)에서 다시 사들인 끌로에 핸드백을 패치워크나 브레이드(braid)로 장식해 색다른 디자인으로 만드는 등 새로운 종류의 창의성을 제안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2019년 업계 최초로(구찌보다 몇 주 일찍) 탄소중립 캣워크 쇼를 2020 S/S에 개최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탄소중립 패션쇼를 위해서 설치물, 운반, 에너지, 쓰레기 등 캣워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검토해 탄소발자국을 측정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기금을 친환경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이후 2020 S/S 구찌, 2020 F/W 버버리도 탄소중립 캣워크 쇼를 운영했다. 버버리는 이를 위해 전기자동차를 사용하고 항공수송을 사용하지 않는 등 탄소배출을 제한하는 한편 탄소발생을 상쇄하기 위해 호주의 산불위험을 줄이려는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생로랑도 지난해 7월 선보인 남성복 쇼를 탄소중립으로 진행했다. 이벤트에서 배출되는 모든 온실가스 배출은 유엔의 프로젝트(REDD+) 펀딩으로 상쇄했다. 이처럼 패션계에서는 현재 탄소중립 캣워크가 트렌드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소재 사용 제1 조건 ‘친환경’, 코튼 → 리넨 대치

    허스트는 원단을 선택하는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환경적 관점에서 소재를 선택한 후 스케치(디자인)하고 실루엣을 결정한다. 친환경 소재 사용을 원칙으로 하므로 일반 폴리에스터(석유계 섬유)와 비스코스(삼림훼손 우려), 코튼(지나친 물 사용으로 자연을 훼손) 등은 제외한다. 대신 재생 폴리에스터, 재생 비스코스, 오가닉 코튼, 재생 캐미시어 등을 사용한다.

    끌로에 컬렉션에서 코튼을 리넨으로 대치한 것은 허스트의 유명한 일화다. 코튼은 가장 일반적인 소재지만 과도하게 농약과 물을 사용해 환경을 훼손한다. 이에 비해서 리넨은 물을 덜 사용하므로 친환경으로 간주된다. 코튼 사용을 중단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데님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데님은 1990년대부터 브랜드에서 중요한 카테고리였기 때문에 친환경 코튼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재고의 코튼 소재를 사용하다가 현재는 재생 코튼(사용된 데님을 회수해서 펄프로 만든 뒤 다시 제직한 것)을 사용한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원하는 소재의 데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브랜드의 수익을 기부하고 난민이나 오지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등 허스트는 사회적 명분을 위한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사회적 영향은 가브리엘라 허스트 브랜드의 중심이며 끌로에를 가치주도적 브랜드로 이끄는 핵심이다.




    비영리조직 · 셸터슈트 · 커뮤니티 지원

    특히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을 위해서 허스트는 2018년 이후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펀딩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예멘, 케냐,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어린이 구호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통해 가브리엘라 허스트 핸드백 판매 이익을 매년 12월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허스트는 난민과 노숙자를 지원하는 조직에 셸터슈트(Sheltersuit Foundation)도 지원한다. 셸터슈트는 네덜란드의 비영리조직으로 노숙자와 난민이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셸터슈트 아이템(파카와 슬리핑백을 결합)을 제공한다. 끌로에 컬렉션에서는 재고 원단과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 셸터슈트와 백팩을 캣워크에서 선보였으며 이후 셸터슈트와 백팩 1개가 팔릴 때마다 2개의 셸터슈트를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허스트는 또한 아프리카와 우루과이 등 지역주민을 지원하는 비영리조직과 협업함으로써 혜택받지 못하는 커뮤니티와 연계한다. 끌로에의 2022 S/S 컬렉션에서는 세계 각지의 7개 비영리조직과 협업해서 그들이 지원하는 재료와 크래프트 기술을 컬렉션에 활용했다. 샌들은 케냐의 오션솔(Ocean Sole, 바다에서 플립플롭을 수거해 재활용함)과 대형 핸드백은 미푸코(Mifuko, 케냐, 이디오피아, 탄자니아, 가나의 여성들이 수공예로 위빙함)와 목걸이 등의 잡화는 아칸조(Akanjo, 럭셔리 상품에 정교한 수공예 디테일을 제공하는 마다가스카 소재의 조직)와 협업했다. 또 우루과이 내의 600여 명 여성이 협업하는 조직(Manos del Uruguay)이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디자인을 핸드 메이드로 제작한다.

    유엔기후변화 회의 패널 참가, 그린에너지 지지

    비영리 조직의 수공예 장인들과 함께 상품을 만드는 것은 고객에게 핸드메이드의 특별한 디자인을 제공하는 방법인 동시에 커뮤니티의 사회적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허스트는 이를 더욱 알리기 위해서 2021년 10월에는 100% 핸드메이드로 제작하는 끌로에 크래프트(Chloe Craft)를 론칭했다. 끌로에 크래프트는 기계로 만들 수 없는 테크닉과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지향한다. 핸드메이드로 만든 것을 별도의 레이블로 구별함으로써 사람들이 그 특별함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개최한 CPO27(유엔기후변화 회의)에서 허스트는 퓨전파워(fusion power, 핵융합 발전)에 대한 디스커션에 참여했다. 럭셔리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린에너지 전략을 지지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는 패션을 더욱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환경운동은 기꺼이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끌로에의 2023 S/S 컬렉션을 퓨전에너지 테마로 운영했다.

    또한 COP26(2021)에서는 기후위기를 기후성공으로 만들기 위한 패션의 역할과 관련해 패널로 참여하는 등 그는 디자이너이면서 지속가능성 운동가의 면모를 보인다. 그의 이러한 활동과 역할에 대해 영국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즈는 허스트를 ‘2021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LVMH가 투자, 미래지향적 럭셔리 브랜드로

    가브리엘라허스트 브랜드는 아직 규모가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2021년 +40%). 현재 뉴욕의 플래그십스토어를 비롯해 런던과 파리에 총 3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며, 판매처는 세계적으로 100개에 달한다. 현재 아시아권에 매장 오픈을 계획 중이며, 향후 3년 내에 매장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추진 중이다.

    지난 2019년 1월 LVMH가 투자하면서 가브리엘라허스트는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떠오르는 럭셔리 브랜드의 소수지분을 인수하는 프로그램(LVMH Luxury Ventures)의 일환으로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26억~69억원으로 추측한다.

    현재 CEO는 보테가 베네타의 미국 지사 사장과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 브랜드의 CEO 출신인 주세페 조바네티(Giuseppe Giovannetti)로, 그는 토리버치(Tory Burch)의 초기 투자자로도 유명하다.




    <지속가능 럭셔리의 인스피레이션 등극

    소비자들은 이제 럭셔리 상품의 가격에 환경과 윤리가 포함되기를 기대하며, 럭셔리 브랜드는 이를 위해서 ESG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을 펴고 있다. LVMH나 케어링 등 럭셔리 그룹은 이제 지속가능성을 기업 운영의 중심 가치로 들여오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충성도를 올리고 사람들이 열망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로 만들고자 한다.

    허스트는 시작부터 지속가능성을 브랜드의 중심 가치로 삼았으며, 이를 소비자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니셔티브로 운영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컬렉션에서 업사이클 디자인을 소개하고 노숙자를 위한 셸터슈트와 아프리카 지역주민 여성이 손으로 위빙한 핸드백을 제공하는 등 허스트는 지속가능 럭셔리를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이처럼 친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허스트는 비영리조직을 위한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다른 럭셔리 브랜드에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지속가능 럭셔리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1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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