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에 부는 ‘리쇼어링’ 바람

    minjae
    |
    21.02.01조회수 7893
    Copy Link
    빠른 시장변화 속 민첩대응 비법...DT 이은 포스트 코로나19 전략






    코로나19 팬데믹은 패스트패션의 오프쇼어링 부작용을 경험한 회사들에게 리쇼어링과 니어쇼어링의 필요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특히 자라 · 망고 등 패스트패션 대표 기업을 보유한 스페인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두드러 지고 있다.

    지난 수년간 패스트패션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프쇼어링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노동착취를 비롯한 여러 부작용을 남겼다.

    이 사이로 2020년 코로나19가 침투하면서 생산과 유통의 마비가 발생했고, 이제 업계에서는 리쇼어링*을 주목하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세계 섬유·패션산업을 뒤흔든 키워드는 ‘패스트패션’이었다. 트렌드에 맞춘 저렴한 의류를 짧은 주기로 판매한다는 전략을 키워드로 하는 패스트패션은 자라(zara)를 보유한 스페인의 인디텍스그룹이 이끌었다.

    1963년 고아(GOA)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인디텍스그룹은 ‘디자이너의 브레인에서 시작해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단 15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어제 패션쇼에서 본 제품을 오늘 매장에서 저렴하게 만난다’를 모토로 내세우며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마침내 1990년 초 미국시장에서 자라가 퍼져 나가기 시작할 때 <뉴욕 타임스>는 이 브랜드를 가리켜 처음 ‘패스트패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960년대 패스트패션 태동과 1990년대 광풍

    이전에 패션쇼에 등장하는 트렌드 의류를 입기 위해서는 고가의 돈을 지불하고 1년에 2차례 정도 매장에 진열되는 제품을 한정적으로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생겨난 뒤로는 한철 입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매주 2회 최신 유행 의류들을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자라의 성공 이후 수많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생겨나며 전 세계 패션업계는 그야말로 패스트패션 광풍에 휩싸였다. 패스트패션의 성공 덕에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그룹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부호 순위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여러 해가 지난 2019년에도 6위에 오르며 여전히 건재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폭발하는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패션회사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로 생산공정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섬유산업의 대대적인 오프쇼어링이 발생한 것이다.

    보다 더 저렴하게, 패션 오프쇼어링 가속화

    스페인의 경우만 보더라도, 20세기 스페인의 제조산업을 이끈 주요 동력 중 하나는 바로 섬유산업이었다. 특히 이 산업은 카탈루냐와 발렌시아를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며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패스트패션에 집중한 기업들이 생산공정을 저렴한 아시아로 옮기면서 스페인 섬유산업 기업 수는 2001년 3만4679개에서 2013년 1만9302개로 급락했다. 불과 1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약 44%의 기업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물론 대다수는 소규모 제조 공장이었다.

    서구 브랜드의 생산공정이 넘어간 아시아에서도 문제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흔히 섬유산업을 두고 석유산업 다음으로 환경오염을 야기하는 산업이라고 한다. 매년 의류와 신발이 6000만톤 이상 생산되지만 그중 70%는 거의 이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21세기 들어 스페인 섬유제조사 44% 붕괴

    이렇게 버려진 의류의 상당수는 저렴하고 낮은 품질의 합성섬유로 만들어진다. 의류에 가장 흔하게 쓰이는 합성섬유 중 하나인 폴리에스테르는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200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의류를 세탁할 때마다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고, 이 중 상당량은 바다로 흘러가며, 이를 먹은 생선들은 다시 우리 식탁에 올라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버려진 의류만이 문제가 아니다. 의류는 이미 생산공정에서 많은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의류 생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연간 120억톤으로 전체의 10% 수준이다. 항공과 해운산업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 높다. 또한 전 세계 폐수 배출량의 20%가 의류 생산 때문에 발생한다.

    환경오염과 더불어 발생한 또 다른 문제는 생산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저렴한 납품가격을 맞추기 위해 제3국의 생산 노동자들이 과한 업무량과 위험한 작업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방글라데시에서만 의류공장 화재로 700명이 숨졌고, 2013년에는 의류공장 건물이 붕괴돼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발생했다.

    개도국 의류공장, 환경오염과 노동문제 심각

    패스트패션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즈음 새로운 소비세력으로 등장한 Z세대는 패션산업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맹목적인 유행을 좇기보다는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Z세대의 부상과 함께 패스트패션과 대비되는 개념의 ‘슬로패션’ ‘지속가능한 패션’이라는 개념이 탄생하며 패스트패션의 광풍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중간에 2020년 전 세계를 마비시켰던 팬데믹이 발생했다. 특히 섬유산업 생산공장이 집중돼 있는 중국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패션업계 또한 큰 타격을 입었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많은 국가가 각종 제재조치와 록다운을 시행했고 그 결과 생산이 멈추고 물류 판매가 중지됐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의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먼 생산라인을 가진 회사들은 유연한 대처가 어려워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패스트패션의 오프쇼어링 부작용을 경험한 회사들은 리쇼어링과 니어쇼어링의 시도가 있던 중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들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지속가능 지향 Z세대, 신흥 소비세력으로 두각

    리쇼어링 또는 니어쇼어링을 외치는 기업들이 내세우는 장점은 시장의 유동성에 대한 발 빠른 대응과 자국 내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분류된 랭킹 200위 기업 중 영국과 프랑스에 가장 많은 기업이 몰려 있다.

    스페인은 6개 기업이 순위에 포함돼 있으며 이 중에는 스페인 2위 패션기업 망고(Mango)도 있다. 망고의 경영진은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3월, 시장의 불확실성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스페인을 비롯해 모로코와 터키 등 인근 국가로 생산공정을 확대했다.




    또한 동유럽(불가리아)과 포르투갈 등에 새로운 생산공장을 물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밝힌 수치에 따르면 망고 제품을 생산하는 전체 공장 수의 약 40%가 스페인과 인근 국가에 위치해 있다. 2015년 25%였던 데 비해 크게 상승한 수치다.

    다만 인건비와 법인세가 상대적으로 높은 스페인 대신 터키와 모로코에 379개의 공장이 밀집해 있으며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에는 97개의 공장이 있다.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유럽과 인근 국가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전체의 약 25%를 차지한다.

    리쇼어링, 포스트 코로나 해결책 중 하나?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그룹 역시 최근 몇 년 전부터 리쇼어링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온 기업으로 알려졌다. 매년 인디텍스그룹의 경영보고서를 보면 그룹이 스페인 경제에 기여한 효과들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데 이 중 가장 강조하는 점은 스페인 제조사의 공정과 제품들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점이다.

    최근 보도자료에 따르면 인디텍스그룹은 본사가 위치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내 자체 공장 10개를 포함해 전체 공장의 54%가 스페인, 터키, 모로코, 포르투갈 등 자국 혹은 인근 국가에 위치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인근 공장에서는 즉각적인 수요 대응을 위해 트렌드에 민감한 제품들 위주로 생산한다. 물론 스페인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리쇼어링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리쇼어링을 원한다 해도 모두 가능한 상황 또한 아니다.

    스페인 1 · 2위 패션기업 리쇼어링 적극 추진 중

    리쇼어링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한 스페인 브랜드 관계자는 스페인 생산공장들이 리쇼어링을 추구하는 패션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생산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한 다양한 생산공정을 소화해 내는 능력 또한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뒤따르는 높은 인건비와 법인세, 실효성이 부족한 정부의 재유치 정책은 스페인 패션 브랜드의 리쇼어링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원하는 생산공정을 맞출 수 있는 공장이 있다 해도 생산비 상승에 따른 소비자가 인상은 불가피한데 이 경우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인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시장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결국 다양한 생산능력의 부재와 단가 상승은 패션의 리쇼어링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이르게만 느껴졌던 디지털로의 전환이 코로나19로 급격히 이뤄진 것을 목도한 시점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또 다른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고심 중이다. 불확실한 국제 정세와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민첩하고 섬세한 대응을 가능케 해 줄 리쇼어링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패션비즈를 정기구독 하시면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패션비즈 정기구독 Mobile버전 보기
    ■ 패션비즈 정기구독 PC버전 보기







    Bann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