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_패션과 인문학]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br> 인문학자의 패션 오디세이 (4) - 샴페인과 축구공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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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패잡_패션과 인문학]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인문학자의 패션 오디세이 (4) - 샴페인과 축구공파마

Tuesday, Feb. 7, 2023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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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1년간 대학원 준비를 마치고, 일리노이 대학교가 있는 샴페인(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으로 향했다. 일리노이 대학교 본교는 어바나와 샴페인이라는 두 도시에 걸쳐 있는데, 내가 수업을 들었던 인문 사회대 건물은 거의 샴페인 쪽에 몰려 있다. 참고로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이가 읊조리던 “제시가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는 어바나 샴페인에 위치한 일리노이 대학교의 작은 분교다.

자동차 뒷좌석 카시트에 만 두 살과 네 살이 된 딸 둘을 태우고 두 시간 동안 운전해 도착한 샴페인. 달콤한 이름과 다르게 그곳에서의 시간은 전투를 방불케 했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여자 혼자 그것도 미국에서 문학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대로, ‘닥치면 하겠지’라는 배 째라 정신으로, 어떻게 보면 대책 없고 또 다르게 보면 무한 긍정 마인드로 샴페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긍정이 부정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 대학원에서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린다. 석사 학점 이수 후 석사논문이나 석사 시험을 마치는 데 2∼3년, 박사 학점을 이수하는 데 2∼3년, 박사논문을 쓰는 데 4∼6년이 소요된다. 나는 유학을 떠나기 전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고 박사 학점도 상당 부분 이수했다. 하지만 미국 대학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받은 학위와 학점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러시아 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은 나다. 학사를 마치고 곧바로 대학원에 들어온 현지 신입생보다는 당연히 유리하리라 생각했다. 남들이 10년 걸린다는 석 · 박사 과정을 4년 만에 끝내고 돌아올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첫 학기 첫 수업에서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외국인이라 영어에 약한 것은 내 사정이지 교수님 사정이 아니었다. 결국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완독했던 러시아 문학작품을 영어로 다시 읽어야 했다.  

특히 문학 토론 수업은 공포에 가까웠다. 교수님이 간단한 질문을 던지면 4∼5명의 대학원생들이 30분 이상 토론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는데, 수업 시간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1년 동안 시카고에서 회화 공부를 한 후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토론에서 2분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토론식 수업도 낯선 데다가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천상유수 같은 현지 학생들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3시간 수업이 끝났다. 강의실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나 자신이 하찮고 작게 느껴졌다. 그들보다 당연히 더 많은 지식을 쌓았을 것이라고 자부했던 러시아 문학 역시 명함도 못 내밀었다. 순수하게 문학이 좋아 박사과정까지 밟으러 온 그들의 독서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러시아 문학뿐 아니라 러시아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문학도 줄줄이 꿰고 있었다.  

평생을 모범생이자 우수생으로 살아왔는데 최악의 열등생이 된 느낌이었다. 과연 ‘배 째라 정신’으로 넘을 수 있는 산인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이러다 정말 ‘배가 째질 수도 있겠다’라는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토론 수업이 끝나는 날이면 당시 애마였던 닛산 맥시마 안에서 엄청나게 울었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으면 ‘블루 맥시마’라고 불렀겠는가(blue에는 ‘슬프다’라는 뜻이 있다). 샴페인에서 동고동락했던 블루 맥시마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내가 흘린 눈물이 미시간 호수만큼은 아닐지라도 작은 연못 정도 된다는 것을.  

그렇게 정신 없는 한 학기를 끝내고 한국에 잠시 돌아왔다. 다음 학기를 위한 짧은 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또다시 전투를 치르기 위해 샴페인으로 떠나야 했다. 그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헤어스타일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내게 긴 머리는 사치였다.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최대한 짧게 자르고 뿌리 끝까지 빠글빠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태풍이 몰아쳐도 문제없을 정도로 뽀글거리는 파마를 원했다. 다시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최소 4∼5개월은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을 버티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일명 ‘축구공 파마’가 탄생했다. 축구공을 닮은 머리를 보며 가족들은 “뭘 얼마나 열심히 하려고….” 짠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폭소를 터트렸다.  

작은 축구공을 머리에 이고 돌아온 샴페인, 사람들은 나를 보며 귀엽다고 난리였다. 체구도 작은 아시아 여학생이 흑인(african american, 아프리카계 미국인) 머리를 하고 있으니 독특하고 귀엽게 보인 모양이다. 문화인류학적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발견하는 재미난 계기였다.  

이 덕분에 ‘축구공 파마’는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고3 시절에도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에 대한 관심을 끊기 위해 나이키 추리닝을 교복으로 결정했다. 고3 1년을 두 벌의 트레이닝복으로 버텼다. 샴페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복장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축구공 파마는 샴페인에서 벌어진 전쟁에 임하는 나의 투구요, 일리노이 대학교 스웨트셔츠는 교복이자 갑옷이었다.    

전투 식량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10년이 걸리는 과정을 4년 만에 끝내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시간을 두 배 이상 빨리 써야 한다. 이에 한 학기에 동기들보다 두 배가량 높은 학점을 신청했다. 점심시간과 다음 수업 중간에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는데,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매번 내 머리만 한 커다란 사과로 끼니를 때웠다. 이 모습을 본 프랑스 남학생이 ‘Pomme Lady(사과 여인)’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Pomme Lady라는 귀여운 별명을 얻게 해준 사과는 내게 샴페인이라는 전쟁터에서 4년을 함께 버텨 준 전투 식량이다.

샴페인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언어의 장벽과 촉박한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베이비 시터의 부재도 큰 공포였다. 한국과 시카고에서는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가 있어서 그나마 어느 정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샴페인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던 첫해 IMF가 터졌다. 환율이 800원에서 2000원으로 순식간에 치솟았다. 매일 아침 학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 생길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당시 나는 학비, 아이들 유치원비, 아파트 렌트비 등을 한국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지원받고 있었다. 높은 환율로 인해 파트타임 도우미조차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학비라도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TA(teacing assistant)를 신청했다. TA는 대학생들에게 강의 · 토론 · 실습 등을 지도하거나 과제물 평가 등의 업무를 하는 대학원생을 말한다. 학부의 수업 진행을 돕고, 수업을 직접 하기도 하고, 시험문제를 만들고 이를 채점하며 학비를 면제받았다. 더불어 700달러의 급여도 받았다. 빠듯한 생활에 단비 같은 돈이었다.  

TA로 기말고사를 감독할 때의 일이다. 학부생 시험 시간이 저녁 6시 이후로 잡혔다. 문제는 어린 두 딸이었다. 도우미가 없던 터라 늦은 저녁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서둘러 유치원으로 가 아이 둘을 픽업한 후 이른 저녁을 먹였다.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시험장으로 달려갔다. 큰아이에게 줄 퍼즐과 작은 아이에게 줄 바비 인형과 색칠 공부 책도 잊지 않았다.  

수험생이 300명 정도 되면 대형 강의실에서 시험이 진행된다. 나는 아이들을 강당 위에 앉혀 놓은 후 “언니 · 오빠들이 시험을 보는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언니 · 오빠들이 힘들어서 시험을 망친다”라고 주의를 줬다. 그러고는 엄마와 약속을 잘 지키면 주말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apple donut과 apple cider(미국 1등을 여러 차례 한)가 있는 커티스 과수원에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정신없이 바쁜 엄마 덕분에 철이 일찍 든 아이들은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퍼즐을 맞추고 색칠 놀이를 했다. 그렇게 무사히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동화책을 읽어줬다. 늦어도 8시 30분이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샴페인에서 보낸 4년 반이라는 시간은 치열하고 절박했다. 정말이지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전장에서도 꽃은 피듯이 신기하게도 세 모녀의 기억 속에는 서로가 더없이 가깝게 지냈던 아름다운 시간으로 각인돼 있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아니 경험하고 싶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세 모녀를 하나로 만들어 준 그 아름다운 시간이 나를 더욱 강인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줬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고,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오늘이다.



■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스토리(RHK)
- 패션MD: Intro(RHK)
- 패션MD2: 브랜드편(21세기북스)
- 패션MD3: 쇼룸편(21세기북스)


경력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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