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br> 패션 속에 숨어 있는 암묵적인 문화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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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패션 속에 숨어 있는 암묵적인 문화 코드

Friday, Aug. 5, 2022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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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과달라하라 주말 장터에서 청치마를 하나 샀다. 분명 라인도 예쁘고 밑단 처리도 독특해, 마음에 쏙 드는 치마였다. 스페인 마요르카 섬 후미진 뒷골목에 있는 작은 옷가게에서 큼지막한 해바라기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하나 샀다. 허리선이 예쁘게 잡히는 우아한 느낌의 원피스였다. 인도 아삼주 구와하티라는 도시에서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블라우스를 하나 샀다. 그 옷을 입고 미팅에 가면 만나는 이들마다 어디서 샀냐고 묻곤 했다, 인도에서는.  

한국에 돌아와서 이 옷들을 입으니 어딘가 어색하고 때로는 무언가 불편하기까지 했다. 그 예뻤던 청치마를, 내 친구는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주신 옷이냐며 놀렸고 마요르카 섬에서 며칠을 내리 입고 다녔던 그 우아한 원피스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 옷장에서 잠만 자고 있다. 인도에서 산 블라우스는, 구와하티에 있을 때는 어떤 옷에 입어도 스타일이 사는 옷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맞춰 입을 적당한 치마나 바지가 안 보여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패션은 그 자체로 소통이자 조화다. 그 나라에서 산 옷이 그 나라에서 유독 예뻐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옷은 내 머리 모양, 몸매, 구두, 가방과의 조화뿐만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서 있는 내 주위의 건물 모양과 색, 길바닥의 색,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색과도 잘 어우러졌을 때 더 아름다워 보인다. 햇빛과 바람 심지어 공기에도 나라마다 특유의 색이 있고 나름의 독특한 느낌이 서려 있다. 현지에서 산 그 옷들은 이런 것들과 잘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기에 ‘멋지다’고 여겨졌지만 한국에선 주변 환경이 달라져 ‘거기만큼’ 세련되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가볍게 걸치는 옷, 무심코 신는 신발, 별 뜻 없이 쓰는 모자에 문화적이거나 역사적인 코드가 숨어 있기도 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한 회사에서 브랜딩 관련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15분 전에 도착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실로 걸어가는 중 이상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몇 미터 되지 않는 통로를 걸어가는 동안 양 옆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앗차 싶은 마음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가서 차림새를 살폈지만 평소와 다름없었다. 옷 매무새를 다듬고 화장실을 나오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원피스를 입었구나.”

스페인에는 사무실에서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여성 정장 브랜드에서 으레 오피스룩으로 분류되는 무릎 길이의 원피스였기에 짤막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 저녁 자리나 사적인 모임이 아닌 사무실에만 입고 가면 동료들이 ‘끔쩍’ 놀란다.  

스페인은 19세기까지 여성의 다리를 드러내는 것을 부정한 일이라 여겼던 나라다. 옆 나라 영국 역시 대영제국 시기, 빅토리아 왕조 때에 발목 노출을 금기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여성의 다리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책상 다리나 피아노의 다리까지 모두 천으로 감싸 두기도 했다. 여성의 다리가 노출되기 시작된 건 겨우 20세기에 들어선 이후다.

내 원피스와는 정반대 경우로, 스페인 동료가 한국으로 출장을 와서 미팅 자리에 입고 온 블라우스에 한국인 동료들이 ‘끔쩍’ 놀랐다. 스페인 사람들은 상의 노출에 관대하다. 여러 역사적인, 문화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가슴 부위가 깊게 파인 옷을 상류계급 여성들만 입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동료의 블라우스에는 상의 노출이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우리 한국인이 모르는 ‘코드’가 담겨 있다. 우리 모두는 오늘 하루도 각자의 패션을 통해 맞은 편에 앉은 다른 이들과 암묵적으로 여러 소통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 profile
•현 Mahon Korea 대표
•현 Golden Egg Enterprise 대표
•동원그룹, LG전자, 한솔섬유 근무
•스페인 IE Business School MBA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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