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전개권 분쟁, 이번엔 영국 바버

    곽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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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6.10조회수 1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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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년째 유지한 계약이다. 심지어 올해 4월 31일자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작년에 영국 본사가 국내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합작회사 설립 제안을 할 정도였다. 이를 믿고 국내에 있는 27개 매장에 대한 보수와 점검은 물론 상품 및 재고 관리에 대한 투자를 진행한 상태다. 그런데 계약만료 이틀 전에 본사가 계약해지를 통보해왔다."

    이번달 초 LF를 상대로 '바버'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 엔에이치인터내셔날(대표 김기정, 이하 엔에이치)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2011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바버를 들여와 10년간 운영하며 작년 기준 160억원 매출을 올렸는데 한순간에 사업 기반을 잃게 됐다고. 크지 않아 보이지만 바버 기준, 한국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시장이다.

    사실 바버 영국 본사와 LF 측의 접촉은 유통 바이어들 사이에서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드문드문 알려져 있던 일이다. '바버 전개사가 LF로 바뀔 것 같다' '지난 1월 피티워모 전시회에서 바버 본사와 LF 담당자가 만나 전개사 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던 것.

    그리고 4월 31일 재계약을 불과 이틀 앞둔 28일, 바버 영국 본사는 일방적으로 재계약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보하고, 곧장 5월 초 새로운 한국 파트너를 LF로 정해 계약이 이뤄졌다. 영국 바버 본사의 결정에 따라 일어난 일임에도 국내에서는 전 계약자인 엔에이치와 LF의 문제로 부각되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기정 엔에이치인터내셔날 대표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한국에서 지금의 바버가 있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소수 정예 직원들이 애지중지하며, 매일 매일 성실하게 쌓은 업적을 하루 아침에 빼앗겼다"며 침통한 마음을 전달했다. 전 직원이 부랴부랴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사한 경험을 했던 기업과 브랜드 관계자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며 의견을 구하고 있다.

    엔에이치Int'l '바버' 매출 160억대, 일방적 해지로 피해 막심

    이번 바버 판매권 분쟁에 대해 LF 측은 당황스럽다는 의견이다. "국내 온라인 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를 원하는 바버측에서 작년 초부터 국내 전개 관련 요청을 해왔다. LF는 바로 응하지 않았다. 올해 4월 31일부터 기존 전개사와 계약이 종료된다는 확인을 받고, 법률적으로 검토한 후 상호 협의를 거쳐 진행한 계약이다"라고 말했다.

    "수입 브랜드의 경우 보통 3~5년간 판매 계약을 맺고, 계약이 끝나기 전후로 더 좋은 파트너사를 찾는다. 전개권 문제는 본사와 LF, 본사와 전 계약자 사이의 일이다. 만약 전 계약자와 영국 바버 본사 사이에 계약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이는 LF와 영국 바버 본사가 협의해 해결해야 할 내용이지 LF와 전 계약자 사이의 분쟁으로 볼 것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특히 이번 논란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문제로 비춰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영국 본사와 엔에이치와의 문제가 오히려 LF와 엔에이치 사이의 일로 전이돼, 부당하게 사업권을 빼앗은 것 처럼 비춰지는 것을 염려한 것.

    해외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 더 유력한 파트너를 정하거나, 직접 진출하는 등 선택은 다양하고 그것은 기업의 자유다. 그 사이에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심지어 대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왕왕 있어 왔다. 개인의 일이 아니고 사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LF의 경우 몇 년 사이에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LF 상대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2015년 핏플랍 논란 소환

    바로 지난 2015년 '핏플랍' 전개사인 넥솔브(당시 대표 임정빈)와 LF간 독점 판매권 분쟁이다. 당시 임정빈 대표는 2009년부터 영국 본사와의 정식 계약을 통해 핏플랍을 전개하면서 플립플랍 샌들 하나로 6년 만에 270억대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2013년 12월 31일자로 계약이 종료된 이후, 지속적으로 연장에 대한 협의를 이어오던 핏플랍 본사가 돌연 2015년 4월 말 LF와 핏플랍 판매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넥솔브에는 일주일 뒤인 5월 5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당시 넥솔브는 직원 265명 규모의 회사로 매출의 80%가 핏플랍에서 나오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물량 운용을 위해 은행으로부터 50억원 대출을 받아 물류센터까지 준공한 상태여서 피해가 매우 컸다.(2015년 6월). 이에 넥솔브가 2015년 7월 LF와 영국 핏플랍 본사를 상대로 독점판매권 등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넣으면서 이 논란이 점화됐다.

    결국 LF가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대승적 차원의 합의를 결정하고, 넥솔브가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취하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또한 임정빈 넥솔브 대표가 LF의 기업 이미지를 훼손한 것에 대한 공식 사과 공문을 보내며 일단락 됐다.




    한국 패션기업 위상↑, 해외 브랜드 상술에 그만 휘둘려야

    한 유통 바이어는 "LF의 브랜드 전략이자 강점은 수입 브랜드를 전개하다 라이선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운영하는 것이다. 또 온라인 비즈니스에 밝은 편이다. 패션 대기업과 중소 패션기업이 강점을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 비즈니스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바버가 성장 비전에 따라 새로운 전개사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점을 짚었다.

    그럼에도 "대기업도 수입 브랜드를 전개하다가 크게 키워놨을 때 본사가 직진출을 선언하면 큰 손실을 예상하고 비상대책을 세우는게 현실인데, 1개 브랜드에 올인해 온 중소기업은 그 피해 규모나 상실감이 더 크지 않을까? 패션 대기업은 정보력과 자금력을 기반으로 국내 소비자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해 소개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제 한국 패션산업도 전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췄다. 한국 소비자들의 높은 패션 안목에 치열하게 대응하면서 국내 패션기업들의 위상도 훌쩍 성장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해외 기업의 상술에 휘둘리기 보다는 국내 패션기업들간 자정 노력과 함께 각자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건강한 시장 환경을 만드는데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사태로 한국 패션산업의 미래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패션 관계자들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일이다. [패션비즈=곽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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