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럭셔리? “공간을 느낄 만한 여유”
    박진희 l 콜롬비아대 교수

    dhlrh
    |
    20.12.25조회수 6191
    Copy Link
    패션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인 럭셔리(luxur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주로 고가이고 꼭 필요하지는 않으나 즐길 만한 아름다운 물건에서 오는 극도의 안정감 (great comfort)”이라고 돼 있다.




    럭셔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쓸데없는 허영이나 욕망이 아닌 ‘안정감’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찾는 안정감은 다양한 행동방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중 재미있는 것은 저 그룹에 속하고 싶다는 ‘귀속감’과 너는 우리한테 속할 수 없다는 ‘배타성’을 동시에 찾는다는 사실이다.

    안정감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격표’이고, 우리가 사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나를 지켜줄 가격이 갖는 힘을 사는 것이다. 이 정도의 가격 담장 안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넘어오기 힘들어 안전할 거라는 심리적 안정감의 욕구는 허영이나 욕망이라는 표면 밑에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

    가격 담장이 높을수록, 견고할수록 심리적 안정감은 더 크다. 이런 특성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공간의 럭셔리함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더 나아가서는 공간의 럭셔리함을 느낄 수 있는 안목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꼬리를 문다.

    우리가 미술관이나 호텔이나 카페에서 ‘아 좋다. 더 있고 싶다’라고 느꼈던 심신의 상태는 그 공간이 가지는 힘에서 나온다. 그것은 표면적인 장식과 마감재를 넘어서 공간의 비율이나 빛이 들어오는 상태, 공기의 순환, 전망 등 공간 자체에서 비롯될 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건축가로서 가장 개탄스러운 것은 우리나라 주거공간의 질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주거에 대한 한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격은 10배나 20배가 넘는데 평수나 방의 개수만 다를 뿐 공간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주거공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구매자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해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내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내 삶의 격을 높일 수 있는 가치가 아닌 오직 투자의 가치로 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동산이 부의 축적 수단이 아닌 나라는 거의 없다.

    좋은 음식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이 미식에 눈을 뜰 수 없듯이, 좋은 공간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으면 갑자기 돈이 생겨도 이런 공간에 이 정도의 가격을 낼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결정할 만큼 변별력을 갖기는 사실상 힘들다.

    결국 유명 상표의 상품을 유명하니까 좋은 거겠지 하고 사듯이 가격표와 책임지지 못하는 마케팅에 기대어 선택을 하게 된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날씨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방을 채우는지, 여기에 앉아 있을 때 어떤 음악이 어울리는지, 저기에 놓인 나의 소중한 컬렉션이 나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공간을 느끼는 여유와 공간의 가치를 알아볼 안목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럭셔리일 것이다.


    ■ profile
    •SsD 대표
    • 콜럼비아 대학교 겸임교수
    • 뉴욕시립대학 초빙석좌교수
    • 시카고 공과대학 모겐스턴췌어 교수
    • 서울시 공공건축가
    • 뉴욕건축가협회상 심사의원장
    • 하버드 건축 대학원 석사
    • 서울대 미술대학 산업디자인 학사




    ■ 패션비즈 정기구독 PC버전 보기
    ■ 패션비즈 정기구독 Mobile버전 보기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패션비즈를 정기구독 하시면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Related News

    • 알쓸패잡
    News Image
    [알쓸패잡]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패션AI, 부머인가? or 두머인가?'
    24.01.19
    News Image
    [알쓸패잡] 이윤 l 브랜드워커파트너스 공동대표 '리더를 위한 전략적 성공 기술(2)'
    24.01.19
    News Image
    [알쓸패잡] 문명선 l 밀알재단 기빙플러스 마케팅위원장
    탄소의 재발견? LGD 등 순환경제 시대
    23.10.26
    조회수 1110
    News Image
    [알쓸패잡] 선원규 l 썬더그린 대표
    생성형AI기술 혁신과 패션유통산업의 기회
    23.10.26
    More News
    Bann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