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유지연, 「리을」 밀레니얼 듀오

    곽선미 기자
    |
    17.08.01조회수 1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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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칭 1달 만에 SNS 매료 「리을」로~



    2017년 4월 중순 SNS에서 충격적인 화보를 발견했다. 흑인 남성 모델이 갓을 쓰고 곰방대를 물고 비단 원단에 한국식 자수가 놓인 슈트를 입고 있는 화보였다. 바로 다음 장에는 흑인 여성 모델이 저고리 디자인의 가죽 재킷에 한복 원단으로 된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서 있었다. 한창 ‘실용 한복’ ‘현대적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라 마음이 울렁거렸고, 소비자들도 같은 마음인지 RT와 ‘좋아요’ 수는 몇십 만 단위로 올라가 있었다.

    불과 론칭 1달도 채 되지 않은 네오 한복 브랜드 「리을」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고궁 나들이에 나서면 한국인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이상한 모양의 대여 한복이 판을 치던 때, 외국인마저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하는 한복이라니! 저고리 등 전통 한복 디자인에는 가죽이나 데님 등 현대적 소재를, 슈트나 아노락, 트렌치코트, 테니스 스커트 등 현대 복식에는 손자수를 곁들인 전통 한복 원단을 사용해 서양복과 한복의 완벽한 현대적 조화를 보여 준다.

    세상에, 이 매력적인 브랜드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누군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얼마나 패션과 우리 문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까. 자수의 수준만 봐도, 원단의 결만 봐도 보통 눈썰미가 아니리라 지레 짐작했다. 만나 보고는 더 놀라웠다. 김종원 · 유지연 「리을」 공동대표 두 사람은 이제 막 25세, 27세가 된, 대학생과 교복 · 유니폼 디자이너 출신이 만난 파릇파릇한 신인 밀레니얼 듀오였기 때문이다.



    “너희도 불편해서 안 입는 옷” 편견 뒤집기 성공

    “제가 전북 전주 출신이거든요. 집 근처에 한옥마을이 있어서 외국인들도 관광을 많이 와요. 한복 대여하는 데서 원단만 보고 연신 ‘Good~!’ ‘Beautiful!’을 외치던 외국인들이 입어 보고 나서는 ‘이 예쁜 옷을 왜 이런 곳에서만 입나 했더니, 불편해서 안 입는 거구나’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외국의 정장 복식은 오랜 전통이 있고,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지금도 입잖아요. 우선은 멋스러운 전통 원단을 지금에 적용해 보자 싶었죠.” 김종원 대표의 말이다.

    ‘편하고 예쁘고 기능적인 한복 원단으로 현대 정장을 고퀄리티로 만들어 보자.’ 이것이 「리을」의 시작이었다.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들 저가로 대여 사업을 펼칠 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 것. 그저 전통 한복의 디테일을 줄이고 핏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재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패셔너블하게 입을 만한 컬렉션 의류처럼 선보인 것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유지연 대표는 “저희가 만드는 옷을 신(new) 한복이라는 의미로 ‘네오(NEO) 한복’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지금 우리는 대부분 서양식 의복을 입고 있잖아요. 여기에 우리 문화와 정신을 어떻게 입힐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제대로 된 옷감과 문양, 자수, 컬러를 활용해 보자는 결론이 났어요. 라이더 재킷이나 테니스 스커트에 한복 원단을 사용하는 거죠. 옷만 예쁘다면 전 세계의 누구나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옷에 대해 설명했다.



    화학과 대학생 & 교복 디자이너 색다른 조합

    한 아이템당 1~2개, 한 벌에 150만~300만원대. 퀄리티만큼 수량도, 가격도 만만치 않다. 김 대표는 “실제로는 한 아이템씩밖에 안 나온다고 보셔도 돼요. 왜나면 대부분 손자수로 작업해서 자수가 같은 게 하나도 없거든요. 저희와 작업하는 장인분들은 소위 ‘5공시대’때 부터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들의 한복을 제작하던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의 작업물을 현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입힐 수 있다는 것도 이 일의 굉장한 매력이에요”라고 말했다.

    오랜 장인들이 참여하고 전통 옷감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리을」의 옷은 원단과 자수, 문양에 쓰인 컬러가 상당히 현대적이다. 자수 아노락이 한참 럭셔리 런웨이에 오르던 무렵 「리을」의 옷이 등장했다면 아주 반응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에 대해 유 대표는 “사실 그게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한복에 쓰이는 전통 원단이나 자수는 올드할 것이다’라는 편견이요. 정말 놀랍게도 저희는 원단이나 자수에 어떤 재가공도 하지 않거든요. 그저 현대 복식 패턴에 한복 원단을 입힐 뿐이에요. 한복 원단이나 자수 컬러가 원래 젊고 현대적이더라고요. 매번 작업하면서도 놀라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도 많은 분이 아셨으면 좋겠어요”라며 한복 원단의 매력을 강조했다.



    SNS 물론 패션 전문가도 놀란 ‘한복의 반전’

    2017년 3월21일 공식 론칭한 「리을」은 막 떡잎이 나온 새싹 같은 브랜드다. 그렇지만 포부만큼은 만만치 않다. ‘문화에 한복을 입힌다’를 모토로 한복과 한글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당찬 꿈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브랜드 내에서 기획을 주로 담당하고 유 대표는 디자인 전반을 총괄한다.

    브랜드 네임인 ‘리을’은 한글 자음의 4번째 글자 ‘ㄹ’과 숫자 ‘2’에서 따왔다. 김 대표는 “21살 때 오랫동안 외국을 여행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 ‘한국’에 대해 설명할 만한 게 별로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보통 ‘삼성’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 이야기를 하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 하면서 알긴 하지만, 그런 주제 말고 문화적으로 나눌 만한 게 없어 좀 아쉬웠어요”라며 브랜드명을 짓던 시기를 떠올렸다.

    “그런데 요즘 외국에서도 ‘한글의 우수성’이 화제잖아요. 그리고 ‘ㄹ’은 숫자 ‘2’와도 닮아서 그런 내용을 가지고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눴던 게 생각났어요. 우리 브랜드는 한국의 문화를 다루는 브랜드니까 딱 맞다고 여겼죠”라며 “또 요즘 해외 디자이너들이 동양 문화에서 모티프를 많이 얻는데 ‘한복’은 잘 모르기도 하고요. 치파오나 기모노는 아주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훈민정음과 우리 한복, 현대 문화를 엮어서 대중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상에 맞는 옷을 만들게 됐습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아노락~라이더 재킷’에 한복 원단과 자수 얹다

    유 대표는 “사실 이런 작업이 외국에 한국을 어떻게 보여 주느냐 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문화를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보여 줄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요즘 젊은 사람 중에는 한국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거든요. 새로운 방향으로 전통을 바라보고 지금에 맞게 보여 줌으로써 오랫동안 가져온 우리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줄 수도 있다는 확신도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이 두 사람의 독특한 만남이 궁금해진다. 김 대표와 유 대표는 2016년 「리을」을 기획하기 위해 손잡았다. 그 이전 두 사람은 한 개인 사업자의 팀원으로 한 차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사업에 대한 이들만의 ‘철학’을 만들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들은 과도한 투자는 받지 않는다. 사업목적이 투자에 대한 수익을 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복과 한글을 알리자’는 목적을 확고하게 잡고 시작했다.

    김 대표는 “저는 19살에 획득한 풀 뚜껑 특허로 21살에 레드닷디자인어워드 등에서 상을 받고 이후 각종 상금과 국가지원금 등을 모아 개인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집안 어른들이 사업을 많이 하셔서 인맥 관리나 사업성을 실험해보고 경험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지금 이 일도 ‘연결’을 통해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벌 150만~300만원, 고가에도 맞춤 주문 척척

    그가 말하는 ‘연결’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실 저는 패션에 대해 정말 몰라요. 옷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패션에 관심이 크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옷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여기 유지연 대표를 만나고, 또 우리 옷을 만들어 주시는 많은 장인분과 패턴사분을 만날 수 있었던 덕분이에요. 생짜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누가 200만원, 300만원 주고 사겠어요. 그런 퀄리티는 「리을」과 연결된 많은 분을 통해 완성할 수 있는 거죠”라며 ‘연결’의 중요성을 짚었다.

    그러다 유 대표는 “‘성공형’인 김 대표와 달리 저는 좀 늦고 늘 마음이 급했어요. 제 생각에는 저희 성향이 정반대라 더 일하기에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라며 운을 뗐다.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경제적인 걱정과 고민에 진학을 고민하다가도 결국에는 뒤늦게 패션디자인을 선택한 그녀다. 대학교 2학년때부터 단체복 사업을 시작해 디자인부터 생산, 공장 관리, 영업까지 올라운드형 인물로 인정받아 스쿨룩스 신사업팀으로 스카우트돼 유니폼 사업을 핸들링했다.

    뚜렷한 ‘목적’과 원활한 ‘연결’로 성공적 BIZ를~

    “저희 옷이 고가이긴 하지만 의미가 있는 일을 하시는 분들께는 그냥 선물해 드리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해외에 여행을 가는 분 중에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 하는 분들이요. 저희는 그런 분들도 ‘국가대표’라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의 사연을 받아서 채택된 분들께는 저희 옷을 무료로 맞춰서 선물해 드리고 있어요. 언젠가 ‘한국을 대표하는 선물’로 「리을」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는 때도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작업물을 세상에 보인 지 채 넉 달이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화보를 보거나 옷을 접해 본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짜릿한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단순히 ‘한복이 이렇게 세련되고 멋질 수가 있어?’라는 생각일 수도 있고, ‘세상에 이런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구나’라는 통찰일 수도 있다.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SNS 사진첩을 열어 보여 주며 조근조근 수다 떨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두 디자이너의 모습은 제법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 형태와 오버랩돼 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6월16일 이들이 진행한 브랜드 프레젠테이션 겸 패션쇼장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낀 이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플랫폼 엘’ 장소를 대여해 준 태진인터내셔날 관계자들은 물론 현장에 방문한 많은 패션 관계자가 이들의 아이디어와 패기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애티튜드와 발상으로 ‘한복’을 통해 재미있는 패션 비즈니스를 선보이고 있는 이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 밀레니얼 세대 : 1981~1999년생으로 20세기의 마지막 세대다. 긍정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세대로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해 한 번도 컴퓨터가 없는 세계를 경험한 적이 없다. 일하기 위해 사는 삶은 원하지 않고 안락하고 즐거운 업무 환경을 원한다. 베이비붐세대를 잇는 새로운 소비 파워를 가진 세대이자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조자로 떠오르
    고 있다.

    **패션비즈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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