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무한 스트레스' 어디까지?

    패션비즈 취재팀
    |
    11.10.24조회수 15037
    Copy Link



    화려한 패션계. 그러나 이면에 수많은 종사자들이 무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1년에 4회 하는 패션쇼, 2주일에 한 사이클이 돌아가는 패스트 패션과의 경쟁, 온라인으로 실시간에 퍼지는 디자인, 숫자로 증명되는 실력과 이익창출이 되지 않으면 바로 해고되는 현실… 이런 현실 속에서 패션디자이너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몇몇 유명 디자이너들은 마약중독으로 재활원을 찾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재작년에는 알렉산더 매퀸이 자살한 데 이어「 크리스티앙디오르」의 존 갈리아노는 알코올 중독과 유대인 비하 발언으로 얼마 전 해고됐다. 최근「 발맹」의 크리스토프 디카닌이 우울증으로 사퇴했다.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 스타 디자이너들의 잇따른 불미스러운 사건은 패션계가 건강한가의 문제를 일깨워준다.


    1년에 패션쇼 4번, 충전할 시간 전혀 없는 현실

    창조적인 디자이너들이 연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패션산업이 이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있는 것인가? 패션전문신문 WWD의 편집장 브리짓 폴리는“ 20년 전, 심지어 10년 전까지만 해도 패션쇼는 1년에 2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4번을 해야 한다. 디자이너들이 런웨이에서 패션쇼 인사를 한 후 바로 패브릭을 정하고 다음 패션쇼를 준비해야 한다. 말 그대로 창의성을 위해 준비할 시간은 전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간절기인 리조트(Resort), 프리폴(PreFall) 시즌의 컬렉션이 중요해지면서 디자이너들은 봄, 가을 컬렉션을 마치자마자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오트쿠튀르 패션쇼를 진행하는 디자이너들은 총 5회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고 남성복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들과 세컨드 브랜드를 가진 디자이너들은 연간 총 8회의 패션쇼를 진행하면서 숨 가쁘게 일에 매진한다.

    얼마 전 상영한 발레리나의 욕망과 집착을 그린‘ 블랙스완’은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주인공인 나탈리 포트만은 완벽한 흑조를 연출하기 위해 자해를 서슴지 않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패션계의 종사자들도 존 갈리아노, 크리스토프 디카닌의 뉴스, 수많은 유럽 디자이너들이 교체된 소식을 접하면서 스트레스와 중독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수많은 언론 매체들은 최근 수면 위에 떠오른 스트레스 문제를 조명하고 디자이너를 한계까지 내몰고 있는 고속 패션시스템과 거대 자본화된 패션산업과 이익추구 문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패션계 스트레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몇몇 디자이너들은 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의 생애를 마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평생 신경쇠약 시달린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위대한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은 2008년 악성 뇌종양으로 71세에 별세하기까지 평생 동안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크리스티앙디오르」에서 일하던 중 군에 징집됐던 이브 생 로랑은 3주 만에 정신질환을 이유로 제대했다.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80년대에는 코카인과 알코올 중독으로 은둔생활을 했다.

    심지어 그는 패션쇼의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약에 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주년이 되던 1982년 이브 생 로랑은“ 60년대에서 70년대 초반이 제일 행복했다. 밖에 나가는 것이 고통스럽고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다. 침대에 누워서 좋은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 걱정이 사라진다”라고 심경을 토로했었다. 소극적인 성격에 신경쇠약을 앓았던 이브 생 로랑은 평생 우울증을 겪으면서 살다가 뇌암으로 사망했다. 패션잡지 에디터, 패셔니스타였던 이사벨라 블로(Isabella Blow)는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고 결국 음독자살로 생을 마쳤다. 그는 보그의 안나 윈투어, 안드레 레온 탈리의 어시스턴트로 에디터를 시작했으며 사교계 인사로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등과 친분을 쌓았다.




    음독자살한 패셔니스타 에디터 이사벨라 블로

    런던에 돌아간 그는 타틀러, 선데이타임스의 패션에디터로 일하면서 패셔니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모자 디자이너 필립 트레이시의 독특한 모자를 항상 착용했고 그의 모자 컬렉션은‘ 이사벨라가 필립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회를 열 정도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사벨라 블로는 알렉산더 매퀸, 패션모델 스텔라 테넌트, 소피 달을 패션계에 발탁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매퀸의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의 졸업작품 모두를 사들였고 지속적인 지지자로 그의 성공에 기여했으며 구치그룹에 매각할 때 중개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패션계에 영향력을 미친 유명인사였지만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불임으로 인한 잦은 시험관 시술, 자궁암, 우울증 등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았고 끝내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 재작년 2월에는 천재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이 어머니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호화 저택에서 목을 매 자살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택시 운전사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16세 때부터 영국의 세빌로에서 양복을 만들었던 알렉산더 매퀸은 역경을 이겨내고 패션계 정점에 오른 성공주역이었다.




    성공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비극적인 자살

    런던 최고 디자이너상을 4회 수상했고 미국 인터내셔널 디자이너상 수상, 졸업 후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해서 운영하면서「 지방시」디자이너(1996~2001)를 지낸 그는 패션계 최고스타였다. 그러나 사인 규명 심리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우울증, 약물 중독,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1년 전에도 2번의 자살시도를 했으며 모친 사망 후에는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려서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부검에서는 코카인과 수면제가 나와 약물 중독이 자살과 연관이 있다고 밝혀졌다. 알렉산더 매퀸의 심리상담 치료사는“ 그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았다. 패션쇼를 할 때 최고의 쾌감을 느꼈지만 쇼가 끝나면 밀려드는 공허함을 주체하지 못했다”고밝혔다.

    또한“ 매퀸은 과거에 친한 친구들로부터 이용당했던 좌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패션계에서 극찬을 받을 때면 자신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성취한 것들 때문에 칭찬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아무것도 성취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해했다” 고 말했다. 그는 성공한 천재 디자이너였지만 속으로는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스트레스 없는 칼 라거펠트“ 운동선수처럼 일한다”

    이처럼 패션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도 있지만 이런 시스템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그는 바로 칼 라거펠트이다. 칼 라거펠트는 디자이너들이 우울증과 중독에 시달리는 현실에 대해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디자인도 하고 회사도 운영하고 운동선수처럼 일한다”고 했다.

    또한“ 디자이너의 연약함에 대해서는 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운동선수가 달리기에 너무 연약하다면 달릴 수 없는 것이다.
    패션산업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논하기엔 적당한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인간이 아닌가 보다”라고 말했다.
    현재 만 77세인 칼 라거펠트는「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해 연간 9회의 패션쇼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전에는 자신의 브랜드「 칼라거펠트」까지 진행했고 올가을에 다시 런칭을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라거펠트는 광고사진과 잡지 사진의 포토그래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쉬는 기간에는 헌 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한다.


    77세 노익장「 샤넬」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

    그는 2001년(68세)“ 갑자기 다른 옷을 입고 싶다. 헤디 슬리만의 옷을 입고 싶다”면서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1년 동안 42kg을
    감량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기도 했다. 그는 패션계 스트레스를 전혀 느끼지 않는 듯이 보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종종 이브생 로랑과 비교되곤 한다. 소극적이고 은둔자였던 이브 생 로랑과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같이 수상하면서 디자이너가 된 칼 라거펠트는 이브 생 로랑과는 반대 성격을 지녔다. 이브 생 로랑은 1등을 수상하면서「 크리스티앙디오르」에 들어갔고 칼 라거펠트는 2등을 하면서「 피에르 발맹」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커리어는 비슷한 시점에 시작했고 20세기 최고 디자이너로 모두 성공한 삶을 영위했지만 개인적인 삶은 판
    이했다. 칼 라거펠트는 80세를 앞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스트레스 없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두 극단적인 예를 살펴보았지만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파티 중독이나 약물 중독에 빠지는 것을 목격해 왔다.




    마크 제이콥스, 2007년 약물 중독 재활치료

    패션계 대표스타「 루이뷔통」「 마크 제이콥스」「 마크 바이 마크제이콥스」의 마크 제이콥스는 1990년대 동안 코카인과 헤로인 중독이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2007년에는 패션쇼를 마치자마자 알코올과 약물 중독을 이유로 자진해서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당시 비즈니스 파트너 로버트 듀피 CEO는 “마크가 7년간 중독에서 벗어났었는데 중독이 재발하자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옳은 선택을 했다”고 했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최근 불거진 약물 중독 문제에 대해서“ 패션 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산업에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 중독의 문제는 비단 패션디자이너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말하자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엄마의 부재가 나를 미치게 했었는데… 중독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이다. 재활치료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7살 때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가족을 떠나게 됐고 이후 정신적인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마크 제이콥스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로버트 듀피 CEO는“ 패션계에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많은 패션계 종사자들은 약물 중독자가 아니다”라면서“ 언론이 부적절하게 보도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패션계 종사자들에게 약물 중독이 만연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2004년 코카인 중독 치료

    「베르사체」의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2004년 코카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재활원 신세를 졌다. 그는 1997년 오빠인 지아니 베르사체가 살해되고「 베르사체」의 CEO와 수석디자이너를 역임하면서 사업경영의 어려움이 약물 중독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전에는 파티에서 흡입하던 코카인이 이제는 일상적인 중독으로 이어졌고 그를 피해망상증과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화시켰다.

    사업도 쇠락해 갔다. 1978년 창업해 볼드한 컬러와 섹시한 라인, 나오미 캠벨, 마돈나 등 유명 셀러브리티를 활용한
    광고이미지 (패션 포토그래퍼의 대부 리처드 아베돈이 촬영했다)로 승승장구했던 브랜드는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맡으면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최대 전성기인 1996년에는 10억달러 매출 규모였던 사업은 1997년 지아니 베르사체의 사망과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디자인 변화와 경영실책으로 쇠퇴했다. 2002년에는 적자를 기록했고 이후에 CEO를 영입해 1년 반만에 흑자전환을 이루긴 했지만 사업은 부진했다. 2007년에는 실적호전으로 4000만달러 매출까지 성장했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40% 수준에 불과했다.

    Related News

    • 럭셔리
    • 패션쇼
    News Image
    피레티, 2024 F/W '모던 엣지' 컨벤션 성료
    24.01.18
    News Image
    저성장 맞은 럭셔리산업, 초부유층 공략? or 신시장 개척?
    24.01.17
    News Image
    FCG, '와이드앵글·피레티' 투트랙...1000억대 GO
    24.01.16
    조회수 1008
    News Image
    퍼렐 윌리엄스의 첫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은?
    24.01.15
    More News
    Bann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