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패션 · 유통 선순환 해법은?③ 급증하는 악성재고 “줄여야 산다”

    김숙경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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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1.02조회수 2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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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완판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모든 패션기업엔 재고가 있기 마련이다. 적당한 재고는 영업의 감초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 국내 패션시장의 현실은 적정 재고 수준이 아니라 각 패션기업의 물류창고마다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기획된 ‘붉은악마’ 티셔츠를 지금까지 갖고 있는 패션기업도 있다. 3년 차 재고부터는 가치가 없는 만큼 하루빨리 손절매*하는 것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훨씬 유리하다.”



    “대다수 패션기업은 재고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 격하게 공감한다. 문제는 누구도 먼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너들은 자산 감소에 대해 은행권 눈치를 보느라, 전문경영인들은 실적 하락에 대해 오너의 눈치를 보느라 재고 자산의 평가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재무제표를 포장하는 데만 급급하다. 겹겹이 쌓인 재고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재고에 대한 이슈를 꺼내자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상품을 둘러보다 매장 한쪽에 마련된 파격 세일을 하는 재고만 사고 돌아가는 소비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됐다. 디자인에 큰 차이가 없을뿐더러 장기화한 경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갈수록 얇아지면서 할인 폭이 큰 이월재고 구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상상품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결국 국내 패션시장은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악화(재고)가 양화(확산)를 구축하는 현실 개선을

    이러한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면 한국 패션시장은 가장 큰 경쟁력인 ‘속도’를 잃게 된다. 트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제안하는 능력이 한국 패션의 최대 강점이었는데, 누적된 재고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실제 국내 패션시장을 방문한 해외 패션 관계자들은 갈수록 한국 패션시장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재고를 적당한 시점에 효율적으로 처분하면서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그 여력으로 다음 시즌 상품기획에 힘을 실어 매출을 끌어올리는 ‘쌍끌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성장률 2%대를 논하는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발 빠른 트렌드와 합리적인 가격대 제시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어당겨야 한다.

    자라리테일코리아(사장 이봉진)는 훌륭한 벤치마킹 사례다. 이 회사의 지난해 결산 실적(회계연도 1월)을 들여다보면 매출 3450억원에 재고자산은 152억원에 불과하다. 재고자산회전율*을 뽑아 보면 24.9회전으로 2015년도 재고자산회전율 23.3회전을 갈아 치웠다. 역대 최고치다.

    자라, 재고자산회전율 24.9로 역대 최고치

    한 달에 두 번 꼴로 매장에 입고된 재고가 전량 팔려 나가는 셈이다. 매출액 대비 재고 자산 비중은 2년 연속 4.3%, 4.4%대를 유지해 기복이 없다. 국내 패션기업들의 재고자산회전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매출액 대비 재고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뚜렷하게 대조를 보인다.

    지오다노(대표 한준석)도 재고 관리에서 탁월함을 보여 준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150억원이며 재고 자산은 21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기준으로 약식 재고자산회전율을 뽑아 보면 9.9회전이고, 매출액 대비 재고 자산 비중은 10%로 역시 초우량 수준이다. 2015년에는 재고자산회전율 7.5회전, 매출액 대비 재고 자산 비중은 13%를 기록했다.

    국내 대표 패션기업인 한섬을 비롯해 세정, 패션그룹형지, 위비스, 인디에프, 동광인터내셔날 등 대다수 패션기업의 재고자산회전율은 2~3회전에 머무르고 있다. 통상적으로 재고자산회전율이 4.5~5회전이면 양호한 것으로 평가하는데 국내 주요 패션기업 태반이 여기에 못 미친다. 반면 자라리테일코리아를 비롯 H&M헤네스앤모리츠, 데상트코리아, ABC마트, 동일드방레 등 외국계 직진출 내지 합작기업들은 거뜬히 5회전을 넘겨 효율경영을 펼치고 있다.

    한섬 등 주요 패션기업 재고 자산 비중 급증

    디아이알의 신임 전문경영인 박준식 대표는 2년 전 회사를 맡으면서 가장 먼저 기본기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비효율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산적한 재고를 털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450억원대에 달했던 재고를 현재 180억원 규모까지 줄였다. 그는 총매출액의 10% 내외로 재고를 유지해야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기준을 세우고 지금의 30%대 수준에서 더욱 줄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국내 패션산업이 선순환 구조로 진입하기 위해선 디아이알처럼 비효율 경영 요소인 재고 리스크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좀비 브랜드를 정리하고 과잉생산을 자제함으로써 재고의 양산을 막고, 3년 차 이상 재고는 과감히 털어내는 용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패션기업들의 과잉 또는 3년차 재고를 매입해 해외로 수출하는 이응삼 리본글로벌 사장은 “재고를 쌓아 두고 재무제표를 포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산 가치가 없는 상품은 빨리 처분해 창고 부족, 현금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훨씬 능동적이고 효율적이다. 소각 처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실익을 위해선 해당연도 마감 후 평가감을 하고, 자산가치 제로 시점에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제안했다.

    국내 대표 패션기업 한섬(대표 김형종)은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3년차 의류재고뿐만 아니라 원단까지 연 2회 소각 처리하고 있다. 여성복 「쉬즈미스」 「리스트」를 전개하는 인동FN(대표 장기권)은 2년 차 마감 후 3년 차 의류 재고는 매각 처리한다. 「행텐」을 전개하는 BLS코리아도 3년 차 재고는 1 피스당 1 달러로 감가상각 처리 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다른 패션기업들도 서둘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창고에 쌓여 있는 악성 재고부터 당장 청소해야 한다. 그게 선순환 해법의 첫 걸음이다.


    *손절매 : 가지고 있는 주식의 현재 시세가 매입 가격보다 낮은 상태이고 향후 가격 상승의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에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을 말한다. 큰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액의 손해를 감수하고 매도하는 것을 말한다.

    *재고자산회전율 : 매출액을 재고 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재고 자산의 회전 속도, 즉 재고 자산이 당좌 자산으로 변화하는 속도를 나타낸다. 재고자산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쉽게 말해 재고가 창고에 들어오기 무섭게 판매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재고자산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판매가 부진해 창고에 오랫동안 재고 자산이 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자본수익률이 높아지고 매입채무가 감소하며 상품의 재고 손실을 막을 수 있고 보험료 · 보관료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을 경우는 원재료 및 제품 등의 부족으로 계속적인 생산 및 판매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패션비즈 2017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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