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br> 말 한마디에 수천 냥 빚도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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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패잡]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말 한마디에 수천 냥 빚도 갚는다

Tuesday, Sept. 5, 2023 | 외고,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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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지방 출장이 잦다. 처음에는 차를 가지고 다녔는데 기차가 참 시원하고 편해서 기차를 탄고 다닌다. 지난달에 지방의 한 작은 도시에서 회의를 끝내고 기차역으로 가려고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목적지를 입력하자 2분 후 도착 가능한 택시가 떴다. 서둘러 회의실을 나와서 길거리로 나갔다. 기온이 35도가 넘는 아주 더운 날이었다. 햇빛을 피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지만 택시가 곧 도착하겠지 싶어 개의치 않았다.  

갑자기 택시 도착 시간이 8분으로 늘었다. 애플리케이션상에 택시가 바로 내 근처에 있었는데 갑자기 휙 멀어진 것이다. 오류가 난 건가 했는데 기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내가 택시를 부른 장소 바로 직전이 전 승객의 도착지였는데 갑자기 목적지를 바꿔서 승강이를 벌이다 어쩔 수 없이 경로를 변경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거기가 하필 우회도로가 없는 곳이어서 뱅글뱅글 돌아와야 하는 곳이라 시간이 지체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천히 오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이 영 언짢았다. 날은 덥지,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지. 그날따라 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지.  

다른 택시를 부르고 싶었지만 기사님이 직접 전화를 거셔서 상황 설명을 하신 터라 호출을 취소하기도 조금 애매했다. 가끔 도착 예정 시간이 줄어들 때도 있건만 그날은 야속하게도 정확하게 8분이 지나서 택시가 도착했다. 머리 위가 뜨끈해진 상태로 택시에 올랐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겠다 결심이 선 건 아니지만 불평불만의 단어들이 내 입안에서 쏟아져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손님,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 죄송합니다. 날이 유난히 더워서 숨만 쉬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너무 죄송해서 공중으로 날아오고 싶었어요.” 내가 기억나는 말은 이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서너 문장을 속사포처럼 더 던지셨다. 미안한 마음 절절하게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기사님은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조합 가능한 모든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내신 것만 같았다.
‘아, 이래서 한마디 말이 빚을 갚는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컴컴한 분노로 몸이 더 더워졌는데 기사님의 대본 리딩같이 술술 터져 나오는 사과의 말로 그럴 수도 있는, 별것 아닌 일에 내가 속 좁게 투덜대고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순히 기사님이 한 사과로 마음이 금세 풀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5분 정도 지난 후에 알게 됐다.

“여기부터 한동안 과속방지턱이 계속 나올 예정이라 차가 울렁거릴 수 있어요. 불편하시면 오른쪽 위에 있는 손잡이를 잡으세요” “아까 타신 손님이 너무 급해 보이셔서 단호하게 거절을 못 하고 손님께 폐를 끼쳤네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택시를 20년간 하면서 이 동네에 단골이 꽤 있습니다. 이 동네 길은 아주 훤하고 지름길도 많이 아는 편이에요”…. 기사님은 친절하고 사람 좋아하고 마음이 선한 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맥이 풀리듯 화가 풀린 이유는 기사님의 사과에 선한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모 방송사 아나운서가 사적인 저녁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실수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평소 그 사람의 생각이 불쑥 말로 드러나는 거라 생각해요”라고. 사과에도 그 사람의 평소 품성과 인격이 담긴다는 것을 느꼈다. 상황 모면용이 아닌 진정으로 미안해서 우러나는 사과는 화가 난 그 자체가 머쓱하게 느껴질 정도로 위력이 컸다. ’좋은 말을 진심을 담아 쓸모 있게 잘하려면 평소 사고방식, 평상시 내 생각 자체가 건강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소통이라는 게 결국 내 마음과 뜻이 전달되는 것이니. 말 한마디는 천 냥 빚도 갚지만, 한여름 활활 타오른 분노에 시원함을 확 끼얹어 주기도 한다.  

■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Profile

- 현 Mahon Korea 대표
- 현 Golden Egg Enterprise 대표
- 동원그룹, LG전자, 한솔섬유 근무
- 스페인 IE Business School MBA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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