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망치를 들고 있으면 다 못으로 보인다

    dhlrh
    |
    23.05.10조회수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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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일 늦은 아침, 음악을 듣고 있는데 딸이 내 주변을 서성이더니 드디어 말을 꺼냈다. 회사에서 있었던 어떤 일로 잔뜩 화가 나 있던 아이는 내게 그 이야기를 해서 털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던 듯했다.

    하지만 정신을 챙기지 않은 탓인지, 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묻지도 않는 ‘충조평판*’을 했고 아이가 입을 닫게 만들고 말았다. 어쩌면 아이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위로받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들어줬으면 좋았겠지만 대화를 계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문제해결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남자들은 대개 문제해결식 대화를 많이 한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다 못으로 보이는 것처럼.

    내 말을 계속 듣고 있던 아이가 “아빠,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그냥 들어만 주면 안 돼?”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래?“, ”세상에!!“, ”그랬구나“ 이 세 마디의 공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변명 같지만 그렇게 자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어떤 문제의 올바른 해답을 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위로받고 싶어서, 또는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일 때가 더 많다. 정말 문제해결을 위한 해답을 구하고 싶으면 정확한 ‘충조평판’을 요구한다.

    아니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할 것이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혜원(김태리)과 친구 은숙(진기주)이 회사 일로 얘기하다 싸우던 장면이 생각났다. 때로는 말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말보다는 어떤 사안에 대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사회생활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는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똑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능력이다. 반면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직급이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남자들은 점점 더 대화가 힘들고 소통하는 기술이 줄어드는 경우를 많이 봤다. 많은 경험을 통한 자기 확신의 벽돌을 높이 쌓아서 정말 벽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벽돌을 높이 쌓지 않고 밑으로 평평하게 계속 놓았다면 더욱 튼튼하게 사고의 지평을 넓혔을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지금은 몇 년 전보다 더 많은 모임과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만나면 즐겁게 지내다 오긴 하지만 모임에 나가는 과정이 귀찮기만 하다.

    후배들을 빼고는 나이 든 남자들의 일반적인 대화는 보통, 나도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 잘 알고 있는 얘기거나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잘 몰라도 되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런 탓인지 남자들의 모임은 시간이 지나면 대화가 많지 않은 운동 모임만 지속된다.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자신의 얘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집중이 잘 안되고 감흥이 없다. 아마도 잘난 얘기는 시기를 부르고, 좋지 않은 얘기는 자신의 약점이 될 뿐이라는 오랜 사회생활에서 학습한 결과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말을 잘할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profile
    - 1987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
    - 1996년 신세계인터내셔날 입사
    - 2005년 해외사업부 상무
    - 2010년 국내 패션본부 본부장
    - 2012년 신세계톰보이 대표이사 겸직
    - 2016년 신세계사이먼 대표이사
    - 2020년 브런치 작가 활동 중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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