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속도 전쟁! 요소수 대란과 패션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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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2.01조회수 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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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에는 택배 노조 파업으로 인하여 물류 체계가 들썩들썩하더니 지금은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 배송 지연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온라인의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패션산업도 국내외 배송 상황이 흔들릴 때마다 휘청일 수밖에 없다.

    산업 전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가 갈수록 다각화되고 심오해지면서, 패션사업자도 덩달아 골머리를 앓는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온라인 거래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제 배송·물류는 모든 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로켓배송 오늘배송 릴레이배송 등 각종 급행 배달 서비스가 줄줄이 나오면서 온라인 쇼핑사업은 빠른 배송에 목숨을 걸었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의 폭풍 성장에는 탄탄한 택배 인프라가 뒷받침됐다.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배송 지연에 따른 불평 후기가 종종 올라오곤 한다.

    그만큼 배송에는 워낙 돌발 변수가 많아서 기한 내 배송을 감히 장담하기 어렵다. 이러한 속도 전쟁 속에 택배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택배 산업 내부에서도 대리점 갈등으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지 조차 몰랐던 요소수마저 우리를 갖고 놀려고 한다.

    배송 시간과 퀄리티가 중요한 냉동식품은 배송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및 소송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단순한 배송 지연에 대하여 우리나라 소비자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택배회사가 운송물의 수령, 인도, 보관 및 운송에 관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택배회사는 운송물의 분실, 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상법 제135조의 규정을 모두 까먹은 듯하다.

    ‘인도 예정일을 초과한 일수에 운송장 기재 운임액 50%를 곱한 금액(한도액 운임액의 200%)’을 보상받는다는 공정거래위원회 택배표준약관 제20조의 규정도 유명무실하다. 소비자가 소액의 지연 배상을 받기 위하여 시간, 돈, 신경을 괜히 쓰느니 그냥 잊고 넘어가는 것이 소비자에게 더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택배가 논의되는 마당에 택배회사가 자진하여 배송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약관을 운용하면서, 불량 배송 대신에 양심 배상을 기대하는 것은 허황된 욕심일까?

    외국에서는 배송 지연을 간접피해로서 명시적으로 인정한 판례 덕분에 국내 업체보다 더 상세하고 체계적인 ‘지연 및 환불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소비자가 배송 지연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시간이나 전화비용까지 배상 범위에 포함한다.

    최근 유명한 힙합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의 신발·의류 브랜드인 이지(Yeezy)가 배송 지연에 따른 민사소송을 무려 11억원에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소송이 제기된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의하면, 이지 브랜드가 온라인 소비자에게 반복적으로 30일 내 배송 조항을 지키지 않았으며, 지연에 따른 안내나 환불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고 한다.

    배송 지연을 밥 먹듯이 일삼는 우리 택배업체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미국 사례이지만, 우리의 너그러운 정서에는 좀 지나친 감도 없지 않다. 갑작스러운 요소수 대란이 몰고 올 배송 지연 사태가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겠지만, 택배업체는 이를 천재지변 급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속도 전쟁은 결국 양심 전쟁이다.


    ■ profile
    •건국대 교수 / 변호사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패션협회 법률자문
    •국립현대미술관 / 아트선재센터 법률자문
    •국립극단 이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이사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부회장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서울대 법대 학사 석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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