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괜찮아, 상처 받았다는 것은 노력했다는 거니까”
한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람에게 충성하든, 조직에 충성하든 대개 이해관계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충성해야 할 대상은 국가와 민족 그리고 가족뿐이다. 사람이나 조직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충성이야 나무랄 바가 아니지만, 조직이나 사람이 충성을 강요할 때는 폭력조직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 결과는 서로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만 남을 뿐이다.
언젠가 함께 일했던 후배가 더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이직하게 됐다. 나름대로 같은 산업군에서는 경쟁력이 있던 후배인지라 인사차 찾아왔기에 함께 일할 때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추억하며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지금처럼 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회사의 ‘주인을 의식하고 일하는 주인의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덕담을 해 줬다. 상사는 유능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주인은 충성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후배는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고, 가끔은 우직하리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만 몰두하기에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불평과 불만이 있었다. 회사라는 조직의 특성상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은 일을 되게 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될 수도 있지만, 혼자가 아닌 회사의 집단지성을 필요로 할 때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어떤 사물의 이치를 찾아내고 정답을 찾아내는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의 매우 다양한 변수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회사 업무에서 정답이란 있을 수 없고 추진하는 일의 좋은 결과, 즉 해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이 회사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 후배가 새롭게 이직을 한 후 가끔씩 그가 맡은 일에서 업무의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못 본 지 두 해 정도가 지난 후 어느 날 함께 저녁을 먹게 됐다. 오랜만에 어떻게 좋은 성과를 냈는지 얘기도 들어볼 겸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날 저녁이 그가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와의 마지막 저녁이 됐다. 후배의 말은 새롭게 옮겨간 회사에서 그의 상사가 기대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열심히 했다고 했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성과는 있었지만 좌충우돌로 인해 주변의 불만과 함께, 심지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회사의 주인과도 업무 과정의 옮고 그름을 논쟁하게 됐다고 했다.
업무의 훌륭한 성과와 무관하게 이제 곧 그 회사를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상처받은 후배에게 회사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자존심이란 내가 일하는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또한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잘못되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 줬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회사와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능력이 있으니 또 좋은 회사가 곧 모셔갈 것이라고 위로해 주고 헤어졌다. 물론 후배는 오래지 않아 다른 회사로 출근을 했다. 후배는 지금쯤 ‘상사는 유능한 사람을 원하고, 주인은 충성하는 사람을 원한다’는 그 말뜻을 이해했을까.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를 정기구독 하시면
매월 다양한 패션비즈니스 현장 정보와, 패션비즈의 지난 과월호를 PDF파일로 다운로드받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패션비즈 정기구독 Mobile버전 보기
■ 패션비즈 정기구독 PC버전 보기
Related News
- 알쓸패잡
탄소의 재발견? LGD 등 순환경제 시대
생성형AI기술 혁신과 패션유통산업의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