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브랜딩은 명품, 시스템은 구멍? 'K-아이웨어 산업’ 경고등 켜졌다

이유민 기자 (youmin@fashionbiz.co.kr)
26.03.09 ∙ 조회수 2,269
Copy Link

빠르게 몸집을 키운 K-아이웨어 산업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노동 착취 논란과 젠틀몬스터·블루엘리펀트 간 법적 분쟁이 불거지며, 급성장한 이면에 감춰졌던 산업 전반의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장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짚어봤다.


[월요기획] 브랜딩은 명품, 시스템은 구멍? 'K-아이웨어 산업’ 경고등 켜졌다 218-Image


‘젠틀몬스터’를 전개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대표 김한국)가 노동 착취 논란과 디자인 분쟁이 동시에 불거졌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에서 주목받고 있는 K-아이웨어 산업이 노동 구조와 디자인 보호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서울 성수 · 명동 · 강남 일대에 다양한 아이웨어 브랜드들이 체험형 플래그십을 열며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동선까지 바꿔 놓았지만, 산업 내부에서는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시스템의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아이아이컴바인드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한 데 이어 젠틀몬스터와 블루엘리펀트(대표 최진우)의 ‘블루엘리펀트’ 간 디자인·부정경쟁 소송전까지 본격화되며 노동과 IP 이슈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먼저 지난 1월, 아이아이컴파인드의 과도한 노동 부담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재량근로제를 명목으로 하루 평균 12.4시간, 주 최대 85.7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이 이뤄졌고, 이에 합당한 수당조차 지급하지 않았다’라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아이아이컴바인드에 재직했던 한 패션 관계자는 “항공권 지급이나 반려동물 동반 출근 같은 대외적 복지는 훌륭했지만, 내부 체계는 급성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라며 “업무 특성상 내부 디자이너 간의 경쟁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체계와 과도한 업무 분배가 상시화돼 야근을 안 할 수 없는 구조였다”라고 토로했다.


‘반려동물 출근? 실상은 수면방 야근’ 드러나 



이어 “5차가 넘는 혹독한 입사 테스트를 거치고 힘들게 들어왔는데, 얼마 못 버티고 퇴사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사무실 내 수면방 존재는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에 대해 아이아이컴바인드측은 지난 2월 공식 입장을 통해 사과했다. 문제가 된 재량근로제를 즉시 폐지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한편 체계적인 인사·근태 관리 시스템 도입과 부서장 교육 강화를 통해 조직 문화를 쇄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아이컴바인드 사례는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업계 전반에 퍼져 있던 업무 방식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빠른 성장 뒤에 감춰졌던 장시간 노동과 무보상 구조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문제로 남기 어려워진 것이다. 


패션 마케터 B씨는 “유명 캐주얼 브랜드에서도 주 80~90시간 넘게 일했지만 보상은 전무했다”라며 “업계가 좁아 이직하면 레퍼런스 체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다들 쉬쉬해 왔던 것이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라고 전했다. 이번 사례가 패션계의 고질적인 노동 관행을 끊어내는 변곡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월요기획] 브랜딩은 명품, 시스템은 구멍? 'K-아이웨어 산업’ 경고등 켜졌다 1695-Image


유사도 99% 진실공방, 공간 아우른 IP 전쟁



젠틀몬스터와 블루엘리펀트 간의 법적 분쟁 또한 뜨거운 감자다. 젠틀몬스터 측은 3D 스캐닝 분석 결과, 자사 제품과 블루엘리펀트 특정 모델의 유사도가 99.94%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제품 형태뿐 아니라 부자재와 공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유사성이 관찰됐다고 말하며 특허심판원에 해당 디자인에 대한 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부정경쟁방지법상 금지 청구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년 이상 아이웨어 업계에 몸담아온 현직 안경사는 “이번 이슈의 핵심은 단순히 비슷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소비자가 브랜드를 헷갈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쪽은 20만원대 후반, 다른 한쪽은 4만~5만원대라는 가격 차이까지 고려하면 ‘비슷해 보이는데 굳이 비싼 것을 사야 하나’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블루엘리펀트 측은 해당 제품들이 관련 법령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디자인 유사성 논쟁을 넘어 패션과 공간 연출의 지식재산권 보호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가늠하는 시험대로 평가된다.


‘본질’ 잃은 브랜딩 경쟁, 제품은 콘텐츠용(?)


이 같은 분쟁의 저변에는 K-아이웨어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제품을 설계하고 완성도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점점 축소되는 분위기다. 프레임 구조와 착용감을 다듬기보다 이미 중국에서 만들어진 상품에 브랜드 이미지를 입히는 방식이 늘어나며 아이웨어는 하나의 제품이라기보다 ‘콘텐츠용 오브제’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장 경쟁의 축도 바뀌었다. ‘누가 더 감각적인 공간을 만드느냐’ ‘누가 더 빠르게 화제를 선점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디자인의 밀도보다 마케팅 속도가 앞서는 흐름이 굳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가 마땅히 쌓아야 할 설계 데이터는 부실해졌다. 


중국 생산 자체는 이미 산업 전반에서 불가피한 선택이 됐다. 현재 국내 하우스 브랜드 기준 아세테이트 프레임의 90% 이상은 중국에서 생산하고, 대구에서 후공정을 담당하는 구조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K-아이웨어 ‘오리지널리티’가 미래 성패 가른다


결국 관건은 생산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설계의 깊이다. 아세테이트 전 공정을 국내에서 소화할 경우 단가가 급등하고 소비자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제조 효율성 측면에서 중국 생산은 현실적인 대안이다. 중국 생산이 보편화된 시장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생산지가 아니라 브랜드의 기준이다. 제조는 효율화할 수 있지만, 디자인 정체성과 오리지널리티까지 외주에 맡길 수는 없다.


체험형 리테일과 감각적 브랜딩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K-아이웨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빠른 확장이 아니다.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사람에 대한 투자, 제품을 지탱하는 구조 등이 함께 단단해질 때 산업은 지속될 수 있다. 얼마나 빨리 성장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느냐. K-아이웨어는 이제 ‘성장 이후’의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이유민 기자  youmin@fashionbiz.co.kr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