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니들이 버킨백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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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게 맛을 알아?” 2002년 인기를 끌던 크랩버거 CF의 명대사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한 이 광고에서 배우 신구의 맛깔스러운 멘트에는 품질에 대한 당당함과 대중에게 더 다가서려는 친근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에르메스 버킨백 사태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지난봄 유례없던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미국의 소비자 2명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상대로 캘리포니아에서 ‘반독점’ 집단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에르메스는 그 이름도 찬란한 ‘버킨백’을 대중에게 함부로 판매하지 않고, 극소수 최상위 단골 고객에게만 구매 기회를 제공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와 같은 초고도 차별화 전략이 도를 넘어 에르메스의 다른 고가 제품들을 구입한 전력이 있어야 버킨백을 살 수 있도록 일반 소비자를 사실상 강요했다는 혐의가 불거져 나왔다. 이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으로 따지자면, 시장에서의 우월한 지위 남용에 따른 불공정행위를 의미한다. 과연 버킨백이 얼마나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지는지 심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소송이 제기된 사실 자체만으로도 버킨백의 강력한 브랜드 파워는 공인된 셈이다.
버킨백의 탄생 신화는 예사롭지 않다. 1984년 어느 날, 파리행 비행기에서 당시 에르메스 경영자 장 루이 뒤마와 그의 옆자리에 앉은 영국 배우 제인 버킨 사이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아기를 키우던 그녀가 실수로 아기용품 등 물건을 온통 쏟은 것이다. 그녀는 떨어진 자신의 물건을 같이 줍던 장 루이에게 ‘주머니가 있는 핸드백이 있으면 물건을 정리하기에 좋겠다’는 의견을 얘기했고, 장 루이는 곧바로 비행기에 비치돼 있던 멀미 봉투에 훗날 켈리백으로 탄생하는 디자인을 스케치했다.
버킨백은 이 세상 모든 여인의 로망인 만큼 금액은 최소 1500만원대부터 최대 2억원대까지다. 대기자 명단에 등록해도 버킨백을 손에 쥐기까지 수년을 기다리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에르메스의 희소성 전략은 여심과 남심을 동시에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는 왕이다? 하지만 에르메스가 소비자를 뛰어넘어 왕이 될 수는 없다. 집단소송에서 원고는 에르메스가 버킨백 구매자를 선별하고 연계판매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변했다. 에르메스 직원들이 버킨백 구매 희망 고객에게 신발 등 다른 제품 구입을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별도 공간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소비자에게만 버킨백을 보여준다는 점을 밝혔다. 에르메스가 버킨백의 온라인 구입도 막았고 매장에 전시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법은 원칙적으로 개개인의 거래에 관여할 수 없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예외적으로 사적인 거래가 볼공정할 경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의 잣대로써 해당 거래의 적법성을 심판해 시정한다. 그만큼 오늘날 사회는 강자만이 약육강식의 호사를 누릴 수 없다. 집단소송이 인용되면 동일한 처지의 다른 소비자도 배상받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시장은 자유롭다. 팔기 싫으면 안 팔면 된다. 거래는 철저히 당사자의 의사에 맡긴다. 그렇지만 지배력을 가진 자의 권리는 남용될 수 없다. 제아무리 버킨백이어도 소비자를 노예 취급한다면? 니들이 알아? 게 맛은 몰라도 버킨백의 맛은 알고 싶다.
profile
· 건국대 교수 /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
·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 무신사 지식재산권보호위원회 위원
·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 / 케이옥션 감사
· 국립극단 이사 / T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이사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자문위원
·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
·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 서울대 법대 학사 · 석사 · 박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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