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8.13 ∙ 조회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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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27-Image


드라마 ‘인간실격(2021)’ 중 주인공 전도연이 산 정상의 천문대에서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는 장면이 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2024)’를 보면 “별들이 당신과 함께하기를!”이란 대사가 있다.


비록 ‘별’ 볼 일 없이 살지만, 게으른 탓도 있고 그동안 별을 보러 가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봄 타이베이 여행 중에 만났던 분의 몽골 트레킹 경험담을 듣고, 몽골이야말로 별을 보기 최고인 장소 같았고, 특별한 준비보단 일상을 벗어날 용기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페이스북 대문 글에 전혜린의 글 “치열하게 사는 것, 그 외엔 방법이 없다”라는 말을 올려놓고 오랫동안 생활했다. 그녀는 1959년 일기에 “어두운 밤. 자욱한 안개, 별들의 냄새…”라고 썼다. 나는 별들의 냄새가 뭘까 궁금했지만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별’ 볼 일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


칭기즈 칸의 말처럼 늘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연히 아내와 함께 별을 보러 몽골 트레킹을 떠났고, 여든 살 반전의 사상가가 회고하는 ‘일본,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쓰루미 슌스케 지음)’란 책을 여행 가방에 넣었다.


몽골은 타임지가 뽑았던 최고의 인물, 칭기즈 칸의 나라다.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칭기즈 칸의 몽골기병 이야기는 경영학 소재로 연구되거나 영화 소재로 쓰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전쟁을 바라보면서 생긴 분노 때문인지, 항복하지 않으면 목숨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킨 칭기즈 칸이 그냥 잔인한 침략자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통받는 세계시민들을 생각하면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에 앞서 정복자로 불리는 나폴레옹, 알렉산더, 칭기즈 칸 등이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내겐 그저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간 실격자인 나치의 히틀러나 크메르루주의 폴포트와 감정적으로 동일시될 뿐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문명사회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해친 인간들을 경멸한다.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그런 인물들이 누구나 소원하는 자연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인간들이 자연사한다면 그것이 삶의 모순이 아닐까.


다행히 앞에서 언급했던 그 영웅이란 인간들은 말에서 떨어져 죽었거나, 원인 모를 급작스러운 열병에 걸려 죽거나, 권총 자살 등으로 삶을 마감했다. 결국 러시아나 이스라엘, 하마스의 전쟁 범죄자들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몽골의 대평원을 트레킹하면서 영화 ‘몽골(2011)’에서의 말발굽 소리를 떠올리며 지금의 평화에 감사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 전쟁이다. 평화는 돈을 주고라도 산다는 말이 있다. 비록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사랑한다.


매사 걱정하고 살 필요는 없다. 부와 명예를 얻고 칭기즈 칸처럼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고 인생을 제대로 산 건 아니니까. 아침에 클래식 음악을 듣고 맛있게 구운 빵과 커피를 마시며 틈나는 대로 여행이나 다니는 ‘내돈내산’ 노매드의 삶도 최고의 인생이다. 문득 전혜린이 말했던 ‘별 냄새’는 우리의 가슴 한편에 있는 어떤 그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profile


· 1987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 

· 1996년 신세계인터내셔날 입사

· 2005년 해외사업부 상무 

· 2010년 국내 패션본부 본부장 

· 2012년 신세계톰보이 대표이사 겸직

· 2016년 신세계사이먼 대표이사 

· 2020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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