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어느 인문학자의 패션 오디세이⑦ 일본편 Ι
일본 패션 브랜드들이 한국에 없는 이유? 일본편 Ι
일본의 비즈니스 문화는 매우 독특하다. 비즈니스 마켓 구조나 에티켓만 봐도 유럽이나 미국과는 당연히 다르고 ‘아시아’로 묶어도 한국, 중국과도 다르다. 비즈니스 문화라는 것은 당연히 그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일본과 비즈니스를 할 때 이런 특성을 모르고 덤볐다가는 백전백패일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을 다 안다고 해서 백전백승은 아니겠으나, 승률을 올리는 데 틀림없이 도움은 될 것이다.
나는 일본인의 습성과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알기 위해 일본 만화나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는 편이다. 또한 전 주일 대사관 신상목 서기관이 연재한 <조선일보> 칼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이어령 선생의 『가위바위보 문명론』과 『축소지향의 일본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R. 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 등 일본에 관한 흥미로운 책과 글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어왔다. 실제 비즈니스를 하며 “역시 그렇군!”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 적도 많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것도 많다.
이번 호부터는 그동안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며 몸소 경험한 일본 패션계의 독특한 구조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자 한다. 이는 비단 패션뿐 아니라 일본과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에게 유용한 팁이 될 것이다.
일본에는 매력적인 패션 브랜드가 정말 많다. 게다가 현지 정가(retail price)도 미소가 지어질 만큼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 많은 일본 패션 브랜드가 왜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내가 패션계 풋내기였을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물어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본 홀세일 가격, 즉 도매 공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홀세일 가격(卸売, 오로시우리)을 일본 현지에서는 보통 ‘오로시’라고 줄여서 부른다. 유럽, 북유럽, 미국 등은 홀세일 가격이 소비자 가격(suggested retail)의 30~40% 선에서 결정된다. 주문 물량이 많아서 약간의 협상을 한다 해도 보통 이 정도 선이다. 일본은 무려 오로시가 60%다. 이것이 바로 ‘공포의 가케리쓰(掛け率, 비율)’라고 부르는 ‘오로시노 로쿠카케(卸の6掛け, 홀세일 가격 60%)’다. 바잉 물량이 아무리 많아도 비율이 50%(5掛け, 고카케)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일본 패션이 해외로 크게 뻗어나갈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이탈리아 브랜드를 정가의 33%로 사 온다고 치자. 그러면 홀세일 가격은 33원, 랜딩 가격은 39.6원이 된다. 랜딩 가격이란 십핑(shipping, 선적)과 관세를 포함한 가격으로, FTA 협정이 맺어진 유럽 브랜드가 유럽에서 생산하고 유럽에서 선적을 하는 경우에는 관세 13%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랜딩 가격은 홀세일 가격의 ×1.2를 적용한다(관세가 발생하는 나라면 홀세일 가격의 ×1.3을 적용한다). 이 랜딩 가격에서 3.3~3.7 정도를 곱해 리테일 가격(국내 정가)이 책정되는데 그러면 약 130~140원이 된다. 이탈리아 현지 가격보다 30~40% 높아지는 셈이다.
그런데 일본 브랜드를 들여올 때는 현지 가격보다 60% 이상 비싸진다. 우선 홀세일가가 60%인데다 일본과 한국 간에는 패션에 관해 FTA 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관세 면제도 받지 못한다. 일본에서 100원짜리를 홀세일가 60원에 사 오면 랜딩가는 78원, 리테일가는 무려 약 257원이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표로 정리해 봤다.
위의 표를 보면, 본국에서 똑같이 100원짜리 아이템을 가져오더라도 이탈리아 브랜드는 국내에서 130원에 팔 수 있고, 일본 브랜드는 257원에 팔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 브랜드는 마크업을 2배수 정도밖에 할 수가 없다. 사실 백화점에 입점해 수수료를 내야 하는 브랜드 입장에서 마크업이 2배수면 100%를 다 팔아도 엄청난 적자다.
다양한 일본 브랜드를 보유한 ‘어빙플레이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실제 우리나라 편집숍 중 일본 브랜드를 여럿 가진 회사가 있다. 그중 ‘주카(Zucca)’와 ‘언더커버(Undercover)’는 모노 브랜드로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고객 충성도도 높고 판매율도 높으나, 마크업을 제대로 못해 그 브랜드만 놓고 보면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일본 브랜드를 바잉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라이선싱이나 다른 자체 브랜드를 갖고 있는 경우다. 일본 브랜드는 세계 어느 브랜드보다도 매 시즌 독특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따라서 디자인팀으로 하여금 영감의 원천이 될 만한 아이템이 매우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익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일본 브랜드를 가져와 돈을 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의미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카이(sacai)’ 전개는 오너의 결단이 빛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월급쟁이라면 적자가 날 줄 알면서도 브랜드 전개를 추진할 수는 없을 테다. 하지만 신세계는 사카이 자체로는 수익을 못 내더라도 신세계가 보유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또한 수익 구조가 좋지 못하기에 신세계는 일본 브랜드인 사카이와 ‘엔폴드(ENFÖLD)’ 등을 타 백화점에 수수료를 내고 입점시킬 수가 없다. 자연스레 신세계 ‘독점’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세계는 훌륭한 안목과 인내심을 갖고, 멀리 크게 보며 해외 브랜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판매되는 일본 브랜드가 많이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리적 영향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은 일본과 거리가 멀지만, 한국은 2시간이면 일본에 갈 수 있어서 접근성이 훨씬 좋다. 일본 현지에 가서 좋아하는 일본 브랜드 옷 몇 개 사고 가이세키와 스키야키 등 맛난 일본 음식을 먹고 돌아와도 비행기표 값을 버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 브랜드는 홀세일 가격이 왜 이렇게 높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일본 내에 있는 엄청난 수의 편집숍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주쿠 다카시마야 백화점에 있는 GVGV 숍과 같은 층에 있는 전혀 별개의 편집숍에서 GVGV의 아이템을 판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타임(TIME)이나 마인(MINE) 매장 바로 옆의 편집숍 매장에서 타임이나 마인 제품을 파는 것과 같은 꼴이다.
이렇게 홀세일 수요가 많다 보니 브랜드 본사가 운영하는 직영스토어가 그 브랜드를 바잉하는 다른 편집숍들과 경쟁해야 하므로, 유럽처럼 33%나 40%까지 공급률을 낮춰서 물량을 줄 수가 없다. 또한 홀세일가가 저렴하면 각각의 편집숍이 이윤을 남기는 비율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면 시장 가격에 혼란을 가져오고 브랜드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 게다가 수백 곳이 넘는 어카운트를 본사에서 일일이 관리할 수도 없다.
하지만 홀세일가가 60%라면, 임대료나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는 자기 소유의 매장이라 하더라도 정가로 80%를 팔아야지만 이윤을 남길 수 있기에, 어느 정도의 가격 선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내수시장에서의 가격구조가 해외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디자인 경쟁력은 있어도 해외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높은 홀세일 가격, 그 시장구조를 만든 수많은 편집숍, 편집숍에 진심인 일본인들의 독특한 문화 등을 알고 나니 이해되지 않던 일본 시장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편집숍이란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을 나만의 기준으로 다시 골라서 판매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재배열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말 그대로 ‘편집’이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규모가 작은 편집숍이어도 고객층이 탄탄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다양한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스토리(RHK)
- 패션MD :Intro(RHK)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경력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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