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연ㅣ트라이본즈 · 파스텔세상 대표
비패션계 출신 CEO... 셔츠 · 키즈 양 날개 3000억 도전
2019년 9월부터 트라이본즈와 파스텔세상을 이끌어온 이성연 대표는 1년 만에 적자 회사를 흑자로 전환한 데 이어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다양한 신규 프로젝트를 가동해 2023년 3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非)패션계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뒤로하고 성공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캐주얼하면서 깔끔한 세미 비즈니스 착장이 잘 어울리는 이성연 대표는 패션업계에 입문한 이후 처음 하는 인터뷰라며 긴장감을 내비쳤다. 딱딱하고 까칠할 것 같은 첫인상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부 직원들이 이 대표를 말할 때 ‘조용한 카리스마’라고 하는 이유는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유연하게 이끌기 때문이다.
스펙으로 볼 때 ‘엘리트 CEO’의 표본으로 비치는 그는 트라이본즈와 파스텔세상 부임 당시 동업계에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패션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삼표시멘트 대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종종 이업종에서 패션 경영인으로 오기도 하지만 사실상 성공적인 케이스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그만큼 이 대표 역시 패션회사 CEO 자리가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기대와 동시에 우려가 많았어요. 패션이나 유통 경험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기업의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특정 산업의 지식과 경험도 필요하지만, 다른 중요한 요소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조직을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십, 회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능력, 새로운 기술이나 접근 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 통찰력 등이죠. 그 부분에서 제 경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전문경영인 경험 풍부 ‘조용한 카리스마’
이 대표가 트라이본즈와 파스텔세상을 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내부 효율화에 집중한 점이다. 적자 사업부를 폐쇄하고 덴마크 주얼리 ‘필그림’과 키즈 편집숍 ‘킨더스코너’ 등 실적이 부진한 브랜드를 중단했다. 그 결과 2020년 매출은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배로 성장했으며 올해는 사업부 몇 개를 철수했음에도 매출은 전년대비 15% 신장세를 타고 있다. 올해 두 회사 예상 매출은 2100억원, 영업이익은 또다시 2배로 성장하는 추세다.
현재 트라이본즈는 남성 셔츠 ‘닥스셔츠’와 백&슈즈 ‘포멜카멜레’ 등 2개 브랜드를, 파스텔세상은 아동복 ‘닥스키즈’ ‘헤지스키즈’ ‘봉통’ ‘지방시키즈’, 키즈 라이프스타일 ‘피터젠슨’ 등 5개 브랜드를 포함해 총 7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내년에는 좀 더 공격적인 신규 사업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 일환으로 프랑스 유아동복 ‘쁘띠바또’를 내년 1월 론칭할 계획이다. 현재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직수입하는 이 브랜드는 올해 말 계약이 종료되고 새로운 한국 파트너로 파스텔세상과 손잡았다. 기존에 쁘띠바또가 베이비부터 키즈까지 토털 브랜드로 선보였다면 파스텔세상은 베이비 라인을 중심으로 유아 시장을 공략한다.
내년 1월 프랑스 유아복 ‘쁘띠바또’ 론칭
유통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면서 백화점 몇 개만 안테나숍처럼 운영할 계획이다. 수입 유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밀레니얼맘을 코어 타깃으로 잡았다.
이 대표는 남성 셔츠와 유아동복을 양 날개로 삼아 회사를 키운다는 전략이다. 비록 슈트 수요가 줄면서 드레스 셔츠 시장이 위축되고, 출산율 저하에 따른 유아동복 마켓도 성장의 한계는 있지만 조닝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분야의 넘버원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우리 회사의 정체성, 서로 다른 두 개의 기업을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내며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라는 그는 “지금 잘하고 있는 셔츠와 유아동복 분야에서 마켓 지배력을 키우고,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통해 그 분야의 리더로 거듭나겠다”라고 설명했다.
헤지스키즈 세컨드 ‘포인터웍스’ 모노숍 오픈
따라서 닥스키즈와 헤지스키즈는 브랜드 헤리티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닥스키즈는 올 하반기 ‘아이코닉 라인’을 새롭게 선보이며 좀 더 럭셔리한 패션을 추구한다. 수입 명품 브랜드들과 견줄 만한 상품력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헤지스키즈는 서브 브랜드인 ‘포인터웍스’를 새롭게 내놨다.
현대백화점 중동점에 1호점을 열었으며 캠핑을 테마로 해 활동적이며 내추럴한 스타일로 의류뿐 아니라 모자와 가방 등 액세서리류를 비중 있게 가져가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포인트웍스는 백화점 단독매장이나 팝업과 온라인 유통으로 확장해 헤지스키즈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등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지난해부터 선보인 지방시키즈는 롯데 본점과 현대 본점 2개 매장만 운영하면서 키즈 명품 브랜드의 한 축을 담당한다. 봉통은 컨템퍼러리한 스타일과 완구까지 토털화한 상품력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수입 아동복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오거나, M&A하는 방식으로 프리미엄 키즈 마켓에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창희 CD 등 맨파워 키워 남성 패션 키운다
닥스셔츠는 카테고리 확장을 이뤄나가는 중이다. 지난 S/S 시즌부터 넥타이를 직접 개발하면서 셔츠와 타이 세트 상품을 늘려나가고 있다. 또 더현대서울 등 주요 점포에는 ‘닥스포유’라는 콘셉트스토어를 열어 셔츠와 타이뿐 아니라 다양한 니트류와 캐주얼 아이템도 일부 개발하고, 가방과 스몰 레더 굿즈는 닥스액세서리에서 바잉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며 남성 잡화 브랜드로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최근 질스튜어트뉴욕 · 일꼬르소 · 지이크 등의 디렉터를 지낸 이창희 이사를 영입해 상품 감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 CD를 통한 남성 신규 브랜드 론칭도 염두에 두고 있다. 글로벌 판권을 인수한 피터젠슨은 키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새롭게 포지셔닝한다.
책가방과 필통 등 각종 팬시류를 비롯해 피터젠슨 키즈 패션도 강화하고 있다. 패션잡화 포멜카멜레는 올 하반기 한층 고급스럽게 리뉴얼했다. 리얼 가죽 제품으로 바꾸고 가격대도 상향 조정해 백화점 유통을 공략한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에 초점을 맞췄으며 2040세대 여성이 편안하지만 세련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회사별 구분보다는 사업부별 구분해서 관리
“회사는 분리돼 있지만 실제 운영은 하나의 회사로 하고 있습니다. 회사별 구분보다는 각 사업부를 성숙된 사업과 신흥 사업부로 나누고 있죠. 즉 닥스키즈나 닥스셔츠 같은 안정화된 사업과 새롭게 시작하는 브랜드들의 KPI(핵심성과지표)를 구분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국가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이 있듯이 성숙한 사업부는 실적 달성에 집중하는 한편 신흥 사업부는 필요한 투자를 적절히 집행하기 위해 정성적 또는 정량적 KPI 위주로 관리합니다.” 이 대표는 7개 사업부를 전적으로 사업부장이 관할하도록 하고 있다. 또 e비즈니스팀, 마케팅팀, 경영전략실 등 지원부서도 부서장이 책임을 맡도록 했다.
7개 사업부와 6개 지원부서 포함해 이 대표까지 14명이 회사의 리더십팀으로서 함께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자산은 재고를 제외하면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훌륭한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고 새로운 역량은 외부에서 수혈하며 업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파스텔그린 · 셔츠스펙터 플랫폼BIZ 집중 투자
신사업으로는 작년부터 시작한 온라인 플랫폼 ‘파스텔그린’과 ‘셔츠스펙터’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중이다. 자사의 아동복 중고 거래 플랫폼인 파스텔그린은 ‘아동복의 당근마켓’을 모토로 하고 있다. 비록 자사 브랜드만 가능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고정고객층을 좀 더 타이트하게 관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또 지속가능패션과 ESG 경영의 연장선상에서도 파스텔그린의 가치는 높다.
맞춤 셔츠 플랫폼인 셔츠스펙터는 3040세대 남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닥스셔츠가 오프라인과 중장년층 위주라는 점과 겹치지 않으면서 사이즈를 한 번만 등록하면 온라인으로 맞춤셔츠를 간편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재방문율이 높다.
셔츠스펙터는 재고를 없애고, 온라인 유통으로 수수료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닥스셔츠 수준의 고급 제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셔츠스펙터는 지난 1년간 테스트 기간으로 삼았고 올 하반기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한다”라며 “현재 1만명 수준의 회원을 세밀하게 관리해 확장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이어서 “온라인 사업을 하면 무조건 무신사나 쿠팡을 생각하는데 모두가 그렇게 될 필요는 없다”라며 “트라이본즈와 파스텔세상의 통합몰인 ‘파스텔몰’은 현재 20만~30만 회원 수를 확보하고 있지만 매우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ESG 경영은 목표가 아니라 ‘경영의 일상’
자사 제품만 팔기 때문에 각각의 브랜드 ‘찐팬’을 계속 끌어들이는 데 노력하면서 통합 멤버십 관리와 제품 마케팅 활동에 앞서가도록 했다. 심지어 회사의 본질을 ‘CRM·마케팅 회사’로 정의할 정도로 이 부문에 포커싱하고 있다. “우리 VIP 고객은 1000만명도 아니고 수 십만명 이내”라는 그는 “최저가를 검색하는 고객도 아니기 때문에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 회사 제품과 지속적으로 연결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ESG 경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먼저 올해 ESG 경영원칙 선언문을 전 직원을 비롯해 협력회사들과 공유했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의 동참을 이끌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는 “ESG 활동은 어느 특정한 한 두 개의 큰 과제가 아니라 경영활동 면면에 깊게 새겨 있는 경영의 일상”이라며 “친환경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포장재 등 부재료 사용을 줄이거나 환경친화적인 대체품을 사용하도록 각 사업부에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협력사나 사업파트너들과 윈윈하는 동반 성장과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공헌까지 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셔츠와 아동복, 패션잡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등 각기 다른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트라이본즈와 파스텔세상은 이 대표를 만나 ‘패션 라이프스타일 토털 기업’으로 더욱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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