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라, 레트로 & 테니스 붐 타고 인기

백주용 객원기자 (bgnoyuj@gmail.com)|19.12.20 ∙ 조회수 1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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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웨어 휠라, 美 패션도 장악...레트로 & 테니스 붐 타고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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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아주 똑똑하게 브랜드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10년 가까이 서로를 의지하며 합을 맞춰 온 존 엡스테인(Jon Epstein) CEO와 루이스 콜론 브랜드 헤리티지파트 부사장이 있다.

누가 더 촌스러운지 겨루기라도 하듯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잊혀진 브랜드를 하나하나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 로또, 엘레쎄, 카파, 디아도라, 험멜, 미즈노, 아식스, 오리지널펭귄 같은 오래된 스포츠 혹은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와 뜬금없는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그들을 패션쇼에 등장시키며 쿨하게 광고했다.

촌스러움이 멋이 돼 폴로, 노티카, 게스, 캘빈클라인, 타미힐피거, 라코스테와 같은 브랜드도 ‘헤리티지’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과거에 내놨던 디자인을 다시 출시한다. 이제는 이런 트렌드도 조금씩 저물고 있지만 ‘휠라’의 성공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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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 가던 브랜드가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다시 드러내더니 부활을 넘어 패션 시장을 장악했다. 단순히 돈을 쏟아부은 마케팅이나 트렌드발, 운으로는 휠라의 성공을 단정 지을 수 없다. 휠라는 사실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아주 똑똑하게 브랜드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10년 가까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합을 맞춰 온 존 엡스테인(Jon Epstein) CEO와 루이스 콜론 브랜드 헤리티지파트 부사장이 있다.

100년 헤리티지, 美 스트리트 패션 강타

이 둘의 만남은 루이스 콜론이 휠라 라이프스타일 부서 채용 공고에 지원한 2010년부터 이뤄졌다. 그 이전에 존 엡스테인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휠라 글로벌 CEO를 역임했고, 이후 잠시 회사를 떠났다가 2007년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글로벌 본사를 인수한 이후 북미지역 경영자로 컴백했다.

엡스테인 CEO는 2010년 휠라를 영 브랜드로 탈바꿈시키기를 결정하면서 휠라 라이프스타일 부서를 개설했고 채용 공고를 내 직접 루이스 콜론 인터뷰를 맡았다. 인터뷰 당시 루이스 콜론에게 ‘음악과 운동화, 스트리트 컬처를 얼마나 아는지’와 ‘트렌드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고, 그의 능력에 신뢰를 가지고 상품 개발자로 채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루이스 콜론은 어릴 적부터 운동화 마니아였다.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하다 돌연 자퇴하고 2005년 미국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은 운동화 매장 ‘레이시스(Laces)’를 오픈했다. 여성만을 위한 레어(Rare) 운동화 판매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나이키에서도 어카운트를 얻어 한정판 판매를 시작했다. 후에는 ‘킥스클루시브(Kicksclusive)’라는 운동화 잡지도 창간해 세상에서 가장 유니크한 신발과 스니커 마니아 세상을 집중 조명했다.

2010 레트로농구 붐 맞춰 착안

그러다 미국 경제위기 당시 리테일러로서의 위기를 면치 못했고, 일자리를 찾던 도중 휠라의 채용 공고를 발견하게 된 것. 그렇게 만난 루이스 콜론과 존 엡스테인은 서로 상당히 상반되는 인물이었다. 한 명은 쿨한 스트리트 컬처를 좋아하는 운동화 마니아, 다른 한 명은 브랜드 이익 창출에 집중하는 사업가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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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콜론은 2010년 당시 레트로 농구화 붐이 일어나는 것에 맞춰 휠라의 1996년 농구화 모델 ‘그랜트 힐2’를 다시 생산해야 한다고 존 엡스테인을 설득했다. 엡스테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콜론을 믿고 ‘그랜트 힐 2’ 모델 2500족을 생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랜트 힐2’ 모델이 순식간에 완판되는 것을 목격한 존 엡스테인은 수량을 늘려 이윤을 최대한 남기자고 주장했지만 레어 스니커즈 세계의 룰을 잘 알고 있던 루이스 콜론은 희소가치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이 효과가 다른 상품으로 이어지길 바란 것.

농구화 ‘그랜트 힐2’ 2500족 재발매… 대성공

그러나 리테일러들은 그랜트 힐2 외에 다른 휠라 상품을 바잉하지 않았다. 다른 상품으로 가기에는 이미지가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 하지만 두 사람은 휠라의 오래전 모델이 새롭게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며 휠라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 부분을 다시 재조명한다면 휠라를 180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휠라의 과거를 차근차근 돌아보기 시작했다.

스트리트 컬처에 잔뼈가 굵은 루이스 콜론은 이미 올드해진 휠라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았다. ‘그랜트 힐2’ 같은 소위 레어 스니커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통하는 휠라의 다른 스니커즈 모델과 시그니처 테니스 룩을 다시 가져오고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협업을 하며 이슈를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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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을 통해 휠라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 이미 보유한 기존 상품들의 판매율을 높이고 또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상품 개발도 재빠르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루이스 콜론은 “사람들이 레트로나 1990년대를 외치는 것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촌스러운 구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진정성과 깊이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레트로? 브랜드 진정성과 깊이에 대한 갈망

그는 디자이너 피에르 루이기 로랜도가 1970년대에 선보인 화려한 테니스룩 ‘화이트 라인’ 컬렉션을 다시 출시하면서 “휠라는 100년이 넘는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들려줄 이야기도 많다. 테니스는 스포츠 패션과 거리가 조금 멀어졌지만, 우리는 ‘휠라 96컬렉션’을 다시 출시했고, 이를 통해 휠라의 참된 아이덴티티를 다시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루이스 콜론은 대대적으로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한다. 한정판으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소량 생산 결정을 내리면서, 외주보다는 자체 생산이 낫다는 판단하에 중국에 휠라 연구소 겸 공장도 짓는다. 이곳은 루이스 콜론이 진행하는 협업의 샘플과 한정 생산 수량만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그가 진행한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의 시작은 2016년 뉴욕의 유명한 소울 푸드 레스토랑 ‘스위트 칙(Sweet Chick)’과 함께 이뤄졌다. 신발이 꼭 신발 진열대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며, 레스토랑 매장 내에서 소량 한정 판매를 진행한 것.

농구 하이킹 등 다방면 스포츠 후원 마케팅

이후 레트로 패션이 슬슬 타오르기 시작할 즈음, 휠라는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연락이 닿는다. 꼼데가르송의 지원을 받는 신예 디자이너였던 그는 스트리트웨어를 잘 이해하고 로(Low)와 하이(High) 패션을 제대로 믹스하며 한번에 주목을 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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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4개월을 앞둔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던 휠라에 샘플 개발, 수정, 생산 등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루이스 콜론은 고샤와의 협업이 휠라의 평판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라 확신했다. 고샤를 모르던 존 엡스테인에게도 “이 협업은 정말 대박이 될 것”이라며 수차례 기대감을 키워 갔다.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1990년대에 휠라를 알았던 고객들은 다시 등장한 휠라가 너무 반가웠다. 고샤의 런웨이 쇼에서 옛날 감성 그대로 등장한 휠라는 그들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젊은 소비자들에게도 휠라를 알릴 수 있었다. 기존의 고샤 팬들에게도 유스 감성이 충만한 휠라는 오케이였다.

고샤 베이프 펜디 등과 협업, 연타석 성공

고샤 루브친스키와 컬래버레이션부터는 협업 상품뿐 아니라 휠라의 기본 아이템까지 세계 유명 셀렉트숍에 들어가는 쾌거를 이룬다. 이어 바니스 뉴욕, MSGM, 베이프, 3.1 Phillip Lim, 10 꼬르소꼬모, 리암 호지스, 펩시를 포함해 수십 가지의 협업을 성사시키며 매번 이슈를 만들었다.

그중 또 한 번 휠라를 패션 뉴스 헤드라인에 장식되게 만든 사건은 바로 펜디와의 협업이다. 두 이름의 조합만으로 이미 뉴스거리였다. 펜디는 휠라의 F 로고를 자신들의 ‘FENDI’ 로고와 합쳐 럭셔리 상품을 출시했는데, 휠라도 고유의 이탈리안 역사와 테니스의 고급스러움을 갖고 있어 잘 어우러졌다. 둘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다.

펜디와의 협업 여세를 몰아서 휠라는 2018년 밀란 패션위크에서 단독 런웨이 쇼를 진행한다. 휠라가 생긴 지 100여년 만에 진행한 첫 런웨이 패션쇼였다. 이탈리안 브랜드가 한국 회사의 소유가 된 이후 다시 헤리티지로 부활에 성공했고, 그 여파로 브랜드의 고향에서 패션쇼를 열게 됐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의미가 컸다. 휠라는 아이코닉 ‘F’ 로고를 활용해 트렌드에 맞는 스포츠-스트리트 감성을 제대로 보여 주며 비상했다.

프리미엄 패션 라인 ‘휠라 피오르드’ 출시

연이어 휠라는 덴마크 출생, 영국 왕립 예술대학교 출신 디자이너 아스트리드 안데르센(Astrid Andersen)을 디렉터로 영입해 프리미엄 패션 라인까지 영역을 넓힌다. 그를 통해 공개한 ‘휠라 피오르드’는 2019년 1월 피렌체의 피티 워모(pitti umo)에서 첫 컬렉션을 공개했다.

휠라 컬래버레이션 이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가격대다. 오랜 아카이브 속 모델을 재출시해 인기를 얻어도 유명 디자이너와의 프리미엄 컬래버레이션 상품의 경우 대부분 수량은 적고 가격은 고가다. 이를 통해 마니아 소비자들에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실제로 많은 수량을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는 소비층은 대중이라는 것을 루이스 콜론은 간과하지 않았다.

대중을 타깃으로 한 유통은 백화점 몰과 풋락커, 챔스 스포츠, 어번아웃피터스 같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편집숍이다. 휠라는 대중을 메인 소비자로 확보하기 위해 각 편집숍과의 한정 모델을 기획해 전략적으로 이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이 시기에 유명 셀럽 켄달 제너도 휠라의 상품을 착용했고, F 로고를 살린 티셔츠는 75만장 이상 팔리며 성과를 거뒀다.

‘F’ 로고 살린 티셔츠 75만장 이상 판매

그리고 대망의 어글리 슈즈 트렌드가 시작됐다. 어글리 슈즈 트렌드를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 모델이 일으켰다면, 이 트렌드를 대중화한 것은 ‘휠라’의 ‘디스럽터2’다. 고샤에 이어 펜디까지 다양한 협업으로 이슈몰이를 하던 휠라는 2017년, 1996년에 첫 발매한 디스럽터2 모델을 재발매했고 1년 만에 1200만켤레를 판매하는 성공을 거뒀다. 포인트는 어글리 슈즈의 매력을 잘 살린 디자인과 6만9000원대라는 합리적인 가격대다.

휠라의 매출 규모는 2016년 9671억원에서 2018년 2조9546억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아쿠쉬네트 인수 합병 매출 포함). 영업이익 역시 2016년 118억원에서 2017년 2175억원, 2018년에는 3571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영업이익은 총 47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휠라는 긴 시간을 이겨 내며 상품 디자인과 생산 기반, 마케팅 등 다방면에서 재정비를 진행했고, 시기와 맞물려 재도약에 성공했다. 패션쇼에도 서고, 유명 스타들도 입으면서 전 세계 고급 부티크에서도 ‘믿고 살 수 있는 브랜드’가 됐다. 동시에 훨씬 합리적인 가격대로 트렌디한 옷과 신발을 구매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게 됐다.

협업 성공 비결? 가성비와 스토리텔링 적중

화려하게 컴백한 휠라의 현재 목표는 성인 남녀, 키즈 등 모든 분야에 운동화와 의류, 액세서리를 균등한 비중으로 제공하는 탄탄한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장세를 함께 이끌어 온 존 엡스테인 CEO는 지난 2월에 별세했고, 루이스 콜론은 현재 휠라 헤리티지파트 부사장으로 활약 중이다.

루이스 콜론은 “존은 언제나 나를 믿고 지지해 줬다.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허락했고, 바로 수익이 나지 않아도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려 줬다. 휠라의 성공에는 그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말하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휠라의 성공 요인으로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휠라는 앞으로도 꾸준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며 새로운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트레일, 캠핑으로 확장하면서 뉴욕에서 팝업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19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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