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민은선 기자 (sophiamin2020@gmail.com)
24.07.11 ∙ 조회수 1,141
Copy Link

‘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27-Image


럭셔리? 매스? 디자이너 브랜드? 하이엔드? 로엔드? 컨템퍼러리? 포멀? 캐주얼? 스포티? 기존의 

패션인더스트리가 정해 놓은 모든 정형에 맞지 않는다. 고객 타깃은 전 세계 여성들, 에이지 타깃도 없고(에이지리스) 시즌도 없다(시즌리스). 브랜드를 설명하는 무드 보드나 콘셉트 보드도 없다. 상품기획은 1년에 한 번. 매장도 없고 홀세일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다’를 외치며 나타난 J.크리켓. 프라다, 샤넬, 버버리 등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사용하고 남은 최고급 품질의 재고 원단이나 잉여 원단을 구매해 1년에 한 번 기획해서 프로토타입(샘플)을 만들고 전 세계 도시를 투어하며 팝업 혹은 전시 스타일의 이벤트로 고객에게 직접 주문을 받고 주문 받은 물량만큼 생산 · 배송한다.


잉여 원단 + 주문제작 + 전 세계 여성 대상


판에 박힌 패션계의 캘린더는 무시한다.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컬렉션? 상관없다. 컬렉션이나 트레이드쇼는 물론 홀세일도 하지 않고, 쇼룸이나 그 흔한 PR회사와도 무관하다. 셀러브리티와 인플루언서를 모셔 오거나 바이어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좋은 소재다. 누군가에게는 ‘남은 원단’이라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이 지민리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자 비즈니스의 출발이다. 다양한 루트로 확보한 소재에서 영감받아 기획하고 디자인하므로 사계절 옷이 모두 섞여 있다. 


이런 브랜드를 자신 있게 론칭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패션산업의 360도를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바이어, 편집숍 디렉터,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바잉, 인큐베이팅 등. 게다가 활동 범위도 뉴욕, 밀라노, 파리, 상하이, 서울 등 업무적인 경험도, 국가적 도시적인 경험도, 디자인과 바잉 프로세스의 경험까지 모두 그의 도전에 충분한 자산이다.


‘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1171-Image


정형 탈피 에이지리스 시즌리스 스토어리스


30년 경험의 귀착점은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의 모든 사이클을 깨자는 것. '쓰레기 양산과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비난받는 패션 비즈니스의 방정식을 탈피해 완전히 다른 포맷의 브랜드를 만들자'해서 탄생한 것이 J.크리켓이다.



 “제가 사랑해 온 패션과 지금의 패션 인더스트리 간에는 갭이 많아요. 지금은 로고가 사람을 입는 건지 사람이 로고를 입는 건지 모를 그런 세상이 됐어요. 언제나 나의 브랜드와 디자인을 하고 싶었고 과거에도 ‘지민리’를 론칭해 봤지만 지금 브랜드를 시작하면 남과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지요. 세상에는 옷도 브랜드도 너무 많고 새로운 뭔가가 매일 탄생하고 있는데 ‘나는 왜 옷을 만들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했어요.” 


기존의 시스템 속에서 브랜드를 한다면 그 메커니즘에 끌려 들어가 1년에 몇 번씩 컬렉션을 해야 하고 바이어와 인플루언서를 찾아다니고 홍보도 해야 한다. 시작하기 전부터 질릴 정도로 숨 가쁘게 달려야 하는 것이 패션계의 현실이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에 이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J.크리켓 브랜드네임 '디즈니' 애니메이션서 출발


지미니 크리켓(Jiminy Cricket)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한다. 피노키오 의 등장인물로, 말하는 귀뚜라미의 이름이자 어릴적 지민리의 별명으로 피노키오의 든든한 멘토이자 조력자, 수호신이며 피노키오의 양심을 상징한다. 


‘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2165-Image


디자인, 크리에이션, 이노베이션 유니크 포인트


“모든 일을 거의 다 해 봤지만 정말 깊이 하고 싶은일은 디자인, 크리에이션, 이노베이션이었어요. 패션 비즈니스가 이렇게 커졌고 브랜드도 별처럼 많은데 과연 내가 유니크한 포인트를 만들

어 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옷의 가치도 결국 소재라는 점에 몰두했지요. 특히 천연염색 원단은 화학섬유보다 사람의 에너지 바이브레이션에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2018년 J.크리켓을 론칭했으나 한 시즌 만에 코로나19가 대유행한다. 3년 동안 모든 게 정지되면서 콘셉트가 탄탄하게 완성돼 갔다. “요즘은 모두가 패스트패션화되면서 소재에 신경도 안 쓰고 울인지 코튼인지도 잘 몰라요. 럭셔리 브랜드는 로고만 붙이면 그만이죠. 고객도 바이어도 세심하게 만지지 않고 그저 사진만 찍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소재’에서부터 시작해요. 소위 잉여 원단 혹은 재고 원단 등 남은 소재가 저의 출발점입니다.” 


디올과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남긴 소재를 30m, 60m씩 구매해 옷을 만든다. 마음에 드는 좋은 것만 구매하고 때로는 별생각 없이 조각으로 사서 마음 가는 대로 단 몇 벌의 옷을 만들기도 한다. 소재를 선택하면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것을 정리해 컬렉션을 준비한다.


‘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3039-Image


컬렉션 No! 소재에서 시작한 ‘옷장 셀렉션’


 “너도 나도 다 디올과 샤넬을 입는 것은 럭셔리가 아니지요. 다른 사람을 따라가고 싶은 열망이 아니라 내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전 소재부터 시작해서 ‘컬렉션’이 아니라 워드로브(Wardrobe, 옷장), 프렌치로 말하면 갸르드로브(GARDE-ROBE), 즉 나의 스타일대로 맞춘 옷장 셀렉션을 만들어요.” 


컬렉션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아이템의 새로운 셰이프를 만들고 볼륨도 보디컨셔스 라인에 맞게 소재를 쓰면서 만들어 간다. 출장이 잦은 자신의 장롱에 늘 걸려 있는 옷들이기도 하다. 요즘 소비자들은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시즌 개념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져 사계절 옷이 믹스돼서 장롱에 걸려 있다.


 “저는 소재를 보는 순간 이 소재로 무엇을 만들지 머릿속에 떠올라요. 다른 디자이너들과 제가 차별화된 점이지요. 통상 이번 시즌 컬러 트렌드, 패션 트렌드보고 컬렉션에서 영감받고, 기획하고, 그 이후 소재를 주문하지요. 저는 소재를 보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옵니다. 직관이라고 할까요? 순서가 바뀌는 거죠."


‘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3836-Image


코모 실크, 비엘라 울 캐시 등 100% 유럽 소재


소재는 거의 100% 유럽 소재,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이다. 특히 실크는 코모, 울 캐시미어는 비엘라에서 만든 소재를 사용한다. 로로피아나 제냐 등에서 나오는 소재도 많다. 재고 원단은 나름대로의 루트가 있어 그들을 통해 구매한다.


“특히 제가 소재를 잘 봐요. 워낙 옷을 좋아하는 데다가 몇 십 년 동안 옷을 만지고 만들고 고르고 팔았기 때문에 결국 남는 건 소재라는 것을 잘 알죠. Nothing else! 소재에서 떠오른 영감으로 디자인하기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에서 남은 소재라 해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옷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처음엔 홀세일을 시작했지만 옷을 판매해도 디자이너로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켓도 보이지 않고 소비자가 옷을 입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고 단순히 장사하는 느낌이었다. 옷이 어느 매장으로 갔는지, 어떻게 걸려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매장에서는 빨리 팔기 위해 마크다운하고 세일을 한다. 이런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고 제로’ 패션 뉴 하이웨이 ‘J.크리켓’ 화제  4628-Image


홀세일 온라인도 No, 쇼룸도 매장도 없어


그래서 일단 워드로브를 하나 만들어 세계를 투어하며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자 생각했고 코로나가 끝난 뒤에 바로 시작했다. 고객을 만나 직접 주문을 받는 방식이다. 주요 도시를 돌며 팝업 형식의 이벤트를 열고 고객을 한 명 한 명 늘려가며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뉴욕과 서울의 프라이빗 이벤트로 작게 마켓 테스트를 해본 후 자신감을 얻어 1년에 한 번씩 도시마다 팝업 개념으로 판매하기로 틀을 만들었다. 팝업은 5일간 진행되며 직접 주문받아 모은 주문량은 메인 생산으로 이어지고 3개월 후 고객에게 배송된다. 소재 주문부터 하면 6개월이상 걸리지만 소재를 이미 갖고 있어 12주면 생산이 가능하다.


필요한 것만 필요한 양만큼 만들어 재고도 없다. 소재가 떨어지면 그 옷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다 팔리면 소재를 바꿔서 다시 제작한다. 매장에서 파는 게 아니라 고객에게 직접 파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은 매장에 들어가 자신의 사이즈가 없어 속상할 일이 없고 정확한 자기 사이즈도 알 수 있다. 


전 세계 투어 + 패션커뮤니티 세일즈 방식


매장도 없고 쇼룸에도 안 들어가고 홀세일도 안 한다. 쇼룸은 들어오라는 곳이 있지만 일단 콘셉트가 검증되기까지 거절하고 있다. 팝업 투어는 지난해 서울-상하이-밀라노에 이어 새해엔 뉴욕-런던-파리-취리히-마닐라로 이어질 계획이다. 


소재만 지속가능한 게 아니라 생산, 유통, 크리에이티브를 비롯한 전 과정이 지속가능하다. “디자이너에게 웰니스가 없으면 이 옷을 왜 만드나 하는 회의감에 빠져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심각한 스트레스로 해고되고 쓰러지고 자살했어요. 너무 불행해요. 패션을 아직도 크리에이티브 인더스트리라고 얘기하지만 매출이 안 나오면 교체되는 게 현실이에요. 크리에이티브는 커녕 모두가 지금 100% 커머셜로만 가고 있지 않나요?”


이 서클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 지민리의 확고한 의지다. 자신의 리듬대로 기획해서 투어하면서 같은 컬렉션으로 주문받고 소재가 떨어지면 바꿔서 만들고, 투어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든다. 거품 없고 재고 없이 주문받은 만큼 만들고 팔지만 품질은 최고다.


팝업에서 주문 3개월 후 고객에 직접 배송


“모두 천연소재를 사용한 고품질입니다. 내 피부에 닿는 세컨드스킨이 옷이니까 그게 제일 중요하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요. 지금의 패션은 패스트든 럭셔리든 미리 많이 만들어 놓고 빨리 사가라고 마케팅하죠. 저는 소비자가 원할 때 옷이 만들어지는, 옛날 양장점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그런 개념으로 일하지만 기존 시스템을 깬다기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고 할 수 있어요.” 


“1개의 드레스가 실크, 코튼, 컬러별로 있어요. 소재가 없거나 주문받지 못하면 다른 시리즈로 풀면 되죠. 셰이프가 남아 있으니까 좋은 소재가 있으면 다시 만들어요. 남은 조각으로 쿠션도 만들지요. 소재에서 영감을 받으면 못 만들게 없어요. 20년 전 패턴도 좋으면 다시 쓰지요.”


원단 떨어지면 솔드아웃, 마크다운 세일 없어


원단이 없으면 솔드아웃인데 다른 브랜드의 솔드아웃과는 개념이 다르다. 미니멈도 없고 올해 정상가를 내년에 할인해 파는 일도 없다. 시즌과 프로세스에 쫓겨 물건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팔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거나 재고를 대비해 가격을 미리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디자이너의 에너지에서부터 기획 생산 판매 물류 재고관리에 이르는 모든 프로세스의 불필요한 것은 

모두 없앴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기 때문에 J.크리켓은 아주 자유롭다. “저 이런 말 싫어하지만 진짜 제로웨이스트예요. 내가 언제나 좋아하는 소재와 패턴 셰이프를 가지고 ‘위드아웃 트렌드’ ‘위드아웃 시즌’으로 만들지만 오늘 입어도 아주 모던해요.”


 “디자이너의 에너지부터 절약된다고 할까요. 디자인팀과 생산팀 20명 30명 모여서 하는 회의도 없고 무드 보드, 트렌드 보드도, 뭐가 팔렸다 안 팔렸다 하는 세일즈 보드도 없어요. 물론 세일즈 관리는 합니다. 제가 바이어로서의 경험도 있고 세일즈 리테일 바이어 등 인더스트리 경험이 많아 기본적인 센스와 직관, 통찰을 갖고 있어서 치밀하게 관리해요."


최고급 소재 가격 굿, 글로벌 원프라이스


J.크리켓은 3명이라는 아주 적은 수의 전문가들과 일한다. 처음에는 지민리가 직접 다 했고 지금도 패턴 전문가 외에 디자인팀 없이 혼자 해낸다. 바이어들이 통상 디자인 생산을 잘 모르지만 그는 특별한 경력들이 있는 데다 상하이 트랜스라티오는 리테일 외에 마케팅과 PR 등 기능을 다 갖고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봤다.


한꺼번에 만들어 놓고 파는 것과 주문받아서 소량씩 만드는 것의 제조가격 차이는 제법 크다. 대부분 패션은 대량생산 대량제조로 원가를 줄이고 마크업을 크게 해서 마크다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 반면 J.크리켓은 가격 정책이 훨씬 합리적이다.


“재고 원단을 사면 아주 제한된 양을 사지만 가격을 좋게 매길 수 있어요. 물론 소량 생산이라 생산비는 더 비싸지만 밸런스를 맞춥니다. 글로벌 가격은 한국 중국 미국 이탈리아를 원프라이스로 동일하게 해요. 다만 배송 때문에 이탈리아는 살짝 올렸어요. 저는 마진만 따라가기보다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게 주요 모토여요.”

민은선 기자  sophiamin2020@gmail.com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