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병하 l 전 신세계사이먼 대표 '시대정신의 변화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올해 초부터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해 공영주차장 내 ‘여성전용주차장’을 없애고 ‘가족배려주차장‘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지난 2009년 서울시가 주차장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강력범죄를 막겠다는 취지로 시행했지만, 그동안 남성 차별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선거철만 되면 남녀 갈등을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인과 그에 부응하는 사람들은 이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그랬는지 궁금하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그 이야기가 초등학교에서 회자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의 시대정신으로 보면 나무꾼이 산속 연못에서 목욕하는 선녀를 훔쳐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개념 없는 사슴이 알려준 대로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고 뻔뻔하게 선녀 앞에 나타나 착한 나무꾼 코스프레를 하며 청혼을 하고 선녀를 기만한다.
날개옷이 없어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갈 수 없게 된 선녀는 어쩔 수 없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무꾼과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뜻을 이루고 오랫동안 함께 결혼생활을 하면서 긴장이 풀어진 나무꾼은 사슴이 일러준 말을 깜박 잊고, 아이를 셋이 아닌 둘만 낳고도 선녀의 간청에 훔친 날개옷을 돌려주게 된다. 날개옷을 되찾은 선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곧장 아이들을 두 팔에 안고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렸다.
그동안 초심을 잃은 나무꾼과 임신, 출산, 육아와 시어머니의 배려 없는 독박 가사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선녀의 절박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나무꾼이 초심을 잃지 않고 정말 잘해 줬으면 아이를 둘이나 낳았는데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친정인 하늘나라로 떠났을까. 나무꾼에 의한 선녀의 납치와 다름없는 그 사건이 있고 나서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선녀들이 목욕하러 내려가지 않도록 두레박을 내려보내 물을 길어다 목욕을 하게 됐다. 그게 요즘의 여성전용주차장처럼 여성 안심 목욕 공간이 하늘나라에도 처음 생긴 것이다.
밤하늘에서 깜깜한 어둠을 보든, 빛나는 별을 보든 그것은 오롯이 밤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의 몫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굳이 결혼을 하겠다면 남녀의 성별을 뛰어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돕고 살면서 상호존중과 배려의 휴머니즘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으로 은혜를 갚는 사슴과 어울리며 옳고 그름에 대한 사리 판단 없이, 그저 사슴의 말만 듣고 선녀를 기망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슴의 사주를 받아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타고 선녀를 뒤쫓아 올라가는 대목에서는 기함할 뿐이다. 왜, 선녀가 아이를 둘이나 낳고도 큰 고민 없이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반성은 하나도 없이 선녀를 다시 찾아 나섰다는 대목에서는 스토킹, 그 이상의 할 말을 잃게 하는 것이다.
사필귀정, 선녀와의 재회 후 홀로 남겨둔 노모가 걱정돼 잠시 땅으로 내려왔지만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없게 된 나무꾼은 후회 속에 살다 죽은 후 수탉으로 환생해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하늘을 쳐다보며 울고 있다고 한다. 이 ‘선녀와 나무꾼’의 고대 설화에도 나라별로 여러 버전이 있듯이, 시대정신의 변화와 함께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보고 읽든 그것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PROFILE
· 1987년 삼성그룹 공채입사
· 1996년 신세계인터내셔날 입사
· 2005년 해외사업부 상무
· 2010년 국내 패션본부 본부장
· 2012년 신세계톰보이대표이사 겸직
· 2016년 신세계사이먼대표이사
· 2020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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