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 제2 「슈프림」으로 등장?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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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2.01조회수 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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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 컬트스트리트 브랜드, 런던 이어 뉴욕도~



    런던의 소호 지역에는 줄 서서 들어가는 매장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슈프림」이고 다른 하나는 「팰리스(Palace)」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이 스트리트웨어 매장들 앞에는 새로운 드롭(drop, 2~3주에 한 번씩 제공되는 상품)이 배달되는 날마다 젊은 고객들이 그 상품을 사려고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슈프림」이야 「루이비통」과 콜래보레이션을 할 만큼 유명한 브랜드라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했을 「팰리스」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인공 「팰리스」는 2009년 스케이터 출신인 레브 탄주(Lev Tanju)가 스케이터들과 함께 창립한 브랜드로 스케이터를 위한 의류와 잡화, 스케이트보드와 용품 등을 판매한다.

    처음에 스케이트 팀(프로와 아마추어, 친구 스케이터들)을 후원하기 위해 시작했으나 8년이 지난 지금 「팰리스」는 가장 쿨한 스트리트웨어로 떠오르고 있다. 런던과 뉴욕 매장은 물론 온라인 숍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케이트 커뮤니티와 패션계에서 「팰리스」는 ‘꼭 입어야 하는’ 브랜드가 되고 있다.



    스케이터들이 만드는 핫 패션 + 스트리트 브랜드

    날로 늘어나는 「팰리스」의 팬은 도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틴에이저부터 런던패션위크에 출입하는 패션 인사이더에 이르며 이제는 제이지(Jay-Z)와 리한나(Rihanna) 같은 셀러브리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창립자인 탄주가 생산 공장에 맨 처음 주문한 것이 ‘최대한 로고를 크게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팰리스」 아이템들은 옷 전체를 커버할 정도의 슈퍼 사이즈 로고를 사용한 것이 일반적이다. 브랜드명인 ‘PALACE’나 아니면 실존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모양의 입체 삼각 심벌(Tri-Ferg)을 등판, 가슴, 소매 등에 박는 등 이 브랜드에서 로고는 디자인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 밖에도 초기 상품인 티셔츠에는 「베르사체」와 「샤넬」의 로고와 「팰리스」의 로고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는 등 「팰리스」의 그래픽은 매우 새롭고 영향력이 크다. 상품의 매력은 영국의 문화를 레퍼런스로 사용한 탄주의 디자인 감각에 있다. 특히 90년대 영국의 어번 컬처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큰 로고와 대담한 그래픽, 새로운 아이디어

    초기의 「팰리스」 디자인은 변형된 「베르사체」 로고를 활용하면서 90년대 클럽에서 많이 입었던 이탈리아 브랜드를 오마주했다. 특히 「모스키노」와 「베르사체」 「아이스버그」의 이미지를 재창조한 것이다. 또한 90년대 레이브(Rave) 컬처의 요소도 믹스한다.

    또 하나의 영향은 1990년대 스포츠웨어다. 트랙 슈트나 셸 수트(shell suit,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트랙 슈트로 컬러 블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윈드 브레이커 재킷 등의 스포츠웨어 실루엣을 사용하는데 이는 영국 노동자들에게 익숙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 낸 상품을 고객들은 쿨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1990년대 영국 대중문화의 상징적 인물인 엘튼 존과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미지를 활용한 티셔츠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2년 이후 「팰리스」는 「움브로」 「리복」 「아디다스오리지널스」 등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브랜드를 결정하는 기준은 상업적인 이유가 아니라 영국의 서브컬처에서 그 브랜드가 차지하는 위상이라고 한다.



    영국인 시각으로 재구성한 90년대 인플루언스

    즉 「움브로」는 영국의 아이코닉한 스포츠웨어로 축구와의 연계가 강하기 때문에 콜래보레이션으로 풋볼 셔츠를 만들어 냈고 「리복」은 현재 30대 영국인들이 어린 시절 신었던 「리복」 클래식스를 회상하게 하기 때문에 이를 재디자인했다. 문화를 통해 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은 「팰리스」의 디자인에 깊은 영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연간 4회의 컬렉션을 운영하는데 이는 시즌 내 여러 번의 드롭으로 이뤄진다. 드롭이 있는 주에는 주 초에 온라인을 통해 공지하고 토요일에 상품을 판매한다. 온라인은 GMT 0시를 기준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아침 11시에 판매를 시작한다.

    판매를 시작하면 디자인별 수량이 적어 쉽게 품절되는 것이 예사다. 온라인에서는 90초 만에 매진을 기록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밤을 새워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팰리스」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입거나 아니면 「팰리스」와 「슈프림」을 믹스하는 등 대부분 골수 「팰리스」 팬들이다.



    스포츠웨어 브랜드와 콜래보, 무관심도 매력?

    틴에이저부터 스케이터까지 고객은 꽤 광범위하다. 심지어 「팰리스」 상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소유하고 싶은 브랜드인 것.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거나 ‘최상의 고객 서비스’ 같은 가치는 「팰리스」의 사전에는 없다.

    늘 새로운 드롭이 있을 때는 고객을 매장 앞에서 기다리게 하고 심지어 온라인에서는 몇 분 만에 품절되므로 해외 고객들은 상품을 살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하지만 「팰리스」는 이런 데 별반 신경 쓰지 않는다. 온라인 숍에 살 수 있는 아이템이 몇 개 남지 않았어도 개의치 않는다. 리오더는 없다.

    이처럼 「팰리스」의 매력은 남들과 같지 않은 것이다. 성공적인 브랜드가 그렇듯이 룰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객들은 더욱더 「팰리스」를 원하고 상품을 손에 넣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심지어 소비자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조차 쿨하다고나 할까.

    스케이트 커뮤니티 위한 브랜드, 신상 바로 품절

    상품에 대해서도 좋아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지 팔릴 것이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식이다. 이처럼 「팰리스」는 일반적인 회사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 고객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운영의 중심에 가족 같고 형제 같은 스케이트 커뮤니티가 있다. 이들을 돌보고자 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팰리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케이터들이 아무 다른 걱정 없이 나가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충분한 돈을 버는 것이었고 여기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틴에이저 시절 하루에 열두 시간씩 스케이트를 타던 스케이터 출신인 탄주는 스케이터를 지원하기 위해 「팰리스」를 만들었다.

    이러한 진정성은 상업적인 야심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브랜드를 운영하는 계기가 되고 그러한 점이 규모가 커지는데도 쿨함을 잃지 않는 이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팰리스」 상품은 스케이트 숍에서만 살 수 있었다. 편집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프레젠트(Present, 런던 동부에 위치하는 대표적인 남성 편집매장)’ 같은 주요 매장에서도 바잉을 하기 시작했다.



    티셔츠 홀세일로 시작, 런던 이어 뉴욕도 오픈

    「팰리스」가 이렇게 짧은 시간 내 유명해진 데는 비즈니스를 공동 소유하는 개러스 스큐이스(Gareth Skewis)가 지난 25년간 스케이트보드 부문의 리테일과 디스트리뷰션 경험을 쌓아 온 덕분이라고 한다. 탄주의 창의적인 비전과 스큐이스의 업계 노하우가 만난 셈이다.

    2015년 「팰리스」는 런던의 소호 한가운데에 단독매장을 오픈했다. 위치는 남성복 브랜드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런던의 브루어 스트리트(Brewer St)로 「슈프림」 매장과는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근거리에 위치한다.

    매장의 특징은 모르는 사람들은 밖에서 봤을 때 패션 매장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상품을 윈도에 디스플레이하지도 않고 밖에서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도 않는다. 매장 안에는 옷을 걸어 놓은 레일과 벽면에 스케이트보드가 전시된 것 외에는 별다른 집기도, 장식도 없다.

    「루이비통」 + 「슈프림」 등 스케이트보딩 뜬다

    심플한 매장이지만 단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이다. 그다지 스트리트웨어적이지 않지만 이 역시 「팰리스」 미학의 중심인 1990년대의 모티프다. 「프라다」나 「베르사체」 같은 1990년대 디자이너 스포츠웨어에 대한 레퍼런스인 것이다. 런던 매장의 성공에 고무돼 지난 5월 뉴욕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글로벌로 확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셀린느」의 2011년 봄 시즌 광고 사진에는 스케이트보드가 등장하고 2017년 「디오르옴므」는 스니커즈 론칭을 위해 스케이터들이 등장하는 홍보 필름을 제작했다. 「샤넬」 같은 슈퍼 럭셔리 브랜드들이 스케이트보드를 상품에 포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난 1월 「루이비통」 남성복이 「슈프림」과 콜래보레이션한 컬렉션을 보여 주면서 스케이트보딩은 럭셔리 패션의 중심 아이디어로 들어왔다. 어번 이미지나 유스 컬처를 상징적으로 제공하는 아이디어인 동시에 가장 에지한 스트리트 스타일이 바로 스케이트보딩인 것으로 보인다.





    **패션비즈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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