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스 반 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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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01조회수 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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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IES VAN NOTEN

    1958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태어난 드리스 반 노튼은 재단사 집안의 3대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그의 조부는 구제 의상을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시켜 앤트워프에 ‘기성복’
    컨셉을 도입했다. 1970년 드리스 반 노튼의 부친은 대형 고급 패션 부티크를 오픈해 「웅가로」
    「페라가모」 「제냐」 컬렉션을 판매했고 그의 모친은 부티크를 운영하며 앤티크 레이스와 리넨
    등을 수집했다. 이러한 가족과 성장 배경으로 인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패션 세계와
    전통에 눈 뜨게 됐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밀라노 . 뒤셀도르프 . 파리의 패션쇼와 컬렉션을 보러 다니며
    무역의 상업적 . 세부적 측면을 모두 체득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의상 판매보다는 패션
    디자인에 더욱 매료된 자신을 발견한다. 1976년 18세의 나이에 앤트워프의 로얄 아카데미에
    입학해 패션디자인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학업과 동시에 벨기에의 한 제조업체에서 상업용
    컬렉션 담당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때 쌓은 실무 경험은 추후 그가
    자신만의 디자인을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됐다.

    졸업 후에도 자신의 블레이저, 셔츠, 트라우저 컬렉션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전까지 계속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986년 런칭한 그의 라인은 단번에 성공을 거두며 뉴욕의
    바니스와 같은 최고급 리테일 매장에서 판매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앤트워프의 갤러리 밀집
    구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부티크를 오픈하고 동일한 소재로 제작된 여성복과 남성복을
    판매했다.

    드리스 반 노튼은 처음부터 철저히 자기 자금 운영 시스템을 유지해오고 있고 현재 그의
    컬렉션은 전 세계에서 시판된다. 앤트워프, 파리, 싱가포르, 홍콩, 도쿄에 소재한 부티크 외에도
    전 세계의 400여 부티크와 백화점에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2008년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의회(CFDA)의 인터내셔널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드리스 반 노튼 인터뷰

    자칭 ‘노인 신인스타’이자 뉴욕의 스타일 아이콘. 전 세계 패션 뮤즈인 아이리스 아펠은 뉴욕
    플로렌스 고울드 홀(Florence Gould Hall)에서 프로그램의 막을 열며 드리스 반 노튼을 소개하고
    패브릭에 대한 이들의 공통된 ‘애정과 경외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대기업들과는 거리를 두고
    독자성을 추구하는 노튼의 역량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수년 전 디너 파티에서 첫

    만남을 가진 이들은 바로 절친한 사이가 됐다. 그녀는 “드리스 반 노튼의 의상에는 무척 예술적이고
    건축적일 뿐 아니라 유행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어요. 트렌드에 집착하지 않아서 좋아요.
    철저한 독립적 마인드의 소유자이고 디자인, 창작과 유통 등 전 분야를 직접 총괄하는
    분이에요”라고 전한다.

    ‘앤트워프 6인방’은 앤 드뮐레뮈스터와 딕 버켐버그를 포함한 6명의 왕립 예술학교 출신 디자이너로
    구성돼 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디자인 접근과 컬러풀한 배치를 선보이는 드리스 반 노튼은
    신화적인 존재로 추종받고 있다.(참고로 ‘앤트워프 6인방’은 언론에서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 힘들어 탄생한 닉네임이라고 그는 귀띔한다.)


    앤트워프 로얄 아카데미 재학 시절 : “70년대에 패션 스쿨에 다닌 것을 말하자면, 그 유명한 마담
    프리고(드리스 반 노튼의 첫 패션 선생님) 스승님으로부터 지적당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분은
    ‘짧은 스커트도 가능해. 근데 스타킹으로 무릎을 가려’ ‘긴 머리는 지저분하니 모두 시뇽이나 짧은
    헤어 스타일로 가라’ ‘청바지는 돈 없는 사람들이나 입는 거야.’ 라는 식으로 지적해요. 사실 제약이

    그렇게 많으면 그만큼 창의력이 더 필요해요. 거의 사투를 벌이는 거죠. 그래도 그곳에서 배웠던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런 제약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 삶에도 항상 제약이 있듯이,
    제약이라고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거든요. 사람들에게 옷은 필수품이잖아요.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디자인할 수는 없는 거죠.”


    패션쇼 : “패션쇼는 저에게 의사소통의 장입니다. 저는 트위터나 파티를 즐기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패션 인터뷰도 그다지 자주 하는 편은 아닙니다.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을
    소통하느냐입니다. 스토리의 끝이죠. 행사장, 조명, 장소, 음향, 헤어, 메이크업 등등 모든 것들이
    스토리를 만듭니다. 주어진 딱 10분 동안 청중에게 저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해요.”


    디자인 과정과 패브릭 사용에 대해 : “스토리는 향기 . 소리 등에서 나옵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들
    에서 더 많은 인스피레이션을 발견해요. 아름다운 것보다 더 고루한 건 없죠. 특히 저는 추한 것들을
    사랑합니다. 저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들에 매료되고, 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집니다. ‘이 컬러 정말
    맘에 안드네’라고 말하면 제 어시스턴트는 ‘라일락 싫어하는 거 알아요’라고 바로 답하는데, 그렇게

    되면 라일락이 그 시즌의 스토리가 되는 거죠. 즉 컬러를 보면서 ‘나는 왜 이 색깔이 싫은 걸까?’라는
    질문을 하고 아마도 색상 구성이 잘못됐다든가, 조명에 문제가 있다든가, 또는 합성섬유가 아니라
    실크였더라면 더 아름다울 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모든 종류의 패브릭을 활용하는
    데서 희열을 느껴요. 때때로 컬렉션 마무리 2, 3주 전에 이르러야 패브릭이 도착하기도 해요.

    때로는 정신없이 중심을 잃기도 하고요. 근데 모든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오히려 더 불안해요.
    이거 뭔가 문제가 있나 싶은 거죠. 즉 어느 정도의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 정상인 거예요. 모든 일이
    탈없이 척척 진행되면 ‘어휴, 아직 3개월이나 남았네’라는 식으로 느껴져요.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이미 지겨워진 거죠. 제가 정말 혐오하는 게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체제예요. 추한 것들은 적어도
    놀랍기라도 하죠.”


    디자인상의 애로점 : “컬렉션 작업이 고통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를 잘 아는 분들은
    제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잘 알고 있죠. 그리고 패션쇼가 끝나고 나면 마치 산후 우울증
    같은 것이 밀려오기도 해요. 굉장히 많은 마켓을 커버해야 하니까요. 독일 . 네덜란드 . 일본,
    날씨 . 기후 등등 모두 다른 특성의 마켓들이 존재하잖아요. 겨울 컬렉션을 제작할 때 홍콩과
    싱가포르,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등 이 모든 곳에서의 호응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죠.

    각양각색인 여성들의 보디 형태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이건 날씬한 사람들용이고, 이건 더
    몸집 있는 사람들용’ 등 이 모든 요소들을 다 커버해야 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CEO로서의 이중 역할 : “두 역할 모두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측면에도 소홀하고 싶지 않아요. 예를 들자면 컬렉션을

    구입하는 매장의 바이어들과도 교류하고 싶고, 매장 데코레이션도 하고 싶고, 상품이 어떤
    모습으로 매장에 디스플레이 되는지도 보고 싶죠. 비즈니스 쪽으로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사업 쪽으로만 치우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특정 스타일이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다음 시즌에도 계속 밀고 가자고 세일즈팀에서 제안한다면 저는 한 시즌의
    히트는 그 상품을 살 사람은 이미 다 샀다는 뜻이니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디자인 카피와 패스트 패션 : “모던 테크놀로지의 단점 중 하나입니다. 너무
    빠르게 진행돼요. 패션쇼 직후 몇 분 안에 인터넷에 신발의 앞뒤, 사이드
    디테일이 다 뜹니다. 때로는 편리하기도 하죠. 어쨌거나 현실인 거 같아요. 저는
    프레타포르테 밖에 없던 30년이나 35년 전과 같은 과거로 돌아가 살고 싶지는
    않아요. 패스트 패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Zara」
    또는 다른 매장에서 구입한 아이템과 빈티지, 디자이너 의상을 함께 코디해요.
    못할 거 없죠.”


    개인 패션 스타일 : “제 개인 패션은 무척 지루해요. 대부분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렇듯이 하루 일과 내내 패브릭, 스타일 등을 선택하는 게 직업인데 ‘오늘은
    오렌지 팬츠와 그린 스웨터를 입어볼까?’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디자인한 의상만을 고집한다기보다는 게을러서 그것만 입는
    거예요. 실제로 맘에 드는 스타일을 발견하면 제 어시스턴트가 그 스타일대로
    12벌을 만들어 줍니다.”


    액세서리 컬렉션: “가방과 신발은 훌륭한 소품이에요. 그렇지만 액세서리는
    액세서리로써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 자잘한 소품들을 저의 주요 사업 종목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생산 타임라인 문제로 인해 선글라스에는 손을 안
    댑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 컬렉션 전반의 모습이 나오기 전에 선글라스를
    먼저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안 맞는 거죠.”

    정원 가꾸기 취미(벨기에의 작은 마을 Lier에 위치한 24헥타르의 개인 소유지) :
    “정원 가꾸기는 패션 디자인과는 신선하게 대비되는 취미예요. 정원일은
    패션처럼 모든 것을 휘두르는 신적인 존재와는 거리가 멀어요. 겸손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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