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패션 흐름 바꾼 룰 브레이커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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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4.01조회수 1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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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산드로 미켈레 & 뎀나 그바살리아

    보여 주는 옷이 아니라 입을 옷을 만드는 이 두 디자이너는 하이 패션에 룰 브레이킹과 리얼리즘을 도입함으로써 고객이 가장 중심이 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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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다양한 미학과 아이디어로 브랜드와 패션산업에 기여한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성향이나 스타일, 백그라운드가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자유로워지고 있고 그들의 업무와 파워 역시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만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과 비중이 브랜드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3년 사이 패션계에 떠오른 혜성 같은 두 명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andro Michele)와 뎀나 그바살리아(Demna Gvasalia)는 혼돈과 방황 속의 패션산업에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2020년대를 향한 신선한 변화로 주목받고 있다. 이 두 명의 미학과 디자인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둘 다 패션의 클래식한 룰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목적은 디자이너의 비전을 보여 주는 화려한 캣워크 쇼 무대를 만들기보다는 고객이 입고 싶어 할 개개의 가먼트를 만드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 이상 멋진 테마를 바탕으로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창조하는 새로운 룩이 아니라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옷의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고객에게) 보여 주는 옷이 아니라 (고객이) 입을 옷을 만드는 이 두 디자이너는 하이 패션에 룰 브레이킹과 리얼리즘을 도입함으로써 고객이 가장 중심이 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미켈레의 로맨티시즘, 밀레니얼 소비자 매료

    「구찌」 컬렉션에는 화려한 컬러와 프린트, 자수, 텍스처가 넘친다. ‘다양한 요소의 패치워크’가 자신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만큼 미켈레의 컬렉션에는 소재는 물론 여러 시대의 빈티지와 동서양의 요소, 클래식함과 유머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레퍼런스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조합된다.

    평범하지 않은 것은 젠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이미지를 섹시하기보다는 커다란 안경을 쓴 괴짜 분위기로 표현하는가 하면 남성에게는 하늘거리는 소재의 블라우스나 화려한 자카드 패턴과 모피를 입히는 등 성별의 구분도 모호하다. 이렇게 독특하고 약간은 기이한 분위기의 「구찌」 컬렉션은 지금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구찌」 캣워크 쇼에 참석한 저널리스트들이 「구찌」를 유니폼처럼 입는다는 보도도 나오고, 그동안 「구찌」를 쳐다보지도 않던 새로운 고객들이 매장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밀레니얼 소비자들이 현재 「구찌」 고객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미켈레는 「구찌」 브랜드를 영 제너레이션이 선호하는 쿨한 럭셔리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바잘리아의 듣보잡(?) 패션, ‘어글리’해서 좋다?

    지난 2014년 「베트멍(Vetments)」의 등장은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패션 인사이더들은 얼마 없는 「베트멍」의 상품을 사기 위해 혈안이었고, 캣워크 쇼로 소개된 두 번째 컬렉션부터 「베트멍」은 패션위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가 됐다. 허름한 장소였지만 패션산업의 파워 에디터인 안나 윈투어(미국 보그 편집장)는 물론 카니예 웨스트, 킴 카다시안 같은 빅 셀러브리티들이 프론트로를 장식할 정도였다.

    컬트 아이템으로 떠오른 27만5000원짜리 DHL 로고 티셔츠와 130만원짜리 진(중고 진 두 벌을 해체해서 만든)에 전설적인 오버사이즈 재킷까지, 「베트멍」은 패션에서 가장 새로운 브랜드로 떠올랐다. 기존 시각에서는 아주 어색해 보일 수 있는 스타일의 미학을 보여 주는 「베트멍」의 중심 아이디어는 일상성(normality)이라고 한다.

    파리의 가난한 지역의 전철 승객 같은 보통사람들이 입는 옷에서 영감을 얻는 그바살리아는 ‘사람들이 가장 입고 싶어 하는’ 후드 티셔츠나 드레스 같은 개별적인 가먼트를 만들고자 한다. 그는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하거나 가꿔지고 세련된 것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처음부터 없었다.

    이를 두고 그바살리아는 제품 디자인(product design) 같다고 표현한다. 약간 불편한 느낌을 주고 패셔너블하지 않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모두 의도적인 것이다. 바잘리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멍」은 어글리하고, 그래서 좋아한다고 자신의 미학을 밝혔다.



    「베트멍」, 안나 윈투어 등 빅 셀러브리티 환호

    최근 패션의 분위기를 가장 크게 바꾼 디자이너는 2009년 「셀린느」로 복귀한 피비 필로였다. 그가 보여 준 미니멀리즘은 지난 여러 시즌 동안 패션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했다. 과잉을 줄여 최소한으로 만드는 필로의 미니멀리즘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당황하고 있던 패션산업과 긴축으로 가고 있던 글로벌 시티즌의 멘털리티에 딱 들어맞는 전환이었다.

    피비 필로는 이처럼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 할 시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패션을 제공한 것이다. 미켈레와 그바살리아는 2020년대를 향한 새로운 피비 필로인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패션계가 따르던 미니멀리즘으로부터의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패션계는 미켈레가 보여 주는 맥시멀리즘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동안의 경직되고 진지한 마인드에서 좀 더 즐겁고 로맨틱한 무드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동시에 미니멀리즘이 스타일이 아닌 접근 방법으로 바뀌면서 디자이너들은 좀 더 실질적인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에디 슬리먼(「생로랑」)과 니콜라 제스키에르(「루이뷔통」)가 시도했던 워드로브 만들기(전체 컬렉션보다는 개별적인 옷에 집중하는 방식) 움직임은 바잘리아가 제안하는 ‘보통사람을 위한 아이템 만들기’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미니멀리즘 → 맥시멀리즘, 럭셔리 기성복 부활

    디자인하우스들이 핸드백과 잡화를 중심으로 매출을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50% 이상의 수익이 핸드백과 잡화에서 나온다고 한다. 물론 핸드백의 인기가 예전보다 떨어지고 브랜드 간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잡화가 예전만큼 파워를 발휘하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래도 의류의 매출 비중이 잡화 대비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럭셔리 하우스들이 브랜드의 베이스가 되는 기성복이 아닌 핸드백이나 향수를 팔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바살리아는 균형이 맞지 않는 방식의 운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브랜드명을 ‘옷’이라고 지을 만큼 「베트멍」은 의류에 치중한다.

    미켈레 역시 기성복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지난 2년간 핸드백 판매에 치중하던 「구찌」를 기성복을 파는 브랜드로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미켈레의 논리는 간단하다. 핸드백을 사는 고객은 이 브랜드, 저 브랜드로 옮겨 다니지만 기성복 고객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기성복의 인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구찌」를 기성복이 인기 있는 브랜드로 만들고자 한다.

    너무 빨라지는 패션 시스템 불만에서 시작

    많은 디자이너가 패션이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패스트패션의 인기가 럭셔리에도 영향을 미쳐 디자인하우스들은 메인 컬렉션, 프리컬렉션, 캡슐 컬렉션, 콜래보레이션 컬렉션 등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제공한다. 이처럼 상품이 너무 자주 소개되는 사이클에 대한 불만과 도전으로 시작된 것이 「베트멍」 브랜드다.

    상품 소개 사이클을 간소화하기 위해 「베트멍」은 창립 당시부터 1년에 2번의 메인 컬렉션만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발표 시기는 기존의 2월과 9월이 아니라 프리컬렉션 발표 시기인 1월과 6월로 정했다. 리테일러들이 구매 예산의 80%를 프리컬렉션에서 오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럭셔리 부문에서 메인 컬렉션이 소개되고(2월, 9월) 상품이 매장에 딜리버리되기까지(8월, 2월) 고객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대신 프리컬렉션(5월, 11월에 딜리버리)을 구매한다고 한다. 결국 메인 컬렉션은 아무도 사지 않게 되는 불균형이 일어난다는 것이 바잘리아의 해석이다.

    연간 2번 컬렉션, NO 트렌드, NO 토털 룩을!

    일반적으로 패션은 변화하는 속성을 가진 용어인데 비해 옷은 단순히 사람들이 입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미켈레와 바잘리아는 둘 다 트렌드를 무시하고 대신 가먼트(옷)를 만들려고 한다. 이미 그바살리아는 ‘「베트멍」은 그저 옷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바잘리아는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하나하나의 가먼트, 사람들의 옷장에 걸리는 옷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켈레도 마찬가지다. 캣워크 쇼에서 보여 주는 토털 룩이 아닌 개별적인 아이템을 중시한다. 그동안 디자이너들은 테마와 캣워크 쇼 이미지를 통해 디자이너의 비전을 전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방식이 기존 패션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미켈레는 이러한 룰을 깨고 캣워크 쇼에서 스타일링된 룩을 보여 주되 그 중심은 하나하나의 가먼트들이다.

    「구찌」의 각 아이템은 입는 사람(고객)에 의해 다시 분해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조립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켈레는 각각의 아이템에 집중하며 소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고를 수 있게 옵션을 제공하고자 한다. 고객을 위해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켈레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접근’이라고 말한다.

    無 콘셉트, 개별 아이템에 집중한 ‘옷’ 만들다

    그바살리아 역시 고객에게 포커스를 두고 그들의 마음에 드는 옷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기 주변 친구들이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킷, 티셔츠, 진 등 개별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이 두 디자이너에게는 고객 한 명 한 명, 하나하나의 가먼트, 퍼스널 스타일 같은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점이 특징이자 성공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미켈레와 그바살리아의 컬렉션에서는 시즌별 스타일과 분위기의 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는 컬렉션에서 테마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며 디자인 미학의 ‘연속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캣워크 쇼는 새로운 테마와 인스피레이션으로 무대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화려한 쇼와 같았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들이 시즌마다 브랜드를 재창조해야 했다면 미켈레와 그바살리아는 이러한 압력에서 훨씬 자유롭다. 시즌이 바뀌어도 옷의 분위기가 확확 바뀌지 않기 때문에 마치 새로운 브랜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없을 뿐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더욱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이러한 전략은 매출 확대에도 기여한다.

    테마, 시즌, 젠더 3 less! 뉴 패션 시스템 지향

    지난해 7월 말 케링(Kering)그룹의 체어맨 겸 CEO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는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케링의 그해 상반기 실적(매출 26.5% 증가, 이익 57.1% 증가)에 만족한다고 표현하며 이는 특히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과 다음 시즌의 연속성(continuity)에 중점을 둔다고 밝히면서 2년 전에 산 「구찌」 옷을 지금 입어도 브랜드의 창의적인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시즌이 달라도 믹스매치가 쉽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즌성이 뚜렷하지 않지만 신선한 상품은 고객에게 실용성을 제공하는 매력이 된다.

    미켈레와 그바살리아에게는 여성복과 남성복 차이가 없고, 그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 성별에 대한 유동성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베트멍」의 여성복 캣워크 쇼에 남성 모델이 나오기도 하고 「구찌」의 컬렉션은 남성복에서 페미닌한 스타일을 보여 주거나 여성복에서 턱시도나 헐렁한 보이프렌드 재킷을 입히는 등 스타일 면에서 성별에 대한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협력 존중의 미학, 새로운 패션 르네상스 구현

    2015년 이후 「구찌」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만들고 있는 미켈레의 성공 뒤에는 CEO인 마르코 비자리와의 시너지가 있다. 물론 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파트너십은 「구찌」에서는 톰 포드와 도메니코 데 솔레 시절부터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켈레와 그바살리아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조는 「구찌」를 패션계가 다시 주목하는 브랜드로 만드는 데 키 요소가 됐다.

    「구찌」의 리바이벌을 미션으로 CEO로 임명된 마르코 비자리는 특히 미켈레가 인간적으로 겸손하며 예의 바른 사람일 뿐 아니라 항상 남의 의견을 듣는 태도를 가진, 업계에서 매우 드문 디자이너라고 평한다. 이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남을 존중하는 미켈레의 장점이 「구찌」를 좀 더 고객 중심의 브랜드로 전환시킨 계기로 보인다.

    「베트멍」은 일반 브랜드와는 다소 다른 방법으로 운영된다. 물론 그바살리아 형제(뎀나는 디자인, 구럼은 경영)가 전체를 주도하지만 그 창의적인 프로세스는 팀의 토론 과정을 거친다. 이를 두고 그바살리아는 마치 ‘민주의회 같다’고 표현한다. 「베트멍」에서는 누구 한 명이 아니라 팀 구성원들이 주저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한다. 심지어 피팅을 하면서도 모델과 의견을 나눌 만큼 그바살리아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데 오픈 마인드다.



    「발렌시아가」, 민주적인 그바살리아 스타일 도입

    「발렌시아가」를 맡게 되면서 그바살리아는 「베트멍」의 토론 시스템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꺼리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바잘리아는 토론과 의견 수렴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되도록이면 많은 의견을 듣고자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스타일 면에서도 별 관심을 못 받고 사업도 지지부진하던 「구찌」를 미켈레는 2년 만에 저널리스트들이 환호하고 밀레니얼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젊고 활기 넘치는 성공적인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컬러풀함과 부드러움, 모호함을 브랜드에 주입해 지금(now)의 느낌에 맞는 스타일 코드와 젠더 이미지를 제공했다고 평가된다.

    미켈레는 그동안 (프리다 지아니니 아래서) 핸드백 이상으로는 의미가 없던, 영혼 없던 「구찌」를 “로맨티시즘을 통해 기쁨(joy)이 있는 브랜드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맥시멀리즘 미학에 대해서는 “내가 일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의 것을 조합해 화학적인 반응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어 있는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것을 통해 뭔가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만든다고 느낀다”고 시스템지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구찌」 매출 43.3% ↑ 케어링그룹 캐시카우 등극

    그동안 패션계에 넘치던 미니멀리즘의 익명성과 캐주얼화로 인한 진과 트레이너의 일반화, 애슬레저의 홍수 속에서 미켈레는 ‘퍼스널리티’가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맥시멀리즘 무드는 당분간 패션계를 떠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패션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미켈레의 공로를 인정해 국제 패션계는 그에게 2015년과 2016년 CFDA(미국), BFA(영국) 어워드를 안겨 줬다. 그의 기여는 상업적으로도 뚜렷하다. 지난 상반기 「구찌」의 매출 성장은 분석가들의 예측치인 32%를 훨씬 웃도는 43.4%를 기록했으며 경상이익(operating profit)은 역사상 최고치인 32%를 기록함으로써 모기업 케링그룹의 이익이 57.1%로 폭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미켈레의 디자인이 아직 전체의 85% 수준이라는 점에서 향후 100%가 되면 더욱 성장이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구찌」 고객의 과반수가 밀레니얼 소비자라는 점은 구찌그룹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재 「구찌」는 케링그룹 이익의 60%를 차지하는 5조3600억원 규모의 브랜드다.



    그바살리아, 스트리트 재해석한 역사적 디자이너

    지금 패션계에서 가장 에지 있는 디자이너는 두 말할 나위 없이 뎀나 그바살리아다. 「베트멍」으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발렌시아가」를 새롭게 재정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패션계는 그의 재능을 확신했다. 물론 그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스웨덴 매스마켓의 가구 리테일러 이케아(IKEA)의 프락타(Frakta) 백과 유사한 「발렌시아가」 백을 발표하면서 패션 인사이더는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과연 무엇이 다른가, 과연 이 핸드백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패션 저널리스트 사라 모어는 그바살리아가 늘 스트리트에서 보는 옷을 새로운 프로포션(오버사이즈라든지)과 재단 방법으로 다시 만든다고 분석했다. 그에게는 스트리트와 아웃사이더적인 요소가 중심 인스피레이션이 되는 것이다. 바잘리아의 디자인의 시작과 끝은 항상 리얼리즘이다.

    「발렌시아가」 남성복의 인스피레이션이 ‘회사에 입고 갈 옷’ ‘공원에서 주말을 보내는 젊은 아빠’인 것처럼 그는 현실적인 환경에서 일반인들이 입는 옷을 관찰하고 이를 가장 그바살리아적으로(예기치 못한) 만들어 낸다. 즉 유머와 아이러니로 리얼리즘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옷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태도로 그는 ‘가장 밀레니얼적인 디자이너’라거나 ‘우리 시대를 상징한다’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현실 & 캣워크 경계 모호, 리얼리티, 실용주의

    미켈레와 그바살리아, 현재 가장 주목받는 두 디자이너가 패션산업에 제공하는 이슈는 실제로 고객에게 파워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이렇게 입으라(토털 룩)’고 명령하지 않는다. 단지 고객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옷을 보여 주고 선택하도록 한다. 21세기 고객들, 특히 밀레니얼 고객들은 선택하고 믹스매치하는 데 이미 익숙해 있다.

    동시에 시즌이 지나도 입을 수 있고 매장에서 뉴 시즌 아이템을 사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어울리도록 연속성 있는(시즌별로 스타일이 너무 다르지 않은) 현실적인 대안을 원한다. 바잘리아가 얘기하는 ‘보통사람을 위한 옷’이나 미켈레의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처럼 패션계는 리얼리티를 반영한다.

    특히 일반인 모델의 기용이 많아지면서 점차 패션은 판타지에서 현실로 변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 바네사 프리드먼은 일반인과 전문 모델을 믹스한 「베트멍」의 캣워크 쇼 후기에서 “런웨이가 끝나는 곳과 리얼리티가 시작되는 곳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평했다. 이처럼 패션은 어느 때보다도 현실을 반영하는 시대, 보통사람들의 현실 감각이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 1972년 이탈리아 출생
    - 영화산업계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이모의 영향으로 코스튬 디자이너 희망
    - 아카데미아 디 코스튬 에 디 모다(Accademia di Costume e di Moda) 졸업
    - 오페라 하우스의 코스튬 부서에서 일하다 패션으로 전환
    - 「펜디」에서 잡화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2년 「구찌」에 조인, 2015년 잡화 부문 헤드 디자이너
    - 2015년 1월 케링그룹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특유의 맥시멀리즘으로 「구찌」를 성공적으로 리포지셔닝. 「구찌」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평가
    - 특히 패션계에 낙관주의적인 분위기와 로맨틱 무드를 가져오는 등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
    - 2015년, 2016년 영국 및 미국 패션협회로부터 ‘올해의 해외 디자이너상’ ‘올해의 디자이너상’ ‘올해의 해외 잡화 디자이너상’ 등 수상




    뎀나 그바살리아는…

    - 1981년 구소련의 조지아(Georgia) 출생
    - 조지아 내전으로 독일 정착
    -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라면서 획일화에 대한 반발로 패션 공부 희망
    -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 Antwerp) 졸업
    - 「메종마틴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와 「루이비통」 근무
    - 2014년 「베트멍」 론칭, 패션계의 새로운 스타로 부상
    - 2015년 알렉산더 왕이 떠난 케링그룹의 「발렌시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현재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에서 각 이틀 반씩 근무
    -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데 포커스
    -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가 패션계를 매혹시킴
    - 2016년과 2017년 영국과 미국 패션협회로부터 ‘올해의 해외 디자이너상’ ‘해외 기성복 디자이너상’ ‘최고의 해외 어번(urban) 럭셔리상’ 등 수상

    **패션비즈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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