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Report

< Ready To Wear >

2020 향한 「MCM」 글로벌 프로포즈!

Tuesday, Jan. 2, 2018 | 정효신 기자, hyo@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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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MCM」! 비바 베를린! 열기 후끈



「MCM」은 지난해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비바 MCM! 비바 베를린(VIVA MCM! VIVA Berlin!)’이라는 행사를 열고 독일의 헤리티지와 DNA를 기념하고 음악적 브랜드 DNA를 보여줄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였다. 이 행사는 「MCM」이 지난해 브랜드의 고향인 뮌헨에 금의환향한 것에 이어 베를린을 새로운 국제 문화의 중심지로 인식하고 베를린의 창작 커뮤니티와의 공동 작업에 착수하며 쌓아 온 독일과의 깊은 인연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행사는 첫 방문지 소호 하우스에서 진행됐다. 베를린에서 배출한 월드랭킹 1위의 DJ딕슨을 비롯한 유명 DJ들이 소호 하우스 베를린에 있는 더 스토어에서 행사의 분위기를 띄웠다. 둘째 날 밤 게스트들을 베를린의 미술 커뮤니티 중심지로 안내해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가 소속 아티스트와 공동 작업해 독특한 상품을 만드는 쾨니히 수버니어(KÖNIG SOUVENIR)가 관장한 한정판 컬렉션을 공개했다. 쾨니히 수버니어의 설립자이자 파트너인 데이비드 말론은 “위대한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대담한 최첨단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액세서리, 의류, 기타 데일리 상품과 같은 ‘오피니언웨어’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MCM」 독일 디자인 DNA와 히스토리



1976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MCM」. 1965년부터 1978년까지 뮌헨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다.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예술 도시로 영화, 음악, 건축, 패션 분야의 당대 최고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었다. 특히나 1972년 뮌헨올림픽까지 열리면서 풍요와 예술혼의 황금기를 맞았다. 「MCM」은 브랜드명도 ‘모던 크리에이션 뮌헨(Modern Creation Munchen)’의 약어일 정도로 독일만의 디자인 DNA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의미로 ‘MCM’은 로마 숫자로 1900(M은 1000, CM은 900)을 의미한다. 1900년대에는 여행을 위한 도구에 기능성과 더불어 심미성이 가미됐다. 「MCM」은 이런 시대적 니즈를 포착해 럭셔리한 삶의 방식까지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수제 가방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 패턴인 ‘꼬냑 비세토스’도 독일의 정신을 담고 있다. 꼬냑 비세토스와 로고에 사용된 올림픽 정신을 담은 라우렐 장식은 신고전주의에 열정을 품었던 독일 황제 루트비히 1세에게 헌정하는 것이며 ‘바이스 블라우어 히멜(Weiss Blauer Himmel)’이라 불리는 바바리안 깃발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아몬드 문양은 강인하고 견고함을 상징한다.


「MCM」, Why 베를린?



뮌헨이 고향인 「MCM」, 왜 지금 베를린에 꽂혀있는 것일까? 그것은 「MCM」이 항상 주장하는 ‘자이가이스트(Zeitgeist, 시대정신)’. 즉 가장 핫한 문화의 트렌드, 정수에 항상 「MCM」이 함께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MCM」이 탄생한 1970년대 당시는 ‘뮌헨 골든 데이즈’라 불렸다. 당시 전 세계의 인플루언서들, 배우, 모델, 감독, 아티스트 등 여러 크리에이티브, 멋진 사람들은 뮌헨에서 놀았다. 당시 뮌헨은 클럽문화가 발달해, 전자음악 붐을 불러일으킨 유명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가 뮌헨을 베이스로 음악을 만들어 내면서 이곳이 트렌드의 중심지가 됐다. 전 세계 부자들이 뮌헨에 와서 놀다 가면서 ‘젯셋(Jet-set)족’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난 것도 이때다.

당시 뮌헨에 와서 꼭 사 가야 하는 잇 트래블백이 바로 「MCM」이며 이것이 바로 「MCM」 헤리티지의 시작이다. 1970~1980년대의 이 헤리티지가 1990년대 미국 힙합 붐을 타면서 당시 잘나가는 힙합 래퍼 뮤지션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MCM」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데퍼 댄이라는 테일러가 할렘에서 이를 뮤지션들에게 「MCM」을 코디해 입히곤 했고 마이크 타이슨도 「MCM」을 사랑했다. 작년에 제이지와 비욘세가 핼러윈 파티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MCM」을 착용하고 나온 것은 당시 선배들에 대한 오마주였다.

디스코 시대에는 디스코와 함께, 힙합과 팝 문화가 유행할 때는 저스틴 비버 등 팝 뮤지션들이 「MCM」을 사랑했다. 2000년대 들어 K-POP이 유행할 때는 지드래곤, 투애니원 등이 「MCM」과 함께했고, 특히 지드래곤으로 인해 「MCM」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가 됐다.

항상 문화의 정수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문화와 함께 컸다는 것이 「MCM」의 자부심이다. 그런 가운데 당시의 뮌헨이 보여줬던 컬처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지금의 베를린이라는 것. 현재 베를린의 위상은 패션이나 문화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아직 화려하진 않지만 내적으로는 의외로 아주 수준 높은 문화가 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유럽 도시 중에서 가장 물가가 싼 곳으로 남아 있는 바람에 젊은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든다.

널려 있는 빈 건물에 그래피티와 아트가 넘치면서 도시가 쿨해졌다. 아시안 관광객도, 중국인도 별로 없다. 골목마다 작고 아름다운 가게들이 넘쳐난다. 스트리트 컬처도 아름답고 힙한 도시로 변모했다.

「MCM」은 이런 베를린에서 지난해 브랜드 헤리티지와 디자인을 기념하는 ‘비바 MCM! 비바 베를린!(VIVA MCM! VIVA BERLIN!)’ 행사를 열었다. 김 CVO는 “베를린은 기념비적인 역사를 지닌 도시이지만 자유와 표현을 계속 요구하며 끊임없이 재생하는 도시”라며 “주류와 언더그라운드가 공존하는 베를린의 창조적인 커뮤니티에서 「MCM」 재탄생의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김성주 CVO, 런던예술대학 명예박사 학위

김성주 CVO가 런던예술대학(UAL)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영 관계 강화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대영제국훈장(OBE) 수훈에 이어 김 CVO는 한국 여성 최초로 UAL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UAL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최고의 상아탑으로 꼽히는 가장 유명하고 큰 대학으로 산하에 패션 & 디자인 분야에서 최상위권을 자랑하는 센트럴세인트마틴스와 런던패션대학(London College of Fashion) 등을 보유한 유서 깊은 예술대학이다. 이번에 김 CVO에게 명예박사 학위가 수여된 것은 그의 △「MCM」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사회적 기업으로서 패션계에 기여한 헌신적인 공헌 활동 △인도주의자이자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열정과 남다른 리더십 공로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김성주 「MCM」 최고비전책임자(CVO)
한국 출생. 미국 애머스트 칼리지, 영국 런던경제대학에서 수학하고 블루밍데일스백화점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귀국 후 1990년 성주그룹을 설립하고 「구치」 「이브생로랑」 「소니아리키엘」과 같은 브랜드를 한국시장에 도입했다. 성주그룹은 「MCM」과 라이선스 계약을 이어 오다 2005년 회사 자체를 인수했다. 성주그룹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패션비즈 2018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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