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리더, 「까라멜로」 역사 속으로

    mi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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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2.14조회수 6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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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라」는 세계 패션 1위 우뚝



    디텍스의 고향인 스페인 갈리시아는 스페인 패션을 선도하는 지역 중 하나다. 현재 글로벌 1위 기업 인디텍스의 「자라」가 탄생한 지역이며, 1970~1980년대 스페인의 경제 성장과 정부의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많은 패션 브랜드가 생겨나고 성장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비슷한 시기에 같이 시작한 브랜드들은 성공과 쇠락이라는 전혀 다른 두 길을 걷고 있다.

    우선 가장 성공한 브랜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 SPA 브랜드의 창시자이자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한 「자라」다. 지난 2015년 인디텍스 매출이 209억유로(약 26조3432억원)로 전년 대비 15.4% 신장했고 이어 지난해 10월말 기준 164억300만유로(약 20조45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 성장했다.

    1972년 「자라」의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지난해 포브스 선정 세계 1위의 재력가로 꼽혔다. 이런 화려한 프로필의 「자라」에도 처음은 있다. 바로 그 처음이 갈리시아다. 이곳에서 그의 첫 양품점 「고아」를 열었고, 이를 발판 삼아 1975년 「자라」 1호 매장을 갈리시아 라코루냐에 열었다.

    갈리시아 패션 황금기 끝났나? 명암 엇갈려
    다른 갈리시아 패션 브랜드와 달리 「자라」는 처음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상에 열중했다. 바로 합리적인 가격에 최신 패션을 넓은 타깃층에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산, 유통, 판매를 모두 직접 관리하는 비즈니스를 착안해 냈고, 돈이 많이 드는 커머셜 광고를 하지 않는다.

    대신 도심의 주요 지점에 대형 매장을 오픈해 쇼윈도와 소비자 스스로가 광고가 되는 마케팅을 생각해 냈다. 전 세계 패션업계를 강타한 SPA 브랜드의 시작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할지라도 패션의 기본은 디자인이다.

    그는 「자라」 론칭 초기에는 직접 파리까지 달려가 오트쿠튀르 패션쇼를 관찰했다. 이때 얻어 온 아이디어는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됐고 그 결과 최신의 뛰어난 디자인을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고객의 발걸음을 계속해서 매장으로 돌리기 위해 매주 새로운 제품들을 쏟아 냈다.

    「자라」 SPA 브랜드 출발, 속속 뉴 비즈니스를
    시즌별로 컬렉션이 나와 시즌 내내 판매하던 일반 브랜드와는 파격적으로 다른 시도를 한 것이다. 「자라」가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제품 다양화와 새로운 타깃층 공략을 위해 그룹의 다른 브랜드 등도 속속 론칭했다.

    10~20대 청년층을 공략한 「풀앤베어」, 젊고 트렌디한 여성을 위한 「버쉬카」와 「스트라디바리우스」, 이너웨어 전문 「오이쇼」, 멋쟁이 중 · 장년층을 노린 「마시모두띠」와 잡화 전문 브랜드 「우테르퀘」에 이어, 라이프스타일 전문 브랜드 「자라홈」까지 인디텍스그룹의 브랜드 매장만 돌아도 온 가족 쇼핑에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다.

    또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경영의 방향도 옳았다. 다른 패션 브랜드들은 매장 수나 생산 라인 확대 등 양적 성장에 몰두할 때 인디텍스는 그 방향을 돌려 시장의 새로운 주역이 될 온라인 마켓을 준비했다. 그 결과 「자라」는 2010년 9월 처음으로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6개국에서 온라인 판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풀앤베어」 「버쉬카」 「자라홈」 등 연이어 론칭
    이후 꾸준히 그 수를 늘려 현재는 유럽 전체를 비롯해 총 40개국에서 온라인 마켓을 운영 중이다. 마켓 리서치 업체 Gfk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7월 현재 온라인에서 패션을 구매한 스페인 소비자는 약 50만명으로 이들의 온라인에서의 월평균 소비액은 77유로(약 13만원)로 집계됐다.

    가장 많이 구매한 곳은 단연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로, 45%의 온라인 소비자가 인디텍스의 브랜드를 선택했다. 실제로 인디텍스의 지난 2015년 실적 발표에 따르면 총매출은 15.4% 증가한 반면 온라인 마켓은 53% 성장한 8억4500만유로(약 1조68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체 성장률을 3배 이상 뛰어넘는 높은 성장세다.

    그런 한편 같은 갈리시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지만 2015년말 결국 법정 매각을 신청하며 사실상 폐업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카라멜로」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라멜로」의 창업자인 호세 안토니오 카라멜로는 사업 초기부터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오랜 친분을 유지하던 사이다.

    온라인 마켓도 선점, 스페인 온라인 패션 45%를
    아만시오가 「고아」 양품점을 내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릴 뿐만 아니라 패션업게 종사자와도 거의 교류를 하지 않는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유일하게 친분을 유지한 몇 안 되는 동종 업계 종사자 역시 「카라멜로」의 창업자 호세 안토니오 카라멜로였다.

    1980년대 중반 스페인은 사회당이 처음 정권을 잡으며 디자인 및 브랜드 창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원래 이 정책은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역의 패션 산업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아직 EU에 편입하기 전이던 스페인의 자국 브랜드 보호 정책하에 카탈루냐 지역의 패션 브랜드들이 성장하던 때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갈리시아에도 이 정책의 수혜가 돌아갔고,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카라멜로」 「아돌포도밍게스」 「로베르토베리노」 「키나페르난데스」 등 다수의 갈리시아 태생 브랜드가 탄생했다. 재미있게도 현재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그룹은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몇 안 되는 갈리시아 브랜드 중 하나였다고 한다.

    「카라멜로」 창업자, 오르테가 「자라」 회장이 도와
    이때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갈리시아의 패션 산업은 정부의 폭발적인 지원과 국제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거품과도 같은 성장을 했다. 스페인 패션 업계에서는 이 시기를 ‘갈리시아 패션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 가장 많이 성장한 브랜드가 「헤네카발레이로」 「플로렌티노」 「아돌포도밍게스」 등이다.

    「카라멜로」 역시 이 시기에 본사 면적을 2배 이상 넓혔다. 당시 「카라멜로」의 디자인, 물류, 생산 라인 등에서 근무하던 직원 수는 800명을 넘었으며 공장은 3교대로 돌며 쉬지 않고 제품을 생산해 냈다. 스페인 패션 산업의 60% 이상을 갈리시아 브랜드들이 선도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카라멜로」는 나름대로 디자인 다양화와 경영 변화를 시도했다. 갈리시아에 있던 생산 라인을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인근의 포르투갈로 이전했으며 이후 홍콩 등 아시아로 확장했다. 제품도 다양화해 기존의 남성복, 여성복 라인에서 나아가 영 캐주얼 라인 「CRMJ」를 론칭했다.



    「아돌포도밍게스」 등 정부 지원으로 급성장해
    또한 1996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첫 매장을 오픈한 데 이어 세비야, 바르셀로나 등 자국 주요 도시에 매장을 냈다. 비슷한 시기에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첫 글로벌 매장도 오픈했다. 이후 2005년에 안토니오 페르나스가 경영권을 잡았고 성장 위주의 경영을 계속했다. 이게 문제의 시초다. 바로 이듬해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특히 스페인 경제가 휘청이며 회사가 자금난에 허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과도하게 확장한 생산 라인은 생산량과 수요에 비해 너무 큰 까닭에 유지비만 드는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2007년부터는 스페인의 대표적 부호인 마누엘 호베가 이끄는 스페인 투자회사 인베라반테가 경영권을 넘겨받아 위기에 빠진 「카라멜로」를 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900만유로(약 240억원)를 투자했고 이후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수백억원을 추가로 투입했다. 또한 경영자들을 대거 교체해 스페인 독점 백화점 브랜드 엘코르테잉글레스사의 경영자이던 페르난도 마우도를 경영진으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2008년 「카라멜로」는 또다시 2990만유로(약 37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불황 · 스페인 경제 위기 거품 성장 빨간불
    새로운 경영자 페르난도 마우도는 급기야 기업을 다 뒤집어 엎는 개혁을 단행했다. 갈리시아의 디자인팀, 경영팀, 마케팅팀을 제외한 생산 라인은 모두 인건비가 저렴한 제3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개혁은 생산 라인 직원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말았다.

    2009년 「카라멜로」는 기업 개편에 따라 237명을 해고했는데 이에 노동조합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이에 책임을 지고 페르난도 마우도 역시 경영권을 잡은 지 채 10개월도 되지 못해 사퇴하고 말았다. 비록 마우도는 사퇴했지만 여전히 회사 대부분의 경영권은 마누엘 호베의 투자회사 인베라반테에 있었다.

    인베라반테는 그녀의 딸 펠리파 호베에게 회사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기고 기업 개혁을 계속했다. 그것은 과도하게 확장된 생산 라인의 정리였고 이 과정에서 해고는 필수 절차였다. 이에 따라 2012년 201명을 추가로 해고하고 2014년에는 180명을 다시 내보냈다.

    해고, 생산 라인 정리 통해 브랜드 정상화 노력
    또한 브랜드 매장도 대폭 정리해 2014년에 60여개 매장을 철수했고 대신 온라인과 백화점 코너로 진출하는 등 판매 창구를 다양화하려 노력했다. 이 개혁의 계획대로라면 2015년에는 매출 균형을 되찾고 2016년에는 완전히 안정화로 돌아서야 했다. 계획의 마지막에는 브랜드 이미지 리뉴얼과 본사 이전 등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여러 차례의 긴급 수혈과 스페인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투자회사의 노력과 개혁에도 회사는 결국 지난해 10월 법정에 매각을 신청했다. 이로써 「카라멜로」는 48년간의 명성을 뒤로한 채 스페인 패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같은 지역에서, 그것도 친분이 두텁던 두 사업가의 길이 왜 이렇게 갈라져 버린 것일까. 게다가 앞서 밝혔듯 인디텍스는 1980년대에 정부 지원 정책의 후광을 입지 못한 몇 안 되는 갈리시아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오랜 친구 오르테가와 카라멜로, 반대의 길로
    한 원인은 다른 타깃층 공략일 것이다. 「카라멜로」와 더불어 현재 몇 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또 다른 갈리시아 브랜드 「아돌포도밍게스」는 스페인 중산층 이상을 주로 공략했다. 그들에게 명품보다는 저렴하지만 어느 정도 브랜드 네임과 질이 보장되는 제품을 판매하고자 했다.

    스페인 경제가 호황이었을 때는 이 고객층만으로도 충분히 경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 · 후반 스페인 경제가 크게 휘청이면서 이들의 주요 고객이던 중산층은 허리띠를 졸라맸고, 심지어 증발해 버리기까지 했다. 뒤늦게 글로벌, 온라인 판매 쪽으로 눈을 돌려 보았지만 이미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게다가 인디텍스에서 론칭한 「마시모두띠」가 그나마 남아 있던 고객층마저 흡수해 버렸다. 「카라멜로」 「아돌포도밍게스」 모두 「마시모두띠」와 디자인이나 질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가격은 50~70% 이상 비싸다.

    명품에 못 미치는 명성과 디자인, 정체성 약해
    결국 소비자들에게 왜 인디텍스 브랜드 대신 이들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명품에는 못 미치는 네임 밸류와 디자인, 그리고 인디텍스 브랜드와 비교해 전혀 메리트를 주지 않는 브랜드 정체성으로 이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됐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정부 지원과 거품 성장의 달콤함에 빠져 미래의 경제 위기와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물론 성장기에도 컬렉션의 다양화와 판매 창구 개발 등을 했지만 정작 계속 진화하고 변화하는 시장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과 대응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카라멜로」의 도산과 더불어 「아돌포도밍게스」 등 비슷한 포지션의 다른 브랜드들도 몇 년째 위기에 시달리며 브랜드 리뉴얼을 고심 중이다. 이로 인해 현재 스페인 패션 업계에서는 “갈리시아의 황금기는 끝났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스페인 현지에서 이민재(Minjae Lee) 리포터 fbiz.spain@gmail.com




    라티투데, 갈리시아 제2 황금기를!
    스페인 패션 산업이 호황기이던 1990년대에는 패션 업계 종사자가 총 40만명 정도였다. 현재는 절반 이상 줄어든 17만명이다. 인디텍스 같은 거대 글로벌 기업은 탄생했지만 오히려 로컬 기업이나 생산 하청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도산까지 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패스트패션이 시장을 석권하며 생산비 절감을 위해 생산 라인이 대폭 아시아의 제3세계 등으로 이동한 것이다.

    중국에 티셔츠 5000벌을 주문했을 때 장당 가격은 1.5유로(약 1900원) 수준이다. 같은 주문을 갈리시아에 했을 경우 장당 가격은 5배 비싼 7.5유로(약 9500원)다. 그렇다면 브랜드 입장에서는 당연히 ‘왜 갈리시아 업체에 맡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에코 소재와 높은 품질을 무기로 갈리시아 로컬 패션을 지키겠다는 포부를 안고 모인 디자이너들이 있다. 뜻을 같이하는 갈리시아 지역 의류 생산 업체 4곳이 모여 ‘라티투데(Latitude)’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어머니 대부터 의류 생산에 종사하고 있는 모니카 모스케라는 갈리시아 패션의 흥망성쇠를 목격했다. 그녀는 갈리시아 브랜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는지 지켜봤고 그 이면에 자리한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제3세계에서의 노동 착취도 지켜봤다.

    그녀와 뜻을 같이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이자 라티투데의 공동 기획자 마리아 알마산은 글로벌 패션 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아시아의 생산공장에 갔다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염색공장 옆에서 그 시즌의 가장 유행하는 색으로 물든 강물을 마시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으로 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각종 화학제품으로 인한 부작용과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드는 패션 산업의 이면에 이런 추한 얼굴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갈리시아 패션 종사자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가 라티투데다. ‘과연 소비자들이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더 적은 패션을 소유하는 데 동의할까’라는 질문에 그들은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값싸다고 여겨지던 중국 노동임금은 상승하고 있으며, 유럽은 아시아 국가들에 밀려 자국의 산업이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

    또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사고 등을 통해 패스트패션의 어두운 이면도 밝혀졌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한 미약하지만 확실한 전조라고 말했다. 그 속도는 느릴지라도 그 끝은 밝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4년 전만 해도 아무도 까르푸의 4개 코너가 에코 제품으로 채워질 거라고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점점 많은 에코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고 있어요. 먹는 것부터 시작해 차차 입는 것까지, 앞으로는 에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거예요.” 라티투데의 디자이너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패션비즈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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