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무」 박춘무의 힘, K패션 이끈다
    절제 & 아방가르드 대명사~

    안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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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8.06조회수 1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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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된 블랙과 절제된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한국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박춘무 디자이너. 그는 ‘뉴웨이브 인 서울’을 통해 컬렉션을 진행하며 한국 디자이너 패션 1세대를 연 주역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멋있지만, 그녀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마켓에 K패션을 전파하는 데 적극 나서며 여전히 건재한 ‘카리스마 디렉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1988년 「데무」를 론칭한 당시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으로 단숨에 주목받은 박춘무 디자이너는 자만하지 않고 ‘데무스러운’ 것을 계속 개발하며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데무」라는 독특한 브랜드명은 자신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무’와 ‘~로부터’라는 뜻의 프랑스어 ‘de’를 결합한 단어다. 이를 직역하면 ‘무(無)로부터’, 의미를 더하면 ‘모든 패션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데무」와 제법 잘 어울린다. 30년간 흔들리지 않는 DNA를 유지하며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마니아층을 탄탄히 쌓아온 비결이다.

    흔들리지 않는 DNA, ‘데무스러운’ 기분 좋아





    ▷「데무」 ‘Y라인’. 이번 S/S시즌 아티스트 켈리박과
    콜래보레이션해 현대무역점에 팝업 전시회를 선보였다◁

    “15년 전에도 비슷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시 15년 후에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 거란 질문을 받았죠. 그때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유행이 바뀐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 색깔 안에서 새로움이 생소하지 않게 담아 내는 게 「데무」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참 어려운 일이죠.”

    박 디자이너는 30년간 변함없이 일일이 품평회를 보면서 현장을 누비고 있다. 「데무」와 세컨드 브랜드 「디데무」의 디렉터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다. 다만 「데무」가 30주년에 맞춰 새롭게 선보인 ‘Y라인’은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Y라인’은 젊은 감성의 컨템포러리 스타일로 새로운 「데무」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별도의 팀을 만들어 「데무」와는 서로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한다. 현재 해외 마켓에는 ‘Y라인’만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30년, 아니 그 이상의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이다.


    새로운 「데무」는 Y라인! 젊은 세대 잡는다


    박 디자이너는 “제 아들인 최윤모 이사가 ‘Y라인’ 사업부장을 맡아 차별되게 이끌고 있으며, 해외영업도 최 이사에게 믿고 맡긴다”며 “나보다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데무」를 바라보고 어떻게 변화해야 롱텀 비즈니스가 가능할지 연구한다. 듬직하다”고 말했다.

    박 디자이너는 최 이사 덕에 「데무」가 세월을 거슬러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본다. 최 이사가 최근 ‘캘리박’과 콜래보레이션해서 출시한 제품은 놀랍게도 2030 소비자가 더 열광했다. 올해 브랜드 BI를 리뉴얼하고 매장 인테리어를 바꾼 것도 최 이사가 주도했다. 30주년 아카이브 북도 아들 성화에 만들었다.

    이렇게 2세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으니 더 힘이 난다고 한다. 아카이브 북을 출간하면서 과거 「데무」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됐다. 그는 원래 그림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아동복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옷을 접하게 되고 흥미를 느껴 서울 강남 신사동에 양장점을 연 것이 「데무」의 시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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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부터 해외시장 개척, 실패 두렵지 않아





    그때는 남성복도 함께 선보였는데 최민수와 신성일이 와서 맞춰 가는 등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때마침 롯데백화점에서 디자이너 브랜드 6개를 선정해 매장을 꾸렸는데, 그것이 본격적으로 패션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1990년대 후반에 론칭한 「디데무」 역시 백화점의 제안으로 시작했는데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내수 시장은 좁다는 생각을 했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자는 의욕 하나로 파리컬렉션과 뉴욕컬렉션을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뉴욕 트라노이 전시회, 덴마크 CPH 비전, 뉴욕 패션 코트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글로벌 마켓에 「데무」를 알려 왔다. 오랜 기간 성공과 실패를 맛보면서 단단해진 「데무」다.

    이번에 박 디자이너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연기력과 흥행력을 동시에 지닌 관록의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볼륨화해서 꾸준히 이끌어 가는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무」는 현재 국내 백화점 중심으로 32개점, 해외에 40여개점이 입점해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 결실을 맺었는지 짐작이 간다.


    국내 32개점 · 해외 40여개 편집숍 입점


    “저는 「데무」를 본 사람이 무조건 ‘예쁘다’ ‘괜찮다’라고 평가하는 것보다 ‘아티스트적인 느낌이 난다’ ‘실루엣이 남다르다’ ‘여성스럽지 않고 멋있다’고 할 때 기분이 좋아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이해하고 가치 있게 받아들여 주니 얼마나 고마워요. 저는 중성적이고 직선적인 느낌을 좋아해요. 그리고 제 옷의 70%는 블랙 컬러죠. 이 같은 콘셉트를 30년간 이끌어온 것 자체가 감격스러워요.”

    「데무」의 세월만큼 소비자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것. 하지만 점차 넌에이지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져나가는 중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데무」스러운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입을 수 있는 브랜드로 나아가려 한다.

    박 디자이너는 디자인 영감을 어디서 받을까? 그는 남들처럼 국내외 시장조사를 다니고 여러 문화를 접하면서 시즌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찾는다.


    개성있는 디자인 창조, 넌에이지 브랜드로


    그는 휴일이면 다른 취미활동보다 그림을 그리면서 힐링을 한다. 일과 일상이 분리돼 있지 않아 항상 일하면서 일상을 즐기고, 일상 속에서 일을 하니까 늘 바쁘다. 그렇지만 아직도 멋있는 원단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번 시즌에는 어떤 컬렉션을 선보일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는 타고난 패션 디자이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패션의 산증인으로서 한마디 던졌다.

    “국내 패션산업이 태동할 때부터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우리의 기술력과 창의력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봅니다. 또 서울패션위크를 두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수준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사실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패션쇼가 서울컬렉션입니다. 따라서 관심을 갖고 디자이너를 바라보고 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패션은 K-POP 못지않게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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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컬렉션, 아시아권 최고 패션 축제의 장”


    그는 이어 “우리처럼 유행이 빠르고 민감한 도시가 없어요. 한국 사람의 손기술과 감각적인 디자인은 또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덕에 S/S, F/W 패션이 밸런스 있게 발전한 곳 또한 한국이 아니던가요? 서울컬렉션의 위상은 점차 높아지고 있고 아시아 패션의 중심이 코리아로 모아지는 이때, 실력 있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꼭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는 한국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것은 물론 앞으로 힘이 닿는 그날까지 「데무」의 디렉터로 남고 싶은 것이 단 하나의 꿈이라고 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 디렉터로서 발전해 나가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패션비즈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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