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노트] K무비, K팝 그리고 K패션

    김숙경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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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4.01조회수 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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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무비가 드라마틱한 역사를 또다시 썼네요. 지난해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휩쓴 데 이어 올해는 ‘미나리’가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번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각본상 등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어요. 특히 영화의 꽃인 연기상(남우주연상 - 스티븐 연, 여우조연상 - 윤여정) 수상자 후보까지 지명되며, 완전히 축제 분위기입니다.

    K팝도 승승장구하고 있어요. ‘BTS’는 작년 영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이어 국제음반협회(IFPI)가 수상하는 ‘2020년 베스트 아티스트’에 아시아 가수 최초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답니다. 수상은 아쉽게 불발에 그쳤지만 ‘BTS’는 미국 최고 음악상인 그래미어워즈 수상자 후보에 오르는 등 그들의 활동 반경은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빛났고 역동적이었어요.

    이들 소식을 접하면서 K패션의 현주소를 되짚어 보게 됩니다. K패션은 언제쯤 세계적인 무대에서 화려하게 러브콜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세계 4대 컬렉션에 초청받아 런웨이를 수놓을 K브랜드를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사회 ·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 K팝과 K무비도 당당하게 No.1 자리에 올랐는데 K패션은 언제쯤 전 세계 시장을 호령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가운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어요. 유니클로를 전개하는 패스트리테일링그룹의 시가총액(2월16일 오전 기준 114조원)이 ‘자라’를 운영하는 인디텍스의 시가총액(약 110조원)을 넘어 SPA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뉴스예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노노재팬’ 영향으로 2020년 매출(6298억원, 8월 말 결산법인)이 2019년 매출(1조3781억원) 대비 반토막이 났고, 올해 들어서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매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명동점을 비롯해 10여개 오프라인 점포가 철수하는 등 관심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으로는 자라와 H&M 아성을 흔들고 부지불식간 글로벌 SPA 1등 자리를 꿰찬 것이지요.

    패스트리테일링그룹의 매출은 작년 6월부터 호조세로 전환됐다고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에어리즘’ 마스크 발매나 ‘유니클로앳홈’과 같은 시대 조류에 맞는 수요를 캐치한 아이템들을 적극적으로 늘려온 덕분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단지 이들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죠?

    글로벌 No.1 지위에 올라선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실적뿐만 아니라 더 큰 뜻과 가치를 품고 있어야지만 전 세계 소비층에게 폭넓은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테니까요. 한국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지만 유니클로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환경을 비롯해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최대 이슈로 떠오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글로벌 SPA 중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실천에 옮긴 결과로 보여집니다.

    MZ세대가 소비의 주체세력으로 부상하고, 이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ESG경영과 지속가능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엄청 커졌습니다. 급변하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인식에 맞춰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 돼야 하는 것은 성장을 논하기 이전에 생존하기 위한 기업경영의 필수 조건이 됐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가 가속화되는 현시점에서 의류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덜 사고, 더 요구하세요(Buy Less, Demand More)’라는 글로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 파타고니아에 MZ세대가 환호하고 있는 거죠. 친환경 소재인 울을 사용해 스니커즈를 만들어 온 올버즈가 론칭 4년 만에 브랜드 가치를 1조6000억원으로 평가받는 것도 지속가능패션과 친환경을 강조해 왔기 때문입니다.

    유니클로는 지난 2006년부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매년 발행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 비전을 강조해 왔다고 하네요. K패션은 작년부터 주요 패션기업들이 부랴부랴 지속가능패션과 친환경 이슈를 들고 나온 것과 비교해 보면 15년이나 앞선 시도인 셈이죠.

    이제 K패션에서도 글로벌 리딩 브랜드가 나와야 할 타이밍이 됐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처럼 K패션이 글로벌 No.1이 되기 위해서는 과연 어디를 공략해야 할까요? 수백 년 히스토리가 담보돼야 하는 명품 시장은 족보를 사지 않는 한 어렵다고 봅니다. 이미 수십조원의 규모로 격차가 벌어진 SPA 시장 역시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창의성을 뿜어 내는 젊은 인재들과 IT강국의 강점을 살린 디지털 환경이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바로 패션테크와 지속가능패션에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패션(디자인 경쟁력)과 테크(소재 경쟁력)를 절묘하게 요구하는 애슬레저패션과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우리의 손재주와 성실성, 진정성으로 한판 붙어 볼 수 있는 지속가능패션에서 글로벌 톱브랜드가 탄생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세계 NO. 1이 되는 것은 결코 녹록한 작업이 아닙니다. 확실한 전략도 필요하고, 이를 흔들림 없이 실행해 내는 끈기, 그리고 자신감까지 완벽하게 겸비해도 될까 말까입니다. 여기에 운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림자에도 못 미칠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K패션 브랜드들이 e커머스에만 매몰돼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e커머스는 K패션의 경쟁력 강화에 있어서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돼야 함에도, 지금 모두가 제품개발 보다는 온라인몰 키우기에 혈안입니다. 비대면 상황이 1년 넘게 유지되면서 오프라인 경쟁력이 뚝뚝 떨어지고, e커머스 위주로 매출이 나오다 보니 이러한 의사 결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패션 콘텐츠 기업들이 한정된 리소스를 e커머스에 몰빵(?)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봅니다. 심지어 트래픽을 늘린다는 미명 아래 자사몰의 플랫폼화에 사활을 걸고 있어요. 플랫폼이 되는 순간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거대 IT포털 기업들과의 경쟁이자, 무신사 W컨셉 29CM 지그재그 등 IT기반 패션 플랫폼과의 혈투가 되는데 말입니다.

    그 보다는 브랜드만의 DNA를 다지면서 꾸준히 브랜딩에 투자하는 것,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 시대적 가치를 브랜드에 담아 진정성 있게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품에 철학을 담고,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스토리가 있어야만 독보적인 브랜드가 되고, 그래야만 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패션비즈가 창간 34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역사가 오래된 매거진이 아닌, 패션산업 현주소를 가장 잘 반영한 미디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매달 정성을 다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패션비즈는 한국 패션산업을 대변하는 전문지라는 사명감을 갖고 깊이 있는 콘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한국 패션산업 발전, 더 나가 K패션의 글로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패션비즈 발행인 겸 편집인 김숙경 ]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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