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상권, 진짜 변해야 산다?!

    홍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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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9.04조회수 2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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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뒷짐 • 기득권 알력 ‘위기 자초’





    동대문상권, 위기인가? 기회인가? 현재 상권 관계자들의 십중팔구는 ‘위기’라고 말한다. 열에 한두 명은 그래도 변한다면 여전히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기회’라는 말은 과거 잘나가던 때 성공의 의미가 아니라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 도매 상권이 희망, 긍정보다는 절망과 부정 쪽에 서서 바라보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동대문 패션몰 관계자들이나 상인들 대부분이 현재 동대문 상권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자초한 일들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몇 년간 ‘사드’ 핑계를 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럼 사드 문제가 해결되면 바이어들이 다시 찾고 상권이 되살아날까? 현재 여기에 누구도 명쾌하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사드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는 당연히 사드 자체가 문제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구조적으로 생긴 여러 병폐와 안일함, 방관, 방해, 알력 등이 쌓이면서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대세가 된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몰,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시장 잠식, 아울렛 활성화 등이 겹치면서 동대문 상권의 위기는 더욱더 가속화됐다.

    동대문 패션몰 • 상인들 ‘위기’ 의식 팽배

    동대문에서 10년 이상 일했다는 한 상권 관계자는 “글로벌에서도 인정하는 아시아 최대 시장이라고 불리던 동대문이 지금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유통망 다변화에 따라 동대문 도매 제품을 취급하던 일명 국내 보세 매장 상인들의 매출이 급감했다. 또 중국을 메인으로 일본 • 홍콩 • 대만 등의 글로벌 바이어들의 발길마저 끊어지면서 사면초가에 처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과 모바일, 글로벌 SPA와 아울렛 등 다양한 유통망이 활성화되면서 국내는 동대문 제품 소비의 기반이던 과거 핫한 보세 상권들이 무너졌다. 서울 이대 상권을 비롯해 홍대, 대구 동성로, 경북 구미, 광주 충장로 등 수많은 동대문 도매 제품을 취급하던 소매상인들의 설자리가 사라지거나 약화됐다.

    유통 채널 다변화 중에서도 특히 온라인과 모바일의 발달은 동대문 제품 소비의 국내 기반은 물론 해외 바이어들의 발길까지 잦아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됐다. 국내 보세 상인들을 대체하던 해외 바이어들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옮겨 가는 동안 동대문 도매 패션몰과 상인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이젠 손쓸 방법이 요원해져 보이기도 한다.

    대세인 온라인과 모바일 대처 능력 부족해

    온라인에서 가격 비교까지 하면서 가성비를 따지는 구조로 소비 패턴이 바꿨다. 결국 중간 상인들이나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은 더 싼 물건을 찾게 되면서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생산하는 저단가에 따른 질 나쁜 물건들이 넘쳐나게 됐다.

    최근에는 아예 동대문 도매시장을 찾지 않고 중국 도매시장과 중국 온라인 도매몰 등을 제품 수급처로 활용하는 곳이 많아졌다. 또 여기에 가장 큰 문제는 동대문이 샘플 시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것이다. 초기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은 동대문 상품을 사입해 판매했지만 지금은 이들이 샘플 구입 후 반응이 좋으면 바로 중국 공장 등에서 직접 생산한다. 중국 바이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국내 봉제 산업의 몰락도 한몫을 했다. 인건비는 높고 효율은 낮다. 시설 낙후와 작업자들의 고령화 등으로 능률이 떨어지면서 대량 생산과 디테일 한 제품을 만들지 못해 중국 등지로 소싱처가 넘어간 것이다. 과거 국내산 제품을 다량 보유하고 팔던 시절의 호황기를 다시 맞긴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대로 좌초 or 회생할 것인가? 그들의 몫

    중국 사입 제품 판매에 한술 더 떠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찾는 바이어들은 많지만 단가가 맞지 않자 급기야 중국 생산 제품을 라벨 갈이 등을 통해 원산지 표기를 바꾸는 불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 바이어와 소비자들이 모를 리 없다. 또 미송(동대문 상인들이 쓰는 은어로 선불을 받고 제품을 보내지 않는 것)으로 인한 신뢰 추락도 심각하다.

    동대문이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바뀌면서 샘플만 걸어 놓고 제품 오더를 받은 후 생산해 납품하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동대문 원단 시장마저 중국 원단을 쓰고 과거와는 달리 반응을 보고 수입과 제작을 하는 바람에 결국 리오더가 들어와도 원부자재 수급이 어려워지는 형국이 됐다.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생산 등에 차질이 생기고 납기가 늦어지다가 아예 제품을 주지 못하는 미송까지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해당 상인과 상가는 물론 나아가 동대문 시장 전체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도매상가 영업시간 변경 등 탄력성 필요

    동대문의 진정한 O2O 실현도 절실하다. 어차피 대세로 자리 잡은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 시스템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 오프라인에서 동대문이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었다면 온라인에서도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진정한 동대문 기반의 옴니채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플랫폼이 반드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도매 판매도 회원제를 채택하고 등급에 따라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등의 방안도 무분별한 온라인 비즈니스에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방송 라이브로 판매하는 중국 웨이상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동대문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소통해 공동 대안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또 도매 상가들의 영업시간 변경도 고려해 볼만하다. 지금처럼 보통 밤 9시에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가 아니라 당일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경까지 영업한다면 요즈음 소위 말하는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 유지와 봉제산업과 같은 사이클로 상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온라인 등의 발달로 밤낮이 없어진 시점에서 관행대로 굳이 밤시간에 영업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따져 봐야 할 때다. 동대문 역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직원 구인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치 NO, 불법은 더더욱 NO! 상생 절실해

    높은 임대료와 운영 관리비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에 매년 반복되는 재계약으로 인한 불안감과 그에 따른 불합리한 문제들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도 여전히 문제다. 동대문 상가에도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 일이다. 정부와 서울시, 단체와 협회 등의 지원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동대문 마켓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대문 상인들만을 위한 지원 사업이 얼마냐는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동대문 상인들보다는 신진이나 기존 디자이너들의 지원에 더 중점을 두고 있고, 최근 서울시설공단으로 운영권이 넘어간 ‘DDP패션몰(구 유어스)’ 역시 과거만큼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대문 도매상권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동대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운영 주체가 누구냐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면서 “상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과 어려워하는 부분을 잘 알고 상인들 편에서 장사가 잘 되도록 실제로 돕는 것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열에 한두 명 그래도 동대문서 ‘기회’ 찾다

    그는 “과거에는 상가 운영 관리나 재계약 등에 불합리한 부분도 많았다. 현재도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권이나 상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도 문제다. 동대문은 동대문만의 특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특성을 잘 살려주는 방향의 운영과 지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과거 동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에이피엠’ ‘디자이너클럽’ 등에 이어 ‘디오트’ ‘유어스’ 등을 거쳐 최근에는 자의든 타의든 동대문 거상들이 모였다는 ‘에이피엠플레이스’까지 여전히 동대문을 이끌고 있는 저력을 가진 상가들이 많다. 여기에 지난 8월 중순 오픈한 ‘맥스타일’까지 가세하면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맥스타일’은 소매 • 도매 상권을 잇는 탁월한 입지에 있으면서도 그동안 제대로 된 운영이 어려웠다. 이에 이번 오픈을 계기로 동대문 도매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매장을 대형화하고 홍보 마케팅을 위해 6개월간 5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상가 운영 관리도 최대한 투명하게 하며, 중국 및 국내 사입 상품의 원천 봉쇄를 통해 제품 신뢰도를 높인다.

    ‘맥스타일’ 오픈 수주회 등 이벤트 활성화를

    최근에는 소위 동대문 에이스 상인들로 구성된 중소규모 수주회로 판로를 직접 개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7월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서울 중구 흥인동 소재 「아이스께끼(ICEKEKI)」 매장 1층에서 ‘2018 가을겨울 VIP 페어 서울(2018 F/W VIP FAIR. SEOUL)’ 개최를 통해 동대문 도매상인들이 직접 중국 거상들을 찾아 나섰다.

    행사를 기획한 김승훈 「르모어」 대표는 “이 행사는 중소 규모 수주회이지만 동대문을 대표하는 핵심 브랜드들이 중국 VIP 거상들과 직접 교류하는 페어라 의미가 남달랐다”면서 “VIP 거상들을 위한 특화 신상품을 준비하는 등 성공적인 수주회를 위해 각 브랜드들이 최선을 다했다”라고 전했다.

    대한민국 명품 봉제 페스티벌도 올해 12회째 계속된다. ‘수다공방’은 스테이지별로 디자이너와 패터너, 봉제 테크니션 1명씩과 봉제 어시스턴트 2명을 한 팀으로 이뤄 패션쇼를 연다. 이상봉 • 신장경 디자이너가 자문 멘토로 함께하며 디자이너 중심이 아니라 패터너와 봉제인들이 함께한다는 의미도 남다르다.

    진정한 옴니채널 시스템 구축 절실

    ‘평화시장’ ‘통일상가’ ‘신평화패션타운’ ‘동평화패션타운’ ‘패션남평화’ ‘광희패션몰’ ‘테크노상가’ ‘벨포스트’ 등 8개 전통시장이 참여하고 있는 동대문시장글로벌명품시장육성사업단은 글로벌 도약을 꿈꾸는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DFWM)의 대표 얼굴을 찾는 ‘DFWM 홍보 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선발된 모델들은 동대문 특화 브랜드인 ‘어바웃디(About DFWM)’의 국내외 홍보와 글로벌 모델 진출 등의 기회를 얻었다.

    이처럼 동대문 상권 활성화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상권에 실질적이고 도움이 되는 사업이나 이벤트 등이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각 상가들은 임관리비를 합리적으로 낮춰야 한다.

    상인 스스로들은 중국 생산과 사입 제품 판매나 원산지를 속여 파는 것 등을 삼가며 자정 작용을 가진다면 동대문 상권은 글로벌로 도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세인 온라인과 모바일을 잘 활용한 옴니채널 O2O 시스템을 민 • 관 합동의 노력으로 이른 시간 내에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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