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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선인장·버섯으로 리얼 비건 '가죽' 제안

Thursday, Mar. 12, 2020 | 곽선미 기자, kwak@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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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 복지에 중점을 둔 '비건 패션'이 주목받고 있다. 먹는 것에서 시작한 비건(엄격한 채식주의)이 일상 전반에서 동물 사체를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진화한 것. 이 때문에 최근 몇몇 비건을 지향하는 패션 브랜드는 식물 탄닌으로 무두질한 베지터블 가죽(소가죽)이나 화학 섬유로 제작한 합성 가죽, 합성 퍼(페이크 퍼)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베지터블 가죽도 결국 소가죽을 쓰고, 합성 가죽이나 페이크 퍼는 미세 플라스틱 환경 문제를 야기해 사용 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실제 동물 가죽을 쓰지 않으면서 석유 부산물을 사용하지 않아 자연적으로 생분해가 가능한 가죽 대체 식물성 소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기반의 와인생산 및 소재 기업 '비제아(VEGEA)'가 만든 '와인 레더', 스페인 출신의 가죽 전문가 카르멘 히요사가 필리핀 농장에서 현지 농부들과 생산하는 파인애플 섬유 가죽 '피나텍스(PINATEX)', 미국 섬유기술 개발 기업 볼트쓰레드가 버섯 균사체를 이용해 만든 버섯 가죽 '마일로(MYLO)', 멕시코 사업가 두 명이 모여 만든 선인장 가죽 '데세르토(DESSERTO)' 등이 있다.

동물성 가죽 못지 않게 견고하고 튼튼한 질감과 내구성은 기본이다. 이들의 목적은 식물성 대체 소재를 만들어 비인도적 도살 과정을 없애고, 제작 과정에서 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환경적 성과에만 있지 않다. 해당 소재를 기르는 지역 농가 및 공동체와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고 환경을 비롯해 지속가능한 선순환 고리를 만들었다는데에도 의미가 있다.

(석유화합물을 기본 원료로 하는 합성 피혁 포함한 전세계 대체가죽 시장 규모는 약 87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 시장도 어림잡아 4000억원대 규모일 것으로 추산된다.)



오는 3월 말 H&M은 전세계 매장에 '비제아' 소재를 사용한 의류 라인을 공개한다. 와인 레더로 불리는 이 소재는 와인을 만든 후 남은 포도찌거기로 만든 식물성 가죽 대체재로 가죽과 비슷한 질감이 특징이다. 2016년 설립된 비제아가 개발하고, 2017년 H&M을 통해 알려진 소재다.

비제아는 와인 생산 기업이기도 하다. 와인을 만들고 버려지는 포도껍질과 줄기, 씨를 활용해 가죽을 만드는데, 최근 앤아더스토리즈가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 시상식에서 실크 드레스에 포도가죽으로 만든 스트랩 샌들과 클러치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파인애플로도 가죽을 만들 수 있다. 바로 '피나텍스'다. 필리핀 파인애플 농장에서 농업 폐기물인 파인애플 잎을 모아 섬유맥을 뽑아내고, 그것을 펠트처럼 압축하는 방식으로 가죽과 유사한 질감과 경도를 재현한다. 현재 캔버스 소재와 비슷한 경도를 자랑한다고.

이 소재를 개발한 카르멘 히요사는 파인애플 잎에서 뽑아낸 섬유맥을 엮어 만든 원사를 사용한 필리핀 민족의상 '바롱 타갈로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나텍스를 개발했다.

480개의 파인애플 잎에서 약 1제곱미터 크기의 피나텍스를 만들 수 있다. 매년 버려지는 파인애플 부산물이 2500만톤에 달하기 때문에 원재료는 풍부한 상황. 같은 크기의 동물 가죽 대비 무게는 25% 밖에 되지 않고, 합성섬유처럼 롤 형태로 원단을 만들 수 있어 낭비되는 부분이 매우 적다. 만드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화학 물질만 사용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줄였다.



버섯 뿌리에서 발견되는 섬유질 '균사체(하얀 필라멘트)'나 버섯 갓으로도 가죽을 만든다. 미국의 볼트스레즈, 한국의 마이셀, 독일의 Zvnder 등이 버섯 가죽을 제공하고 있다. 소가죽처럼 질기고 내구성이 강해 의류는 물론 신발에도 쓰기 좋은 소재다. 패션 브랜드 중에서는 스텔라맥카트니 등이 지속적으로 버섯 가죽을 사용한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다.

버섯 가죽은 2010년 마이코웍스라는 회사가 처음 개발해 다양한 회사들이 도전하고 있는 소재다. 볼트스레즈는 효모 기반 비건 실크를 제공하는 섬유기술 개발 기업이다. 최근 버섯으로 만든 천연 가죽 '마일로'를 소개했는데, 세월을 머금은 듯 빈티지한 가죽 질감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Zvnder는 버섯 균사체로 만든 버섯가죽 액세서리 제조기업이다. 이 회사가 신발 제조기업인 Nat-2와 합작해 개발한 '버섯 가죽 스니커즈'도 이슈가 됐다. 버섯 가죽은 운동화 외피에 적용했고, 일부 외피에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스웨이드 재질 소재로 보강했다. 아웃솔은 코르크, 인솔은 고무 재질로 만들었다.

한국의 '마이셀'은 현대자동차 소속 3인의 직원이 회사로부터 15억원을 지원받아 시작한 사내 스타트업이다. 한국 버섯 농지에서 균사체가 가득한 배지를 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활용 방법을 고민하다가 버섯 가죽 정보를 접했고, 이 기술이 범용 기술이라는 사실 파악 후 바로 개발에 착수했다.

이들에 따르면 천연가죽 생산에 주로 쓰이는 소가죽은 무려 10단계에 달하는 가공 단계를 거친다. 버섯 균사체 가죽은 공정을 크게 줄여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고, 폐기물 발생량도 적다. 소가죽은 원피 무게의 30%가 폐기물이며, 버섯 균사체를 이용한 인조가죽 생산에 필요한 물의 양도 천연가죽의 1%면 충분하다고.



얼마전 SNS에는 선인장 빛을 담은 매끄럽고 고운 광택의 초록색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가방은 선인장 가죽을 이용해 만든 아이템으로, 사용한 선인장 가죽은 멕시코 자동차 업계 출신 아드리안 로페즈 벨라르데와 패션 출실 마르테 카자레즈가 의기투합해 만든 식물성 가죽 대체소재 '데세르토'다.

자동차는 물론 패션계에서도 가죽을 자주 사용한다.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이들은 멕시코의 대표 작물, 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물이 거의 필요없고,잎을 잘라내면 또 재생되는 선인장에 주목했다.

2017년부터 개발에 매달려 지난 2019년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가죽전시회에서 선인장 가죽을 처음 선보였다. 수확한 선인장을 잘 세척해 가루로 만든 다음 섬유화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섞어 압축해 만든 질기고 튼튼한 가죽이었다.

선인장 가죽은 동물가죽처럼 자연스럽고 통기성과 탄력성도 좋아 의류, 신발, 가방 등 가죽이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에 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용 수명은 최소 10년 정도이며 가격도 천연 가죽과 유사한 수준이다. 데세르토는 멕시코는 물론 유럽의 기업들과도 협업을 시작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선인장 가죽을 접할 수 있도록 대량 거래뿐 아니라 소량 판매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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