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기획] ‘복지+시스템’ 차세대 인재 잡는다

    곽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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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2.19조회수 2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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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사람들은 끈기가 없다”, “우리 회사에 최선을 다할 것처럼 말해서 뽑으면 몇 달도 안되서 그만두겠다고 한다”, “’우리 때’와 비교하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 버티질 못한다.”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들이다. 신입이나 새로운 경력자를 구하는 회사는 참신하고 능력있으면서 ‘오래 일할만한’ 사람을 찾는다. 금방 그만 두는 사람의 자질에 대해 비판하면서 왜 그만두는지는 자세히 알려하지 않는다.

    ‘1세대는 있지만, 2세대는 없다’ 현재의 패션업계를 정확히 짚는 말 아닐까. 최근에도 브랜드 론칭을 위해 혹은 리뉴얼을 위해 뛰어난 1세대 디렉터를 들이려는 경쟁은 치열하지만, 새로운 2세대 양성을 위해 투자하는 회사는 찾기 힘들다. 면접 때 몇 차에 걸쳐 꼼꼼하게 적임자를 고르고 고른만큼, 그렇게 어렵게 얻은 인재를 꾸준히 머무르게 할 능력이 회사에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20년 넘은 「쉬즈미스」, 15주년을 넘긴 「리스트」를 전개하며 좋은 실적까지 올리고 있는 장기권 인동에프엔 사장의 결단이 좋은 힌트가 될 것 같다. 인동에프엔은 최근 대기업 부럽지 않은 복지와 직원 처우 개선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이직률을 낮춰 조직을 안정화하는데도 성공했다. 올해부터는 신입사원 공채도 시작한다.



    왜 우리 회사는 젊은 사람이 버티지 못할까?

    “왜 우리 회사는 젊은 사람이 오래 버티지 못할까?” 장 사장이 지금같은 회사 상황을 만들기 전 떠올렸던 의문 중 하나다. 중견기업으로 역사가 긴만큼 오래된 직원도 많았지만 점점 경력자와 신입사원의 경력 차이가 커지고, 새로운 인력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을 들여도 금방 나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젊은 인재를 들이기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 사장은 “요즘 젊은 세대는 일만큼 자신의 일상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슷한 급여라면 좀 더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회사를 선호하고, 회사의 성장만큼 자신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부분을 하나씩 회사 정책에 반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문화에 앞장서면서 야근을 없애고,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오후 5시 퇴근)하고, 임신 글로자와 미취학 자녀를 둔 모든 직원은 단축 근무(6시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부터는 2년에 한번씩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하고, 공채로 뽑힌 직원에게는 해외 연수의 기회도 제공한다.

    인동에프엔, 복지 강화로 인재 확보와 매출 신장 1석2조

    무조건 이런 정책의 효과라 볼 수 없겠지만, 지난해 여성복 기업들이 대부분 부진한 가운데 인동에프엔은 연매출 2250억원, 영업이익 7.4%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직원이 행복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올해 더 과감한 투자를 통해 더 큰 도약을 노린다. 2022년 5000억대 중견기업을 목표로 올해 상품력 강화와 신사업 추진은 물론 근무환경 개선과 직원 복지 업그레이드에 더 힘을 기울인다.

    소재 전문 기업 영우티앤에프리드(대표 전재성 이영숙)도 파격적인 복지와 직원 처우로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의 기업 철학은 확고하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파격적인 직원 복지와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좋은 인재를 모아 행복하게 일하며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다.

    전재성 영우티앤에프리드 대표는 “영우가 혁신을 위해 가장 고민하는 것은 '근무일수와 근무시간 단축'이다. 혁신의 목적이 성장에 있으면 직원들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매출은 회사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무시간을 단축하면 퇴근 이후 개인의 삶을 위해 업무 집중력이 훨씬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영우, 연 3회 방학! 파격 정책으로 승승장구

    가장 파격적인 것이 바로 연 3회 방학이다. 3월과 8월, 11월에 전직원이 주말 포함 9박10일의 휴가를 보낸다. 계절감을 따 '장미', '해바라기',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여 방학을 기념한다. 이 때문에 영우의 연평균 근무일수는 232일로 국내 연평균 근무일수 246일보다 14일 적다. 근무시간은 연평균 1624시간, 국내 연평균 1968시간은 물론 글로벌 연평균 1800시간보다도 적다.

    오후 6시30분이었던 퇴근시간도 4년 전부터 매년 30분씩 단축해 올해는 전직원 4시 30분 퇴근이다. 내년에 4시 퇴근을 확립하는 것이 목표다. 시간이 모자란데 업무가 제대로 될까? 이영숙 대표는 "우리도 처음에는 걱정했다. 그러나 직접 해보니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필요한 페이퍼워크나 전화업무를 하지 않도록 ERP를 철저히 하고 '답돌이' 등 챗봇을 활용하는 등 스마트 워킹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주효했다. 게다가 빠른 퇴근과 여행을 위해 직원들이 회사에서의 시간을 아주 타이트하게 효율적으로 운용한다"고 말했다.

    빠른 퇴근을 위해 직원들을 닦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지원한다는 점이 영우의 강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자원관리)를 기반으로 한 자동응답 챗봇 '답돌이'의 개발이다. 소재 샘플 문의건이 일평균 170건 이상인데, 이를 응대하기 위한 전화와 메세지로 직원들의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고민하다, 문의 내용이 유사하다는 것에서 착안해 질문에 대한 응답 알고리즘을 생각해 낸 것.

    '시스템 지원 없는 복지 = 말뿐인 정책'

    답돌이는 영우가 갖고 있는 모든 소재와 원단의 수량, 컬러, 재고현황 등에 대한 문의에 자동답변한다.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생성한 고객이 직접 문의를 넣으면 1~2초 사이에 답을 받을 수 있다. 원하는 상품이 없을 경우, 유사한 다른 상품에 대한 제안도 가능하며 차후 이어지는 관련 질문에도 즉시 답한다. 원하는 상품은 즉시 발주할 수 있다. 이 챗봇의 성공적인 구현 역시 그동안 오차없이 정확한 데이터로 ERP를 진행해왔기에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한 번의 입력으로 전 부서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원 루트 시스템'을 추구한다. 모든 부서가 각자의 방식으로 각각 정보를 입력해 데이터가 통일화되지 않는 문제를 애초에 차단한다. 누군가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면 그것은 곧바로 모든 부서가 공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소재 기업임에도 전 사원 4시30분 퇴근이 가능한 효율 업무 시스템을 완성했다.

    소재 전문 기업으로 30년 가까이 시장에서 활약하며 소재를 통해 국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좋은 디자인의 상품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업을 하는 영우의 직원들이 타 회사에 방문해 그들의 문화를 전하는 등 작은 움직임이지만 패션 업계의 근무 환경이 점차 좋아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데상트코리아 "워라밸, 성공하는 기업의 기본 조건"



    패션기업 중 복지와 직원 처우가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데상트코리아(대표 김훈도)도 스마트 워킹 시스템을 도입하며, 효율 업무를 가능케 하는 근무 환경으로 또 한번 패션 업계를 놀라게 했다. 김훈도 사장은 “과거에는 데상트코리아의 복지 체계를 두고 ‘그렇게 하면 기업이 오래 가지 못한다’거나 ‘실제로 얼마나 운영하는지가 문제다’라며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타 기업의 시선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가? 요즘은 데상트코리아처럼 하지 않으면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없다. 성공하는 기업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조건이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패션은 사람이 경쟁력인 사업이다. 개개인의 업무능력이 브랜드와 기업의 질을 다르게 만든다. 그럼에도 직원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퇴사하는 직원을 붙잡고 왜 나가냐고 묻기 전에 애사심을 갖게 할 만한 대우를 했는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패션을 좋아해서 이 업계의 기업을 택해 일하고 싶어하는 똑똑한 사람이 많아야 한다. 좋은 사람이 모여야 그 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고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외로 경력직을 많이 뽑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 김 사장은 “패션업계는 인력 이동이 많은 곳인데, 이 말은 곧 인력에 따라 기업들이 동질화되기 쉽다는 말이다. 굉장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타 브랜드로 이동하면 결국 자신의 색깔대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럼 브랜드별 차별화가 어렵다. 상품이 획일화되니 소비자는 재미를 못 느끼고,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말한다.




    능력있는 경력자에 의존하면 지속성장 어려워

    그렇게 문턱이 닳도록 한국 시장을 찾던 중국 빅바이어들 입에서도 더이상 한국 패션은 새롭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늘 재미있는 콘텐츠로 글로벌을 떠들썩하게 하는 한국인들인데, 왜 유독 패션기업들은 그게 어려운 것일까. 새로운 것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없고, 새로운 것을 밀어줄 리더가 없고, 무엇보다 하루하루 당장 앞의 일에 치이는 환경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현이 드물 수 밖에 없다.

    패션하면 앞선 시장 감각, 화려한 브랜드와 사람, 창의적인 근무 환경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곳이 부지기수다. 패션기업의 일원으로서 이상과 직장인으로서의 현실 간극이 크다는 사실에 급 ‘현타(현실 타격)’가 오는 순간을 겪는 것도 한 두번이 아닐 것이다.

    브랜드 론칭하기도 너무 쉬운 세상이다. 창의력과 센스, 추진력만 있다면 SNS 계정 하나만으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시대다. 2세대 디렉터로 패션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만한 인재들이 기업의 힘을 빌려 성장하기 보다는 직접 옷을 만들고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소비자와 소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다. 지금은 뛰어난 1세대의 활약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나간 그 다음은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성장기를 달려오며 매출 성장에만 몰입해 내부 직원의 성장과 행복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경영인들. 이제 와서 삶이 팍팍한 2030대에게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우리 때는~’으로 시작하는 훈계를 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정말 끈기가 없고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기본적인 복지 부족과 근무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고르고 고른 적임자를 놓치게 되는 것 만큼 아까운 일이 있을까.

    * 동종 업계 대비 패션 기업 평균 연봉 수준은? *





    신입사원들이 입사 기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봉이다. 패션기업들의 신입사원 초봉 내역을 들여다보면 3000만원대 중후반으로 생각보다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대졸 신입사원 기준으로 한 초봉이다. 전문대졸, 고졸 학벌의 임금은 2000만원대로 내려가기도 하며, 여성의 경우는 더 적게 지급하는 곳도 있다.

    패션 대기업으로 불리는 회사들의 직원 최소 연봉이 2231만~2731만원 수준이고, 여성복 전문기업이나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기업의 최소 연봉도 2660만원대다. 20대, 30대, 40대까지 연령별 연봉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아웃도어와 스포츠 전문 기업이 대부분 연령별 연봉 상승이 큰 반면, 제화와 여성복 전문 기업, 언더웨어 전문 기업은 연령이 높아져도 연봉 상승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최근 기업들이 사내 직원의 복지와 근무 환경 개선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직원들의 연봉 문제일 것이다. 이영숙 영우티엔애프리드 대표는 "일을 많이 하지만 적은 연봉을 받는 중견 직원들과 고액 연봉자들 사이의 갭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 중이다. 버는 것에 비해 나갈 곳이 많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직원들의 연봉 책정을 늘 생각한다. 나이 많은 경력자들의 노하우도 회사에 중요한 자산이라 우리 회사에서는 정년퇴임이 없다. 대신 그들의 연봉 상한선에 제한을 둬 줄여 나가면서 젊은층의 연봉을 높이는 것으로 업무 강도와 연봉 사이의 갭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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