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여성 디자이너 파이팅!

    harlow
    |
    12.10.10조회수 7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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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파리 패션계에 영국 여성 디자이너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13 S/S 컬렉션으로 복귀하는 「셀린느」의 아트 디렉터 피비 필로에 대한 이야기와 「클로에」의 아트 디렉터로서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 클레어 웨이트 켈러에 대한 인터뷰 기사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파리 패션계에서 인정을 받아온 스텔라 매카트니까지 최근 영국 여성 디자이너들의 돋보이는 활약은 가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존 갈리아노처럼 독특하고 뚜렷한 스타일의 디자인을 보여주진 않지만 이들이 선보이는 룩들은 공통적으로 파리지앵들이 사랑하는 시크함과 실용성으로 똘똘 뭉쳐 있다. 게다가 다른 스타 디자이너들에 비해 조용하고 비밀스럽기까지 한 작업 스타일과 패션계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점 등이 이들이 특히나 보수적인 파리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파리에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은 스텔라 매카트니는 영국의 유서 깊은 디자인 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을 졸업한 지 2년만인 1997년 「클로에」의 아트 디렉터로 임명된다. 전설적인 그룹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를 아버지로 뒀다는 점 외에 디자이너로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던 그녀는 「클로에」를 현대적이면서도 보헤미안 감성이 느껴지는 스타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며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특히 영국식 테일러링에 란제리 디테일을 가미한 의상들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았다.







    「셀린느」로 복귀한 스타 디자이너 피비 필로

    2001년 「클로에」를 핫한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시킨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 「클로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구치」 「알렉산더매퀸」 등을 소유한 PPR과 50 대 50의 계약으로 그녀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런칭한다. 그녀는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장기인 정확한 커팅의 매니시한 느낌의 재킷과 수트들을 선보여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녀가 지닌 완벽한 커팅 감각은 스포츠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쳐 2004년에는 「아디다스」와 함께 ‘Adidas by Stella McCartney’ 컬렉션을 선보인다. 이로 인해 「아디다스」는 젊은 여성들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이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외에도 2005년 「H&M」, 2009년 「갭」과의 콜래보레이션 역시 인기를 끈 바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특히 채식주의자로, 자신의 컬렉션에 가죽이나 모피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클로에」에서 그녀의 수석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가죽을 적절하게 룩에 사용하고자 했던 피비 필로와 의견마찰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톰 포드가 제안한 「구치」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거절한 이유 역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구치」의 빈번한 모피 사용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그녀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유명하다.

    베지터리안 스텔라 매카트니, 완벽한 커팅 재킷을

    스텔라 매카트니의 뒤를 이어 「클로에」의 아트 디렉터 자리를 맡았던 피비 필로는 스텔라 매카트니와 학교 동문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1997년 스텔라 매카트니가 그녀에게 자신의 수석 어시스턴트 자리를 제안하며 파리 패션계와 인연을 맺는다.

    쿨하고 수수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녀는 전 세계 패션 에디터들 특히 파리 에디터들의 ‘슈슈(마음에 드는 것, favori)’로 불린다. 파리 패션지는 물론 일반 매거진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질 만큼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디자이너다. 그도 그럴 것이 1996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을 졸업하자마자 「클로에」 「셀린느」 두 개의 프랑스 브랜드에서만 경력을 쌓아온 데다가 그녀의 손길이 닿은 브랜드들은 어김 없이 빅이슈가 되어 전 세계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피비 필로는 1997년 스물일곱 살이던 해에 「클로에」에 합류한다. 그러다 2001년 스텔라 매카트니가 「클로에」를 떠나면서 그녀를 대신해 아트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된다. 피비 필로는 자신이 디자이너로서 지닌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클로에」가 스텔라 매카트니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더 큰 히트를 치는 데 일조한다.


    패션 에디터의 ‘슈슈’이자 디자이너의 ‘워너비’

    빈티지스러운 룩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포장하고 애쓰지 않은듯한 자연스러운 실루엣 등은 이후 「클로에」의 상징처럼 여겨질 만큼 그녀가 브랜드에 부여한 아이덴티티는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친 패딩턴 백은 「클로에」가 지금까지 액세서리 부문에서 거둔 적이 없는 큰 성공을 거두게 한다. 「클로에」가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던 2006년 피비 필로는 돌연 아트 디렉터를 사임한다.

    이유는 가족들과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글 같은 패션계에서 가족을 위해 최고로 핫한 브랜드를 떠나겠다는 발표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결심은 오히려 그녀를 매력적인 디자이너로 보이게 했고 피비 필로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워너비가 된다. 전 세계의 패션 에디터들은 패션계를 떠난 그녀에 대한 애정과 선망을 감추지 않으며 복귀를 애타게 기다렸다.

    피비 필로는 한 인터뷰에서 휴식기 동안 패션에 대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으며 패션지나 뉴스도 접하지 않았다고 했다. 2년간 가족들과 함께하며 평범한 일상을 만끽한 그녀는 2008년 LVMH 소유의 「셀린느」가 제안한 아트 디렉터직을 수락한다. 게다가 파리를 기반으로 한 메종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런던에 디자인 팀과 사무실을 꾸린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가족 때문에 떠났던 그녀 2년 만에 「셀린느」로

    「셀린느」는 1945년에 만들어진 브랜드로 어린이용 슈즈를 판매하며 인기를 얻었다. 1996년 LVMH가 매입한 이후 마이클 코어스가 2004년까지 아트 디렉터를 맡은 바 있다. 오래된 피혁 브랜드에서 고급스러운 스타일의 제트 세트 룩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잡아가는 듯했으나 마이클 코어스가 메종을 떠나며「셀린느」는 다시 침체기에 접어든다.

    피비 필로가 이러한 「셀린느」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브랜드가 지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선보인 2010년 S/S 컬렉션으로 묻혀 있던 진주인 「셀린느」에 샤프하면서도 절제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검정, 회색, 흰색, 누드톤 등 무채색 위주에 파랑과 오렌지색 등으로 컬러 블록을 이룬 의상들은 즉시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를 애타게 기다렸던 에디터들 역시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녀의 의상들에 여성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서의 아름다운 룩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피비 필로가 밝혔듯 그녀는 자신이 입고 싶은 의상, 입을 수 있는 의상만을 만든다. 그녀가 「셀린느」를 위해 디자인한 의상들은 헬무트 랭이나 캘빈 클라인을 떠올리게 하는 미니멀한 룩이지만 남성이 디자인한 의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묻혀 있던 진주에 샤프하고 절제된 뉴룩 입히다
    디자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뿐 패션이라는 산업에서는 익명으로 남고 싶다는 그녀는 자신의 옷을 입는 여성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여성들일 것이라고 묘사하기를 거부한다. 그녀들 역시 자신과 같이 아름답고 실용적인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거나 누군가와 미팅을 할 여성들일 뿐 특별한 여성들을 위한 의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셀린느」를 통해 일관되게 성공적인 컬렉션을 선보인 피비 필로는 올해 초, 4월 출산을 위해 아트 디렉터직을 쉬겠다고 발표해 또다시 패션계를 떠들썩하게 한다. 이로 인해 「셀린느」는 2012 F/W 컬렉션을 선보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있을 2013 S/S파리 컬렉션을 통해 복귀할 피비 필로가 과연 어떤 놀라움을 선사할지에 패션계는 들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와 피비 필로 이후에도 「클로에」는 계속해서 영국 여성 디자이너들에게 아트 디렉터직을 맡기고 있다. 피비 필로 다음으로는 한나 맥기본이, 2011년 6월부터는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아트 디렉터로 임명됐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니트가 전문 분야인 디자이너.


    한나 맥기본, 클레어 웨이트 켈러 등 브리티시 계속 6년간 스코틀랜드 니트 브랜드인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 (Pringle of Scotland)」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며 오랜 역사의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를 현대적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니트 전문 브랜드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캐시미어와 같은 고급소재의 모던한 여성복들을 선보여 평단의 찬사는 물론 상업적
    으로도 전에 없는 성공을 이뤄낸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올해 3월 「클로에」에서 두번째로 선보인 컬렉션으로 패션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며 서서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전형적인 영국인의 스타일을 지닌 그녀가 제안하는 「클로에」 의상들은 영국식 절제미와 파리지앵의 낭만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사랑스러운 파스텔톤의 군더더기 없는 코트와 그녀의 장기인 니트류를 여러 소재와 레이어드한 룩들은 「클로에」가 지닌 보헤미안 감성을 또 다른 시각으로 표현해냈다는 평가다.


    첫번째 컬렉션을 발표하고 아직은 파리가 어색하다고 밝혔던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이제 자신의 의상 스타일마저도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바뀌었을 만큼 파리에 적응된 상태라고 했다. 따라서 그녀가 이번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일 의상들은 또 어떤 식으로 잉글리시 스타일과 파리지앵 스타일을 믹스 매치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패션비즈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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