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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딘 알라이아 세 번째 전성시대
Thursday, Jan. 15, 2015 | 안성호 뉴욕 리포터, groovea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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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재단하는 완벽한 핏 ‘환상’
그렇다면 왜 알라이아인가. 왜 지금 업계가 다시 그를 주목하는 걸까. 무엇이 그를 다르게 하는 걸까. 패션의 여러 풍파 속에서도 지난 30년간 자기 세계를 지켜 온 알라이아의 패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4개의 키워드. 그것은 바로 재단, 자유, 고집 그리고 관계다.
‘알라이아 드레스’ 하면 단연 재단이다. 바스트와 힙을 탄탄하게 받쳐 주며 몸매를 강조한 재단 기술을 통해 여성의 몸을 가장 섹시해 보이게 하면서도 편안한 드레스로 그는 명성을 얻었다. 여배우들이 시상식장에서 입을 드레스로 알라이아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W 매거진의 시니어 에디터이자 「발렌시아가」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래 활동한 마리 아멜리 소베는 “날카롭고 정확하고 강하고 관대하며 무엇보다 진정성 있다”라고 했고, 대형 패션 전시를 여러 차례 기획해 온 파리 장식예술박물관(Les Art Decoratifs)의 수석 큐레이터 파멜라 골뱅은 “그의 손에는 손만을 위한 뇌가 따로 있다”라며 그의 재단 기술을 높이 샀다.
알라이아 패션 키워드 4 : 재단, 자유, 고집, 관계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직접 재단하고 수십 차례 피팅을 거쳐 드레스를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원칙에 대해 엄격하다. “여배우가 피팅을 위해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내 드레스를 가질 수 없다. 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그녀와 직접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들이 나를 원하지 않으면 나도 그들이 필요 없다”라고까지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컬렉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중 직접 재단하는 이는 아주 드물다. 드레스 메이커로서의 이런 기술력과 자존심은 그를 더욱 진정한 실력자로 돋보이게 해 왔다.
그에게도 영향을 준 패션 역사의 거장들이 있다. ‘바이어스 재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들렌 비오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 엘사 스키아파렐리, 코스튬 디자이너 길버트 아드리안 등이다.
패션 스케줄로부터 자유 ‘메종 스타일’ 컬렉션
그의 패션 세계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하라고 하면 ‘자유’를 꼽을 수 있다. 그가 만든 옷이 여성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그의 비즈니스 방식 역시 매우 자유롭다. 그는 세계 패션위크 스케줄과 관계없이 자신이 원할 때 컬렉션을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한다. 패션위크든 아니든 자신이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만 메종으로 소수의 사람을 초대해 소개한다. 때문에 그의 쇼가 드물게 열리는 점, 매우 프라이빗한 점이 오히려 패션계를 더욱 달아오르게(?) 하기도 한다.
바이어들이 주문한 제품이 시즌에 앞서 스토어에 제때 도착하게 하는 것은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알라이아는 제때 도착하는 법이 없는 것으로 악명 높다. 제품 배송이 늦으면 주문을 취소해 버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바니스뉴욕조차 알라이아가 완성품을 배송하면 시즌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그의 제품을 받는다.
2010년까지 25년이 넘게 바니스의 공동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뉴욕 패션 리테일의 크리에이티브를 이끈 진 프레스맨은 이렇게 말했다. “알라이아만 제외하고, 우리는 배송관리에 매우 엄격하다. 언제 도착해도 우리는 그의 제품을 받아 준다. 그는 제품에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변치 않는 클래식을 만든다.”
매번 늦어지는 악명 불구 바니스뉴욕도 ‘인정’
2000년부터 7년간 알라이아 레이블이 프라다 그룹에 인수돼 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 자유인이다. 2007년 리치몬드와 계약할 때도 계속 이전과 같이 자기만의 스케줄로 일하는 방식을 고수한다는 조건이 보장돼야만 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를 누리고 행복을 누릴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거절한다.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할 때조차 다른 이들에게 권한을 모두 내어 준 것 같지만 결국 최종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라고 알라이아는 말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그의 자유는 오히려 여러 면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강조하던 선택과 집중을 떠오르게 한다. 대부분의 제안을 거절하며 지난 50년간 드레스 메이킹에만 집중한 그의 삶처럼. 신영복 선생은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알라이아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와 행복 누릴 것”
1992년 알라이아의 단짝 누이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레이블이 초고속 성장을 하는 동안 일에 미쳐 살다가 누이를 마지막까지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작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슬럼프가 시작되자 단짝 친구인 ‘10코르소코모’의 카를라 소차니가 다시 작업하도록 그를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이때부터 패션 캘린더와 별개로 그의 페이스에 따라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작업 방식이 시작돼 현재에 이른다.
그는 현재의 패션 시스템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디자이너들은 너무 많은 컬렉션을 한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돈이 너무 중요하고 패션 스케줄은 미쳤다. 패션 에디터들은 너무 바빠서 가정을 돌볼 시간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올 초 유명 패션 저널리스트 캐시 혼 역시 가정과 남편이 더 중요하다며 지난 15년간 근무한 뉴욕타임스를 홀연히 떠나 뉴욕 패션계에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알라이아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삶이 자유롭고 만족스러워야 작품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일상에서 시간을 쓰는 법도 독특하다. 저녁 무렵 보드카를 마시고 뉴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 가볍게 눈을 붙인다. 이후 자정부터 6시까지 혼자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작업을 한다. 아침이 오면 직원들이 하루 동안 할 일들을 뭉치로 싸서 각자의 테이블에 올려 둔다. 그리고 낮에 자고 싶을 때 5시간 이하로 수면을 취한다.
넘치는 컬렉션, 황금만능주의, 미친 스케줄 비판
영감의 원천도 다양하다. 영화, 아프리카 예술, 이집트 조형물, 그가 늘 수집해 온 클래식 또는 현대 조각품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는 스트리트패션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리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하이패션으로 옮겨 온 몇 안 되는 디자이너다. 블로그,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확산으로 스트리트패션이 오히려 하이패션에 영감을 제공하는 바텀업(Bottom-up) 현상이 지금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과거에 이미 그 명확하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용기는 대담하면서도 신선하다.
그는 고집스럽다. 꾸준하고 끈질기다.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고수해 온 것에서도 그렇고, 자유로운 비즈니스 방식을 고수해 온 것에서도 그렇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공인한 쿠튀리에는 아니지만 직접 재단과 피팅을 하며 그 누구보다 쿠튀르 방식을 고수해 왔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라고 브랜드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의 일관된 고집에는 쿠튀리에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배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언제나 그 검은 전통의상만 입는 것도 자신은 패셔니스타가 아니며 드레스 메이커로서 그 옷을 입는 것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쿠튀르 방식 고수, 드레스 메이커로 일관된 고집
그는 인사이드-아웃사이더 혹은 아웃사이드-인사이더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공인한 쿠튀리에는 아니다. 오트쿠튀르 패션위크 때 옷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레디투웨어 기성복은 작업 방식에 따르면 쿠튀르에 더 가깝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오래전 쿠튀리에에서 많이 변화된 현재도 그는 쿠튀리에의 전통적인 역할을 고수해 왔다. 쿠튀르가 흥했을 때도 쇠했을 때도 지금처럼 부활할 때도 그는 변함이 없다.
그의 역할이 그렇다 보니, 그 역시 한 메종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하기를 원한다. 장 폴 고티에의 메종과도 비슷하다. 그가 작업하는 아틀리에,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쇼장, 바이어들을 맞이하는 쇼룸, 고객을 만나는 스토어까지 한 맨션 분위기의 한 건물 안에 20년 넘게 자리해 왔다. 직접 운영하는 스토어도 2013년 전까지는 딱 하나였다.
그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디자이너로도 악명 높다. 인터뷰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상을 주기도 어렵다.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자크 시라크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까지도 그에게 상을 주는 데 실패(?)했다. ‘그냥 내 옷을 입고 있는 여성 자체가 내겐 최고의 훈장’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도 거절했다. 그 자리는 결국 지안프란코 페레에게 돌아갔다.
“누구의 드레스도 이토록 여성이 아름다울 수 없다”
그의 열렬한 충성 고객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인들,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로 시작돼 현재는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 전 프랑스 보그 편집장 카린 로이펠드, 이젠 디자이너로 데뷔한 빅토리아 베컴,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 영화배우 마리온 코틸라르, 셀마 헤이엑, 페넬로페 크루즈 등에 이른다.
가장 충성스러운 고객이자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바로 ‘10코르소코모’의 카를라 소차니다. 이 둘은 30년 지기 친구이자 서로 비즈니스 어드바이저가 돼 준다. 1980년대 알라이아의 초기 컬렉션부터 당시 이탈리아 보그 에디터였던 카를라 소차니는 시즌마다 늘 그를 찾아왔고 소개했다.
알라이아는 1990년 카를라 소차니가 밀라노에 ‘10코르소코모’를 오픈하는 것을 도왔다. 이후 10코르소코모는 밀라노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10코르소코모 오프닝 때는 알라이아가 함께 와서 현장을 감독하기도 했다. 1992년 누이의 죽음 이후 작업을 중단한 알라이아를 다시 패션계로 돌아오게 설득한 것도 그녀다.
그레타 가르보부터 미셸 오바마까지 단골 고객
많은 이의 도움을 받으며 이 자리까지 오른 알라이아는 자신 역시 후대에 유산을 남기기 위해 2002년 알라이아 재단(the Foundation Alaia)을 설립했다. 자신이 만든 옷과 그동안 수집해 온 패션 디자인을 축적한 아카이브로서, 언젠가 전시 등의 이벤트를 통해 대중, 특히 학생들에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황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드레스 메이커다. 실력뿐만 아니라 진짜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적 자존심까지 올곧게 지켜 온 그가 패션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존경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통 자본만 따라 움직이는 듯 보이는 지금의 패션계에 울림을 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디는 플래그십 스토어와 향수 라인 론칭 등 확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도 더욱 기대가 모인다. 아직, 아니 한 번 더 아제딘 알라이아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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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알라이아인가. 왜 지금 업계가 다시 그를 주목하는 걸까. 무엇이 그를 다르게 하는 걸까. 패션의 여러 풍파 속에서도 지난 30년간 자기 세계를 지켜 온 알라이아의 패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4개의 키워드. 그것은 바로 재단, 자유, 고집 그리고 관계다.
‘알라이아 드레스’ 하면 단연 재단이다. 바스트와 힙을 탄탄하게 받쳐 주며 몸매를 강조한 재단 기술을 통해 여성의 몸을 가장 섹시해 보이게 하면서도 편안한 드레스로 그는 명성을 얻었다. 여배우들이 시상식장에서 입을 드레스로 알라이아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W 매거진의 시니어 에디터이자 「발렌시아가」의 스타일리스트로 오래 활동한 마리 아멜리 소베는 “날카롭고 정확하고 강하고 관대하며 무엇보다 진정성 있다”라고 했고, 대형 패션 전시를 여러 차례 기획해 온 파리 장식예술박물관(Les Art Decoratifs)의 수석 큐레이터 파멜라 골뱅은 “그의 손에는 손만을 위한 뇌가 따로 있다”라며 그의 재단 기술을 높이 샀다.
알라이아 패션 키워드 4 : 재단, 자유, 고집, 관계
그는 아직도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직접 재단하고 수십 차례 피팅을 거쳐 드레스를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원칙에 대해 엄격하다. “여배우가 피팅을 위해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내 드레스를 가질 수 없다. 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그녀와 직접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들이 나를 원하지 않으면 나도 그들이 필요 없다”라고까지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컬렉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중 직접 재단하는 이는 아주 드물다. 드레스 메이커로서의 이런 기술력과 자존심은 그를 더욱 진정한 실력자로 돋보이게 해 왔다.
그에게도 영향을 준 패션 역사의 거장들이 있다. ‘바이어스 재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들렌 비오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 엘사 스키아파렐리, 코스튬 디자이너 길버트 아드리안 등이다.
패션 스케줄로부터 자유 ‘메종 스타일’ 컬렉션
그의 패션 세계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하라고 하면 ‘자유’를 꼽을 수 있다. 그가 만든 옷이 여성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그의 비즈니스 방식 역시 매우 자유롭다. 그는 세계 패션위크 스케줄과 관계없이 자신이 원할 때 컬렉션을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한다. 패션위크든 아니든 자신이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만 메종으로 소수의 사람을 초대해 소개한다. 때문에 그의 쇼가 드물게 열리는 점, 매우 프라이빗한 점이 오히려 패션계를 더욱 달아오르게(?) 하기도 한다.
바이어들이 주문한 제품이 시즌에 앞서 스토어에 제때 도착하게 하는 것은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알라이아는 제때 도착하는 법이 없는 것으로 악명 높다. 제품 배송이 늦으면 주문을 취소해 버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바니스뉴욕조차 알라이아가 완성품을 배송하면 시즌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그의 제품을 받는다.
2010년까지 25년이 넘게 바니스의 공동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며 뉴욕 패션 리테일의 크리에이티브를 이끈 진 프레스맨은 이렇게 말했다. “알라이아만 제외하고, 우리는 배송관리에 매우 엄격하다. 언제 도착해도 우리는 그의 제품을 받아 준다. 그는 제품에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변치 않는 클래식을 만든다.”
매번 늦어지는 악명 불구 바니스뉴욕도 ‘인정’2000년부터 7년간 알라이아 레이블이 프라다 그룹에 인수돼 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 자유인이다. 2007년 리치몬드와 계약할 때도 계속 이전과 같이 자기만의 스케줄로 일하는 방식을 고수한다는 조건이 보장돼야만 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를 누리고 행복을 누릴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거절한다.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할 때조차 다른 이들에게 권한을 모두 내어 준 것 같지만 결국 최종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라고 알라이아는 말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그의 자유는 오히려 여러 면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강조하던 선택과 집중을 떠오르게 한다. 대부분의 제안을 거절하며 지난 50년간 드레스 메이킹에만 집중한 그의 삶처럼. 신영복 선생은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알라이아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와 행복 누릴 것”
1992년 알라이아의 단짝 누이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레이블이 초고속 성장을 하는 동안 일에 미쳐 살다가 누이를 마지막까지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작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슬럼프가 시작되자 단짝 친구인 ‘10코르소코모’의 카를라 소차니가 다시 작업하도록 그를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이때부터 패션 캘린더와 별개로 그의 페이스에 따라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작업 방식이 시작돼 현재에 이른다.
그는 현재의 패션 시스템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디자이너들은 너무 많은 컬렉션을 한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돈이 너무 중요하고 패션 스케줄은 미쳤다. 패션 에디터들은 너무 바빠서 가정을 돌볼 시간도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올 초 유명 패션 저널리스트 캐시 혼 역시 가정과 남편이 더 중요하다며 지난 15년간 근무한 뉴욕타임스를 홀연히 떠나 뉴욕 패션계에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알라이아는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삶이 자유롭고 만족스러워야 작품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일상에서 시간을 쓰는 법도 독특하다. 저녁 무렵 보드카를 마시고 뉴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 가볍게 눈을 붙인다. 이후 자정부터 6시까지 혼자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작업을 한다. 아침이 오면 직원들이 하루 동안 할 일들을 뭉치로 싸서 각자의 테이블에 올려 둔다. 그리고 낮에 자고 싶을 때 5시간 이하로 수면을 취한다.
넘치는 컬렉션, 황금만능주의, 미친 스케줄 비판영감의 원천도 다양하다. 영화, 아프리카 예술, 이집트 조형물, 그가 늘 수집해 온 클래식 또는 현대 조각품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는 스트리트패션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리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하이패션으로 옮겨 온 몇 안 되는 디자이너다. 블로그,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확산으로 스트리트패션이 오히려 하이패션에 영감을 제공하는 바텀업(Bottom-up) 현상이 지금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과거에 이미 그 명확하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용기는 대담하면서도 신선하다.
그는 고집스럽다. 꾸준하고 끈질기다.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고수해 온 것에서도 그렇고, 자유로운 비즈니스 방식을 고수해 온 것에서도 그렇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공인한 쿠튀리에는 아니지만 직접 재단과 피팅을 하며 그 누구보다 쿠튀르 방식을 고수해 왔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라고 브랜드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의 일관된 고집에는 쿠튀리에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배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언제나 그 검은 전통의상만 입는 것도 자신은 패셔니스타가 아니며 드레스 메이커로서 그 옷을 입는 것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쿠튀르 방식 고수, 드레스 메이커로 일관된 고집
그는 인사이드-아웃사이더 혹은 아웃사이드-인사이더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공인한 쿠튀리에는 아니다. 오트쿠튀르 패션위크 때 옷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레디투웨어 기성복은 작업 방식에 따르면 쿠튀르에 더 가깝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오래전 쿠튀리에에서 많이 변화된 현재도 그는 쿠튀리에의 전통적인 역할을 고수해 왔다. 쿠튀르가 흥했을 때도 쇠했을 때도 지금처럼 부활할 때도 그는 변함이 없다.
그의 역할이 그렇다 보니, 그 역시 한 메종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하기를 원한다. 장 폴 고티에의 메종과도 비슷하다. 그가 작업하는 아틀리에,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쇼장, 바이어들을 맞이하는 쇼룸, 고객을 만나는 스토어까지 한 맨션 분위기의 한 건물 안에 20년 넘게 자리해 왔다. 직접 운영하는 스토어도 2013년 전까지는 딱 하나였다.
그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디자이너로도 악명 높다. 인터뷰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상을 주기도 어렵다.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자크 시라크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까지도 그에게 상을 주는 데 실패(?)했다. ‘그냥 내 옷을 입고 있는 여성 자체가 내겐 최고의 훈장’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도 거절했다. 그 자리는 결국 지안프란코 페레에게 돌아갔다.
“누구의 드레스도 이토록 여성이 아름다울 수 없다”
그의 열렬한 충성 고객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인들,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로 시작돼 현재는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 전 프랑스 보그 편집장 카린 로이펠드, 이젠 디자이너로 데뷔한 빅토리아 베컴,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 영화배우 마리온 코틸라르, 셀마 헤이엑, 페넬로페 크루즈 등에 이른다.
가장 충성스러운 고객이자 가장 중요한 친구는 바로 ‘10코르소코모’의 카를라 소차니다. 이 둘은 30년 지기 친구이자 서로 비즈니스 어드바이저가 돼 준다. 1980년대 알라이아의 초기 컬렉션부터 당시 이탈리아 보그 에디터였던 카를라 소차니는 시즌마다 늘 그를 찾아왔고 소개했다.
알라이아는 1990년 카를라 소차니가 밀라노에 ‘10코르소코모’를 오픈하는 것을 도왔다. 이후 10코르소코모는 밀라노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10코르소코모 오프닝 때는 알라이아가 함께 와서 현장을 감독하기도 했다. 1992년 누이의 죽음 이후 작업을 중단한 알라이아를 다시 패션계로 돌아오게 설득한 것도 그녀다.
그레타 가르보부터 미셸 오바마까지 단골 고객
많은 이의 도움을 받으며 이 자리까지 오른 알라이아는 자신 역시 후대에 유산을 남기기 위해 2002년 알라이아 재단(the Foundation Alaia)을 설립했다. 자신이 만든 옷과 그동안 수집해 온 패션 디자인을 축적한 아카이브로서, 언젠가 전시 등의 이벤트를 통해 대중, 특히 학생들에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며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황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드레스 메이커다. 실력뿐만 아니라 진짜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적 자존심까지 올곧게 지켜 온 그가 패션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존경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통 자본만 따라 움직이는 듯 보이는 지금의 패션계에 울림을 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디는 플래그십 스토어와 향수 라인 론칭 등 확장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도 더욱 기대가 모인다. 아직, 아니 한 번 더 아제딘 알라이아의 시대다.
**패션비즈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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