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 IHNN 이끄는 인치성, 그는?
    韓-日 장점 살린 오리지널티 각광

    조태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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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9.13조회수 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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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주쿠 이세탄을 비롯해 일본의 주요 고감도 셀렉트숍에 입점돼 있는 모던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여성복 인(IHNN). 지난 2015년 론칭해 올해로 6년 차인 브랜드로 창업자 겸 디자이너는 한국인 인치성 씨다. 데뷔 당시 신인 디자이너 대상을 받았고, 작년에는 도쿄 패션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패션 기대주다.

    일본 패션마켓의 높은 장벽을 뚫고 한국인으로서 독창성을 인정받아 이렇게 성공한 디자이너는 없었다. 한국 디자이너로서 일본 패션업계의 톱 수준에 올랐다는 사실과 고감도 셀렉트숍에 입점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장점을 살려 타 브랜드와 차별화된 독창적이며 성숙한 컬렉션을 횟수가 거듭할수록 잘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에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많은 관련 서적과 세련된 조명이 인상적인 스튜디오 겸 디자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Q. 일본에 온 계기는.

    한국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군대를 제대한 후 2008년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한 계기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에디 슬리먼 때의 디올 옴므, 톰 브라운 같은 브랜드가 주목받고 확산된 곳이 일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패션을 좋아해 처음부터 일본에 가서 패션을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문화복장학원과 대학원 디자인 과정에 입학해 4년 동안 패션의 기본과 디자인을 배웠다.

    Q.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 계기는.

    런던의 각 패션 대학교의 졸업전시회인 ‘LONDON GRADUATE FASHION WEEK’의 인터내셔널 쇼 부문에서 졸업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이 인터내셔널 쇼는 세계 각 나라를 대표하는 패션 학교에서 선정된 학생 한 명의 졸업 컬렉션을 보여주는 자리였는데, 운 좋게도 내가 일본 대표로 선정돼 참가했다. 당시 미디어에서는 일본 패션 학교 대표로 온 학생이니까 당연히 일본인으로 기사가 나왔다.

    이 쇼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적인 잡지에 내 작품이 나오니 뿌듯했다. 취직보다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 일본으로 왔으니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동일본 지진 때문에 주변 한국 사람은 귀국했지만 나는 여기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당시 문화복장학원에서 운영하는 패션 인큐베이션 센터가 시부야에 있었다. 이제는 없어진 제도이지만 졸업할 당시 인큐베이팅 장소에 들어와도 된다는 지원이 있어서 바로 브랜드 준비에 들어갔다.

    일본에는 한국인 유학생도 많고 문화복장학원은 100년이 돼 가는 전문 학교다. 일본에서도 가장 전통이 있는 학교인데, 이름을 알린 한국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했다.

    브랜드를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첫 컬렉션 때는 원단을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몰랐다. 원단은 학교 내부에 있는 원단 구입처에서 사고 좋은 기회이니 무모해 보일지라도 그냥 시작했다.



    Q. 인(IHNN)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은 한국이 훨씬 빠르고 감각 있게 인스타그램으로 브랜드 표현을 매우 잘하고 있고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인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한국 브랜드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일본에 올 때만 해도 아직 한국에서 브랜드를 한다는 것은 맨투맨, 셔츠 같은 아이템을 만드는 것뿐이었고 그게 무엇보다 싫었다. 가치가 있는,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옷을 만들고 싶었고 단순히 카피가 아닌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비주얼 부문에 신경을 쓰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것, 즉 내가 더 집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옷의 본질 자체를 생각하고 만든다.

    원단 · 패턴 · 봉제 하나하나 모든 과정에 있어서 섬세한 작업이 들어가고 아주 신경 써서 작업하는데, 이는 꼼꼼히 모든 것을 체크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실 한 줄과 봉제 한 땀이라도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소재의 좋은 점을 더 잘 살려서 컬렉션에 반영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한다. 단순히 울 100%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원단은 아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스타일에 맞게 적합한 원단과 봉제, 샘플 보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프로세스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치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일본어로 ‘고다와리*’라고 하는데 고다와리가 있는 브랜드를 목표로 한다.

    * ?고다와리 : 한국말로 직역하면 고집 또는 구애됨이라는 뜻이지만,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만의 독특함,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 심혈을 기울인, 혹은 엄선된, 전문적이며 양보할 수 없는 것 같이 특별히 신경을 쓴다는 의미다.

    Q. 일본의 고감도 셀렉트숍 모든 곳에서 IHNN을 취급하고 있는데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같은 진입하기 힘든 나라에 어떻게 입점하게 됐는지, 그리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지.

    처음 옷을 만들고 나서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매장 바이어에게 초대장을 보내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바이어는 몇 명 오지도 않았고 좋은 결과도 없었다. 두 번째 전시회 때 바니스 뉴욕재팬의 디렉터가 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옷이 팔렸다. 매우 기뻤다. 그다음에는 리스티어라는 일본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를 취급하는 고감도 셀렉트숍 바이어가 방문했고 매 시즌 오더가 이어졌다. 그 이후로 시즌마다 오는 바이어가 늘어났고 현재는 이세탄 신주쿠를 중심으로 일본에만 약 20개의 거래처가 있다. 이세탄 신주쿠백화점은 일본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장소인데 이곳에서 2018 F/W 팝업을 진행했다. 본관 3층 메인 이벤트 플로어에 단독으로 입점했는데 정말 좋은 기회였다.

    일본은 스토리와 가치가 있는 브랜드를 선호한다. 이 의미는 단순히 비주얼만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바이어가 브랜드를 판단한다는 뜻이다. 특히 브랜드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모던한 감성과 색상에 일본의 장점인 원단이나 패턴 등에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모노즈쿠리를 잘 살리고 싶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미리 스케줄링하고 원하는 이미지에 가까운 상태를 정하고 외부 협력자와도 많은 연계 작업을 통해서 좋은 컬렉션이 나오도록 하고 있다. 양국의 좋은 점을 살린 가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고 이런 게 잘 통한 것 같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유행이나 SNS 등을 통한 일시적인 인기로는 감도가 높은 백화점이나 셀렉트숍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여러 시즌 지속하기 위해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각 셀렉트숍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같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작년에 받은 상은 어떤 상인가.

    일본에는 크게 세 개의 어워드가 있다. 신인 디자이너 대상 프로 부문, 도쿄 패션 어워드, 패션 프라이즈 등 이렇게 세 개가 있는데 지금까지 두 개를 수상했다. 처음 데뷔한 2016년에 신인 디자이너 대상을 받았고 이때 지원금을 받아 브랜드를 키워 나갔다. 작년에는 도쿄 패션 어워드를 수상했다. 총 6개의 브랜드가 선정됐는데 그중에 뽑혀서 파리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해외 바이어한테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파리전시회가 취소됐고 올해 2월 디지털로 전환한 런던패션위크를 통해 2021 F/W를 발표했다. 다음에는 패션 프라이즈 상에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컬렉션을 진행할 때 어떤 스태프와 호흡을 맞추는지도 상당히 중요하다. 2018 F/W 컬렉션을 준비할 때 기억에 남는 룩북을 찍고 싶어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그래퍼와 스타일리스트가 누구인지 찾아봤다.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포토그래퍼가 제가 당시 살고 있던 같은 건물 위층에 산다는 정보를 우연히 입수하고 직접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었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기꺼이 승낙해 준 포토그래퍼 스즈키 지카시(SUZUKI CHIKASHI)와 기타무라 미치코(KITAMURA MICHIKO)라는 스타일리스트와 작업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다음 컬렉션까지 이 팀워크가 이뤄져 2019 S/S때 이분들과 함께 IHNN의 첫 번째 런웨이를 개최했다.

    반면 매우 대단한 분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오히려 거장이라 나 자신이 끌려갔던 것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브랜드를 끌고 나가고 앞으로 IHNN을 크리에이티브적인 면과 비즈니스 부문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다.



    Q. 향후 계획과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싶은지.

    MD 부문을 강화하고 싶다. 지금 타깃은 30대 초중반 혹은 그 이상인데 앞으로 엔드유저까지 알 수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파리 컬렉션도 기회가 있다면 추진해 보고 싶다. 내가 혼자 다 할 수 없는 것을 매니지먼트해 줄 수 있는 분이 오신 만큼 앞으로 브랜드를 더 탄탄히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뷰 마지막쯤 인치성 디자이너는 이렇게 얘기했다. “생각해 보면 여기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는 없었다. 오히려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 타국에서 열심히 한다고 응원해줘서 도전할 기회가 더 많았다”라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그가 운 좋게, 타이밍 좋게, 좋은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준비된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기회와 만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우연은 없다. 당시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을 뿐이다. 한국과 일본의 감성을 합친 밸런스 감각으로 한때의 유행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될 가치 있는 브랜드가 되길 기대한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9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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