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파, 최고 인기 잡화 브랜드로 부상
    인종 · 젠더 · 가격 다양성 이슈 제기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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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6.10조회수 8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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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의 회오리 속에서 ‘텔파(Telfar)’ 백은 최고 인기 잡화로 떠올랐으며 창립자인 텔파 클레멘스(Telfar Clemens)는 뉴욕 패션의 새로운 포스로 주목받고 있다. 텔파핸드백은 지난해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검색을 기록한 패션 아이템 중 3위를 기록했다. 또한 지난해 8월 이후 매주 검색률이 270%씩이나 오르는 놀라운 성장을 보이면서(Lyst : 10 Most-wanted fashion items in 2020) 패션인사이더나 텔파 커뮤니티를 넘어 대중적으로 인지도와 인기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폭발적인 인기 여세를 몰아서 텔파는 지난해 ‘올해의 잡화 디자이너상(CFDA Awards)’을 수상하기도 했다. 텔파의 급작스러운 인기는 상품의 퀄리티나 브랜드의 헤리티지, 디자인 미학과 같은 요인보다는 창립자인 텔파 클레멘스의 아이덴티티와 그가 지향하는 철학과 관련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성소수자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클레멘스는 그동안 전통적인 패션산업에서 아웃사이더였으나 그가 창립 때부터 주장해 온 ‘다양성에 대한 수용’은 현재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으면서 패션산업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의 흑인민권운동 BLM운동(Black Lives Matter)이나 젠더 이슈 등과 맥을 같이하면서 패션 이상의 것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주목받고 있다.






    텔파 = 젠더리스 잡화와 패션 지지하는 상징

    텔파는 뉴욕 출신인 텔파 클레멘스가 창립한 패션 레이블이다. 당시 18세의 대학생이던 클레멘스는 패션산업에서 젠더리스  젠더뉴트럴 개념이나 스타일이 나오기 10여년 전에 이미 텔파를 100% 유니섹스 패션라인으로 시작했다. 그는 ‘시장에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옷’을 만들고자 했으며, 이는 흑인 성소수자인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니즈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클레멘스는 라이베리아 이민자의 2세로 뉴욕에서 태어났고 메릴랜드에서 성장했으며 페이스 대학(Pace University)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정규 패션 교육을 받지 않은 채 2005년 텔파를 창립했다.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모델과 DJ 등의 일을 하면서 재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4년 론칭한 텔파 쇼핑백은 2017년 보그펀드(CFDA Vogue fashion Fund) 수혜를 계기로 업그레이드됐다. 클레멘스는 펀드로 받은 4억5000만원을 텔파 쇼핑백에 올인했다. 상품을 개선하고 다양한 컬러와 사이즈로 확대해서 2018년 리론칭했는데 이를 계기로 텔파백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클레멘스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비즈니스로 진전했다’라고 말한다.

    비건 레더 소재 사용한 심플한 박스 실루엣

    비건 레더 소재를 사용한 심플한 디자인에 TC(텔파 클레멘스)가 박힌 텔파 쇼핑백은 지난해 이후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블루밍데일즈 백화점 쇼핑백의 규격을 참고로 만들었다고 해서 ‘쇼핑백’으로 불리는데 박스 실루엣에 손잡이와 어깨끈이 달린 디자인으로 세 가지 사이즈로 제공되고 있으며 가격은 17만∼29만원 선이다.

    처음에는 센(SSENE), 슬램잼(Slam Jam), 우가부가(Ooga Booga) 등의 하이엔드 온라인 리테일러를 통해서 분배했으나 이제는 텔파(telfar.net) 사이트에서 DTC로만 판매한다. 매월 초에 핸드백 드롭을 제공하는데 그때마다 3000∼7000개의 수량은 단 몇 초만에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핸드백의 내부가 넓어서 실용적이고 가격이 높지 않아서 접근하기 쉬운 것 외에도 텔파백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특히 NY의 창의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이나 유색인과 성소수자들에게 텔파는 일종의 그룹 아이덴티티 심벌이 되기도 하며 NY 브루클린 지역에서는 신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당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

    의류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유니섹스를 지향하는 텔파 쇼핑백은 무엇보다도 셀러브리티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으로 텔파백을 꼽고 있다. 벨라 하디드, 셀레나 고메즈, 두아 리파, 솔란지 놀스, A$AP 같은 세계적 모델과 뮤지션들을 비롯해서 미국의 상원의원이자 유명 여성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지오 코르테스 등이 모두 텔파 팬으로 알려진다. 특히 코르테스가 텔파백을 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자 텔파백에 대한 검색이 163%, 수요가 270%나 폭등했다고 한다.

    ‘당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not for you, for everyone)’은 텔파의 슬로건이다. 클레멘스는 인종적 · 젠더 · 재정적(가격) 측면에서 포용성을 강조한다. 텔파백이 인기 있는 이유는 대중과 커뮤니티가 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럭셔리 하우스의 잇백이 하이 퀄리티 소재와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갖고 싶은 물건’이라고 한다면 텔파백의 잇백 위상은 사회의 비주류라고 볼 수 있는 흑인이자 성소수자인 클레멘스가 만드는 ‘젠더리스, 유니섹스 잡화와 패션을 지지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을 위한 프리오더 이벤트… 구매 기회 제공

    클레멘스는 패션산업에 대한 기존 이론이나 아이디어와 아주 상반된 것을 지향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상품의 독점성 대신에 접근성과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이는 텔파의 가격대가 높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선택된) 당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그가 기존 패션시스템을 깨뜨리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텔파 쇼핑백은 웹사이트에서 항상 품절이다. 드롭을 풀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기 때문에 실제로 손에 넣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는 클레멘스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슈프림처럼 드롭 때마다 제한된 수량을 풀어서 고객을 목마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텔파는 작은 브랜드로서 많은 양의 가방을 제공할 만한 재정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원칙인 ‘모두를 위한 것’으로서 원하는 고객에게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비정기적인 프리오더 이벤트인 ‘텔파백 보장 프로그램(Telfar Bag Security Program)’을 지난해 7월부터 운영했다. 드롭 때 방문자가 폭주하면서 사이트가 다운되면서 백을 구매하지 못한 고객을 위해 24시간 한시적으로 프리오더를 받았다. 지난 3월 말에도 36시간 한시적으로 두 번째 프리오더 이벤트를 운영했다.






    아웃사이더에서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텔파

    고객은 원하는 컬러와 사이즈, 수량의 핸드백을 오더하고 보증금을 지불하면 텔파는 이를 생산해서 상품을 배송한다. 딜리버리는 대체로 4∼5개월 소요된다. 결국 고객 친화적으로 공급 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옥션 사이트에서 부풀린 가격으로 리세일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핸드백으로 유명해졌지만 텔파는 NYFW(New York Fashion Week), PFW(Paris Fashion Week)에서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하는 패션 브랜드다. 뉴욕타임스는 텔파의 스타일을 ‘돌연변이 베이직스’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의 스타일은 실용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다. 진스, 조깅바지, 탱크톱, 후디 등의 기본 상품들을 변형한 디자인으로 언더그라운드와 스트리트 감성, NY의 클럽 분위기가 결합된 컬렉션을 제공한다.

    탁월한 NY의 패션을 보여주는 동시에 많은 뮤지션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클레멘스는 그들의 공연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특히 2019 F/W 시즌에는 NYFW에서 록뮤직을 제공하는 패션쇼를 제공해서 패션디스럽터로 간주되는 한편 2020 S/S 시즌에는 가장 국제적인 무대라고 할 수 있는 PFW에서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2020년 1월에는 ‘피티 워모’에 초대돼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텔파의 디자인과 콘셉트는 전통 패션산업 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텔파 지지하는 충성심 강한 파워 커뮤니티

    흑인 성소수자인 클레멘스의 아이덴티티는 텔파 브랜드의 중요한 부분이다. 옷과 잡화를 만드는 패션 브랜드지만 텔파는 클레멘스의 친구들과 주변인들을 대표하고자 한다. 텔파는 기존에 패션업계에서 소외를 느끼던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며 이들은 텔파 상품을 소유함으로써 그 연대감이 강해진다. 그리고 이들의 충성심은 종교에 비교될 만큼 강하다.

    텔파 커뮤니티는 최근 진 브랜드 게스의 텔파백 표절 사건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게스가 텔파백을 카피했다’라는 포스팅이 사진과 함께 올라오면서 화제를 일으키자 다음 날 게스는 문제의 상품을 바로 회수하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특이한 점은 이번 소동에 텔파 브랜드 측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텔파 측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표절 건을 공개하거나 사진을 포스팅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문제에 직접 나서서 해결한 측은 바로 활동가 같은 팬들과 커뮤니티였던 것이다.

    이번 표절 건에 대해서 텔파 측은 게스가 포인트를 놓쳤다고 말한다. ‘텔파백은 대상 물건(object)에 대한 것이 아니고 백의 문화, 백을 둘러싼 스토리, 백의 현상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백보다는 백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백의 상징성이 중요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텔파백은 표절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갭 · 어그 등 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도

    텔파의 인기와 쇼핑백의 성공적인 판매에 힘입어 텔파는 지난해 말 뉴욕에 위치한 사무실 공간을 두 배로 늘렸으며 계속 증가하는 배송 규모를 수용하기 위해서 뉴저지에 925.6㎡ 규모로 창고를 업그레이드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또한 글로벌 브랜드로부터 컬래버레이션 제안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갭의 러브콜을 시작으로 어그(Ugg)와는 1년간의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또한 나이키 소속의 컨버스(Converse)와 컬래버레이션으로 10피스 캡슐 컬렉션을 1월에 론칭하기도 했다. 컨버스는 콜드월(A-Cold-Wall), 타일러(Tyler), 앰부시(Ambush) 등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문화가 강하고 에지 있는 브랜드와 연계하는 전략을 운영 중이며 최신 파트너로 텔파를 선정했다.

    ‘Black Lives Matter’ 흑인 민권 운동 이후 흑인 소유의 논젠더(non-gendered)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하는 것은 컨버스의 젊은 고객들에게 컨버스가 얼마나 쿨한지 그리고 얼마나 사회적인 이슈를 반영하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동시에 텔파 입장에서는 빅 브랜드와의 연계를 통해 광범위한 고객들에게 노출되면서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텔파는 2020년대에 가장 중요한 브랜드?

    지난 3월 타임지는 ‘2021년 차세대 100인(2021 Time Next, Most Influential people)’을 발표했는데 이중 클레멘스는 이노베이터 부문에 선정됐다. 특히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6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뮤지션인 솔란지 놀스는 “텔파 클레멘스는 시대(time), 정신(spirit), 대화(conversation)다.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서 패션을 초월해서 그의 우주를 만들어 냈다”라고 타임지에서 그를 소개했다.

    사람들이 텔파를 좋아하는 것은 비주류로서의 클레멘스, 그가 지향하는 인종과 젠더에 대한 포용성을 공감하고 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넘어서 이제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는 액티비즘과 사회적인 의식 고조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액티비즘을 강조하는 브랜드나 이니셔티브가 있었지만 텔파는 실제로 액티비즘적 요소를 비즈니스와 매출로 전환한 예를 보여준다. 2020년대에는 브랜드들이 패션 이상의 가치와 사회적인 이슈 등을 포용하는 시대로 진전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1년 6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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