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英 패션산업 지각 변동?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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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8.09조회수 23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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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6월23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Britain + Exit, EU 탈퇴) 결정은 영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대형 뉴스였다. 투표 결과 발표 후 영국은 각각 EU 잔류와 탈퇴를 원하는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는 동시에 역사상 보기 드문 정치와 경제의 혼돈기를 겪고 있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영국의 파운드화는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가치가 하락했고 영국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은 계속 영국에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과연 패션산업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매우 우려하는 분위기다. 파운드화의 가치 절하로 해외 관광객이 몰리면서 단기적으로는 럭셔리 매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지만 전체 경기는 타격을 받아 비즈니스가 약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패션 리테일러에게 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됐는데 여기에 EU 탈퇴까지 겹쳐 더욱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결정을 통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은 소비자 자신감을 저하시켜 지출을 자제하도록 만들고 있다. 동시에 파운드화의 하락은 최종 상품의 가격 인플레이션을 초래함으로써 영국의 패션 산업과 리테일러들은 경쟁력이 약해지는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는다.

    43년 만에 브렉시트, EU 탈퇴까지는 수년 소요
    EU 잔류에 대한 찬반 국민 투표율은 72.2%로 1992년 총선 이후 가장 높아서 이번 안건이 얼마나 영국민들에게 중요한 이슈였는지 말해 준다. 사전 여론 조사와는 반대로 잔류 48%, 탈퇴 52%를 기록해 영국민은 EU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이 EU에서 나오는 과정은 생각만큼 짧고 쉽지는 않다고 한다.

    EU 멤버가 연합을 탈퇴하는 것은 유사 이래 영국이 최초다. EU 조약의 50항은 탈퇴 과정에 대해서 기술하는데 이에 따르면 2년에 걸쳐 상품, 서비스, 자본, 이동의 자유, 정치 등의 문제를 EU 이사회와 협상해서 탈퇴국과 EU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브렉시트를 마치는 데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실제로 EU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영국은 브렉시트의 결과를 이미 피부로 체험하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금융 시장에서는 6월27일 기준 영국 파운드화-미국 달러화 환율이 1985년 이후 최저치인 1파운드=1.32달러로 떨어진 것은 물론 「스포츠다이렉트(Sports Direct)」 「넥스트」 「막스앤스펜서」 「데번햄스(Debenhams)」 등 영국 패션기업의 주가 역시 급락했다.

    「넥스트」 「막스앤스펜서」 등 英 패션 주가 급락
    세계적 은행인 HSBC가 브렉시트 이후 런던에 있는 본사를 프랑스로 옮기겠다고 발표하는 등 세계적 금융도시인 영국 런던의 금융가 역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정치권 역시 여파가 만만치 않다. 보수당은 잔류와 탈퇴로 분열했고 결국 수상이 사임하고 새로운 당수를 선출했다. 야당인 노동당도 당수가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해 브렉시트를 초래했다며 의원들이 당수직을 사직하라고 공격하고 있다.

    런 가운데 잔류를 원한 사람들은 근소한 차이로 브렉시트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면서 ‘우리는 48%’라는 피켓을 들고 런던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하는 등 영국의 국민과 정치, 경제는 현재 가장 분열된 상황이다.

    영국패션협회의 CEO인 캐롤라인 러시는 트위터를 통해 “오늘 아침 뉴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브렉시트 소식에 반응했고 J. W. 앤더슨과 알렉사 청, 어데임(Erdem) 등은 모두 소셜 미디어를 통해 브렉시트를 믿을 수 없다며 실망감을 전했다. 그만큼 영국의 패션인들은 EU 잔류를 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캐롤라인 러시 등 EU 잔류 원한 영국 패션 산업
    「아소스(asos)」의 체어맨인 브라이언 맥브라드와 안야 힌드마치(Anya Hindmarch) 등은 영국의 1300여 기업체의 대표들과 함께 EU 잔류 캠페인에 서명하는 등 경제적 측면에서 EU 잔류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영국패션협회가 290명의 패션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 결과 90%가 브렉시트를 반대해 EU 잔류는 패션계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영국 대형 리테일러의 체어맨 50명 중 80%가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Korn Ferry 자료)했고 「버버리」의 체어맨인 크리스토퍼 베일리 역시 “영국은 EU 멤버로 잔류해야 더 강하고 안전하고 윤택할 것”이라며 브렉시트를 반대했다.

    하지만 국민 투표 결과는 EU 탈퇴였고, 영국 정부는 실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브렉시트를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과 글로벌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브렉시트는 그 협상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그때까지 정치적, 경제적, 법적 불확실성이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 290명의 90%, EU 잔류 ‘희망’
    이러한 와중에 소비자들의 자신감은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fK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응답자의 60%는 12개월 내에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보며, 영국인들의 개인 재정과 고가 상품 구매 등이 하락하는 등 결과적으로 구매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브렉시트는 최소한 2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어서 현재 소비 심리가 위축될 이유는 없지만 패션은 변동에 취약한 부문으로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 리포트에 의하면 2017년 영국의 리테일 매출은 3%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측돼 리테일러들은 이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Economic Intelligence Unit).

    브렉시트 이후 시작된 파운드화의 하락은 수입에 의존하는 의류 산업에 원자재 가격과 생산 비용의 인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패션 체인들은 아주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로 움직이며 특히 온라인 부문에서는 다양한 통화로 사고팔기 때문에 가격과 환율은 사업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소비자 자신감 하락, 리테일 매출 3% 하락 예상
    따라서 6개월 후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또는 마진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환율의 변동성은 패션 리테일러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영국 패션기업들은 달러화로 지불하기 때문에 의류 가격은 인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형 브랜드들은 환율 변화에 대비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현재의 가격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추가 비용을 커버하기 위해서 상품 가격을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넥스트」의 CEO 울프슨 경(Lord Wolfson)은 이처럼 가격을 올려야만 하는 시기를 약 1년 후인 2017년 여름경으로 전망한다.

    물론 영국의 대형 패션 리테일러들이 제조업을 영국 제조(Made in Britain) 이니셔티브를 통해서 영국 내로 들여온다면 저렴한 생산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부자재를 수입해야 하므로 이 역시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파운드화 가치 절하 - 의류 업계 비용 상승 효과
    브렉시트 후 최악의 시나리오는 영국이 유럽 국가들과 자유무역을 못 하게 되는 경우다. 수출입에서 관세가 붙는다면 상황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영국 패션 산업에서는 럭셔리부터 패스트패션까지 많은 부분을 유럽 생산에 의존한다. 럭셔리는 이탈리아에서 생산하고, 하이 스트리트는 동유럽과 포르투갈에서 패스트패션을 소싱한다.

    결국 현재 EU 내에서의 자유무역이 브렉시트 후 규제된다면 의류 생산의 서플라이 체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국경을 넘을 때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딜리버리 시간도 지연된다. 결국 영국 내 의류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겪을 것이고 그동안 의존해 온 유럽 소싱의 패스트패션의 속도 역시 느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리적으로도 사람들은 영국을 사업하기 어려운 대상(EU 멤버가 아니라서)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이처럼 그동안 유럽 단일 시장에 접근하던 것처럼 영국이 지속적으로 EU와 자유무역을 할 수 있을지에 패션 산업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U와 자유무역 종말, 의류 가격 인플레이션도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과정에서 만약 유럽 시민이 더 이상 영국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살 수 없게 된다면, 즉 자유이동(free movement)이 제한된다면 영국 패션 산업과 교육기관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패션에는 긍정적인 이민이 필요하다. 현재 영국 내 의류 제조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패션 하우스 전체 종업원의 70%가 외국인인 경우도 있다. 이유는 영국 내에 기술력을 갖춘 사람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특히 런던은 다양한 문화와 백그라운드의 디자이너를 보유한 곳인데 브렉시트로 자유이동이 규제된다면 이러한 인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물론 영국의 디자이너들이 파리와 밀라노 등 유럽의 다양한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것 역시 제한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英 디자이너들, 유럽 패션하우스서 근무 제한 위기
    현재 「알렉산더매퀸」의 사라 버튼, 「셀린느」의 피비 필로, 「끌로에」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 「메종마틴마르지엘라」의 존 갈리아노는 유럽에서 일하는 가장 대표적인 영국 디자이너들이다.

    이처럼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국적에 관계없이 유럽 내에서 일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은 브렉시트로 변화를 보일지도 모르겠다. 브렉시트로 기존에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국 디자이너들이 취업에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 영국으로서도 다양한 국적의 기술력과 고급 노동력, 재능을 갖춘 유럽 디자이너 등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국이 EU를 탈퇴하고 나면 그동안 영국으로 유입되던 유럽에서의 펀딩과 투자가 줄어들거나 아예 끊길 것으로 보인다. 영국패션협회(British Fashion Council)는 정부로부터의 지원 외에 유럽(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ing)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으나 브렉시트 이후에도 이 자금을 계속 지원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영국으로 유입되던 펀딩과 투자 감소에 대한 우려
    영국의 떠오르는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CFE(Centre for Fashion Enterprise)도 EU의 펀딩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브렉시트 후에는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영국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지도 모르는 상황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현재 영국 내 인수 합병 딜은 주춤한 상태다.

    브렉시트 투표 전부터 결정된 지금까지 불확실한 영국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혹시나 해외 기업들이 영
    국 투자를 꺼린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투자 딜이 정체를 보이더라도 저렴한 파운드화를 이유로 해외 투자자들이 서서히 영국 회사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난 7월13일 영국의 새로운 수상이 된 내무부 장관 출신의 테레자 메이에게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로 분열된 영국민을 단합시키고 유럽과의 관계 악화를 막아 성공적인 유럽 탈퇴 협상을 이끌어 낼 것을 기대한다. 새로운 수상이 그동안 어수선하던 국내외 분위기를 추스르고 부정적인 이미지의 브렉시트를 효과적으로 마무리한다면 영국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종식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저렴한 파운드화로 투자 매력 커진다 예측도
    하지만 EU 탈퇴를 통해 영국의 유럽 내 파워가 줄어드는 만큼 금융가를 비롯해 패션계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메이 수상이 어떤 경제정책을 운영하고 EU와 어떤 조건으로 협상을 이끌어 낼지 영국민과 경제 전문가, 패션 산업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브렉시트가 영국 패션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확하게 에측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아무것도 명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EU 탈퇴만을 결정했지 어떤 조건으로 언제 영국과 EU가 갈라서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국의 EU 탈퇴까지는 최소한 2~5년이 소요될 것이고 그때까지 길고 어려운 협상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패션은 창의 산업인 만큼 창의적이고 긍정적으로 이번 딜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다. 과연 브렉시트는 영국 패션 산업을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변화시킬지, 아직은 안개에 싸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패션비즈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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