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가와마사시치, 성공신화 주목

    조태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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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6.16조회수 7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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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중앙우체국 건물 재생이라는 컨셉으로 작년 대대적인 리뉴얼 후 오픈한 도쿄역 바로 옆의 쇼핑센터 키테(KITTE). 이 쇼핑몰은 일본의 모노즈쿠리와 미의식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매장들이 많이 오픈해 기존의 쇼핑센터와는 다른 입점 브랜드들로 크게 주목받았다.

    4층은 주로 라이프스타일 잡화 전문점이 입점해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월등한 집객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곳이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中川政七商店)이다. 매장 입구 한쪽 벽면에 과감하게 크게 한자로 써 놓은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은 브랜드 이름이자 회사명이기도 하다. 회색 벽의 목조 테두리에 하이라이트 조명으로 역광을 이용하고 중앙에 ‘中川政七商店’라는 골드색 한자로 장식한 심플하고 정결하면서 임팩트 있는 간판이다.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은 1716년 창업한 나라(奈良: 일본 지역명)에서 현재의 13대 사장까지 이어 오며 일본의 모노즈쿠리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점포*이자 중소기업이다. 이 올드 기업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사상을 지키면서 품질에 철저히 책임을 지며 모노즈쿠리를 깊이 연구해 브랜딩에 성공했다. 인테리어 및 생활용품에 근거해 삶에 필요한 기능적이고도 아름다운 도구들을 라이프스타일 셀렉트숍 형식으로 전개하며 급성장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 셀렉트숍으로 급성장

    각종 미디어를 비롯 잡지, 패션, 잡화, 디자인, 푸드, 카페 등 업계를 불문한 콜래보레이션 의뢰는 물론 13대 사장 나카가와 준 씨 또한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이자 컨설턴트로 의뢰가 쇄도할 정도이다. 운영하는 리테일 매장들은 많은 디벨로퍼에게 입점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 최근 루미네 신주쿠점에도 2개 매장을 오픈했다.

    역사가 오랜 기업이지만 10년 만에 12억 매출이 3000만엔(315억원)으로 급성장, 최근 발표에 따르면 처음에 직영점 3개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국 37개 매장으로 확장했다. 이들의 장점은 다양한 유통 형태의 매장을 보유하고 스스로 유통을 개척해 풍부한 콘텐츠와 아이템을 취급하는 것으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봐야 할 기업이다.

    수많은 노점포 가운데 왜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이 특히 주목받는것일까. 이곳은 시대에 맞춰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어떤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왔는지, 또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왔는지 궁금하다.





    마직물 전문 도매상점에서 시작해 전통 기술 계승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의 역사는 가마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은 고급 마섬유(나라사라시*)를 취급한 도매상점으로, 우수한 소재 직물로 역사적으로도 인정받은 뿌리 깊은 마직물 취급 전문점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점차 변함에 따라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수요가 줄어들면서 직물 분야는 점차 쇠퇴했다.

    고품질을 유지했지만 생산량은 10/1까지 줄어들었다. 에도 시대인 9대째에는 황실에서 쓰일 정도로 전통적인 모노즈쿠리를 고집했다. 10대째에는 공장도 만들었지만, 결국 제조법은 지키면서 생산을 거의 해외로 이전했다고 한다.

    지금 사장의 부친인 12대 사장은 어패럴 회사 온워드 출신으로, 처음으로 상품 기획과 리테일에 대한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어패럴 회사에서 쌓은 경험으로 도쿄 에비스에 처음 매장을 열었다. 차(茶) 문화의 역사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 다구(茶具) 등 관련 아이템과 상품을 전개하는 갤러리 개념의 리테일 매장을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세대에서 13대 사장까지 시대에 따라 변화

    2002년에 지금의 13대 사장 나카가와 준이 아버지 회사에 입사하면서 회사는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입사했을 때 회사에 대한 의문점이 있었다. 마직물 부문은 예부터 지금까지 주문을 받는 대로 그냥 만들기만 한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생산수량을 정하고 추가 생산 여부를 판단하는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냥 단순히 작업을 할 뿐, 예산도 없고 사업 개별 채산도 생산 계획도 없었다.

    현재 사장인 13대 나카가와 준이 입사했을 당시 마켓의 인테리어 숍 대부분은 해외 메이커들의 상품을 취급했다. 해외 제품을 찾는 손님이 많았기에 자연히 해외 인테리어 숍이 흥행한 것도 하나의 원인인데, 이를 보면서 그는 자사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뉴 브랜드 론칭으로 ‘새로운 일본’ 키워드 제안

    물론 새로운 브랜드의 론칭은 순조롭지 않았다. 「키사라」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브랜드 가치관과 비주얼 이미지를 세우고 전시회에도 참가했지만, 처음에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결국 2년에 걸쳐 브랜드 콘셉트를 뿌리부터 뜯어고쳤다.

    콘셉트 표현에서 어떻게 아웃풋할지 고민할 때, 도저히 사내에서 해결할 수 없으면 외부의 인재에게 부탁하는 등 힘을 빌렸다. 꼭 인테리어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기보다는 사람의 능력을 우선시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콘셉트를 공유하고 가치관을 이해하면서 생각을 같이하는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다 맡겨 버리면 브랜드는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정확한 콘셉트를 전달하고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게 계속 디스커션해 왔다.

    나카가와 준 사장은 “경영자가 ‘이런 걸 하고 싶다’라는 강한 의지로 브랜드 콘셉트를 제안해야 하며, 함께 고민하고 공유해야 좋은 콘셉트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은 ‘일본의 전통 공예나 전통적인 소재를 베이스로 현대 생활에 과부족한 기능적인 부분을 추가하는 디자인 상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명확한 가치를 명시한 후에 디자인 작업과 모노즈쿠리를 시작했다.

    명확한 가치관 콘셉트 설정→ 사내 공유→ 리테일 진출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일본의 형태’라는 콘셉트의 명확한 키워드를 만든다. 이렇게 브랜드 콘셉트와 디자인을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타이밍 좋게 2006년 오모테산도힐즈에 오픈할 수 있었고, 이것이 유통(리테일)에 도전한 첫 발판이다.

    리테일 매장에서 브랜드를 인식시키기 위해 표현한 키워드는 ‘선물(기프트)’이었다. 이렇게 큰 키워드 하나가 생기면 거기서 줄기를 만들고,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예를 들면 ‘도쿄에서 본 나라(奈良)→ 나라(奈良)에서 보낸 선물(기프트)전’,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이 알기 쉽게 풀어 나간다. 이렇게 매장을 전시회나 이벤트 형식으로 시작했는데, 이는 타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콘셉트에 이어서 고급 상품을 선호하고 품위 있는 상품을 찾는 손님들에게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선물 아이템이라고 하면 생활잡화는 물론 삶에서 쓰이는 인테리어 잡화까지 풍부한 아이템으로 확장된다. 직접 리테일에 관여하면서 고객을 알게 되고, 모노즈쿠리 기술은 물론 그 이상의 것, 즉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물건 하나하나 만드는 것에서부터 세세히 신경 썼다. 포장, 디스플레이, 매장 인테리어, 집기, 판매 스태프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해야 하는데 여기서 많은 노하우를 쌓게 된다.

    차별화로 디벨로퍼에게 환영받는 브랜드로 발신

    생활 인테리어, 생활잡화, 가방, 옷 등 패션상품, 키친용품, 차, 과자, 화장품, 액세서리, 스테이셔너리, 아동 유아용품까지, 삶에 필요한 도구를 테마로 한 수많은 아이템이 장식된 매장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울 만큼 즐거움을 주는 장소다.

    150엔짜리 사이다부터 엽서, 선물 박스, 포장지, 심지어 소금까지 없는 상품이 없다. 모든 상품은 철저히 그래픽 디자인을 하며 비주얼을 중시해 부가가치 높은 상품으로 보여 준다. 상품 하나하나의 스토리텔링은 물론 그 디스플레이 방식은 놀라울 정도다. 최종 소비자의 손에 닿기까지 상품이 눈에 띄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철저하게 디자인한다. 일본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모양이나 텍스타일을 현대 감각에 맞게 모던하게 해석해 스타일리시하기까지 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IT화가 모노즈쿠리를 지지한다는 점이다. 즉 철저한 시스템 체계가 잡혀 있다. 생산 관리부터 유통, 점포 운영까지 포괄적인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서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드는 상품이 많고 주로 다품종이며 로트가 적은 단점을 해결했다.



    IT시스템 + 부가가치 창출 디자인→ 독자적 SPA 시스템

    결과적으로 고객에게 상품을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IT 시스템은 수많은 취급 아이템을 모두 관리한다. 또 모든 상품은 최후까지, 즉 고객의 손에 닿을 때까지 철저히 디자인한다. 이 점은 바로 전통 공예를 SPA화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업계에 특화한 컨설팅, 유통 서포트 비즈니스를 창출한 것이다. 예를 들면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은 소규모 공예 메이커에 상품 기획과 디자인을 제공하고, 제품의 생산 로트에 대해 어드바이스해 주며, 상품을 매입해서 판매를 보증해 준다. 한편 지역 토산물(공예품) 매장의 경우 소비자의 니즈나 취향에 맞는 지역 공예품을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공급할 수 있도록 매장 운영 어드바이스까지 해 준다.

    자사 브랜드를 성공시켜 단순히 종횡무진하는 대기업 방식으로 무작정 발을 벌리는 사업 확장이 아니다. 특정 분야의 사업을 깊이 파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여러 회사와 손잡고 같이 브랜딩화해 상생하며 확대해 왔으며 바로 이 점이 특징이다. 근본은 어디까지나 창업 이래 취급해 온 마직물이나 나라의 특산 공예품을 주력 상품으로 해 이를 기반으로 베이스를 튼튼히 한 다음에 확장하는 모델이다.



    생활잡화부터 패션, 과자까지 풍부한 아이템

    이런 대표적인 예가 브랜드 「하나후킹」이다. 매년 수요가 감소하는 모기장 원단을 현대인의 삶에 맞게 행주로 변신시킨 상품이 1995년 7월 발표한 이래 쭉 롱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주만 연간 25만장을 팔고 있으며, 연간 매출은 1억7500만엔(18억원)을 넘을 정도로 베스트셀러다. 2008년도에는 굿 디자인 금상도 받았다.



    심플하면서 전통적인 색상에서부터 팝한 컬러나 체크무늬 포장까지 철저히 그래픽 디자인을 해서 나라의 직물을 삶에서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행주로 진화시킨 것이다. 어떻게 보면 행주라기보다 다양화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의 하나로 고객의 취향에 맞춰 풍부한 밸런스를 갖춘 독립적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판매를 비롯해 아마존에서도 평점 5점 만점에 전원이 5점을 줄 정도로, 보통 행주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일상생활에서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고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상품이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모노즈쿠리가 주목받고 있다. SPA와 넘쳐나는 패스트패션 속에서, 전통 기업과 직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본은 요즘 들어 더욱 ‘Made in Japan’을 외치는 풍조다. 이런 면에서 패션(옷)보다 라이프스타일을 콘셉트로 생활잡화를 테마로 삼고 수많은 디벨로퍼가 입점 브랜드를 찾는 지금, 진보한 소비자들에게 신선함을 주고 우리 것(Made in Japan)이 좋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모노즈쿠리에 각자의 유니크 믹스로 진화하는 일

    전통(물려받은 기술이나 상품들)을 그냥 기존 방식대로 제안하고 정해진 거래처에 납품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파는 방식은 이제 너무나 구식이라는 걸 깨닫고 브랜딩을 서두르는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흐름은 디벨로퍼들의 새로운 콘텐츠이자 차별화 전략이기도 하며, 동시에 일본 중소기업들과 손을 잡으면서 업계 상생 효과도 불러일으키니 기업 이미지도 좋아져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온다.

    전통은 어떨 때는 아주 중요한 발판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중요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을 어떤 수단으로 할 것인가’. 나카가와 준 사장은 그것이 바로 브랜딩이라고 한다. 브랜드가 성립하려면 신뢰를 심고 차별화하면서 긴 시간 동안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살아남아 있는 전통 공예 상품들은 이미 서서히 도태되고 있다. 이러한 공예를 패션잡화로 승화시키는 브랜딩은 간단하지가 않다. 단순히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만으로는 금방 들통이 나 한때의 붐에 그치고 그 장식은 금방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은 ‘디자인’과 ‘네트워크’라는 키워드를 아주 깊이 이해해 전통을 ‘귀중한 자원’으로 해석했고, 이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새로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이상의 이념을 근본으로 한 새로운 해석으로 일본다움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제 공예는 수단일 뿐, 토털 패션을 목표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잡화 브랜드로 탄생했다.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의 현재 경영자로 13대인 나카가와 준 사장은 ‘일본의 공예 재생’이라는 테마를 짊어지고 컨설턴트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13대의 젊은 사장이 가업을 이어 루미네에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왔을까.

    그는 교토대학 법학부 졸업 후 2000년 대기업 메이커 후지쯔주식회사에 입사해 시스템 엔지니어로 솔루션 영업을 담당하며 높은 업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당시 회사는 서열이 존재하는 곳이어서,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그 성과에 어울리는 포지셔닝을 얻을 수 있는 필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결국 2년 만에 퇴사하고 2002년에 가업을 이어 나카가와마사시치쇼텐으로 전직했다.

    그가 입사했을 당시 아버지 세대의 회사는 다구 등을 취급해 연간 9억엔(9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며 경영이 안정돼 있었지만, 노점포의 간판인 마 부문은 아주 적자였다. 위기감을 느낀 나카가와 준 사장은 회사를 개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백화점에 영업하러 가면 전통 도구나 마 소재의 파우치 상품은 특매품 매대에 진열돼 있는 것을 보고 무척 실망했다고 한다.

    ‘좋은 상품이어도 전달하는 방법, 전달하는 방식이 나쁘면 안 된다. 이걸 바꿔 보자’라고 결심했다. 입사 후 업무 시스템 도입 등 경영 시스템을 가장 먼저 재구축했고, 동시에 상품 개발, 제조, 유통, 리테일까지 모두 자사에서 운영하는 SPA 업태를 정착시키는 데 혼신을 기울였다.

    그는 “제품의 장점과 콘셉트를 정확히 잘 전달하려면 상품 기획력뿐만 아니라 유통, 판매, 리테일까지 자사에서 매니지먼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나카가와 준 사장이 말하는 브랜딩이란 ‘자사 브랜드의 브랜드력을 높이는 일’, 즉 ‘전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서 그것을 시장에 정확하게 전달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동종 업계로 적자에 힘들어하는 일본의 중소기업 노점포를 컨설팅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0년 이상 적자를 면치 못한 기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컨설팅은 어디까지나 과외선생님 역할이며, 중소기업도 컨설턴트를 두고 쓰며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지역의 중소기업 재생에 공헌한다는 의미로 도와주는 것으로, 그가 컨설팅한 회사는 지금까지 10개나 되며 모두 재생에 성공했다.

    약 300년의 역사가 있는 노점포이면서도 의외로 사제도 가훈도 없었는데, 그가 “일본 공예를 살린다!”라고 회사의 명확한 비전을 만들었다. “WILL(무엇을 하고 싶은가?), CAN(무엇을 할 수 있는가?), MUST(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이 3가지를 중심으로 회사의 비전을 생각했다. 이 비전은 2009년 전통 공예업계에 특화한 컨설팅 사업에 도입하면서 내세운 회사의 새로운 비전이자 목표다.

    자사 브랜드를 통해 쌓아 온 경험을 토대로 브랜드 매니지먼트나 유통, 판매 노하우, 시스템을 살린 경영 시점 등에 관해 여러 가지 조언이나 서포트를 해 오고 있다. 공동 전시회도 개최하면서, 메이커에게 부족한 유통 서포트를 위해 「대일본시」라는 브랜드까지 론칭했다.

    **패션비즈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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