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 프랑스 ‘마레’가 떴다?!

    이영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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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3.04조회수 9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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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부터 프랑스 브랜드들이 뉴욕에 속속 입성하고 있다. 「산드로」가 최근 네 번째 매장을 오픈한 데 이어 「바네사 브루노」가 팝업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고, 「이로(Iro)」가 3월에 뉴욕에 매장을 런칭한다. 마치 프랑스의 마레 지구가 뉴욕 거리를 점령한 듯한 모양새다. 이미 뉴욕에 둥지를 튼 「이자벨마랑」 「자딕&볼테르」 「마쥬」 「꼼뜨와드꼬트니에」 「서피스투에어(Surface to Air)」 「메종키츠네(Maison Kitsune)」, 그리고 「제롬드레퓌스(Jerome Dreyfuss)」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오죽하면 뉴욕 타임스가 최근 특집으로 “맨해튼에 프랑스 마레(Marais)가 뜨다”라는 기사를 실었겠는가. 최근 「산드로」가 뉴욕 소호의 스프링 스트리트(150 Spring Street)에 네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바네사브루노」는 지난 2월 6일부터 26일까지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소호의 그린 스트리트(131 Greene Street)에 팝업스토어를 오픈하면서 뉴욕 진출을 위한 간보기(?)에 나섰다. “2년 전 LA에 매장을 오픈한 후 지속적으로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기회를 엿봐왔고 뉴욕에 둥지를 트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숙원이다”라고 「바네사브루노」 측은 전했다.





    「마쥬」 「꼼뜨와드꼬트니에」 「메종키츠네」도
    ‘더 프렌치(the French)’라는 컨셉으로 꾸며지는 이 매장은 인더스트리얼한 공장 느낌으로 연출되며 메인 컬렉션 외에도 「라듀레(Laduree)」 「딥티크(Diptyque)」 「MK2」와 현지 플로리스트 코너 등이 함께 구성될 예정이다. 한편 「이로」도 3월 뉴욕 소호에 첫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고 이미 뉴욕에 3개의 매장을 연 「마쥬」는 매디슨 애비뉴에 4번째 매장을 런칭하며 올여름 「자딕&볼테르」가 브룸 스트리트(453 Broome Street)의 고메 그로서리(Gourmet grocery) 창고 자리에 플래그십 매장을 연다.

    요즘 한창 주가가 오른 「카르방(Carven)」도 뉴욕 매장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무엇이 프랑스 브랜드들의 뉴욕행을 유도하고 있나? 세계적으로 핫한 패션의 중심지라는 지리적 이점 외에도 미국시장에 중고가대의 고감도 브랜드의 부재가 상대적으로 프랑스 브랜드들의 경쟁력을 높이며 뉴욕 진출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또한 아메리칸 시크, 베이직으로 대변되는 브랜드, 「알렉산더왕」 「필립림」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 등이 고가인데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쿨한 프렌치 시크 브랜드들이 니치마켓에서 선전하고 있다.





    중고가대 고감도 브랜드 부재한 뉴욕 틈새 노려
    세계 최대의 마켓 뉴욕 맨해튼에 패션의 중심 파리발(發) 브랜드가 진출하는 것이 이 시점에 특별한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다. 우선 유럽시장 경기 침체로 인한 해외시장 진출이다. 「산드로」 「마쥬」 「자딕&볼테르」 등은 유럽 유명 쇼핑 도시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있는 프렌치 브랜드. 몇 해째 고전을 면치 못하는 유럽 경기 침체로 북미,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역시 경기가 어렵지만 여전히 미국은 비즈니스 규모가 크고 매력적인 시장이다. 시작은 물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미국 패션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거점인데다가 거대 관광 도시 뉴욕에서의 성공은 북미시장뿐 아니라 다른 해외시장으로 가기 위한 좋은 발판이 되기도 한다.

    온라인 스트리트 패션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글로벌 패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가 높아졌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패션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실시간으로 소개되는 여러 도시의 스트리트 패션 사진들을 보며 트렌드와 스타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맨해튼에서 아이패드를 통해 파리 패션위크의 스트리트 사진을 참고하며 쇼핑하는 식이다.


    유럽 경기침체, 미국 아시아 진출 돌파구로
    예전에는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보면 어느 도시에서 찍힌 사진인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뉴욕 소호에서 찍힌 사진과 파리 마레에서 찍힌 사진을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온라인을 통한 활발한 교류로 도시별 패션 스타일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렌치 브랜드도 패션에 민감한 뉴욕의 고객들을 어렵지 않게 사로잡을 수 있게 됐다.

    과거에도 패션 도시들에서 포착된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매거진과 온라인을 통해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스트리트 패션이 중요했던 적이 있던가. ‘탑 다운(Top-down)’ 형식으로 하이패션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시장으로 확대되던 전통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패션위크에 컬렉션을 소개하는 디자이너들이 오히려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를 보며 영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WWD, 스타일닷컴, 뉴욕 타임스 등 유명 패션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들도 저마다 스트리트 패션 섹션을 마련해두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 도시별 패션 경계 허물어
    이런 흐름 속에서 뉴욕에 잘 안착한 프렌치 브랜드들의 사례가 나오고 있다. 통상 뉴욕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명품을 제외하고는 프렌치 패션 브랜드의 미국시장 진출이 어렵다고 말한다. 패션에 대한 정서와 소비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시장을 정복하면 파리를 비롯한 세계 어느 마켓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다.

    하지만 뉴욕 진출 이후 자리를 잘 잡은 「아페쎄(A.P.C)」 「자딕&볼테르」 같은 사례들이 생겨나며 용기를 얻는 분위기다. 이런 브랜드들은 대체로 다양한 패션과 소비자들이 공존하는 소호(Soho) 지역에 스토어를 오픈하는 것을 선호한다. 소호는 상대적으로 젊고 패션에 보다 열려 있는 고객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명품들이 즐비하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고객들이 많이 찾는 어퍼 이스트의 렉싱턴(Lexington), 매디슨(Madison) 애비뉴 쪽이나, 명품과 SPA 브랜드의 메가 스토어가 즐비한 핍스(5th) 애비뉴, 아메리칸 캐주얼이 세계 관광객을 만나는 타임스퀘어보다는 소호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소호 이어 웨스트 빌리지  미트패킹 등서 안착
    일단 소호에서 자신감을 얻은 브랜드들은 웨스트 빌리지의 블리커(Bleeker) 스트리트나, 미트패킹(Meat-packing)에서 보다 패션과 브랜드를 잘 이해하는 적극적인 소비자들을 만나며 맨해튼 내 비즈니스를 확대해가는 추세다. 그야말로 패션으로, 브랜드의 디자인과 스타일로 승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글로벌 명품 하우스, 뉴욕 패션위크 소속 디자이너 브랜드, 글로벌 SPA 브랜드, 아메리칸 캐주얼 브랜드가 시장을 나눠 가진 뉴욕시장에서, 대거 몰려든 중고가 고감도 프렌치 브랜드들의 성적표에 시선이 집중된다. 프랑스 브랜드들은 미국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미국의 뮤즈들을 광고 캠페인에 기용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산드로」는 미국의 저명한 작가 헤밍웨이의 손녀딸 드리 헤밍웨이(Dree Hemingway)를, 「마쥬」는 소설가 대니얼 스틸의 딸로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바네사 트레나(Vanessa Traina)를, 그리고 「자딕&볼테르」는 텍사스 출신의 모델 겸 디자이너인 에린 와슨(Erin Wasson)을 브랜드의 뮤즈로 선택했다.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이 곧 프렌치 라이프스타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패션비즈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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