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계보 잇는
    디자인 파워

    lalala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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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2.11조회수 9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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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런던패션위크(LFW) 행사가 열리던 때 런던 브룩 스트리트(Brook Street)에서는 런던으로 다시 돌아온 루엘라 바틀리(Luella Bartley)의 첫 번째 단독 리테일 매장 「루엘라(Luella)」의 오픈 파티가 열렸다. 영국 내의 모든 일간지와 잡지·뉴스 등은 패션 위크가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듯한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으로 루엘라 바틀리의 컬렉션을 시작한 2000년 런던패션위크에서 그는 바이어가 누구인지, 모델이 누구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작은 무대에서 쇼를 열었다. 당시 그녀가 가진 전 재산을 털어 쇼를 한 루엘라 바틀리는 자신이 지내던 아파트의 렌트 비용조차 지불하기 빠듯하던 형편이었다. 런던컬렉션과 단 한 차례의 밀라노컬렉션을 거쳐 6년간 뉴욕컬렉션을 진행하는 동안 그녀는 가장 영국적인 히트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영국이 자랑스러워 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해 다시 런던에 컴백한 것이다.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연간 50만파운드(약 1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그녀가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은 2007년에 연간 900만파운드(약 170억원)로 총 매출은 놀랍게 상승했다. 패션 디자이너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온 루엘라 바틀리는 런던 메이페어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패션도시에 단독 매장과 컨세션 매장을 늘리는 등 글로벌라이징을 가속화하고 있다.

    패션 저널리스트에서 디자이너로



    루엘라 바틀리는 패션에 관심을 가진 여느 다른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세인트마틴의 우먼스웨어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녀는 패션 저널리즘의 학위를 받으며 졸업했고, 이후 전 세계 패션쇼 하우스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해당 디자이너의 시즌 컬렉션 기사를 써 내려가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루엘라 바틀리가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영국 주요 일간지인 이브닝스탠더드(Evening Standard)의 패션전문 기자를 거쳐 영국 보그(Vogue)지에서 1년 6개월을 일한 뒤의 일이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만들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이티 그랜드(Katie Grand : 현재 영국 ‘POP’ 매거진 편집장)조차도 믿지 못했다고 한다. 99년 F/W 데뷔 컬렉션에서는 케이트 모스와 프랭키 라이더와 같은 톱모델이 런웨이를 해 주목을 받았다. 이와 함께 이듬해인 2000년 F/W 컬렉션에서 영국 엘르(ELLE)가 주최하는 스타일 엘르 어워드(Style Elle Award)에서 ‘올해의 영 디자이너(Young Designer of the year)’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밀라노로 본거지를 옮겼고, 2002년 마침내 미국 뉴욕 컬렉션에서 영국적 모티브를 통한 디자인 컬렉션을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을 꼽으라면 비비안 웨스트우드, 폴 스미스, 알렉산더 매퀸, 스텔라 맥카트니, 존 갈리아노 등이다. 최근 이들을 잇는 디자이너로 루엘라 바틀리와 크리스토퍼 베일리, 개리스 퓨와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을 꼽는다. 세대를 이어가는 이들의 디자인 특징은 모두 ‘브리티시 파워’에 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영국식 패션은 전통적으로 쉽게 상상하게 되는 「버버리」의 느낌.



    BRIT-BORN 디자이너 美 문화믹스

    특히 베이지 색의 트렌치 코트에 체크무늬 원단 또는 신사의 나라에서 오는 세련된 댄디룩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모티브로 통하는 것은 위트와 펑크다. 루엘라 바틀리는 이런 영국적 모티브를 매 시즌 가장 적절하게 반영해 재미있고 위트있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보여준 200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그녀는 드레스에 군용 견장을 단다든가, 배트맨을 연상시키는 케이프에 작은 꽃장식을 이용한다든가, 날카로운 팬츠 수트에 재미있는 배트 로고가 있는 트윈니트를 매치해 바이어와 패션계를 놀라게 했다. 언론에서는 특히 루엘라 바틀리가 지극히 영국적인 요소와 지극히 미국적인 요소를 세련되게 배치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런 문화적인 믹스매치 요소들은 루엘라 바틀리에게 매출을 높일 수 있고 넓은 미국 시장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영국의 클래식 가죽 액세서리 브랜드 「멀버리(Mulberry)」는 루엘라 바틀리의 디자인을 높이 사며 이전 컬렉션에서 액세서리 디자인을 보여준 적이 없는 루엘라 바틀리와 200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Luella for Murberry’라는 이름으로 콜래보레이션을 맺었다.



    「멀버리」 유통 타깃과 콜래보레이션

    루엘라 바틀리의 멀버리 가방은 ‘잇 아이템(it item)’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모델 케이트 모스, 스칼렛 요한슨과 같은 셀러브리티가 파파라치 사진에 찍히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고 브랜드 ‘루엘라’에도 많은 변화를 갖게 되는 전환점이 됐다.

    매스티지로 대박 터트린 루엘라
    2006년 미국에서는 루엘라 바틀리의 클래식과 펑키한 스타일의 매력적인 만남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미국의 거대 체인인 타깃에서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 제1탄으로 루엘라 바틀리를 지목했다. 타깃 담당자는 루엘라 바틀리가 영국을 모티브로 미국을 자극하는 디자인을 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서 대중적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미 앞서 「H&M」이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로서 칼 라거펠트, 스텔라 매카트니 등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들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했지만 미국에서 있은 루엘라 바틀리와 타깃의 만남은 조금 색달랐다. 「H&M」의 콜래보레이션이 한정된 매장에서 판매됐다면 루엘라의 타깃 컬렉션은 미국인들이 동네 가게에서 핫케이크를 사먹는 것만큼 손쉽게 만나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타깃은 미국의 유명 디자인 스쿨인 파슨스로부터 학생들을 선발해 ‘스트리트 팀’이라는 이름으로 이동식 부티크를 만들었다. 루엘라 바틀리가 영국 출신 디자이너라는 것에 착안해 영국의 이층 버스를 매장화해서 뉴욕의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쉽게 만나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 이는 루엘라 바틀리의 디자인·마케팅·판매가 3박자를 이뤄 큰 성공을 거둔 사례다.



    홍콩 럭셔리 기업 CLUB 21과도 조인

    2002년에 브랜드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멀버리백 성공으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루엘라 바틀리는 더욱 활발한 판매·마케팅·PR을 위해 이 분야의 전문가인 ‘Club 21’과 라이선스를 맺었다. 현재까지도 Club21은 브랜드 루엘라의 마케팅, PR과 리테일, 홀세일 등의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생긴 런던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시작으로 10월에는 아시아 첫 단독 매장인 홍콩의 유니온 스퀘어에 있는 엘리멘츠(Eliments)에 매장을 오픈했다. 이에 앞서 파리의 프랭탕 백화점 내에 숍인숍(루엘라 바틀리의 첫 컨세션 매장)에 입점하는 등 세계의 주요 패션 도시에 단독 매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글로벌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루엘라 바틀리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CLUB 21은?
    Club21은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선두 주자로서 현재 4개 대륙 38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도매(Wholesale Distribution), 소싱(Sourcing), 브랜드 가디언, 리테일 관리 등의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 대륙과 나라 간의 다른 고객에 대한 이해 및 관계를 바탕으로 가장 완벽하고 부드럽게 고객과 브랜드 간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을 주고 있는 기업이다.

    브랜드 특성에 따라, 나라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며 브랜드 캐릭터는 완벽하게 보전하며 PR·마케팅·리테일 분야에서 완벽하게 대처해 브랜드의 캐릭터는 살리면서도 마켓과 소비자를 늘려 나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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