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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ight >
多브랜드 지고 빅브랜드 뜬다
Monday, Feb. 10, 2014 | 김숙경 발행인, mizkim@fashion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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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조원 규모에 육박하는 국내 패션시장에 다(多)브랜드 시대가 물러나고 빅브랜드 시대가 본격 도래하는 것일까? 최근 패션시장에 나타난 흐름을 놓고 보면 이러한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저성장시대에 맞춰 패션기업들은 다브랜드 전개로 힘을 분산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빅브랜드 육성에 포커스를 두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수십조원 규모의 글로벌 브랜드들이 속속 유입된 가운데 이들과 한판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초 체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헤비급 선수들과 싸워야 하는데, 최소한 미들급 수준으로 기초 체력을 갖춰야지 피땀 흘려 갈고 닦은 기술이 그나마 통할 수 있다는 것. 경량급 수준으로는 링 위에서 상대조차 되지 않는 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일단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위해 국내 패션기업들은 비효율 브랜드를 정리하고 빅브랜드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래서일까? 패션 대기업을 비롯해 주요 패션기업들의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작년 한 해에만 40여개 브랜드가 ‘패션 코리아호’에서 하차했다. 직수입을 제외한 나름대로 수백억원 규모의 볼륨외형을 유지하던 제도권 브랜드만 손꼽은 숫자다. 도매시장의 브랜드 숫자까지 감안하면 100개는 족히 될 것이라는 추산이다. 무엇보다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왔던 패션 대기업들도 방만한 운영에 제동이 걸리면서 브랜드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패션 대기업마저… 작년 한 해 40여개 중단
국내 최대 패션기업인 이랜드그룹(대표 박성수)도 작년 하반기에 여성복 「테레지아」를 추가 중단했다. 이에 앞서 작년 초에는 캐주얼 「쉐인진」과 「콕스」, 아동복 「언더우드스쿨」과 「리틀브렌」의 국내 영업을 중단하는 등 비효율사업부를 가차 없이 도려냈다. 이랜드는 한때 90개(이랜드리테일(PB포함)) 가까운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50개 정도로 정리된 가운데 SPA 중심의 빅브랜드 전략을 수립했다. 신규 SPA 런칭 또는 동일 조닝의 소규모 유사 브랜드를 묶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대표 브랜드로 만들어 내 글로벌 SPA와 맞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스파오」에 이어 여성복 「미쏘」와 이너웨어 「미쏘시크릿」을 SPA 브랜드로 선보인 데 이어 「후아유」와 「로엠」도 SPA로 전환했다. 여기에 새로 신발 SPA인 「슈펜」을 선보이고, 아웃도어 SPA인 「루켄」을 런칭했다. 아동복은 비경쟁 브랜드를 정리해 「유솔」로 흡수 통합했으며, 「로이드」 「클루」 「OST」를 묶은 주얼리 SPA도 검토 중이다. 작년에 패션 부문 매출로 4조9000억원(중국 및 글로벌 포함)을 달성한 이 회사는 프랜차이즈 유통 중심의 다브랜드 전략을 포기하고 대형 직매장 중심의 빅브랜드 전략으로 신성장동력을 만들면서 국내 패션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패션부문 대표 윤주화)의 경우 1년 수명을 연장했던 여성 캐릭터 「에피타프」와 「니나리치맨」의 영업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작년 초 캐주얼 「후부」와 여성복 「데레쿠니」를 중단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대신 이 회사는 6000억원 규모로 성장한 패밀리 브랜드 「빈폴」과 런칭 3년차에 접어든 「빈폴아웃도어」, 그리고 토종 SPA의 대표주자로 내세운 「에잇세컨즈」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한다. 또한 구관이 명관이라고 여성복은 「구호」와 「르베이지」에 집중하고, 남성복은 「갤럭시」와 「로가디스」에 힘을 모은다.
「에피타프」 「테레지아」 ‘스파이시칼라’ 등도
LG패션(대표 구본걸)은 작년 한해 「헤지스」의 라인 익스텐션으로 선보였던 「헤지스스포츠」를 중단했다. 모브랜드인 「헤지스맨즈」와 상품 중복성이 있다고 판단, 이를 정리한 것. 스포츠캐주얼로 선보인 「버튼」은 수입파트만 남기고 의류 라이선스 사업을 정리했다. 올해 들어서도 비효율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I」 「W」등 몇 몇 브랜드를 놓고 검토 중에 있다. 대신 이 회사는 「헤지스」와 상품을 재정비한 「라푸마」에 힘을 쏟는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대표 박동문)은 여성복 「쿠아」의 사업을 종료한다. 지난 F/W 시즌 SPA에서 영캐릭터로 전환하며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했으나 결국 중단을 결정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대표 최홍성)은 작년에 편집숍 ‘서티데이즈마켓’과 캐주얼 「제이홀릭」을 포기하고 M&A 후 탄력을 받기 시작한 「톰보이」 키우기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주춤했던 여성복 「보브」와 「지컷」도 올해 반전을 꾀하고 있는 가운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 그리고 신규 아웃도어 「살로몬」 등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전문화보다는 종합화를 향해 치달았던 패션기업들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정책에도 커다란 변화가 감지된다. 여성복 전문기업인 시선인터내셔날(대표 신완철)은 남성복 「켈번」을 선보였으나 작년에 오프라인 브랜드 사업을 중단했다. 어려운 시장여건 속에서 경험이 짧은 남성복 영역에 자금과 인력을 쏟기보다는 차라리 기존 여성복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체성이 불명확했던 여성복 「칼리아쏠레지아」 역시 「에스쏠레지아」에 흡수 통합됨에 따라 이 회사는 「듀메이드」와 「아임」을 포함해 총 4개 브랜드를 정리하고 「미샤」 등 기존 여성복 5개에 집중하면서 내실을 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토털 패션기업 전략에서 전문화로 방향 선회
유아복 전문기업인 아가방(대표 구본철)은 대형마트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베이직엘르」를 작년에 정리했다. 상표권 사용 계약을 맺고 고가의 로열티를 지급하면서 대형마트에서 라이선스 브랜드를 전개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구조조정 작업 외에도 작년 한 해 패션 전문기업들의 부도 폐업 또는 워크아웃 신청 등 부실경영에 따른 브랜드 중단 사태 역시 적지 않았다. 송원그룹에서 의욕적으로 투자했던 동대문 기반 사입 편집숍 모델인 ‘스파이시칼라’도 2월 말일자로 백화점 영업을 중단한다. 임대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 1~2개 직영점에서 재고를 소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년 하반기에는 골프웨어 브랜드들이 줄줄이 중단됐다. 「김영주골프」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가운데 「벤호건골프」 「트레비스」 「앙드레김골프」도 브랜드 영업을 중단했다. 이에 앞서 여성복 「페이지플린」 「가나레포츠」, 남성복 「옴브루노」 「헤리스톤」 「프라이언」, 골프웨어 「힐크릭」, 캐주얼 「핀앤핏」 등도 브랜드 중단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브랜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경기침체의 길고 짙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하차하고 말았다.
규모 갖춘 신규 런칭 브랜드 이번 S/S 6개 그쳐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막강 포식자’로 군림해 왔던 패션 대기업부터 중소 패션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본격적인 브랜드 정리작업이 속출하면서 국내 패션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작년 한 해 40개 브랜드가 자취를 감춘 반면 올해 제도권 시장에 합류하는 신규 브랜드 숫자는 수입을 포함해 20여개에 불과하다.
대규모 선투자가 요구되는 로컬 브랜드 런칭 소식은 SK네트웍스의 여성복 「세컨플로워」, K브랜즈의 남성복 「탑기어」, JNG코리아의 컨템포러리캐주얼 「시에로」, 트라이본즈의 셔츠 「질바이질스튜어트」, 한섬과 보끄레머천다이징의 패션잡화 「덱케」와 「지나미」 등 6개에 불과하다. 고비용 구조에 성공확률도 3~4%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규 브랜드 런칭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한국 패션산업의 활력소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규모가 작은 브랜드들이 줄줄이 정리된 가운데 빅브랜드 파워는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일본 SPA인 「유니클로」는 한국 상륙 8년 만에 매출 7000억원에 육박했다. 이 여세를 몰아 「유니클로」는 한국 패션시장에서 ‘매장 300개 매출 3조원 달성’을 목표로 세워 놓고 있다. 스페인 SPA인 「자라」 역시 작년 40여개 매장에서 2500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회사는 한국 패션시장에서 80개 유통망에서 매출 1조원을 실현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워 놓고 있다. 스웨덴 SPA인 「H&M」과 미국 SPA인 「갭」 등도 공격적인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아웃도어 사천왕, 익스텐션 없이 5000억 돌파
스포츠 조닝의 대표주자인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이미 국내 패션마켓에서 판매가 기준 1조원 매출을 넘어섰다. 최근 5년 동안 폭발 성장을 기록했던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 「K2」 「블랙야크」 등 4천왕 아웃도어 브랜드 역시 작년 소매가 기준 매출로 6000억원을 돌파했다. 사모펀드 MBK에 인수된 「네파」도 5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아웃도어 조닝의 대표주자들은 단일 브랜드로 빅브랜드 시대를 활짝 열었다.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는 SPA와 스포츠 아웃도어 조닝의 브랜드가 국내 패션시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들 브랜드가 최근 5~6년 동안 보여준 성장세를 보면서 그동안 패션기업들은 ‘컨셉’ 또는 ‘포지셔닝’에 스스로 함몰돼 소비자를 한정짓고 규정지으면서 브랜드 규모를 축소지향으로 끌고 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디자이너 감성이 요구되는 캐릭터 브랜드와 대중을 겨냥한 볼륨 브랜드와는 프로세스가 달아야 함에도 국내 패션기업들은 동일 잣대와 기준을 세워 놓고 소비자들에게 취사선택을 강요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미 소비자들은 똑똑해지고 스마트해져 있다. 글로벌 수준의 감성과 표현 능력을 갖춘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매장 환경을 마련해 주고, 지속적인 상품개발과 상품공급이 뒤따른다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패션 대국으로 가는 길=다양성 공존 필수불가결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승자독식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점이다. 「유니클로」 「자라」 「H&M」, 세 브랜드의 작년 매출은 판매가 기준 1조원 규모다. 이들의 비약적인 성장 뒤에는 200억원대 로컬 소형 브랜드 50개의 몰락이 깔려 있다. 인구 수는 늘지 않고 성숙기 시대의 제로섬 게임에 돌입한 국내 패션산업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모가 작은 브랜드들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규모가 작은 브랜드는 소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패션시장은 넘치는 수요만을 믿고 각각의 브랜드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패션시장이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는 여기서 비롯된다. 대기업은 대기업의 구조와 시스템에 맞게,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의 상황에 맞게 내부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최적의 비즈니스 구조를 갖춰야 한다. 특정 소수를 겨냥한 부티크형 브랜드부터 스마트하고 똑똑해진 대중을 겨냥한 볼륨 브랜드들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세우고 지속 성장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작년 한 해 대다수 패션기업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최악의 위기 상황에도 패션사업의 본질에 충실했던 기업들은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상승세를 탔다. 좋은 상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안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패션기업들은 커다란 호기를 맞았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않고 중장기 비전을 갖고 각각의 포지셔닝에 맞게 브랜드를 키워 나가는 노력들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기’라는 말이 있다. 지금 바로 각자의 조닝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거기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패션비즈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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