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싸게, 잘~' 디렉터는 괴롭다

    esmin
    |
    11.10.17조회수 3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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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소비자가 대충 제안해주는 상품으로 만족하나요? 매일매일 할리우드의 셀러브리티들이 무엇을 입고 어디 가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쇼핑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요즘 한국 소비자들인걸요.” “크리에이티브요? 아이덴티티요? 아이고~ 그런 단어는 한국 패션사전에서 없어진 지 오래 아닌가요? 옆집 샘플 사다 던져주며 ‘그대로 만들라’는 사장님 등쌀에 웬 크리에이티브?” “빨리 만들어야죠. 싸게 만들어야죠. 그러면서도 잘~만들어야죠. 아무리 죽어라 뛰어도 매출 안 나오면 집에 가야죠.”

    2011년 10월 현재. 대한민국의 디자인 디렉터는 너무 괴롭다. 뛰어가는 소비자는 죽어라 쫓아가도 잡히지 않고, 기어가는 기업은 바뀌지 않은 10년 전 시스템에 몸은 갇혀 있는데 온갖 글로벌 브랜드 흉내를 내라고 한다.「 ZARA」의 속도감을 따라잡으라 하고「 H&M」의 가격을 따라잡으라 하며 때로는 「구치」 같은 마케팅을 흉내 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옆집에 무엇이 잘 팔리고 있으니 만들라 한다. 게다가 어제까지 카피를 미덕으로 여기던 '사장님'이 오늘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왜 이렇게 크리에이티브하지 못하냐'며 구박이다.


    할리우드 셀럽 옷차림 실시간 검색하는 소비자

    「ZARA」「 H&M」「 유니클로」「 포에버21」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을 어마어마하게쏟아내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강세,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 어디든 접속해 원하는 옷을 싼값에 골라 살 수 있는 온라인 시장의 무한대 성장, 매일매일 실시간 제공되는 글로벌 패션정보, 친절하게 풀착장 센스를 공급해주는 수백 가지의 패션잡지와 사이트. 그 안에서 소비자들의 성장속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온오프라인에 널려있는 수십 가지 미디어를 통해 잘 학습된 이들의 패션 센스는 더한층 높아지면서 이들은 글로벌한 수준의 감각에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옷을 원한다. 게다가 무척 합리적인 가격대에 절대로 값싸 보이지 않는 고급스러움까지 요구한다.

    반면 기업의 상품기획 시스템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글로벌 소싱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품을 기획하는 디자인실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는 비슷하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엄청난 투자(비용적, 시간적)를 요하는 일이며 이는 일정 기간의 위험요소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은 늘 백화점에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매출을 유지할수 있는 판매력을 요구받는다. 이 요구는 디자인실에게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바라보고 상품을 기획하기보다, 당장의 실적과 손익이 더 중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즐 지금 잘 팔리는 물건을 빨리빨리 만들어내야한다는 것이다.


    10년 전 시스템으로 최신 글로벌 트렌드 잡아라?

    ‘빨리빨리’를 위해 결국 품평회 기간은 날로 짧아지고 횟수는 늘어난다. 과거 시즌마다 했던 품평회가 이제 1개월에 한 번씩이다. 돌아서면 다음 품평회를 준비하느라 숨쉴 겨를이 없다. 동시에 2주일에 한 사이클이 돌아가는 패스트 패션과 경쟁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의 상품을 내놓아도 온라인으로 실시간에 퍼지므로 대박을 기대하기는 옛날보다 훨씬 힘들다. 히트를 치더라도 그 양은 비교할 수 없이 줄었다. 게다가 디자이너 목숨은 파리목숨이다.

    숫자로 증명되는 실력과 이익창출이 되지 않으면 바로 해고되는 현실…이런 현실 속에서 패션디자이너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할 곳이 없다. 디렉터에 대한 필요성은 높아지지만 사람은 없고 스카우트 경쟁만 과열된다. 디렉터에 대한 판단 시기도 점점 빨라진다. 심지어 한 디자인 실장은 디렉터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사전 통보 없이 해고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브랜드의 컨셉을 책임지는 디렉터들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이들이 걸머진 스트레스는 책임져야 할 매출, 상품력, 속도감에 정비례해 점점 커진다.


    유능한 디렉터 찾는다 3개월 만에 해고하기도?

    빨리빨리를 강조하며 글로벌 패스트 패션을 따라가느라 헉헉댔던 지난 3년간 국내 패션계 현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비슷비슷한 상품에 심지어 동대문 상품을 라벨갈이하는 상품까지 채워넣느라 대부분 브랜드들은 수준이 동반하락했다. 브랜드별 아이덴티티는 커녕 갖고있던 강점들마저도 사라졌다. 하지만 모두가 다 패스트 패션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디렉터에게 주어지는 일의 강도가 너무 세다. 이는 100년간 살아남을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할 패션산업의 난센스다. 게다가 지금 기업은 이러한 일련의 현실을 인정하고 프로세스를 바꿔야 한다. 동시에 기업이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하다.

    ‘글로벌 소싱’을 예로 들자. 우리가 글로벌 소싱을 부르짖은 지는 기껏해야 5년? 하지만 글로벌 소싱을 기업이 받아들여 이를 정착시키려면 이는 과감한 혁신과 함께 인내심 있는 긴긴 싸움을 필요로 한다. 이는 디자인실 중심, 사람(디자이너) 중심의 시스템을 MD 혹은 MR(Merchandising Resourcing) 중심으로 축이 이동함을 뜻한다.


    매월 진행하는 품평회 창의성 커녕 소모전을

    또한 이는 보다 계획적이고 보다 팀워크 중심이며 보다 큰 시각과 완벽한 컨덕팅이 요구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이는 개인 중심, 디자인실 중심, 비계획적이고 스폿 중심의 지시와 변화무쌍한 발주서 변경으로 이어지는 기존 시스템을 모두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한 기업 경우 전체 조직을 흔들고 시스템을 바꾸는 2년여간 매출이 급강하하고 사람들이 들쭉날쭉하는 심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이런 면에서 이제 디렉터의 성격도 디자인실장의 확장된 개념이 아니라 전체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지휘할 수 있는 진정한‘ 컨덕터’로 바뀌고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정신없이 성장해온 한국 패션 산업에서 잘 양성된 디렉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국내 패션 인더스트리에서 괜찮은 디렉터를 꼽자면 불과 몇 명 안된다. 그렇다고 주니어급의 디렉터들이 많이 성장해 있느냐? 하면 역시 몇 명 꼽다보면 끝이다. 이런 면에서 제일모직이 몇 년 전 부터 주니어급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여러 명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투자해온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 패션 건강 위해 디렉터에게 휴식과 충전을!

    디렉터는 단순히 디자인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아니다. 패션 마켓 전체를 보는 눈과 남들보다 앞서 트렌드를 보는 힘, 그리고 이를 잘 기획해 이것이 디자인, 기획한 대로 잘 생산돼 판매에 이르고 그 결과가 다시 다음의 상품기획에 반영되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잘 디렉팅하는, 그럼으로써 결국 기업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디렉터의 능력이다. 이제 남과 다른 것이 인정받는 시대다.‘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때때로 디자이너들에게 쉴 시간과 재충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2012년, 2013년… 2020년을 앞둔 한국 패션산업의 건강 백세를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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