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창의성 시대 과연?

    es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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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6.11조회수 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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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티브요? 아이덴티티요? 아이고~ 그런 단어는 한국 패션사전에서 없어진 지 오래 아닌가요?” “빨리 만들어야죠. 싸게 만들어야죠. 그러면서도 잘~ 만들어야죠. 죽어라 뛰어도 매출 안 나오면 집에 가야죠.” “요즘 소비자는 귀신이여요. 글로벌 정보를 한눈에 꿰고 일반인들까지도 이번 시즌의 핫아이템을 알아채고 척척 받아들이는 걸요.”
    2015년 5월 현재.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는 너무나 고통스럽다. 디자이너가 창조적 직업이라는 것은 박제된 옛말. 뛰어가는 소비자는 죽어라 쫓아가도 잡히지 않고, 기어가는 기업은 바뀌지 않은 10년 전 시스템에 갇혀 있으면서 온갖 글로벌 브랜드 흉내를 내라고 한다. 「ZARA」의 속도감과 「유니클로」의 가격, 때로는 「샤넬」 같은 마케팅을 따라가라 한다. 그러면서도 옆집에서 무엇이 잘 팔리고 있으니 그것을 카피해 만들라 하고 영업과 매장에서는 매출만 떨어지면 디자이너 탓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 내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의 강세, 스피드와 빠른 트렌드 수용도 부족해 바로 옆에 매장을 내고 브랜드들을 위협(?)하는 온라인 브랜드들, ‘리테일형’이라는 명분 아래 동대문 상품들을 사입해 속도감으로 역시 브랜드를 주눅들게 하는 한국형 패스트패션 브랜드들….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속도감 따라 ‘빨리빨리’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 어디든 접속해 원하는 옷을 싼값에 골라 살 수 있는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의 무한대 성장은 또 어떤가. 매일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글로벌 패션 정보, 친절하게 풀착장 센스를 공급해 주는 수백 가지 패션 사이트와 블로거들.
    온 · 오프라인에 널려 있는 수십 가지 미디어를 통해 잘 학습된 이들은 글로벌 수준의 감각에 최신 트렌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옷을 원한다. 게다가 무척 합리적인 가격대에 값싸 보이지 않는 고급스러움까지 요구한다. 덕분에 해외 직구시장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이런 모든 현상이 브랜드의 기획실에 엄청난 변화를 요구한다. 이제 패션 세상은 그 동안 우리가 해 온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 모든 틀과 룰, 고정관념들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새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상품을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방식, 만드는 방식, 판매하는 방식, 전달하는 방식….

    소비자는 초 스피드, 기업은 10년 전 시스템

    하지만 기업의 상품기획 시스템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품을 기획하는 디자인실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는 거의 비슷하다. 물론 해외생산의 경우 생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기획 시점을 앞당기려는 노력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내 패션기업들, 특히 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브랜드들은 늘 매출에 쫓기기 마련이다. 디자인실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바라보고 상품을 기획하기보다 당장의 실적과 손익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금 잘 팔리는 물건을 ‘빨리빨리’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결국 품평회 기간은 날로 짧아지고 횟수는 늘어난다. 과거 시즌마다 하던 품평회가 이제 1개월에 한 번씩이다. 돌아서면 다음 품평회를 준비하느라 숨 돌릴 겨를이 없다. 동시에 2주일에 한 사이클이 돌아가는 패스트패션과 경쟁해야 한다.

    상품 히트해도 대박 옛말, 삽시간 온라인 퍼져

    아무리 좋은 디자인의 상품을 내놓아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퍼지므로 대박은 옛말 히트해도 그 양은 비교할 수 없이 줄었다. 게다가 디자이너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숫자로 바로 이어지지 않으면 해고다. 이런 현실 속에서 패션 디자이너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할 곳이 없다.
    너무 빠른 변화 속에 경험이 풍부한 디렉터의 필요성은 높아지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노련하면서도 열려있는 경험자는 별로 없다. 디렉터에 대한 판단 시점도 점점 짧아진다. 국내 대표적인 패션기업의 경우도 브랜드 론칭 후 1년만에 디렉터의 재계약이 이뤄지지않았고 또다른 기업의 한 디자인 실장은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사전 통보 없이 해고되기도 했다.
    이들이 걸머진 스트레스는 책임져야 할 매출, 상품력, 속도감에 정비례해 점점 더 커진다. 빨리빨리를 강조하며 글로벌 패스트패션을 따라가느라 헉헉댄 지난 10년, 국내 패션계의 현실은 비슷비슷한 상품에 평균 수준이 동반 하락했다. 브랜드별 아이덴티티는 커녕 갖고 있던 강점들마저 사라졌다.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소비자, 사면초가 디렉터

    이를 개선하려면 이제 사람을 바꾸는 단편적 변화가 아니라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모두 바꿔야 하며 이는 디자이너 중심의 시스템에서 MD 혹은 MR(Merchandising Resourcing) 중심으로 축이 이동함을 뜻한다. 또한 더 계획적이고 팀워크 중심이며 더 넓은 시각과 완벽한 감독이 요구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바꿔 말해 감각 의존이고 비계획적이며 스폿 중심의 지시와 변화무쌍한 발주서 변경으로 이어지는 기존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렉터의 성격도 디자인 실장의 확장된 개념이 아니라 전체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지휘하는 진정한 ‘컨덕터’로 바뀌고 거듭나야 한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엄청난 투자(비용적, 시간적)를 요하는 일이며 일정 기간의 위험 요소를 각오해야 가능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한 대기업은 전체 조직을 흔들고 시스템을 바꾸는 2년여간 매출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들쭉날쭉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후 이 회사는 지금 가장 차별화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선택할 것이냐, 그대로 갈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당신, 디자이너 탓 하지말고 빨리 결단을 내릴 일이다.




    **패션비즈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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