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도 대기업 파워 ‘위풍당당’

    안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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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11.16조회수 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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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핵심상권에 있는 주요 백화점에 가 보자. 「랄프로렌칠드런」이나 「버버리칠드런」보다 「빈폴키즈」와 「닥스키즈」가 눈에 들어온다. 66㎡의 규모 있는 매장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VMD 연출로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동복의 명품인 「랄프로렌」과 「버버리」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정도다. 이들까지 긴장하게 만든 주인공은 제일모직과 파스텔세상(엘지패션 계열)으로, 지금 아동복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폴로」와 「빈폴」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빈폴」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디자인 감도나 소재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티셔츠 한 장에 1만원이나 더 싸다. 무엇보다 사이즈가 우리 아이들의 체형에 잘 맞으며, 코디 아이템이 풍부하다. 과거에는 「폴로」보다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졌지만 아동에서만은 비등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빈폴키즈」가 요즘 잘나가는 이유다.

    아동전문社, 대기업 진출로 ‘음매 기죽어’

    많아야 연매출 300억원인 아동복 브랜드까지 결국 대기업이 장악하는 것인가. 아동복 시장에는 대기업의 진출을 놓고 두 가지의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아동복 전문 기업들의 위축을 우려한다. 당연하다. 타 복종에서도 그랬듯이 대기업의 자본력 앞에 무릎을 꿇는 곳이 많았으며, 이는 불황일수록 더 명백하게 나타난다. 아동복 역시 현재 그 시기를 겪고 있다. 서양물산의 「블루독」, 퍼스트어패럴의 「프렌치캣」, 이현어패럴의 「빈」, 모크의 「모크베이비」 등 내셔널 브랜드의 대표선수이던 이들이 올해 들어 지난해보다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시각은 밀려오는 수입 브랜드에 맞서 국내 아동복 시장을 발전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많은 표가 몰린다. 아동복 업계 관계자는 “수입 브랜드에 한 번 맞고 이젠 대기업에 치이는 격이 됐다”면서 “백화점에서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괜찮은 수입 브랜드가 들어왔을 때는 내셔널 브랜드를 밀어내거나 축소시키고 그들에게 넓은 공간을 제공하니 우리가 밀릴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는 “서울 강남권이나 지방 대도시 상권에서는 수입이니 대기업이니 하며 고급 브랜드가 성황일지 모르나 전체 매출을 놓고 봤을 때와 평당 효율을 따졌을 때는 아동 전문 기업이 낫다. 게다가 수수료는 우리가 더 많이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화점의 입장은 어떨까. 현재는 과도기적 시점이지만 앞으로 대형마트와의 뚜렷한 차별화를 위해 럭셔리 감각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5년 내에 수입과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전망이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수입 브랜드를 받아주거나 대기업 브랜드라고 특별대우는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공정한 기준으로 브랜드를 평가해 MD를 진행하겠다는 것.

    ‘수입에서 괜찮은 내셔널 브랜드’로 MD 변화




    김상열 롯데백화점 아동스포츠팀 과장은 “해외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 해도 국내 시장에 펼쳐놨을 때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건 전개사의 자본력과 영업력에서 크게 좌우된다”면서 “수입이건 내셔널이건 마찬가지로 기업의 자본 능력이 브랜드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빈폴」이나 「닥스」 등 대기업의 브랜드에 기대를 걸게 된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회사의 내셔널 브랜드는 수입보다 매출이 잘 나온다. 고객의 요구에 응대하는 액션이 수입 브랜드에 비해 빠르고 가격저항도 상대적으로 낮아 더욱 대중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랄프로렌」과 「버버리」가 서울 강남권에서만 먹히는 것과 달리 「빈폴」은 강남권에서는 밀리지만 중소형 매장까지 골고루 매출이 잘 나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버버리칠드런」이 20개점에서 연간 점 평균 10억원씩 올려 총 200억원의 규모이며, 「랄프로렌칠드런」은 30개점에서 점당 연매출 7억원으로 역시 200억원대다. 「빈폴키즈」는 42개 점에서 점당 연평균 7억원으로 올해 300억원이 전망된다. 「버버리칠드런」이 점당 매출이 가장 높지만 더 이상의 유통망 확장은 비효율 숍이 될 가능성이 높고 「랄프로렌」 역시 확장보다는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들 브랜드는 200억원대 매출에서 더 이상을 바라볼 수 없다. 반면에 「빈폴키즈」는 맥시점 50개점을 확보해 400억원의 외형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는 내셔널 브랜드이기에 가능하다. 프리미엄 수입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아이템 보강을 통해 더욱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폴로」 보다 「빈폴」, 「버버리」 보다 「닥스」





    프리미엄 내셔널 브랜드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입 명품을 선호하는 하이클래스층과 명품은 아니더라도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중산층 소비자까지 흡수한다. 납기가 빠르고 물량도 충분해 더 많은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수입 브랜드의 한계를 프리미엄 내셔널 브랜드로 커버하는 가운데 대기업이 끼어들어 시장을 장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올 하반기에 런칭한 「닥스키즈」가 좋은 사례다. 「닥스키즈」는 「빈폴」의 아성에 도전하는 브랜드로, 100년 전통의 라이선스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하반기에 롯데백화점은 본점을 비롯해 잠실 부산 노원 영등포 등 15개 점을 신규인 「닥스키즈」에 내줬다. 매장 규모도 66㎡ 안팎으로 기존 브랜드의 기를 죽일 만큼 큼직하다. 롯데 측은 “비효율 숍을 정리하면서 신규 대안이 없었다. 인지도 있는 「닥스」는 상품 컨셉에서 「버버리」, 가격에서 「빈폴」과 경쟁할 수 있는 브랜드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도 울산 목동 신촌 등 3개 점에 「닥스키즈」를 넣었다. 특히 현대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수입편집숍 ‘스타일아이’를 철수하면서 「닥스」를 넣은 것으로, 어중간한 수입보다 라이선스가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MD를 결정했다. 「닥스키즈」는 목동점에 인테리어만 1억원을 쏟아 부을 정도로 「버버리」에 맞먹는 고급스러움으로 무장하며 프리미엄급 브랜드 반열에 동참했다.

    아동복 시장은 규모 있는 기업에서 전개하는 수입 브랜드와 중견기업 이상의 아동복 브랜드들이 첨예하게 맞서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파스텔세상의 「닥스키즈」는 이제 막 스타트를 끊은 브랜드로, 아직 매출을 운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제일모직의 「빈폴키즈」는 지난해부터 신장 속도가 무섭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빈폴키즈」는 올 상반기 런칭 이후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백화점 아동 브랜드들이 평균적으로 20%의 역신장세를 보이는 반면 유일하게 「빈폴키즈」만 매출이 올라가고 있다. 올 상반기에 30% 신장률로 마감했으며, 하반기 들어서도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빈폴키즈」 런칭 이후 최대 전성기 맞다

    「빈폴키즈」가 런칭 초반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반기부터 서서히 풀리기 시작해 올해 S/S시즌에 속도를 붙인 것은 꾸준히 상품 개발에 매진한 결과로 보인다. TD의 원형공식을 철저하게 따르면서도 컬렉션과 캐주얼 라인을 별도로 기획해 다양성을 높였다. 특히 고가로 책정된 컬렉션 상품은 한 시즌에 5, 6가지 스타일을 내놓으면서 희소가치를 제안하고 있다. 남아 정장과 여아 드레스 라인이 화려하지 않지만 고급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담아 브랜드를 더욱 럭셔리하게 보이도록 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신장 요인은 성인복과 통일감 있게 상품 및 매장 인테리어를 전개한 것이다. 성인 「빈폴」 마니아 고객들을 키즈로까지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임동환 「빈폴키즈」 팀장은 “그동안 라인 익스텐션에만 신경 쓴 나머지 정작 이 브랜드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남성복 숙녀복과 동일한 시즌 테마로 패밀리 고객을 흡수하고 있다”면서 “26.4~39.6㎡이던 백화점 매장 규모를 46.2~59.4㎡로 확대하는 등 대형 숍을 늘려 나가면서 브랜드 컨셉을 고객들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빈폴키즈」는 현재 백화점 총 48개 매장 가운데 30개 점의 리뉴얼을 마쳤다.

    빈폴컴퍼니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개발(R&D)팀을 운용하고 있다. 영국 미국 등 TD 본고장에서 영감을 얻어 시즌마다 테마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그래픽, 자수 무늬 등을 「빈폴」에 맞게 개발한다. 또 소재에서부터 컬러 부자재 로고 와펜 라벨 패키기 등에 이르기까지 「빈폴」 6개 브랜드(남성 숙녀 골프 진 액세서리 아동)에 동일하게 제공한다. 올 1월에 사이클, 3월에 에코, 5월에 옥스퍼드를 선보였다. 핫서머 때는 하바나 베라데로 리조트와 연결한 테마를 진행했다. 이번 가을 시즌에는 플라잉을 주제로 1970년대 비행기 조종사를 떠올리게 하는 고글모자 등을 내놓아 재미를 줬다. 내년 봄에는 ‘80일간의 세계여행’을 테마로 여행가방 망원경 나침반 등을 소품으로 매장을 연출하고, 여름에는 ‘레페’라는 이름으로 보트를 소재로 한 시원스러움을 전할 계획이다.



    「빈폴」 R&D팀에서 성인·아동 통일화

    임팀장은 “한 시즌에 2, 3가지 테마를 전 브랜드가 공유하고 이외 월별 테마는 각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기획한다”면서 “R&D팀이 굵직한 컨셉을 잡아 주기 때문에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흐려지지 않으며, 전 브랜드의 통일감 있는 상품과 매장 분위기는 소비자들에게 「빈폴」의 가치를 더해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일모직은 아동시장에 진출했다는 의미보다 「빈폴」의 라인 익스텐션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키즈 상품은 「빈폴」의 최초 고객으로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빈폴」 고객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잠정고객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브랜드에 대한 감동을 심어 준다는 계획 아래 매출보다 투자 개념이 더 강하다. 아동복에서 외형은 맥시멈 400억원을 목표로 한다. 대기업에서 봤을 때 소소한 매출이다. 매장도 늘릴 계획이 없다. 백화점 신규 출점이 있을 때만 고려해 50개점에서 확장을 멈춘다는 방침이다. 이제부터는 대형 숍을 늘리고 좋은 위치로 옮기는 작업만 과제로 남겨 놓고 있다.

    방찬식 현대백화점 아동스포츠팀 바이어는 “「빈폴키즈」는 꾸준히 연구하고 개발하는 브랜드로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세일과 행사를 자제하고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점이 눈에 띈다. 점차 소비자 니즈에 부합되는 브랜드로 발전해 나가면서 런칭 5년차 무렵부터 탄력을 받아 현재 유일하게 신장세를 타면서 앞서가고 있다”고 전했다. 1년 내내 기획상품과 세일, 쿠폰 남발로 매출을 이어가거나 1년 전이나 2년 전이나 똑같은 상품 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불분명한 상품을 내놓는 브랜드와 확실히 차별화한 점을 들었다.

    「닥스키즈」 런칭하자마자 20개점 돌파





    파스텔세상의 「닥스키즈」는 「빈폴키즈」와 운영 체제가 다르다. 일단 라이선스 브랜드로 일본 마스터 회사로부터 컨펌된 상품만 매장으로 내보낸다. 엘지패션에서 1983년부터 국내 라이선스권을 획득해 20년 넘게 운영한 브랜드로서 현재 남성 여성 골프 액세서리 등 패션 전 분야에서 모두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100년이 넘는 전통 있는 브랜드이자 고급스럽고 중후한 멋을 줘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많다. 「닥스키즈」를 런칭할 때 이 부분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었다. “신세대 엄마들이 「닥스」를 얼마나 선호하는가.” 회사 측은 “키즈 상품으로 인해 노후된 「닥스」 이미지가 젊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신세대 엄마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타일로 풀어 이들이 「닥스」의 소비자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닥스키즈」는 이번 시즌에 기록적인 매장 확보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월 10일 현대백화점 울산점에 1호점을 선보인 데 이어 9월 초까지 20개점 오픈을 연이어 진행했다. 본점을 비롯해 잠실 부산 노원 영등포 등 롯데백화점에만 13개 점을 확정했으며, 울산 목동 신촌 등 현대 3개, 타임월드 진주 등 갤러리아 2개, 분당 수원 구로 등 AK플라자 3개 등 총 22개의 백화점을 확보했다. 엘지패션 「닥스」 직영점 1개점을 포함하면 토털 23개점이다.

    이후 10·11월에도 백화점 MD 진행 때 입점하는 조건으로 예정한 매장까지 있어 올해 말까지 25개 점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궁금한 건 신세계백화점에는 왜 들어가지 않았냐는 것. 회사 측은 내년으로 미뤘다고 답한다. 부창규 파스텔세상 본부장은 “롯데백화점을 메인으로 첫 시즌을 풀었지만 신세계를 배제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다”면서 “이번 시즌에 소비자 반응에 따라 유통망을 이른 시일 안에 확장해 조기에 안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수입 VS 대기업 하이엔드 시장서 한판승부

    트렌치 코트와 고유의 하우스체크가 특징인 「닥스」는 런칭 초반부터 「버버리」와 어떻게 다르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부본부장은 “「버버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닥스」의 오리지널리티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라이선스 브랜드의 최대 강점이자 아동복 전문사만이 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사이즈에 맞는 패턴을 개발했으며, 수입 브랜드가 지니는 한계성을 공략해 상품 종류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백화점 바이어들은 “「닥스」라는 브랜드력만으로는 아동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키즈만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닥스키즈」가 런칭 전에 오리지널을 얘기한 것에 반해 상품은 그만큼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버버리」와 「빈폴」의 중간쯤으로 비칠 수 있다. 「빈폴키즈」가 거듭되는 R&D로 이만큼 이끌어왔듯이 「닥스키즈」도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수입 브랜드와 대기업으로 시장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아동복 전문사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수입 브랜드가 밀려오고 대기업이 치고 들어온다 해도 아동복 시장 전체를 뒤흔들 수 없다. 아동복 전문 기업들은 강점을 부각시켜 그들보다 스피드 있고 전문화된 상품력으로 어필해야 할 것이다. 수입 브랜드와 대기업이 하이엔드 시장에 첨예하게 맞섰다면 내셔널 브랜드는 대중성과 전문화를 놓고 진검승부를 펼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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