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잡화 대표주자 쌈지 향방은?

    es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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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8.01조회수 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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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쌈지(대표 천호균)가 매각됐다. “이탈리아에 「구치」가 있다면 한국에는 「쌈지」가 있다” “저는 쌈지라는 시를 쓰는 시인 천호균입니다”를 외치며 국내 토종 브랜드로 한 시대를 풍미한 쌈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이름이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있다. 최형로 이원평 조학수에 이어 또다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호균이라는 이름 또한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것일까.

    지난 25년 동안 국내 대표 토종 패션 잡화 기업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쌈지. 한때 1500억원 매출 규모에 선발 기업들을 한방에 제치고 국내 패션잡화 시장 장악은 물론 고정관념을 깨는 혁신적인 마케팅과 앞서 가는 기업철학, 문화와 예술, 전통을 사랑하며 늘 ‘한국적’인 것을 내세워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쌈지가 왜 이렇게 됐을까. 수입 브랜드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안방’을 완전히 장악했던 국민 브랜드 「쌈지」는 지금쯤 국내 브랜드의 자존심이 됐어야 마땅하다. 그러했던 쌈지의 현재를 지켜보는 패션 관계자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마틴싯봉」에서 영화까지… 무모했다

    쌈지의 좌초는 예측된 것이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 오랫동안 쌓인 방만한 경영, 「쌈지」를 비롯한 사업의 본체인 패션잡화 브랜드들의 경쟁력 약화, 「쌈지스포츠」 「쌤」 등 의류사업 실패, 「니마」 「셔플」 등 「쌈지」 업그레이드 버전의 연속적인 실패, 급변하는 국내 시장 상황과 유통 환경, 소비자들의 흐름과 괴리된 상품 및 브랜딩 전략 등. 그러나 천호균 사장의 끊임없는 사업적 호기심은 엔터테인먼트 예술 영화 부동산 테마파크 유기농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반면에 사업의 본체인 브랜드들은 갈수록 약화돼 갔다.

    부실의 발단은 프랑스 브랜드 「마틴싯봉」에서 시작된다. 당시 쌈지는 프랑스 소재 디자인 스튜디오인 MARTINE SITBON SARL에 총 20억원을 투자해 지분 66%를 확보했다. 「마틴싯봉」에 6억원을 출자하고 이 회사의 프랑스 현지 법인에 14억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시 아주 앞서가는 글로벌 브랜딩 전략이었지만 해외기업을 경영함에 있어서 많은 무리가 따랐다. 개성있고 자유분방한 디자이너 마틴 싯봉과 파리 현지회사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개념없이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익이 거의 없이 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들인 비용은 100억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두 번째는 부동산과 결합된 테마파크이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딸기가 좋아’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테마파크라는 면에서 많은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사업 측면에서는 분명 손해였다. 고객수에 비해 입장료를 제외한 비즈니스 모델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딸기카페’ ‘딸기가 좋아II’와 쌈지갤러리를 연이어 헤이리에 오픈했다. 서울 인사동에 오픈한 패션몰 ‘쌈지길’은 5년 내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회사 경영 차원에서는 빛좋은 개살구였다. 한국 공예골목이라는 천사장의 자긍심과는 달리 쌈지길은 오픈 이후 적자폭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아직도 매월 1억여원의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세 번째는 영화사업 진출이다. 패션보다는 영화감독이 꿈인 아들 천재용 실장의 미래를 위해 2007년에 뛰어든 영화 사업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천사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패션과 영화의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며 매니지먼트 사업과 함께 드라마 제작에도 진출해 영상 콘텐츠 회사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쌈지길’과 헤이리의 ‘딸기가 좋아’ 마저

    그러나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사업적 태생과 함께 영화와 방송 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이 역시 크게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영화 ‘무방비 도시’가 실패한 이후 두 번째 영화인 ‘인사동 스캔들’ 역시 투자 유치가 절반에 못미치면서도 강행하는 등 무리수를 뒀다.

    이런 가운데 쌈지는 매출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매장 운영에서 수익이 악화됐다. 수입 브랜드가 물밀 듯 밀려들고 국내 A급 패션잡화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강력하게 부상하면서 1등 토종 브랜드라는 「쌈지」의 로열티도 퇴색해 갔다. 하지만 ‘품질’과 ‘소비자’라는 진정성으로 활로를 찾아야 할 쌈지는 어찌된 일인지 ‘본질’이 아닌 이벤트나 마케팅적 거품만 양산해 내고 있었다.
    지난해 경영이 악화된 쌈지는 급기야 1차 3자배정 방식으로 협력업체들에 20억원 상당을 유상증자했다. 미지급금을 투자금으로 전환했고 협력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의 결정에 따라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해도 너무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100억원 자금 투자 대신 대주주 내놓다

    지난 6년 동안 쌈지는 연거푸 적자를 냈고 증권사로부터 경고도 당했다. 증권법이 바뀐 지난해부터 앞으로 3년간 적자를 기록하면 쌈지는 상장기업에서 퇴출되는 신세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올 1분기에도 매출이 24.28%로 대폭 감소했다. 「쌈지」 「마틴싯봉」 등 브랜드들은 백화점에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부채 비율은 471.45%로 유동성 자금이 절실해져만 갔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사장이 선택한 것은 100억원의 유상 증자를 위해 최대 주주 자리를 희생하는 것.

    파트너로 선택한 기업은 패션과 관련 없는 재생에너지 회사다. 이는 100억원이라는 자금도 필요했지만 패션업체의 재생에너지 사업 진출이라는 증권가 빅 뉴스를 통해 주가를 올리려는 계산도 다분히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는게 증권 관계자들의 설명. 지난 6월 23일 쌈지는 1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방식 유상 증자를 통해 천사장이 최대 주주 자리에서 물러나고 유상 증자에 참여한 양철호 등 2명이 최대 주주로 바뀐다고 공시했고 이튿날 주가는 전날보다 140원(14.66%) 오른 1095원에 거래됐다.

    천사장 정감사 부부 퇴진, 매각 가능성도

    하지만 투자자 가운데 1명이었던 임세만 씨의 자금 조달 실패로 1차 유상 증자가 실패로 돌아갔으며, 최대 주주 변경 가능성과 패션 업체의 재생에너지 사업 진출로 폭발했던 투자심리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100억원의 자금은 7월 10일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15일로 연기한 이후 다시 17일 들어왔다. 100억원이 들어왔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이중 시티은행에 56억원을 갚는 것이 조건이기 때문이다. 밀린 직원 급여와 물대 일부를 해결하고 나면 운영자금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쌈지호와 천사장의 행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천사장은 8월6일 주총 결과에 따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천사장은 주총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난 7월20일 25년 동안 이끌어 온 경영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로써 인수 기업은 대신 전문 경영인을 내세워 반전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인수 기업의 목적이 단지 우회 상장인 경우 친환경 사업 등 콘텐츠를 붙임으로써 주가를 올리는 데 관심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쌈지라는 기업의 정상화에는 별반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쌈지를 재 매각하거나 일부 브랜드나 사업 부문을 M&A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다. 부채 비율이 471.45%라는 사실은 지금 같은 불황에 외부에서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이 총동원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쌈지」=천호균’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브랜드 매각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안으로 패션 브랜드가 아닌 쌈지아이비젼을 정리해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쌈지 떠난 천사장 유기농 테마파크로?

    쌈지를 떠난 천사장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최근 천사장 부부를 만난 한 패션계 인사는 “의외로 그들이 초연해 보였다”라고 전한다. 아마도 한동안 휴식한 뒤 그는 아트 비즈니스, 친환경 유기농 테마파크 사업, 핸드백을 포함한 패션잡화 생산사업 등의 세 가지 방향에서 활동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사업들은 이미 쌈지를 통해 천사장이 모두 시뮬레이션해 본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쌈지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거론된다. “핵심 브레인이 없었다” “욕심이 과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천사장은 쌈지에서 마음이 떠나 있었다” “아트와 경영은 서로 상이한 것인데 아트경영은 이상 아닌가?” 등. 그럼에도 그동안 쌈지와 천사장은 한국 패션에 독특한 자양분 역할을 해 왔다. 언제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한국 패션에 다양성과 파격의 미학을 제공해 준 천사장의 공로는 누가 뭐라해도 패션 역사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패션 잡화라는 핵심 포트폴리오를 잃은 채 펼친 다양한 문화 사업과 영화 사업으로의 진출은 진정성과 눈길을 끈 아이디어임에도 모기업인 쌈지에는 일종의 부메랑으로 작용한 셈이다. 쌈지가 시장에서 ‘넘버원’도 ‘온리원’도 아닌 상태에서의 사업 확장은 안정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쌈지의 토대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상을 좇은 천사장, 최근 들어 “농사를 짓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그는 또다시 어디선가 무엇인가를 새로 짓는 시인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박스기사 ===================================================================================================

    쌈지 흔적 뒤돌아보기





    쌈지는 지난 1984년에 레더데코의 피혁 잡화 업체로 설립, 데코의 잡화 프로모션으로 시작했다. 데코의 협력 업체로 이원평 회장과 인연을 맺은 천호균 사장은 데코의 성장과 함께 급성장했으며, 데코와의 사업적 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데코」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게 해 준 이회장과의 각별한 관계는 유명하다. 1990년에 데코의 프로모션을 그만두면서 「데코」는 「쌈지」라는 기상천외한 브랜드네임으로 재탄생했다.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국내 패션잡화 시장을 휩쓸고 있던 당시에 「쌈지」라는 이름은 한국적이다 못해 키치적 느낌을 주었다.

    1990년대 중반 「데코」라는 브랜드명을 일시에 잃는 바람에 모두가 망하리라 여겼지만 쌈지는 더욱 멋지게 성장했다. 당시 딱딱했던 핸드백의 정형을 캐주얼하게 바꿔 놓은 그 ‘사건’은 아무도 잊을 수 없을 정도다. 새로움에 목말랐던 소비자들은 쌈지에 몰렸다. 당시 롯데백화점에서는 설립 이래 전무후무한 매출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9년 이후는 의류 진출과 함께 아트 마케팅의 시대였다. 쌈지 아트스튜디오 오픈을 기점으로 실험적이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성 및 신인 작가들을 끌어모아 패션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패션과 아트의 접목이자 ‘아트경영’을 내세운 천사장은 예술계에서도 유명한 이름이 됐다. 이어 이들의 발표회장인 ‘쌈지 워크숍’으로 문화 및 예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사업을 전개했다. 이후에도 신인 작가들을 발굴해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계속했다. 「쌈지스포츠」 내에서 팝아티스트 낸시 랭을 영입한 아트와 패션의 만남이라는 화두로 트렌드세터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익 측면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1년에는 디자이너 정구호를 공동 CEO로 영입하며 ‘쌈지네이션’을 기획해 당시 온·오프라인이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구체화했다. 「쌈지스포츠」에 이어 2002년에는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 「쌤」을 런칭해 캐주얼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현재 「쌤」은 의류를 중단하고 핸드백만 전개하고 있다. 현재는 「쌈지마켓」으로 의류 브랜드에 대한 야망을 이어갔다. 이는 쌈지의 문화마케팅 일환으로 이슈를 던진 재활용을 테마로 구성한 브랜드이다.

    천사장의 아트 마케팅 활동은 ‘사람’에서 ‘공간’으로 이어졌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딸기가 좋아’에 이어 2005년 1월에 인사동 ‘쌈지길’을 통해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물꼬를 텄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인사동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팝 아트로 녹여낸 패션이 만난 ‘쌈지길’은 4년간의 준비를 끝내고 2005년에 오픈해 당시 새로운 한국 감성이 녹아 있는 문화 공간으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역시 명성에 비해 매출은 기대 이하였다.

    이후에도 쌈지의 실험적인 행보는 계속됐다. 쌈지의 아트마케팅은 ‘공연’과도 손잡았다.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일명 쌈사페)은 언더그라운드 록그룹 페스티벌이다. 홍익대 일대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수많은 언더 그룹이 쌈사페를 통해 데뷔하거나 유명해지기도 했다. 연세대 노천극장과 성균관대 건국대 등 주로 대학교 노천극장을 활용한 이 페스티벌은 많은 젊은이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제공했다. 이 또한 사업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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