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 전문성’, 똘똘 뭉친 괴짜들~

    패션비즈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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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9.16조회수 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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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고정관념과 경계를 허물고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고 창조하는 괴짜들이 있다. 바로 염승재 엄건식 남용섭 김영준 이병관 등이 주인공이다. 디자이너, MD, 바이어 등 늘 있어 왔던 그들도 패션 산업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겠지만 이들 괴짜들은 다음 10년을 이끌 새로운 차세대 패션 피플이 누구일까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서 ‘패션 잡 트렌드(Job Trend)’가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패션 산업 환경이 리테일 비즈니스로 바뀌면서 새로운 자신만의 일자리를 만들거나 기존의 영역을 진화시켜 깊이를 더한 역할의 직업군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남들이, 혹은 선배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숍 디렉터’라는 새로운 영역의 직업을 만든 염승재 디렉터, 일본이나 유럽 미국에서나 만났던 영향력 있는 숍 매니저의 역할을 하는 임건식 매니저를 통해 새로운 숍 비즈니스 세일즈 문화를 기대할 수 있다. 과거에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가죽의 장인, 패턴사의 영역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새로운 일을 창출한 청춘들도 있다. 슈즈에 미쳐(?) 있었던 김영준 디자이너는 ‘가죽 메이크업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구하면서 전문가로 성장 중이다. 이병관 가죽 테크니컬 디자이너는 그동안 의류 분야에만 있던 직업군이 핸드백 부문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바뀌었는지를 알려준다.

    괴짜들에게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하려 해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제가 미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결국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청춘은 자신의 열정을 쏟아낼 자신만의 일을 간절히 탐한다. 사회가 변하듯 일자리도 변하고 있다. 미래에 없어질지 모르는 직장이 아니라 나만의 일을 만들고 전문성을 갖춰 최고와 최초가 되겠다는 괴짜들.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다가올 10년 뒤 패션 산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한 직업군이 포진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낳고 분야별 전문가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가 곧 펼쳐질 것이다.





    대기업부터 패션전문기업까지 앞다퉈 뛰어드는 오늘날 패션 비즈니스의 화두를 꼽으라면 바로 숍 비즈니스일 것이다. 하지만 제조와 유통 중심의 비즈니스 방식에 매몰된 환경에서 성공 모델보다 시행착오 모델만 양산되는 현실이다. 염승재 숍 디렉터는 이 같은 기업들의 갈증을 풀어줄 괴짜다. 염 디렉터는 숍의 이름부터, 의미부여, 컨셉, 머천다이징, 인테리어, 바잉, 딜리버리, 물류, 홍보, 직원 교육까지 6개월간 숍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기업 실무자에게 인수인계가 이뤄지는 것도 그의 책임 중 하나다.

    6개월 후 그가 없어도 원활히 숍을 운영할 수 있도록 숍을 세팅하며 쌓은 인맥(?)들도 모두 넘기고 빠진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숍을 만들러 나선다. 그가 만드는 숍의 기준은 ‘없는 시장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느냐’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시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포지션이 아니라 기존 시장과 연결 고리를 갖지만 아직 진입이 없는 시장을 말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1년 반 정도의 기간에 2개의 편집숍을 열었다. 2011년에는 도서출판 혜원이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1984’라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자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했다. 지난 6월에는 캔들코가 전개하는 수입 향초 전문 편집숍 ‘센티멘탈’을 통해 ‘패셔너블한 향초 시장’을 제안했다. 9월에는 슈즈 디자이너 브랜드 「레이크넨」의 윤홍미 대표 & 디자이너와 수입 & 디자이너 액세서리 전문 편집숍 ‘포스티드’를 런칭한다.

    그는 앞으로 다가오는 숍 비즈니스는 더욱 간단하고 간결한 MD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며 “아이템 집중형 숍 비즈니스 혹은 ‘드래프트(Draft)’ 숍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드래프트 숍 비즈니스는 말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품목을 취급하는 숍이다. 그는 “지금 나에게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숍을 열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숍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철물점’이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넘치는 인파 속에 절반은 여자 친구를 따라온 남자 친구이고, 그들은 할 일 없이 여자 친구를 쫓아다니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들에게 철물점은 여자 친구와 관계증진(?)을 위한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숍 매니저는 ‘판매왕’으로 불려야 최고로 꼽혔다. 이제 숍 매니저는 ‘아이콘’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진화한 스마트 컨슈머는 판매 기술로 현혹하는 판매자보다 소울(soul)을 가진 아이콘과 공감하고 하나가 되길 원한다.

    엄건식 헨즈 숍 매니저는 “오피스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역할과 브랜드의 제품 정보 제공을 넘어 나 스스로가 액션과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입고 제안하는 1차원적인 방식이 아닌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엔서’를 지향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숍매니저 그는 이 둘을 합친 ‘숍 렌서’다. 숍 매니저에서 인플루엔서까지, 2013 S/S시즌부터 ‘헨즈’를 통해 국내 첫선을 보였던 뉴욕 캐주얼 브랜드 「온리NY」를 바잉할 당시 그는 소비자 흐름을 고려한 의견을 제안했다. ‘「온리NY」가 첫선을 보이는 브랜드이니만큼 브랜드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상품군을 바잉하자’는 오피스의 탁상공론과 달리 그는 ‘빈티지 워싱이 두드러진 6패널 캡 모자’라는 구체적인 오더 디렉션을 제안했다. 모자가 매출을 견인하는 코어 아이템으로 자리잡으며 소비자가 선호하는 특징을 말 그대로 ‘현장의 소리’로 전달한 것이다.

    그는 출중한 외모만큼이나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구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운드 라이브러리’ 테마의 ‘헨즈’ 1호점 마포구 동교동에서 이미 많은 여성 팬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이제 ‘아웃도어 클라이밍’ 테마의 ‘헨즈’ 2호점 강남구 신사점으로 옮겨오면서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바로 클라이밍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신사점은 클라이밍 세계 챔피언 김자인 선수가 국내 최초로 개인이 운영하는 암장 ‘자스’와 ‘헨즈’가 함께 구성된 공간이다.

    다양한 스포츠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의 모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을 넓히고 그동안의 활동들을 블로그에 기록하면서 그의 팬층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계한희 디자이너의 「카이」 와 2014 S/S 룩북 촬영 이미지가 공개된 이후에는 그의 블로그에 일 2500명이 다녀갔고 인스타그램(Instagram)* 200명 팔로가 이어졌을 정도다. 「카이」는 지드래곤을 비롯한 씨엘 등 여러 아이돌 스타들이 입기로 유명한 브랜드로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서는 ‘디자이너 스트리트 패션’ 장르를 열며 주목받는 브랜드다.

    정형화된 직업군에서 명명하기 힘든 새로운 롤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기존 포지션은 MD였지만 룩북을 재해석하고 직접 스타일링하며 모델이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을 만들고, 판매를 유도하며 브랜드의 문화를 실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 중이다.





    패터너는 기술직이다? 모델리스트 남용섭에게 패턴은 크리에이티브를 빼놓을 수 없다. 여성복 브랜드 「미니멈」에서 패터너와 디자이너를 겸직하고 있는 남용섭씨. 개발실로 출근하는 그의 작업대는 도안을 그리기 위한 제도자 외에 빈 작업지시서와 컬렉션 이미지 컬러북으로 가득하다.

    남용섭씨는 국내 개발실 직원 중 유일하게 디자인을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그는 평소에 패턴을 뜨지만 스페셜 시즌 컬렉션에서는 디자이너로서 실력을 발휘한다. 「미니멈」에서 지난 S/S시즌 야심차게 준비한 ‘리우데자네이루’ 여름 시그니처 라인도 남용섭씨가 메인 디자인을 담당했다. 회사는 크리에이티브한 감도를 실물로 연결하는 그의 구현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옷을 보는 남씨의 남다른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씨는 “창의적인 디자인은 그것이 실체로 완성됐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죠. 평소 생각하는 옷을 머릿속에서 3D 입체영상으로 구상하는 연습을 많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재와 패턴의 연관성을 몸으로 최대한 많이 체험해 봐야 합니다. 이것이 숙달될수록 상품의 완성도가 높아지지요”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출연한 ‘프로젝트런웨이코리아’에서도 남씨의 테일러링 드레이핑 손맛은 입증됐다. 그는 신진 디자이너의 실력이라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완성도를 선보이며 최종 3인에 올라 인기를 끌었다. 사실 이 방송을 통해 스케치를 잘하는 디자이너를 뛰어넘어 옷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로 업계에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미니멈」의 디자이너들은 패턴사를 하위 개념으로 생각하는 타 브랜드와 달리 그를 ‘기술적 감성적 영감을 주는 동료 패터너’로 인정한다. 또 35세 남씨의 또래 디자이너들은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을 그의 최고 장점으로 꼽는다. 남씨는 양장점 출신의 1세대 패터너와 달리 감성적인 부분에서 얘기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미니멈」 디자이너들은 ‘연령대와 직무가 비슷해 커뮤니케이션이 편하다’ ‘젊은 감각으로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디자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등 남과장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씨 또한 이런 부분을 자부심으로 드러내며 “기술력 없이는 디자인이 있을 수 없어요. 디자인팀이 브레인이라면 개발팀은 손이라 할 수 있어요. 디자이너와 패턴사의 생각이 얼마나 일치하느냐가 상품의 퀄리티를 만들어 냅니다. 디자이너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모델리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죠”라고 말했다.



    Fashionbiz 송인경 기자, ink@fashionbiz.co.kr







    김영준 디자이너의 별칭은 ‘구 • 미’다. ‘구두에 미친 청년’의 약자다. ‘슈즈 비스포크’가 세상의 전부였던 김 디자이너는 현재 가죽 전문가로 성장 중이다. 사실 그 역시 ‘가죽 전문가’라는 타이틀로 가둬 두기엔 그의 그릇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의 역할을 표현할 수 있는 타이틀을 정할 수가 없다. 아직 국내 패션 산업에서 통용되는 대명사가 없기 때문이다.

    신발에 미쳐 용돈을 털어 「발리」와 「페라가모」 등 구두를 수십 켤레 분해(?)했던 10대를 거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 서강대 화학공학과를 무사히 졸업한 그는 “전공이 오늘날 이렇게 유용하게 될지 몰랐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제작자로 첫 출발은 상하이에 베이스를 두고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맞춤 구두 사업이었다. 단순히 ‘좋은 구두를 만들고 싶다’라는 순수한 목적에서 출발한 그의 「아르센제이(Arsene.J)」의 구두는 손맛이 일품인 구두로 통했다. 단순히 신는 사람의 발을 본떠 라스트(슈즈의 형태)를 만드는 단계부터 시작해서가 아니다. 그는 염색된 가죽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메이크업 하기 전 쌩얼(?) 단계의 가죽을 사용해 슈즈를 완성하고 붓으로 결 따라 칠해 마치 수채화 터치의 그라데이션을 표현했다. 이 같은 정교한 작업을 하려다 보니 가죽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가죽 질감과 농도, 두께, 탄성, 결의 차이 등 가죽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구 • 미’에서 그가 한 뼘 성장했다는 징조였다. 그는 “‘더 훌륭한 구두, 더 좋은 구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결국 가죽이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오늘날 가죽 메이크업 전문가로 포지셔닝할 수 있게 된 터닝포인트는 작년 12월 중국에서 한국으로 거취를 옮기고 KEF라는 기업에 입사하게 되면서부터다.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절반의 답을 갖고 그에게 힌트를 던진 인물이 지금의 KEF 대표였다. 3대째 가죽만 취급하며 한 우물만 파고 있는 KEF는 상하이에 지사를 두고 왕래하던 중에 김 디자이너와 인연이 닿았고 지금은 그에게 내년부터 선보일 신규 사업에 대한 기획을 맡긴 상태다. 가죽 액세서리의 A to Z를 갖춘 편집숍을 준비 중이다.

    가죽을 끊임없이 탐하는 그는 가죽 가공의 모든 과정을 메이크업에 비유했다. 가죽은 곧 사람의 피부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피부가 환경과 날씨, 습도와 온도, 공간 등 모든 조건에 민감한 것처럼 가죽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어떤 메이크업을, 누가 해주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제품을 쓰느냐에 따라 피부가 건강해지기도 하지만,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국내 가죽 가공 공장을 상대로 희귀한 약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전문가들과 자주 교류한다.

    “우리가 제품으로 보는 모든 가죽들은 여러 단계의 가공을 거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상태예요. 초기 작업인 가죽의 털을 뽑은 직후의 동물성 가죽에서 식물성 가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떤 ‘레시피(약품)’를 쓰느냐에 따라 가죽의 인생(?)은 바뀝니다. 수백 가지의 약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각양각색의 가죽을 만드는 전문가들을 만나기도 하지요”라고 설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화공과를 전공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호기심과 성장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제 가죽에 대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됐고,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들떠 있다. 구두에 미친 청년에서 제작자로, 소재 연구에 빠진 전문가로, 그의 포지션은 언제나 패션 산업이 규정한 역할이나 타이틀에는 맞지 않는다. 그는 깊이 있게 접근해 자신 만의 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병관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쿠론사업부 C/R(Customer/R&D) 기획팀 과장은 기존 핸드백 브랜드에서나 있을 법한 역할이면서도 없는 포지션에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그는 「쿠론」의 생산 기술자(인천 생산 라인의 분야별 핵심 기술자)들과 브랜드 사업부 디자인 기획팀 스태프들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매장 매니저들의 상품 교육도 그의 몫이다.

    그의 역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타이틀을 달자면 가죽 테크니컬 디자이너, 가죽 코디네이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소재 선정부터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혹은 소비자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까지 전 과정을 코디네이션한다.

    그가 이 사업부에 합류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은 ‘제품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쿠론」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라이징’의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고의 디자인과 퀄리티를 갖추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디렉터인 석정혜 이사가 그를 직접 발탁했다. 이 과장은 “가죽 제품에서 가장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과정은 바로 ‘가죽 선정’이에요. 가죽 부위별로 제품에 쓰였을 때 적합한 위치가 있지요.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꼭 사고가 발생해요”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소가죽의 배 부분은 지방 함량이 많고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가방의 형태를 잡아주고 면적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보디에 사용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 위치에는 소의 등가죽을 사용하는 게 적합하다. 지방이 적고 근육 밀도가 높아 견고하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역할은 단순히 가죽 소재의 전문가로 그치지 않는다. 선별된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기까지, 그는 제작하는 기술자이기보다 기술자를 배치하고 조합을 이끄는 ‘지휘자’다. 디자인 기획팀에서 스케치를 하면 적합한 가죽을 선별하고 수입한 이탈리아 가죽의 적합도를 판단한 뒤 가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앞서 그가 힘주며 말했던 ‘가죽 선정’이 바로 이 작업이다. 초기 작업이지만 가장 중요한 작업 과정이다.

    본격적인 코디네이터 역할은 이제부터다. 5~6명으로 이뤄진(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장인들의 분업화를 돕고 효율을 높인다. 가방의 패턴을 만드는 패턴사, 재단사, 재단한 가죽을 본드 칠해 조립하는 전문가, 이어 가죽 전문 봉제, 자제 체크 및 수배자 등의 기술자들에게 업무를 분담한다.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들의 OEM & ODM 전문 기업인 시몬느에서 브랜드 비즈니스 중심의 기업으로 넘어오면서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과거 브랜드들이 브랜딩과 마케팅에 집중했다면, 이제 제품 개발과 업그레이드가 브랜드의 다음 과제이겠지요. 어쩌면 소비자들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영리해졌기 때문에 브랜드의 숙명(?)일 수밖에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역할은 현장에서 더 빛을 발한다. 직접 현장에 가서 매장 직원들에게 디스플레이할 때 조명의 온도를 고려하고 제품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점을 설명하고 제품이 입고됐을 때 가장 먼저 체크할 점과 제품을 보관할 때 유의사항, 판매 시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가죽의 정보 등을 상세하게 교육한다. 이 같은 과정은 A/S의 횟수와 제품의 손상 정도를 줄일 수 있던 역할을 했다.


    **패션비즈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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