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it」 서영하 대표와 그의 사단

    패션비즈 취재팀
    |
    06.04.24조회수 3927
    Copy Link



    지금 미국에서는 고요한 한류의 기운이 돌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은 현대, 기아 자동차와 삼성, LG핸드폰, 전자제품, 그리고 대회마다 우승을 휩쓸고 있는 여자 프로골프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영화, 음식, 그리고 패션 등의 분야에서도 한국인의 파워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90년대말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이 미국의 블럭버스터 매장 진열대에 놓여졌을 때만해도 한국 영화는 외국영화 섹션에서나 드물게 찾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2006년 현재, 미국 전역의 어느 블럭버스터에 가더라도 ''올드 보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독'' 등 5~6편의 한국영화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중국음식이 ''어메리칸 차이니즈'' 메뉴로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듯이 한국음식도 전통한식에서 퓨전한식까지 다양한 메뉴로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니콜 키드먼이 즐겨찾는다는 소호의 우래옥, 크리스티 튈링톤이 좋아하는 도화 등은 왠만한 미식가라면 다 아는 유명한 뉴욕의 한국음식점이다.


    영화 음식 등 미국에도 ''한류열풍''이?

    그렇다면 패션에서는? 최근들어 그 어느때보다 가장 다양하고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차세대를 이끌어 갈 디자이너로 지목된 두리 정, 각종 신인상을 휩쓴 리차드 채, 진 유, 유지니아 킴, 와이&케이. 그리고 「포에버 21」 「사우스폴」 「제임스 진」 「허드슨 진」 「AG」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디자이너로 사업가로서 스폿라이트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뉴욕 패션계에 미치는 한국인들의 파워는 어느 정도일까? 「폴로 랄프 로렌」 「DKNY」 「리즈 클레이본」 「존스 어패럴」 「엘리 타하리」 등 미국 패션계의 주축을 이루는 굴직한 회사들에는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수십명까지 많은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다. 분야도 디자이너, 머천다이저, 프로덕션, 패턴메이커 등으로 다양하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이나 원단, 부자재 업체까지 합하면 뉴욕에만 수백명에 이르는 한국 패션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중에는 한국 패션인들 사이에서 뉴욕 패션계의 전설처럼 알려진 「DKNY」 도나카란의 오른팔인 제인 정이 있고 아우터웨어의 선두인 리비 그룹의 박석인 부사장, 바이 디자인의 사장 제인 리 등이 있다. 또한 「토카(Tocca)」 「로커웨어」 「TSE」 「마이클 코스」 등 주요 브랜드들에도 현재 한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거나 아니면 그 전에 한국인 디렉터가 활동했었다. 특히 원단이나 해외 소싱과 생산을 담당하는 바잉 오피스쪽은 한국 기업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어번웨어 주자 「G-Unit」 한국인 파워

    그러나 지금까지는「사우스 폴」이나 「포에버 21」 등 한국인들이 일궈낸 기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한국인 직원들이 많다고 해도 각팀에 한두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최근들어 한국인 기업이 아닌 미국 기업안에서 전체 팀원의 1/3 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회사가 있다.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급상승세를 타며 어번웨어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G-유닛」. 이 브랜드의 성공 뒤에는 대단한 한국인 파워가 숨어있다.

    G-유닛 클로딩 컴패니(G-Unit clothing company-이하 G-유닛)은 힙합의 3대 톱 브랜드인 에코 언리미티드(Ecko unltd, 이하 에코)사에서 2003년 흑인 래퍼인 50센트와 손잡고 탄생시킨 셀러브리티 브랜드이다. 최근들어 매출이 급성장하며 주목받고 있는 「G-유닛」을 이끄는 수장이 바로 서영하 대표이다.

    서영하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키이스 김(김익철), 미쉘 김(김완정)이 남성복과 여성복의 Vice President를 맡고 있고 디렉터급과 매니저급에 한국인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세일즈와 마케팅, PR을 제외하고는 디자인과 머천다이징, 프로덕션 전반에 걸쳐 한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 최근 이들의 활동은 미국 패션계에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사우스 폴」 신화 팀, 다시 한번 뭉쳐

    이렇게「G-유닛」에 한국인 직원들이 많아지게 된 이유는 바로 프레지던트로 스카웃된 서영하 대표 덕분. 서 대표는 3년전 미국 어번웨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사우스 폴」성공 신화를 이룬 주역으로 「사우스 폴」에서 디자인, 머천다이징, 프로덕션의 VP 직책을 맡았었다. 무섭게 성장가도를 달리는 「사우스 폴」의 성공 이후 서 대표에게는 업계의 러브 콜이 쏟아져 들어왔고 그는 「G-유닛」을 선택했다. 그리고 「사우스 폴」에서 동거동락했던 핵심 멤버들이 「G-유닛」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시한번 성공 신화를 꿈꾸고 있다.

    서 대표는 2003년 런칭후 지금까지 적자에 허덕이던 「G-유닛」을 흑자매출로 전환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 대표와 그의 팀들이 「G-유닛」에 합류한 2005년 4월부터 3개월간 온 팀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7월에 첫 선을 보인 2006년 봄상품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스케치와 컨셉보드를 보고 처음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세일즈와 바이어들이 실제 샘플을 본 후 매우 흡족해하며 좋은 반응을 보인 것. 현재 봄 신상품은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고 이미 거의 전상품이 완판, 재오더에 들어갔다. 또한 그동안 「G-유닛」을 외면하던 ''시티 블루'' 등의 스페셜티 스토어에서도 구매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맨해튼 34번가의 메이시스 백화점에는 「G-유닛」 브랜드 탄생 이후 처음으로 숍 인 숍 매장이 구성됐다.


    「G-유닛」 매출 ''훨훨'' 흑자전환 성공

    덕분에 기존의 5천만달러(약 5백억원, 홀세일 기준)에 그치던 브랜드의 매출이 봄상품 출시후 급상승했다. 또한 지난 2월 가을/겨울 상품을 선보인 라스베이거스 매직쇼에서는 대부분의 바이어들이 주문량을 대폭 늘리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덕분에 2006년 매출은 회사측이 당초 예상했던 7천만달러(약 7백억원, 홀세일 기준)을 훌쩍 넘어 1억달러(약 1천억원, 홀세일 기준)의 매출이 거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05년 대비 2배에 달하는 매출액이다. 또한, 그동안 0% 에 가까웠던 이익율도 올해는 15 ~ 20% 가 될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간신히 현상유지만 하던 「G-유닛」으로서는 브랜드 탄생 이후 처음으로 상승세를 타고 셈.

    서 대표가「G-유닛」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 마크 에코와 프레지던트인 세스 게즈버그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지를 받는 그에게 텃세와 질시를 보내던 미국인 직원들과 세일즈, 바이어들도 지금은 그를 ''Mr. Miracle'' 이라고 부른다.




    서영하 대표, 별명은 ''Mr. Miracle''

    서 대표는 본인 스스로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88년 코오롱 상사에 입사해 「코오롱 스포츠」의 수출업무를 거쳐 90년대들어서 활기를 찾은 내수사업과 해외 소싱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등산을 좋아해 아웃도어를 선택했다는 그는 아웃도어 브랜드인 「1492 마일즈」의 런칭멤버이기도 하다.

    99년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은 욕심에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아카데미 오브 아트'' 의 패션 머천다이징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왔다. 그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매직쇼를 통해 「사우스 폴」과 인연을 맺게됐고 2000년 「사우스 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머천다이저로 입사했다.

    그 당시 「사우스폴」은 리테일 경험이 풍부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시장을 꿰뚫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막상 상품기획이나 구성 등에는 경험이 부족했던것이 사실. 서 대표는 패션회사의 기본인 브랜드 로고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시즌별 디렉션을 설정, 상품기획, 구성, 생산 시스템 등 지난 10년간 MD로 쌓은 경험을 살려 기획부터 디자인, 생산, 유통, 판매 등 머천다이징 시스템을 정립시키는데 주력했다.


    생생한 현장경험+ 탄탄한 머천다이징

    김대원 사장의 생생한 현장경험과 정보, 그리고 서 대표의 기본에 충실한 머천다이징 능력이 결합하며 「사우스 폴」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마침 9.11 사태로 미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베이직한 아이템과 저렴한 가격, 좋은 품질을 앞세운 중저가 어번웨어로 방향전환을 한것이 맞아 떨어졌고 「사우스 폴」은 매해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2002년 매출이 1억2천만달러(약 1천2백억원)으로 급증했고 2003년에는 두배인 2억5천만달러(2천5백억원), 2004년에는 3배에 달하는 3억6백90만달러(약 3천6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우스 폴」의 성공 이후 서 대표에게 여러 업체의 러브콜이 쏟아져왔고 「G-유닛」에서 프레지던트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그동안 패션계에서 디렉터급이나 VP급 인사는 종종 있었지만 미국 교포가 아닌 토종 한국인을 한 브랜드의 프레지던트로 임명하는 일은 그리 흔치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비록 한국에서의 경력은 10년이 넘었지만 미국에서 일한 경력이 불과 5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파격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4월 서 대표가 「G-유닛」으로 자리를 옮긴후 「사우스 폴」에서 자신과 같이 호흡을 맞추던 직원들을 스카웃해왔고 현재 전체의 1/3인 15명의 한국인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G-유닛」프레지던트로 전격 스카웃

    「G-유닛」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처음에는 미국인 직원들과 디자인 컨셉과 일하는 방식이 맞지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또한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 보스와 그의 사단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등 개인적 친분을 쌓으면서 가까워졌고 지금은 서로에 대한 적응기간을 거쳐 하나의 팀으로 뭉쳤다.

    「G-유닛」의 성공에는 미국인 직원들과 한국인 직원들의 능력이 결합된 시너지 효과가 큰 몫을 차지했다. 바로 톡톡튀는 감각과 창의적인 능력이 뛰어난 미국인 디자이너들과 이를 멋지게 상품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한국인 디자이너, 머천다이저들의 결합이다. 또한 디테일이나 손끝이 야무지지 못한 미국인 디자이너들에 비해 작은 디테일하나에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꼼꼼이 라인을 정리하는 한국인 스탭들이 서로의 장단점을 잘 커버하며 훌륭한 팀웍을 이뤄내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만들지 말고 우리의 고객이 좋아할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해라" 이말은 서 대표가 항상 디자이너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시장의 흐름을 보고 비즈니스를 쫒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팀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 작은 디테일 하나 하나에까지 신경을 쓰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던 미국인 직원들도 이제는 그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서 대표와 한국인 팀들이 이뤄낸 좋은 결과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뭔가 특별한게 있다?!

    서 대표는 지금의 「G-유닛」 브랜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이다. 또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한국인으로서의 책임감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한 브랜드만을 맡고 있지만 자신과 한국인 팀들이 열심히 일해서 함께 좋은 결과를 내면 언젠간 우리도 미국시장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늘 한국인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잘해서 실력을 보여줘야 앞으로 우리 후배들에게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는 것이다

    「에코」사에는 「G-유닛」 외에도 「에이비렉스(Avirex)」 브랜드가 팀장인 베니 홍을 비롯 전체 팀원 25명중 15명이 한국인으로 이뤄졌다. 「에이비렉스」는 「에코」사가 가죽재킷으로 잘 알려진 에이비렉스 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며 지난해 런칭한 스포츠 웨어와 아우터웨어 전문 브랜드이다. 또한 「에코 언리미티드」를 거쳐 현재 보드용 의류 전문 브랜드인 「쥬욕(Zoo York)」의 이혜승이 프로덕션과 제품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에코 언리미티드」 남성복에는 디자이너 세명중 두명이 한국인으로 「에코」사에는 유난히 많은 한국인 직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한국인 직원이 이렇게 많다보니 회사측에서 ''Korean Night'' 파티를 열어줄 정도. 가끔은 한국인 직원이 아닌 미국인 직원이 점심시간에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다 먹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에코」사에서 한국인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디자이너이자 설립자인 마크 에코가 「에코 펑션(Function)」이라는 아우터웨어를 시작할때 현재 제프리-알렌 사의 이기영 회장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에이비렉스」「쥬욕」 등도 한국인 활약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패션비즈니스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던 마크 에코를 패션계에서 자리를 잡도록 도와주고 그의 아이디어를 상품화시켜준 장본인이 바로 이기영 회장이었다. 이런 좋은 인연으로 마크 에코와 동업자인 세스 게즈버그는 한국인에 대한 애착과 신뢰가 좋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G-유닛」 「사우스 폴」은 물론 「로커웨어」 「J.Lo」 「후부」 등 한국 패션인들이 유난히 어번 웨어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 어번웨어 시장이 최근 10년간 아무리 많은 질적, 양적 성장을 보였다고 해도 전체 의류시장에서 보면 그다지 큰 마켓이 아니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메이저급 디자이너들의 진출이 적다. 또한 흑인들은 재능이 있고 어번 웨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지만 제대로된 디자인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적고 비즈니스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나 머천다이저가 적다. 따라서 외국인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기회가 오는 것이다"

    또한 한인 이민자들이 주력 업종이던 뷰티숍, 세탁소, 델리가게에서 옷가게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흑인들의 스트리트웨어를 취급하게 됐고 한때 미국의 어번웨어 스토어를 한인들이 장악하다 시피한적도 있었다.


    한국 패션인들 어번웨어에서 유독 강세

    「사우스 폴」의 김대원 사장도 리테일에서부터 어번웨어 사업을 시작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러한 추세에는 「후부」의 성공도 큰 몫을 차지했다. 스트리트웨어를 어번웨어라는 카테고리로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후부」는 어번웨어의 브랜드화 외에도 한국내에서 어번웨어를 체계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라인을 정립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남자옷의 경우 특별한 피트가 없이 헐렁한 루즈 룩을 선보이는 어번웨어에서는 얼마나 빨리, 품질이 좋은 제품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다행히도 「후부」를 통해 어번웨어의 생리를 잘 알고 있던 한국 생산업체들이 발빠르게 후발 주자들의 생산을 담당하면서 어번웨어 분야에서 ''코리안 파워''를 다졌다.

    또한 어번웨어가 인기를 얻기시작하던 초창기 많은 어번웨어 브랜드들이 여성복을 런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특별한 피트가 없는 남성복만 디자인하던 백인 디자이너들이 여성복을 디자인하며 힙합의 감각과 옷의 느낌을 잘 잡아내지 못했다. 바로 이 틈새를 한국 디자이너들과 머천다이저들이 뚫고 들어간것.


    생산에서 브랜드까지 ''코리안 파워''

    어번웨어에서 성공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품질, 생산과정, 가격의 세박자를 정확히 알고 있는데다가 디자인 능력까지 갖춘 이들이야말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했던 어번웨어 브랜드들이 찾던 인재였다. 서영하 대표가 「사우스 폴」에서 런칭했던 여성 주니어복은 이 틈새를 노려 큰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G-유닛」에서도 주니어 라인의 반응이 매우 좋다.

    이렇게 어번웨어는 작은 소매점에서 생산업체로, 그리고 디자인과 머천다이징으로 영역을 넓혔고 이제는 자체 브랜드 보유로 미국시장에서 한국인의 파워를 확장하게 된 것이다. 70~80년대 의류생산 강국이었던 한국은 거대한 중국을 비롯 인디아, 베트남 등의 국가들에게 의류 주요 생산국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게 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이제는 디자인 능력과 고급 생산기술이라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로 ''MADE IN KOREA''의 위상을 높히고 있는 것이다.

    Bann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