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바슬러 l 디코디드패션 대표
    패션-테크 잇는 슈퍼 링커... 지속가능 미래 위한 해법

    곽선미 기자
    |
    15.10.05조회수 10196
    Copy Link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진지한 비즈니스 이야기를 마치고 아델(Adel)의 노래가 나오자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돌변해 열렬한 립싱크를 선보인다. 디자이너 레베카 밍코프의 절친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IT 그룹과의 인연으로 지식의 범위도 넓다. 온라인 세상 속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 세계의 패션기업,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스타트업이 연결될 수 있는 이벤트를 마련한다. 개인 이메일로 도움 혹은 연결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전부 답변하는 건 기본이다.
    세상에, 이렇게 바쁘게 즐겁게 사는 인물이 또 있을까? 자그마한 체구로 12개국을 오가며 패션 브랜드와 테크니컬 기업을 연결해 주는 슈퍼 링커,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건강한 연결자, 바로 리즈 바슬러(Liz Bacelar) 디코디드패션(DECODED FASHION) 창립자 겸 CEO다.
    “젊은 소비자들이 더 이상 오프라인 유통을 찾지 않고 온라인 유통만 찾아서 고민스러운가요?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이 불안하기만 한가요? 전 이 고민에 ‘그래서, 영층이 좋아하는 온라인에 얼마나 공을 들였나?’라고 묻고 싶어요. (기존에 오프라인에 그랬듯이) 사람들이 찾는 그곳을 멋지게 만들면 됩니다.”

    CEO~파트너, 진지함~천진함 오가는 긍정 에너지
    단순한 답변일 수 있지만 기존 한국 패션시장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기존과 너무 다른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라는 막연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유통의 구분에 맞춰 패션을 한정 지었다. 그래서 기존 패션과 급부상한 패스트패션, 온라인과 오프라인, 패션과 테크니컬을 모두 구분해 생각했다. 모두 상호호환될 정도로 연결된 것이 오래전인데도 말이다.
    ‘뒤떨어졌다’는 판단은 아직 이르다. 그녀는 “아직 글로벌 패션시장에서 온라인은 세일즈의 20%를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온라인 기반의 브랜드는 천천히 성장해 갈 거예요. 온라인은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창구죠. 홀세일을 기반으로 한 해외 브랜드들도 자체 온라인을 오픈해 소비자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매출이 2배씩 늘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제조와 오프라인 중심으로 40여년을 움직여 온 패션시장이 갑작스럽게 온라인화(化)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리즈는 “이런 때일수록 내가 속해 있는 산업만이 아닌,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해요. 온라인이나 패스트패션과의 경쟁에서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소비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것, 예를 들어 스토어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색다른 서비스, 음악이나 아트와 관련된 이벤트, 감동적인 A/S 등을 제공할 수 있죠. 그리고 그것을 좀 더 쉽게 현실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테크놀로지입니다”라고 말한다.

    전 세계 12개국 오가며 브랜드와 스타트업 연결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소비자들의 흥미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레베카밍코프」의 사례를 들어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레베카밍코프」는 고객들을 위해 모바일 쇼핑을 오픈하고, 스토어에서는 재미있는 캠페인을 펼치는 등 모든 쇼핑 환경을 ‘Fun’하게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들이 활동하는 소셜 네트워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 결과 브랜드에 지속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리즈는 “사실 디자이너나 브랜드는 현재 소비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온라인이나 모바일 대응도 제대로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패션-테크 속 ‘테크’는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작은 아이디어이지만, 패션회사에는 혁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제 역할은 이 양쪽을 연결해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기회의 장을 펼쳐 주는 거예요. 저희 지사가 있는 곳에서 발생하는 아이디어들을 또다시 이곳저곳에 알리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죠”라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기자 생활 10년, ‘네트워킹’과 ‘미래 예측’ 강점
    리즈 바슬러가 2011년에 창립한 디코디드패션의 역할이기도 하다. 디코디드패션은 콘퍼런스를 주관하는 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하다. 뉴욕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패션과 테크놀로지 양 분야의 글로벌 전문가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콘퍼런스를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검증하고, 그것이 필요한 양편의 업계가 연결될 수 있는 큐레이션의 장을 펼치는 것을 주업무로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서밋(Summit)’이라는 이벤트다. 파리 밀라노 싱가포르 도쿄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마이애미 모스크바 벨기에 등 12개의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 행사는 50~200명이 고가의 금액을 지불하고 보러 오는 콘퍼런스다. 행사의 진행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주제는 하나다. ‘패션과 테크’.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같은 아이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마케팅, 유통, 매장 VMD, 모바일 솔루션 등 패션과 관련된 모든 테크놀로지를 다룬다.
    서밋이 열리기 전 패션유통이나 브랜드 등의 파트너사가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를 온라인 전문가 커뮤니티에 던진다. 이 주제에 대한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는 IT 전문가들이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중 5~25명을 선정해 서밋 현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연사들의 국적은 글로벌하다.

    이세탄, 「버버리」 등 글로벌 파트너들의 해결사
    가까운 예로 일본에서 열린 서밋을 들 수 있다. 일본 서밋의 주제는 이세탄 백화점이 내놨다. 이세탄은 자신의 소비자들이 궁금했고, 그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요소를 찾기 위해 서밋을 진행했다. 이 서밋에는 미국, 이스라엘 등 다국적 연사 5명이 참여했고, 이 중 ‘메모미’라는 인터랙티브 미러 아이디어를 낸 1인이 우승했다. 그 아이디어는 현재 이세탄 백화점이 매장에 적용해 소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의 서밋을 생각해 보세요. 가장 좋은 점은 한국 회사들끼리 아이디어를 내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글로벌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고, 한국 회사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외국에 보여 줄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패션업계는 세계 각국에서 내놓은 검증받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테크놀로지 회사는 자신들의 개발을 전 세계에 알리고 타국 기업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예요.”
    이쯤 되면 이런 일을 꾸밀 수(?) 있는 리즈 바슬러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몰려온다. 브라질 출신으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재원인 리즈는 10년 동안 라이브퍼슨(LivePerson), CBS News, NBC News 등에서 기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녀는 “여러 사람을 만나 뉴스 소스를 찾고, 창의적인 트렌드를 만드는 일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러다가 2010년 즈음 패션이 테크놀로지와 결합을 시도하는 걸 발견했죠. 당시 이들의 표현방식은 정말 예쁘지 않았지만요(웃음)”라며 패션과 테크의 연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을 떠올렸다.
    “패션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좀 더 멋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콘퍼런스를 기획하는 TNW(The Next Web)라는 네덜란드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전문가인 사람을 모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었어요. 저희는 매거진도, 컨설팅 회사도 아닌 커뮤니티 이벤트를 진행하는 곳이니까요.”

    ‘서밋’, 전문가들의 아이디어 경연 및 공유의 장
    그녀는 2011년 미국 뉴욕에서 디코디드패션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4년 만에 회원 4000명을 보유하고 12개국에 파트너 혹은 지사가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아이디어는 국적불문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온갖 새로운 생각과 미래에 대한 예측, 놀라운 기술 등을 접할 수 있다. 회사 설명을 하던 리즈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맞아요. 저에겐 미래 예측 능력이 있어요.”
    “내년 패션계는 아마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겁니다. 2년 뒤쯤 3D 프린터는 지루할 정도로 일상화가 돼 있을지도 모르죠. 작년과 올해는 데일리 데이터(Daily Data)의 해였어요. 비콘,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개인의 퍼스널 데이터를 얻어서 활용하는 기술에 집중했죠. 이것도 앞으로는 밴드 등 액세서리가 아닌 실제 옷으로 구현될 거예요.”
    신나는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그녀는 “물론 지금도 이 기술들이 없는 건 아니에요. 3D 프린터가 나온 지 20년이 됐어도 상용화, 대중화된 것은 지금이듯이 AR 기술도 현재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게임시장 등에서 구현되고 있어요. 좀 투박하긴 하지만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대형 IT 회사들이 이런 새로운 기술들에 관심을 보이며 투자를 늘리고 있어요”라며 농담처럼 한 이야기에 신뢰도를 높였다.

    올해까지는 ‘Daily Data’, 내년엔 ‘증강현실’ 주목
    그녀는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패션-테크’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패션시장의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갈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패션 브랜드가 생존과 성장을 하기 위해 ‘테크’가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녀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해결해야 할 곤란한 문제 중 하나로 ‘가품(fake)’이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진행한 서밋을 통해 ‘진품(authentic) 가품(fake) 구별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이 나왔어요. 상품 고유의 문양이나 패턴을 사진으로 찍으면 곧바로 구별되는 앱이죠. 캘리포니아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인과 중국인이 개발한 거에요. 획기적이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에 가품이 퍼져 곤란한 브랜드에 이 앱은 상당히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또 중국에는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는 「샤넬」처럼 가품 때문에 온라인 판매를 꺼리거나 판로를 차단하는 많은 브랜드에도 좋은 솔루션이 될 것이다. 또 온라인 결제의 20%를 차지하는 ‘도난카드 결제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 하나는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결제자의 ip, 우편번호 등을 조합한 정보를 통해 도난카드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아일랜드의 한 회사가 만들어 낸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중 일부가 곧 상용화할 예정이다.

    ‘테크’, 지속 가능한 패션 위한 솔루션 중 하나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이야기만 들어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 사이트와 활용 브랜드가 존재한다. 국내에도 뛰어난 스타트업이 많고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패션 브랜드가 있다. 그런데 상용화, 대중화된 사례는 극히 일부분이고 패션과 테크의 만남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리즈는 “이번에 처음 한국에 방문했어요.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의 많은 패션기업과 스타트업을 접할 기회가 됐죠. 저는 이런 얘기를 해 드리고 싶어요. ‘겁내지 말고, 달리세요!’”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했다. “한국은 이미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 자신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일본과 한국 사람들은 너무 겸손해요. 공격적이지 못하다고 할까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개발한 것을 직접 들고 자신이 원하는 파트너사가 있는 나라로 날아가요. 이메일 상 짧고 거절의 뜻이 담긴 회신이라도 그 답을 준 사람을 끝까지 붙잡죠. 직접 가서 ‘왜?’ 또 ‘무엇이 부족한지’를 끊임없이 물어요.”

    ‘한국의 가능성, 한국만 몰라’ 적극 러시 강조
    “한국의 어떤 스타트업 혹은 브랜드가 해외 유명 브랜드나 파트너사에 거래 요청 메일을 보냈을 때, 답이 없다고 해도 절망하면 안 돼요. 너무 긴 메일이어서 흥미를 못 가진 걸 수도 있어요. 방식을 바꿔서 계속 요청하고, 링크드인(Linked-in) 같은 비즈니스용 인맥관리 SNS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정확한 ‘연결고리’를 찾는 게 제일 먼저예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꼭 패션-테크, 국내-해외의 일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패션시장의 전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작게는 신소재 개발회사와 제조기업의 비즈니스에도 적용되고, 크게는 라이프스타일로 점철돼 가는 유통 환경에서 패션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
    리즈는 패션과 테크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 패션기업과 스타트업에 애정 어린 조언을 하며 파이팅을 전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나라의 기업에마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그녀 특유의 ‘넓은 오지랖’이 전 세계를 오가며 패션 브랜드와 테크놀로지 기업을 ‘연결’해 주는 힘이 됐을 것이다.
    한편 디코디드패션은 2014년 글로벌 트렌드 컨설팅사인 스타일러스미디어그룹(Stylus Media Group)에 인수됐다. 한국 파트너사는 스타일러스코리아(대표 안원경)다.

    Bann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