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마쓰 다카나오 아슈페프랑스(H.P. France) 사장
    “매처럼 날고 개미처럼 일한다”

    김숙경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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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06조회수 6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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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인상은 날카로운 눈매의 전형적인 일본인, 하지만 미소를 지으면 금방 삼촌이나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어 순간 긴장이 확 풀어진다. 노출을 꺼리고 인터뷰에도 잘 나서지 않으며 패션업체 사람들과도 교류가 별로 없어 일본 패션계에서 ‘괴짜 CEO’로 통하는 인물, 일년 중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무라마쓰 다카나오 아슈페프랑스(H.P. France, 일본인들은 이 회사명을 불어식으로 표현한다) 사장.

    전 세계 기업들이 모두 “크게! 빠르게! 많이!”를 외치며 한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즈음, 홀로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색다른 길을 가는 아슈페프랑스. 이 독특한 기업과 무라마쓰 사장을 만난 도쿄에서의 몇 시간은 놀라움과 감명의 시간이었다. 시부야 중심가 하라주쿠에 위치한 아슈페프랑스 본사 소박한 사무실. 시간이 잘 맞지 않아 결국 자신의 나고야 출장을 취소하면서 인터뷰에 응해준 무라마쓰 사장은 시종 소박하고 진심 어린 태도를 보여주었다.

    패션, 라이프스타일, 아트, PR이라는 4가지 축이 서로 연결돼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 회사의 이념은 놀랍게도 단 한가지다. ‘크리에이션’! 이 회사에서 이 단어보다도 상위에 올릴 수 있는 개념은 없다. 매출도, 이익도, 확장도 아니다.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가장 까다롭고 집요하게 무라마쓰 사장이 개입하고 타협하지 않는 것은 이 한 가지뿐이다.

    일본 전역에 87개 셀렉트숍·연간 1600억 매출

    일본 전역에 87개의 셀렉트숍을 운영하며 연간 1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의 리더인 무라마쓰 사장은 회사에 자신의 집무실도 책상도 없다. “책상이 필요 없다”며 “일은 어디서나 할 수 있고 필요하면 미팅룸에서도 일한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

    600명의 전 직원과 1:1로 네트워킹돼 있는 사람은 무라마쓰 사장뿐”이라고 자타공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장 중심주의 경영을 펼치는 그에게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는 시간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1년 중 절반은 해외에 나가 있는 그는 늘 누군가를 만나고 고객을 바라보며 새로운 어딘가를 향해 시선이 움직인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창업 초기와 똑같이 점장을 포함한 전 직원으로부터 ‘데일리 리포트’를 받는다.

    그는 “18년간 이 리포트를 받아왔다. 인터넷이 오기 전에는 팩스로 했다. 단 이 리포트는 5분 내에 작성해야 한다. 피곤하고 일에 지쳐 있어 하루 중 인상에 남는 사실만 짧게 적는다”라고 했다. 종업원들이 직접 겪은 일, 고객이 흘려 얘기한 의견들이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로 즉시 올라오는 이런 생생한 내용들이 모여서 그는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패션, 라이프스타일, 아트, PR 4가지 사업이 핵심 축

    아슈페프랑스는 패션, 라이프스타일, 아트, PR이라는 4개의 사업부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물론 패션이 중심이지만 패션이 전부는 아니다. 여성복 남성복 핸드백 슈즈 액세서리 웨딩 등 패션과, 가구 장식용품 등 라이프스타일 관련 아이템의 리테일(편집숍)과 홀세일이 그 중심이다.

    여기에 해외 브랜드의 수입과 일본 시장의 디스트리뷰터, 갤러리 운영과 함께 영 아티스트들의 작품 소개와 유통, 이러한 모든 것들을 PR하는 계열사 PRO1.이 있다. PRO1.은 자체 홍보는 물론 다른 기업들의 아타셰드프레스(홍보 전문회사)의 기능을 대행한다. 더불어 패션, 액세서리, 라이프스타일, 아트 등 전 영역의 트레이드 쇼도 중요한 PRO1.의 사업부문 중 하나다.

    무라마쓰 사장은 “내가 만약 패션만을 좋아하고 패션에 집착했다면 지금의 아슈페프랑스라는 기업의 구조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패션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문화 안에서 패션을 비즈니스화해왔다. 나는 늘 문화와 사람을 축으로 하는 비즈니스 창출방식을 추구해왔다”라고 설명한다.



    영업은 비효율적(?!), 관리는 초효율적으로 한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의 주축이 되는 리테일 사업인 87개 편집숍의 컨셉이 각기 다르다는 것.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운영방식이다. “매우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총 87개 숍 중 2~3개, 혹은 5~6개가 동일한 컨셉을 가질 수도 있지만 똑같이 구성된 공간은 하나도 없다. 상권과 고객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겠다고 하면 동일한 컨셉으로 프랜차이즈를 하거나 볼륨화하거나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말은 물론 맞다.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방식을 바꿀 수가 없다. 사내 경영에서도 이것이 자주 화두가 된다. 하지만 바꿀 수가 없다(그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 때문에 영업은 완전히 비효율적인 동시에 관리는 초효율적으로 한다고 할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는 소매가 주 업태이다. 영업을 효율적으로 하다 보면, 즉 고객과의 접촉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만약 소매가 아닌 다른 업태의 회사라면 영업에서 효율을 추구해도 된다. 소매의 특성상 우리는 한 명 한 명의 개인, 한 점포 한 점포가 모여 87개가 됐다. 매장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고객과 상권이 다른 점포들, 프로점장이 소사장

    그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자. “반면 관리 쪽으로는 바로바로 숫자가 나온다거나, 분석에 들어갈 수 있다던가, 경영지수, 지출로 인해 경영판단을 즉시 할 수 있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초효율적 관리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그는 “점포의 디렉터가 사장처럼 움직인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고객에게 환원되고 돌아가는 것이다.

    대부분 회사는 중앙집권적으로 본사에서 매장을 컨트롤하고 움직이지만 아슈페는 중앙에 그 기능이 있긴 하나 한 점포 한 점포 안에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시스템이 있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87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프로 점장인 것이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에는 늘 ‘사람’이 있다. 자신의 표현대로 패션의 ‘패’자로 모르던 초창기 파리에서 만난 프랑수아즈는 무라마쓰 사장에게 패션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또한 그의 통역으로 함께한 친구 장 루이는 게이였는데 이 두 사람의 열쇠를 통해 운 좋게 그는 프랑스 패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마다 열쇠를 풀어준 것은 ‘사람’

    프랑수아즈가 소개해준 브랜드와 메이커들을 매우 흥미로웠다. 일테면 그동안 ‘반지’의 가격 책정 기준은 다이아몬드의 캐럿이나 금의 사용량이었다. 하지만 그가 소개해주는 액세서리는 유리구슬, 신주 같은 새로운 소재를 꼬거나 해서 재질 자체보다는 크리에이티브에 의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

    「자민퓨에시」라는 핸드백 디자이너 이자벨라도 마찬가지. 지금은 물론 훌륭해졌지만 이 브랜드를 처음 직원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 백은 나흘만 갖고 다니면 떨어지거나 “그게 백이냐?”라고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핸드백의 기능을 파는 게 아니라 그 상품을 갖고 있으면 크리에이션을 갖는 것이 그 상품의 가치였다. 이런 새로운 시각은 당시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89년 디자이너 ‘TSE&TSE 아소시에’와의 만남은 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 그 디자이너는 플라워를 베이스로 한 플라워숍, 와인글라스 등을 만들고 있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아슈페프랑스는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프랑수아즈 통해 프랑스 패션의 ‘열쇠’를 풀다

    “지금은 패션과 인테리어(라이프스타일)가 점점 결합하는 추세다. 이제 이 두 가지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시대다. 그런 것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20년 지나서야 알게 됐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런 모든 일들은 논리적으로 해온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이게 좋다’ 싶거나 누가 소개해주고 ‘해보면 좋겠다’며 알려주는 것을 하나하나 하게 된 것이 바로 아슈페프랑스”라고 했다.

    때문에 그는 늘 ‘사람’을 강조한다. “만나는 사람이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소개해주고… 논리적으로 이것과 이것이 서로 다른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연결되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된다. 내 스스로 과연 무엇을 했나 싶다. 내가 한 것은 없다. 항상 누군가 사람이 있었고 무엇인가가 시작됐다.” 결국 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좋은 것들을 계속 비즈니스화해 왔다.

    사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룸스’라는 트레이드 쇼의 탄생 스토리도 재미있다. “숍에서 판매직원으로 일하는 아주 재능 있는 여직원과 남직원이 있었고 판매만으로는 그들의 재능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이 두 사람의 넘치는 능력을 합해 세계적인 수준의 전시회를 만들자 해서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의 믿음대로 그들은 10년간 훌륭한 전시회를 기획, 발전시켰다. 지금 아슈페프랑스라는 기업을 한 단계 점프할 수 있게 해준 트레이드 쇼 ‘룸스’의 출발이다.

    TSE&TSE와의 만남으로 라이프스타일 진출

    그가 일하는 방식은 늘 이렇게 ‘사람’에 닿아 있다. 현장 중심주의도 사람(직원, 고객)과의 접점이고 새로운 비즈니스의 창출도 늘 사람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업을 “‘컬처’를 만들어내는 일이며 그 컬처는 잠재적인 재능과 문화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렇다면 크리에이션을 추구하는 그에게 고민은 없을까. 회사의 성장과 발전, 직원들의 급여인상, 지켜내야 할 회사의 이념…그 사이에서 다른 사장들이 하는 고민을 그도 한다. 한때 프랑스에서 수입한 물건이 안 팔려 재고가 늘어나고 적자에 시달리자 국내 상품을 사입해 파는 사업부의 직원들은 “프랑스에서 수입을 그만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사장은 잘 팔리지도 않는 이상한(?) 물건만 사댄다”는 볼멘소리도 들었다.

    84년 아슈페프랑스 회사를 시작하고 88년 프랑스를 드나들기 시작, 물건도 잘 들어가지 않는 핸드백을 갖고 오며 “과연 이런 길이 회사의 방향으로 맞는가”에 대해 혼란기를 거쳐 95년 그는 크리에이션을 가치로 파는 것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직원들보다 외부 소비자들로부터 반응이 좋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적자에 시달리고 직원들 불만… 소비자는 점점 호응

    그에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고객’이고 ‘사람’이다. 그에게 고객과 사람이 없는 사업적 성공이란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경쟁사나 타사에 대해서도 별반 관심이 없다. “나는 이상으로 생각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것, 늘 여기에 몰입한다. 이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주변 상황으로 인해 내 생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이익보다 ‘개념’을 중시하는 부분도 사내에서 논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는 것이 아슈페프랑스이다. 난 그 부분을 정말 소중히 생각한다. 항상 이상만을 추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념을 통한 이익창출이다.”

    그렇다면 그는 크리에이터일까? 경영인일까? 답은 둘다이다. 지금은 무라마쓰의 개념에 100% 동감하는 임원들이 그를 탄탄하게 보좌한다. 철저하게 관리와 비즈니스를 책임진 가메야마 전무, PRO1.의 총괄 디렉터 마쓰이 등이 그렇다. 전체적으로 이 회사 직원들의 충성도는 매우 높아보인다. 동시에 그렇지 않으면 아슈페프랑스에서는 버텨내기가 어려울 듯 싶다. 왜냐면 이 개념(철학, 컨셉)이 맞느냐 맞지않느냐에 따라 이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거나 혹은 정말 의미 없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만 따지는 게 경영? 내게 중요한 것은 ‘크리에이션’

    그에게 경영철학을 물어보았다. “현장을 너무 좋아한다. 현장과 항상 대화를 나누며 개미같이 일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쪽으로는 매(독수리)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전체를 본다. 즉 전체 이념과 생각은 위에서 보지만 일할 때는 개미와 같이 걸어 다니고 뛰면서 직원, 고객과 소통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려운 일본의 시장상황 속에서도 아슈페프랑스 직원들은 밝고 당당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 이유는 아마도 이들의 목표가 미래에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편집숍'이라는 주제를 위해 무라마쓰 사장과 만났는데 유통이나 패션 얘기 보다 훨씬 본질적인 화두를 던지게 된다. 이 시대에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미래를 읽어내기 위해 앞서가며 자신의 길을 가는 무라마쓰 사장. 젊은 시절 ‘히피’에 몰입했었다는 그는 히피처럼 자유로운 영혼과 발로 세계 패션 문화를 따라 부지런히 움직인다. 크리에이션을 통해 문화를 아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줄 것인가에 몰입해 있는 그는 지금도 파리 어느 골목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룸스링크인서울’ 런칭
    PRO1.은 국내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POT(대표 송미선)와 함께 ‘룸스링크인서울’을 런칭한다. 10월 23일~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복합 문화공간 스칼라티움(구 목화예식장)에서 개최한다.




    **패션비즈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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