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대|엔터식스 사장
    브랜드 출신 MD 디벨로퍼... ‘컨텐츠+유통’ 밸런스로 성공

    김숙경 발행인
    |
    10.11.04조회수 1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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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1989년 미주교역 설립
    1993년 쿠기어드벤쳐 부사장 취임
    1994년 덤프 법인 설립, 대표이사 취임
    1996년 1월 아울렛 ‘덤프’ 문정점 오픈
    1996년 8월 디딤인 상호 변경
    1997~2003년 덤프아울렛 창동점, 부산점,
    의정부점, 가락점, 청주점(쇼핑몰) 오픈
    2004년 쇼핑몰 ‘엔터식스’ 코엑스점 오픈
    2008년 ‘엔터식스’ 왕십리점 오픈, 엔터식스 사명 교체
    2010년 해운대점(6월), 동탄 메타폴리스점 오픈(11월



    한 치 앞도 모르게 전개되는 패션·유통 시장, 양극화로 치닫는 이 마켓에서 또 다른 강자 탄생을 예감케 하는 인물이 있다. 김상대 사장과 그가 이끄는 엔터식스가 주인공이다. 그와 엔터식스의 행보를 지켜보면 백화점 빅3와 이랜드리테일까지 유통기업 외에 콘텐츠와 유통을 연결할 마땅한 MD디벨로퍼가 없다는 브랜드들의 원성(?)을 귀 기울여 줄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기까지 한다.

    현재 3개점, 11월 말 엔터식스 동탄 메타폴리스점이 추가되면 이제 4개점으로 일각에서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이 기업의 승승장구를 점치는 까닭은 패션유통시장을 바라보는 김사장만의 독특한 시각에 있다. 22년의 패션 & 유통 커리어를 쌓은 그는 브랜드 경영과 유통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김사장은 마켓에서 요구하는 패션과 유통의 ‘균형 잡힌’ 경력을 가진 몇 안되는 경영인이다. 그런 그가 진두지휘하는 엔터식스는 현재 전국 각지의 부동산업체로부터 점포오픈 러브콜을 받고 있는 곳만 20곳 이상이다. 국내에서 백화점과 아울렛을 제외한 쇼핑몰 업태에서 드물게 수수료 베이스로 100개 이상의 브랜드 유치가 가능한 MD디벨로퍼로 각광을 받는다는 얘기다. 또한 5대 백화점 이외에 「자라」와 「유니클로」 등 글로벌 브랜드의 유치가 가능한 유일한 다점포체제의 유통이라는 점은 그의 커리어와 패션유통의 철학을 대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쿠기」 등 브랜드 영업MD로 스타트

    계속되는 주택 미분양 사태와 건설사들의 줄도산은 주변상권형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결국 콘텐츠 부재라는 결론인데 현재 이를 충족할 MD디벨로퍼는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브랜드에서 직접 투자하기에는 부담이 큰 상황이며 이는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에게도 해당된다. 김사장은 이러한 시국에 콘텐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엔터식스가 앞으로도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브랜드의 경우 수수료도 빅3 백화점의 A급 점포를 연상케 하는 30% 초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소유통의 백기투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단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고 이 때문에 빅3 백화점에서 견제도 없지 않다. 어지간한 맷집 없이는 금방 도태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엔터식스가 기록한 외형은 600억원이다. 올해 1200억원, 내년 2000억원 돌파가 예상된다. 연평균 2배에 육박하는 외형성장을 일궈내고 있다. 과연 그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엔터식스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정립할 수 있었을까?

    엔터식스가 현재 패션유통의 당당한 주역으로 떠오르기까지 김사장이 걸어온 길을 떼어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의 강점이 현재 엔터식스의 강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패션계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89년. 그의 친형인 김상호 사장과 함께 미주교역을 설립하며 스타트를 끊은 뒤 백화점 매대 사업으로 시작했다. 이후 「휴먼」을 런칭해 본격적인 브랜드 사업의 시작을 알렸고 1993년 쿠기어드벤쳐 부사장을 지내며 「쿠기」 「쇼비즈」 「키라라」 등 5개 브랜드를 총괄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봉제공장서 백화점 매대까지 종횡무진

    기업의 지분 50%를 가진 사실상 오너의 신분이었지만 영업맨으로 현장에서 뛰었고 기획과 생산, 영업 전반을 오갔다. 지금도 상품의 생산원가를 10원 단위까지 알아내는 것도 봉제공장부터 백화점 행사장까지 뛰어다녔던 현장경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도메스틱 브랜드 관계자들이 백화점 수준의 값비싼 수수료를 걸고넘어질(?) 때에도, 브랜드와 분쟁이 생겨도, 턱없이 무리한 조건을 제시해와도 이를 무리 없이 해결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엔터식스가 기획과 유통의 시스템적 괴리를 꿰뚫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백화점과 아울렛과는 극명하게 다른 엔터식스만의 가장 큰 장점이자 차별화 포인트다.
    그가 유통업에 뛰어든 것은 잘 나가던 쿠기어드벤쳐를 떠나 덤프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부터다. 패션기업이 늘 답답하고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재고를 부가가치 높게 판매한다는 아울렛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았던 당시에 그는 창동과 문정동에 덤프아울렛을 오픈했다.

    유통에 손을 댄 이유에 대해 “문정동 상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향후 발전가능성을 봤다. 당시 백화점 빅3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수수료 상승 문제 등이 예견되던 시절이었다. 제조사로서 기업을 지탱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유통업태의 태동을 감지했다”고 설명한다. 그가 설립한 이 유통기업은 유통이 급변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있고 국내 유통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덤프’ 오픈, 아울렛 유통 경영인으로

    이때까지 브랜드와 유통을 병행하던 그가 유통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면서 덤프아울렛 창동점과 부산점, 의정부점, 가락점을 연달아 오픈하며 승승장구한다. 이후 덤프는 콘텐츠와 유통 하드웨어를 거느린 패션유통 종합회사로 거듭났다. 순탄하게만 보였던 유통업 전환이었지만 전혀 상처 없이 일궈낸 성과는 아니었다. 지난 1999년 청주 진로백화점 스포츠타운을 인수한 이후 쇼핑몰 ‘더 월’을 전개하며 시련을 겪기도 했다.

    상설점 형식의 단순한 아울렛 업태만으로는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힐 수 있었기에 백화점에 준하는 정상상품을 취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아울렛 수수료는 15% 내외였는데 이 정도의 수익원으로는 유통 운영의 폭이 한정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기업의 또 다른 캐시카우로 쇼핑몰을 운영했고 당시 사회적인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패밀리카드 사용을 접목하며 아울렛과는 또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초창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울렛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상품과 판촉행사를 벌이며 신선하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3년 뒤 카드대란이 터지면서 이 기업은 위기를 맞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은 국내 백화점 시장의 전체 파이를 15% 감소케 할 정도로 유통에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중소유통으로 미치는 카드대란 여파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이 쇼핑몰은 수십억원의 채무를 안긴 채 재매각된다. 김사장은 이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쇼핑몰의 실패로 인해 지금의 엔터식스가 탄생하게 됐다.

    카드대란 여파, 청주점 재매각 시련도

    2004년 쇼핑몰 ‘엔터식스’는 코엑스몰에 1650m²(약 500평) 남짓한 규모로 오픈했다. 당시 코엑스몰은 3.3m²당 1억원을 호가하는 전국 최상위급 지대를 자랑, 자금력이 약한 브랜드 전개사에는 ‘그림의 떡’이었다.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김사장은 30% 이상의 수수료를 걸고 브랜드를 유치해 나갔다. 치열한 경쟁 속에 총 24개의 브랜드가 입점했고 매출은 예상대로 일정수준 이상을 웃돌았다. 청주 쇼핑몰로 인해 온탕과 냉탕을 오갔던 김사장은 엔터식스 코엑스점을 계기로 방향을 제대로 잡았고 아울렛 덤프에서 손을 떼 엔터식스 2호점 오픈에 주력했다. 사명도 디딤인에서 엔터식스로 교체했다.

    최초의 민자역사로 잘 알려진 왕십리역사는 김사장에게 있어 또 다른 모험이었다. 영업면적만 1만3300m²(약 4000평) 규모로 코엑스점의 8배였고 브랜드 수도 4배 이상이다. 이보다 힘들었던 것은 공룡유통사의 견제로 오픈 이전까지 대외적인 홍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픈 이후에도 인지도가 낮아 1년간 매출은 기대 이하라는 평이었다. 왕십리점에 돌파구가 돼줬던 것은 주변 매장과의 제휴였다.

    시네마, 공연장, 푸드, 커피숍, 헤어숍 등에 이르기까지 아울렛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상호제휴를 통해 하나의 상권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가령 엔터식스의 영수증을 가지고 왕십리역사 안의 커피숍을 가면 10~20% 할인가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식이다. 물론 백화점의 경우도 타 업종 제휴를 병행하지만 대부분 보조금 제도로 움직인다. 엔터식스의 경우 이러한 보조금 지원 없이 자발적인 제휴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에 석고마임과 전시회 등 문화콘텐츠 서비스 도입으로 엔터식스는 단순한 패션쇼핑몰에서 벗어나게 했다.



    「자라」 「유니클로」에 F&B까지 제휴

    김사장이 아울렛에서 손을 떼며 고민한 점이 이러한 ‘몰링’ 문화였다. “단순한 구매의 장을 위한 쇼핑몰이었다면 굳이 아울렛 사업을 중단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엔터식스에 수익이 되는 수수료는 기존 아울렛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백화점을 넘어서는 할인혜택과 문화행사, 판매환경조성에 따른 비용을 제하면 실질적인 수익률은 20% 미만이다. 먹고 즐기는 환경이 조성된 가운데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져야 진정한 쇼핑몰이라 할 수 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조금씩 정상궤도를 찾기 시작한 엔터식스 왕십리점은 올해 800억원 이상의 외형을 예상한다.

    왕십리점에서 보여준 배후상권을 활용한 비즈니스 센스(?)는 올해 6월 오픈한 해운대점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으며 11월 말 오픈할 4호점 동탄 메타폴리스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매출이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순 있겠지만 여타 쇼핑몰과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어 기대감을 더한다. 특히 10월 초 1500m²(약 450평) 규모로 오픈한 해운대점의 「자라」, 동탄점의 「자라」 「유니클로」로 이어지는 글로벌 브랜드 입장에서도 엔터식스의 전략을 인정했기 때문에 입점으로 이어지게 됐다.

    엔터식스는 향후 3년 내에 10개점 확보가 목표다. 현재 전국 상권별로 엔터식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며 조직은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커질 것이 분명하다. 김사장은 특이하게도 브랜드 관계자와의 접촉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브랜드 전개사의 회장과 사장들과도 거의 미팅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도 사람이기 때문에 만나고 친하게 될수록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해관계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유통의 공정한 사고를 흐리게 하는 비즈니스 저해요소로 대두되기도 한다.

    내년 2000억 돌파, 3년내 10호점 가능

    브랜드 거래선과의 접촉은 현재 해운대점장인 박승배 상무와 왕십리점장과 동탄점장을 겸임하는 이상욱 상무 등 ‘믿을맨’들이 도맡아 진행한다. 박상무는 김사장과 함께 22년, 이상무는 15년 지기 비즈니스 파트너다. 이 외에도 평균 10년 이상의 직원들이 허리급에 대거 포진, 탄탄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 점 역시 엔터식스가 유통강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요소다.

    새로운 쇼핑몰 강자를 예감케 하는 김사장과 엔터식스는 패션유통 마켓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세상에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이란 없으며 이 중에서도 패션유통비즈니스는 계속되는 불확실성 안에서 움직인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비즈니스와 항상 부합하는 시장환경이 조성되리라는 보장은 더더구나 없다. 결국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제의 모순을 오늘 찾아내고, 내일 해결해야만 한다.” 이 말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철학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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